2권-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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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른 아침. 지구 출신 아우터 교육생들은 모두 한 자리에 소집되었다. 오르큐스는 그들에게 서둘러 작전사항을 하달하였다.
“여러분들은 오늘 오전 10:00 경으로 하이브 공습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니 장비를 갖추고 8시 반까지 로버단 급(중형) 전함 베트론에 탑승하도록 한다. 그러니 한 사람도 늦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예.”
“이번 작전은 양동작전이다. 오베른 주둔군이 모든 병력을 동원해 인베이더 부대의 시선을 끄는 동안, 우린 인베이더에게 감지되지 않도록 전장을 멀리 우회한 뒤 놈들의 하이브를 기습적으로 공습할 것이다.”
하이브를 직접 치겠다는 그 말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제아무리 양동이라 할지라도, 하이브에 남아 있는 수비병력의 전력은 만만치 않을 터.
“물론 여러분들이 우려하는 바는 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 한번 뿐이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간, 중앙의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우리가 숫자에 밀려 전멸하게 될 가능성을 높다고 보고 있다.”
오르큐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태의 심각성은 교육생들도 잘 알고 있었다. 전력은 열세였고, 인베이더의 수는 눈에 띌 정도로 점점 불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라. 여러분들의 손에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렸다. 자, 우린 승리할 것이다. 내일을 위해서, 우주의 안녕을 위해서!”
“내일을 위해서, 우주의 안녕을 위해서!”
연합의 전투구호로 마무리한 오르큐스의 외침에 교육생들도 같이 호응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좀 전의 두려움이 다 가라앉은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싸울 전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때부터 교육생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에 투입되기 전에 필요한 장비와 물품을 전부 갖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진운과 아리엔, 클레브도 마찬가지로 각자 장비를 갖췄다. 이제 남은 것은 전함을 타고 이동하는 일만 남았다.
이제 전함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리엔이 문득 입을 열었다.
“이 전쟁, 이길 수 있을까요?”
평소와 달리 마음 약한 소리를 내뱉는 그 모습에, 이진운이 작게 되물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저도 몇 번이나 전쟁에 참여해 봤지만,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요. 처음이거든요. 이런 열세인 전장은요.”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아리엔이 참가한 전장은 대부분 교육생들을 위해 고르고 고른 쉬운 난이도의 전장들이었다. 교육생들을 보호하면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전장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서, 이 전장은 교육생들 수준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단계로 접어들었다.
전쟁을 경험해 본 아리엔이라 할지라도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다. 전쟁에서 승패라는 건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니, 뭐라 말하기 어렵구나. 하이브에서 어떤 적이 나타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그렇군요.”
아리엔은 그 말에 쓴웃음을 흘렸다. 지극히 정론인 말이었다. 전쟁을 하기 전부터 승패를 장담할 수 있다면, 어느 누가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시작하겠는가.
결과는 두고 봐야 아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진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먼저 겁먹고 움츠러들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지게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너도 이 전투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해라. 자기 자신을 과신해서 자만하면 문제가 되지만, 자신감을 갖고 싸우는 건 오히려 전투에 도움이 되지.”
“예, 그러도록 할게요.”
아리엔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 아직도 걱정이 다 가신 건 아니지만,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진운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현재 인베이더 놈들의 전력이 높은 편이지. 하지만 싸움은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이다.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는 너나 클레브도 있고, 오르큐스 선임 교관도 있다. 그리고 리스티도 참전하기로 했지. 아군의 힘도 만만치 않아.”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교육생들이 투입되는 전쟁 치고는 확실히 과한 전력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도 부족해 보였지만, 그래도 승산이 조금은 보였다.
거기에 이진운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였다.
“게다가 이곳에는 너의 스승인 나도 있다. 내가 싸우는 전쟁에서 아군이 질 리가 없지.”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그 말에, 아리엔이 일순 당황해 할 말을 잊었다. 설마 스승의 입에서 저런 허세에 찬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해서였다.
잠시 뒤,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너무 자신만만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스승님? 지금 그 발언이 진짜 자기과신 같은데요?”
“과신은 능력 없는 것들이 하는 말이고. 나는 그럴 능력이 되니 상관없는 이야기지. 뭐 쉽진 않겠지만, 어떤 상대가 나오든 내가 있는 이상 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다.”
“···스승님의 그 장담이 부디 자기 과신이 아니길 빌어야겠군요.”
아리엔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진운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허나 덕분에 그녀의 몸을 굳게 만들던 긴장과 두려움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옆에서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클레브도 피식 웃고 말았다.
“자, 이제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승무원의 외침에, 교관과 교육생들은 차례대로 전함 안으로 들어섰다.
중형 전함 베트론. 오베른 주둔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장 500m에 달하는 로버단 급 전함이었다. 몇 번의 개수까지 거친 상태였기에 성능은 동형의 중형 전함들보다 모든 면에서도 월등했다.
그래봐야 준대형 급인 프라이스 호와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였지만, 이번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바로 그때, 거대한 무언기가 격납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높이만 무려 7미터에 달하는 인간형 이족보행로봇이었다.
그것을 본 교육생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뭐··· 뭐야, 저거!?”
“로봇이잖아? 우리만 가는 게 아니라 메탈 기어도 함께 동원되는 거였어?”
“그래봐야 쓸데도 없는데······.”
메탈 기어에 대한 인식은 그 정도 수준이었다. 영자 제네레이터가 탑재되어 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능을 증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 해봐야 탄환에 영력을 조금 담아내는 게 전부였으니까.
양산형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인베이더들을 상대로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밀리터리 쪽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족보행로봇과 메탈 기어와의 차이점을 알아냈다.
“아니야. 메탈 기어하고는 전혀 달라. 완전 처음 보는 기종이야.”
“새로 개발된 신형인가?”
기이잉! 철컹!
낮은 기계음을 내며 이동한 이족보행로봇은 준비된 거치대에 무사히 안착하였다. 기체는 안전을 위해 격납고 거치대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위이잉!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체의 콕피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리스티였다.
그녀의 시선이 이진운과 그 일행 쪽으로 향했다.
“다들 여기 있었네!”
평소와 다름없는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대뜸 뛰어내렸다.
콕피트부터 격납고 바닥까지 무려 5미터나 됐지만, 이 정도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벼운 질량저감 마법으로 자신의 무게를 낮춘 그녀는 깃털처럼 사뿐하게 내려앉는다.
이진운이 그런 리스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실전 테스트 한다고 하더니, 결국 끌고 왔구나.”
“이런 좋은 기회도 드물잖아요. 제대로 해볼 생각이에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너한테 다 맡겼으니 알아서 해.”
“예, 예.”
자신은 더 이상 상관 안한다는 이진운의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리스티는 자신이 들고 온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자, 그리고 이거 받아요. 주문한 무기들이에요.”
이진운이 그녀에게 받은 물건은 바로 검을 비롯한 몇 종류의 무기들이었다. 무기들을 훑어본 그가 조용히 물었다.
“이게 두 번째 버전인가?
“예, 이번에는 강도를 좀 더 높였어요. 대신 증폭력은 아주 조금 낮아졌을지도 모르겠네요. 강도와 증폭력을 서로 절충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요. 게다가 기간트를 연구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죠.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올 테니 기다려 줘요.”
“알았다. 이번에는 이걸로 만족하기로 하지.”
이진운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하였다. 증폭력이 낮아진 것은 아쉬웠지만, 그 대신 강도가 높아졌다니 그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진기를 증폭해주는 효과보다는, 자신의 기운을 충분히 견뎌줄 수 있는 강도가 더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때, 리스티가 문득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뭔가를 찾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찾지 못하겠는지, 그녀가 이진운에게 물었다.
“참, 그때 저한테 물어보던 그 아이는 어디 있죠?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바로 저기에 있지.”
이진운이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격납고의 외진 구석지에 처박혀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하, 저런 데 있었구나. 아주 꼭꼭 숨어 있었네.”
“자폐증 때문이겠지. 되도록 사람하고 가까이 안하려는 것 같더군.”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평소에도 저런 식으로 인적이 없는 곳에 숨는 모양이었다.
리스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이해는 가네요. 그런데 저 아이가 아저씨의 기억을 봤다 이거죠?”
“그래. 무기를 구현하는 능력을 그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도 한 모양이지.”
그 말을 듣자마자 리스티는 냉큼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이진운이 미처 만류할 새도 없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인사부터 건넸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난 리스티라고 해. 만나보고 싶었어. 네가 그 엘레나 맞지?”
낮선 사람이 갑자기 접근해오자 엘레나는 화들짝 놀라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자신보다 몇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자기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다가오다니!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도 왠지 경계심이 들었다.
엘레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누··· 누구세요··· 뭣 때문에 절 찾으신 건데요?”
“아, 난 저기 있는 아저씨하고 협력관계인 사람이야. 아주 친하지.”
리스티는 이진운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친분을 강조했다. 엘리나의 경계심을 덜기 위해서였다.
이진운을 언급한 게 조금은 효과가 있었던지 경계심이 약간 누그러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리스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참, 네가 저 아저씨가 쓰던 검을 알고 있다고?”
“···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저 아저씨의 기억을 엿본 거니?”
그 물음에 엘레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기억을 본 게 아니에요. 저 아저씨가 소유했던 검과 이어진 인과의 연을 본 거죠. 그래서 검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요.”
“오호, 그런 거였어?”
리스티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렇다면 더 놀라운 일이었다. 검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인과의 연을 읽어낼 수 있다니.
단순히 무기 구현이 능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게 사실이었단 건가?
“검이 제게 알려줬어요. 그래서 알게 되었죠. 어떤 검인지, 지금까지 무슨 일들을 겪어 왔는지도요.”
비로소 모든 게 명확해졌다. 엘레나가 내놓는 편린적인 답변만 듣고서도 리스티는 그녀의 능력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구체적인 영역까지 분석해낸 것이다.
“그래, 대충 알 것 같아. 검과 이어진 인과의 연을 읽고, 그것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다 이거구나.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인과를 이어서 실제와 거의 동등한 형태의 무기를 구현하는 것이고.”
단순히 무기 구현보다 더 대단한 능력이었다. 이건 무기라는 한정된 카테고리 안에 국한되긴 했어도, 거의 인과의 조작에 가까운 능력이 아닌가.
앞으로 개발하기에 따라서 더 엄청난 능력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리스티의 두 눈이 흥분과 호기심으로 불타올랐다.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엘레나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말인데··· 저 아저씨가 옛날에 가지고 있었다는 그 검. 나한테도 보여줄 수 있니?”
그 말에 엘레나가 일순 흠칫 놀란 표정을 내보였다. 누군가가 자신더러 능력을 사용해 달라고 요구를 받은 경우는, 이곳에 소환된 직후 각자의 고유능력을 확인할 때 말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 아저씨의 검을 이 자리에서 구현해달라는 건가요?”
“그래. 맞아. 직접 보고 싶어서 그래. 저 아저씨가 나만 보면 좋은 검을 만들어달라고 닦달을 하잖아. 자기가 쓰던 검보다 성능이 못하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실물이라도 직접 보면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렇게 이유를 설명한 리스티는 다시 한 번 간곡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안되겠니?”
엘레나는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평소 같았으면 무조건 거절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저 아저씨와 그 검이 연관된 일이다 보니 무작정 거절하기도 뭣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가 이내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쉽진 않아요. 그 검, 너무 대단해서 제 능력으론 구현하는 게 벅차거든요.”
“쉽진 않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거겠네?”
쉽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저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거였는데, 상대는 그런 점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잠시 한숨을 내쉰 엘레나는 사실 그대로 답해주었다.
“아주 잠깐요. 구현 가능한 시간이 거의 찰나 정도라고 보면 될 거에요.”
“잠깐이라도 좋아. 보여줘. 부탁이야.”
그 모습이 영 거슬렸던 것일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진운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만류했다.
“리스티. 그 아이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은 하지 마라. 이제 겨우 처음 봤을 뿐인데 너무 무례한 요구잖아.”
“에이, 이 정도야 괜찮잖아요. 그냥 한번 보여 달랬을 뿐인데.”
뭐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리스티. 이진운은 그녀에게 지그시 눈총을 주었다.
예전부터 이런 기미는 종종 보여 왔었다. 자신이 흥미를 가진 분야에 대한 연구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냐면 그녀의 감성은 평범한 사람의 그것하고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진운이 다시 리스티를 다그치려던 그때, 그보다 먼저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보여드릴게요.”
“뭐?”
“정말?”
그녀의 대답에 이진운과 리스티의 반응이 서로 엇갈렸다. 이진운은 주저하던 엘레나가 그 부탁을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 못해 조금 당황해 하고 있었고, 리스티는 그녀의 결정을 기뻐하고 있었다.
“괜찮겠니? 너한테 조금이라도 부담이 간다면 안 해도 된다.”
그렇지만 이진운의 걱정 어린 말에도, 엘리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는 듯 말했다.
“그 검이 저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저씨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날 만나고 싶다고?”
“예.”
이쯤 되니 이진운도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그녀 스스로 받아들인 일을 가지고 자신이 왈가불가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날 만나고 싶다니. 천룡파마신검이 말인가?’
점창 대대로 내려온 신검인 만큼 아끼고 다뤄왔었지만, 어느 정도 영성을 가진 줄만 알았지 설마 그렇게 자신을 보고 싶다며 의사를 표현할 만큼 뚜렷한 자아를 가진 줄은 몰랐었다.
뭔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할게요.”
엘레나는 자신의 양 손을 가슴 한가운데 앞에 모아 쥐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떤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그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어떤 흐름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곳과 이곳을 서로 잇는, 보이지 않는 흐름의 연결이었다.
시공간을 넘어 그 이상의 영역까지 이어지는 흐름의 연결에, 이진운은 그것이 바로 인과의 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인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반선지경의 초입까지 도달했던 그는 그것을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연과, 저 먼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연이 서로 맞닿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어떤 형태로 구체화 되어 나타났다.
화아악!
일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시진 않지만, 사방을 환하게 물들일 만큼 밝은 빛이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눈앞에 한 자루의 고풍스런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환한 빛 사이에서 나타난 검의 고풍스런 자태가 그의 시야를 온통 채워버렸다.
“천룡파마신검······.”
그는 넋 나간 표정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영영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전생의 그리운 흔적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우우우웅!
검신이 가늘게 떨렸다. 마치 다시 만나서 기쁘다는 듯, 공명하고 있었다.
이진운은 뭔가 홀린 것처럼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자신의 애검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감이 차올랐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까지 들었다.
검과 인간이 서로 호응하며 만들어내는 완벽한 일체감!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검합일(身劍合一)이었다.
“웃! 이건!?”
“뭐··· 뭐야, 내 무릎이 저절로···!?”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장중한 기세! 신검합일 상태에서 뿜어지는 기세의 해일에 노출된 교육생들 중 저도 모르게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만큼 지금의 이진운이 발산하고 있는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천룡파마신검은 언제 이곳에 존재했냐는 듯, 마치 아침햇살에 녹아드는 새벽안개처럼 순식간에 스러져 사라져 버렸다.
잠시간 묘한 감흥 속에 빠져 있던 이진운은 검을 쥐었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분명 허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자신의 손에 검은 더 이상 없었지만, 그 감각만큼은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손아귀의 감각을 되새기던 그때, 옆에서 리스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아쉬워라. 여기에 제대로 된 장비라도 있었으면 정확한 데이터를 검출 할 수 있었을 텐데.”
각종 현상을 관측할 수 있는 마법까지 사용해 천룡파마신검에 대한 데이터를 추출한 그녀였다. 하지만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관측하는 것만 못했기에, 그녀는 작게 툴툴대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어. 저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던 그 검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였다 이거지?”
하지만 자신이 도전해야 할 과제가 생각만큼 쉽진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목도한 천룡파마신검은 분명 소울 웨폰을 한참 넘어서는 영역에 있었다.
그렇기에 당장은 불가능했다. 그것과 성능을 똑같이 재현하려면 인간의 업 이상의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리스티는 실망하지 않았다. 당장은 불가능해도 지금 얻은 것도 적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검을 구현하느라 지쳐 기진맥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엘레나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아무튼 고마워. 네 덕분에 그동안 궁금했던 걸 해소할 수 있었어.”
“······.”
엘레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애당초 그녀의 부탁 때문에 받아들인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검을 구현한 이유는 이진운과 천룡파마신검의 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부탁 따윈 무조건 거절했을 것이다.
눈을 반개한 채로 천룡파마신검을 쥐었던 감각 속에 취해 있던 이진운이 비로소 눈을 떴다. 그는 엘레나를 향해 먼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네 덕분에 그 녀석을 다시 만나서 오래 전에 잊었던 감각과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구나.”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인 걸요. 감사 인사를 받을 일은 아니었어요.”
괜찮다면서 고개를 가로젓는 엘레나였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이 정도로 끝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뭔가 상응하는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
“혹시라도 어려운 일이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게 말해다오. 내 능력 닿는 대로 해결해 줄 테니까.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언젠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내게 얼마든지 말을 해라.”
그러자, 엘레나가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그렇다면··· 절 제자로 받아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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