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20화
* * *
얼마 뒤, 이진운은 선임교관인 오르큐스와 함께 오베른 행성의 주둔군을 담당하고 있는 바튼 준장과 대면할 수 있었다.
바튼 준장은 먼저 이진운에게 감사인사부터 전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진운 씨 덕분에 잃어버릴 뻔 했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베른 행성의 주민들도 다들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일 겁니다.”
“별 말씀을. 전 그저 사람의 도리를 다 했을 뿐입니다. 거창하게 공치사 받을 일은 아니지요.”
겸양하는 그 말에, 바튼 준장은 더 큰 호감을 갖게 되었다.
“상당히 겸손하신 분이군. 아무튼 우린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이오.”
“그보다는 준장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고요? 얼마든지요.”
이진운에게 호의를 가진 바튼 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민간인들을 봤습니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더군요.”
이진운이 그렇게 묻자, 바튼 준장이 그늘진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인력과 물자가 많이 부족합니다. 최대한 민간인들을 구조해 돌보고 있지만··· 전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신경을 쓰기가 어렵더군요.”
“전황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최악이라고까지는 안하겠지만··· 현재의 전력으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좋지 않습니다. 현상유지하기도 바쁘지요.”
“사태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침식 초기라서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잠시 말하길 주저하던 바튼 준장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놈들이 오베른 행성에 침투해 왔던 초기에는 크게 대수롭지 않은 정도였습니다. 오베른 행성의 자체 방위군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정도였지요. 그래서 제공권을 우선 장악하고 전함과 폭격기들을 동원해 차근차근 주변부터 제압해 하이브를 고사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최대한 사람이 덜 죽는 클린 워(Clean War) 전략이지요.”
거기서 바튼 준장의 얼굴이 무겁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습니다. 하이브의 침식 속도가 갑자기 증가한 겁니다. 그건 예고도 없이 찾아왔지요.”
그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눈가를 가늘게 떨었다. 지금까지 꽤나 많은 전장을 거쳐 왔던 바튼 준장조차도 그날은 놀라 치를 떨 정도였다.
갑자기 나타난 인베이더 놈들의 준대형 급 가란드 전함. 그리고 어지간한 도시 하나는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는 진멸 급 인베이더 세 기.
하이브의 침식이 중기에 이르지 않고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개체들이었다. 그놈들이 나선 순간, 전열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면서 수많은 함정과 전력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다면 침식 초기로 보였던 것은 놈들이 위장전술을 사용해서였겠군요.”
오르큐스가 그렇게 입을 열자, 바튼 준장도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예. 바로 보셨습니다. 놈들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가 버린 겁니다, 우리는······.”
그 이후로 전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예기치 못한 적들의 전력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베른 행성 방위군과 주둔군의 진형은 붕괴되었고 무수한 피해를 내면서 후퇴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었다. 무수한 민간인 피해는 물론, 전력적으로도 큰 손실을 입었다.
“지금도 인베이더 놈들은 이쪽에 전력을 보내 우릴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근근이 버티는 게 한계였지요. 지원군을 부르고 싶었지만, 놈들이 통신을 방해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 듣고 난 오르큐스는 시름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운이 없군, 그래.”
프라이스 호가 조금만 늦게 출발했어도 오베른 행성에서 벌어진 이변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통신방해가 시작된 것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더 의심스러웠다.
‘이 소식을 조금만 일찍 접했어도 관리국에서 교육생들의 실전 예정을 변경했을 텐데, 하필 이럴 때 이런 변이 생기다니······. 타이밍이 너무 교묘할 정도로 딱 맞아 떨어진다는 기분이 드는군.’
이진운은 이 사태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출발 전부터 뭔가 직감적으로 좋지 않다고 느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을 줄이야.
뭔가 인위적으로 꾸며낸 듯한 냄새가 풍겼다.
“그럼 바튼 준장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뭔가 대안이라도?”
“지금으로선 최대한 버티면서 지원군이 도착하길 기대하는 수밖에요. 계속 통신두절상태이니 관리국에서도 곧 이곳에서 벌어진 이변을 알아챌 겁니다.”
이진운의 물음에, 바튼 준장은 다른 방도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제아무리 좋은 작전이 있어도 진멸 급 인베이더를 상대할 전력이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찌해야 한다.”
오르큐스는 고민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맡은 교육생들이 이곳에서 몰살당하는 참사가 벌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헌데 그때였다. 누군가가 바튼 준장의 숙소로 뛰어들어왔다. 그는 이 일대 주변을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던 오퍼레이터 사관이었다.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인베이더 천여 기가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말에 바튼 준장은 침착하게 명령했다.
“놀랄 것 없다. 화망을 구성해서 대응하라. 시간을 끌어! 우린 여기서 최대한 버티는 거다.”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이지?”
“진멸 급입니다. 진멸 급이 가란드 급 전함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퍼레이터는 급히 레이더 영상을 정밀 영상으로 바꿔 홀로그램 창 위에 띄웠다. 영상에 나타난 진멸 급의 모습을 본 바튼 준장은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불길하기까지 한 검은 아우라를 풍기며 날아오고 있는 인간형 인베이더.
“···레이즈 워커.”
오베른 행성 주둔군이 붙인 개체명 레이즈 워커. 놈의 존재는 바튼 준장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놈이 휘두른 검에 쓰러진 병사와 함정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행성 주둔군에도 C급의 오버러가 여럿 소속되어 있었지만, 놈의 검 앞에 선 순간 순식간에 주검으로 화하고 말았다.
그만큼 강력하면서도 잔인하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게다가 언데드의 특성을 가진 만큼 쓰러뜨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놈이 나선 거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진멸 급은 하이브를 방어할 때만 나섰었다. 지금까지 주둔군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놈들이 공세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들이 하이브의 방어를 그만두고 주둔군을 멸절시키기 위해 나섰다면, 이젠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버티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주둔군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진운은 딱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싸울 수밖에 없겠군요.”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바튼 준장도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피할 곳도 없는 상황이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요.”
이미 사방이 포위된 마당이다. 제공권도 빼앗긴 거나 다름없는 지금, 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퍼레이터를 통해 현재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오르큐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프라이스 호는 가란드 급을 상대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상대할만한 함은 프라이스호 밖에 없겠더군요. 함장에게 이야기 해 두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바튼 준장은 고맙다는 얼굴로 그렇게 화답했다. 주둔군에 있던 함정은 중급이 전부였다. 준대형인 프라이스 호가 나서준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진멸 급이다. 주둔군의 인원 중 놈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C급 오버러들이 진멸급 세 기에게 전부 사망한 지금, 남은 오버러라고 해 봐야 D급이 전부였으니까.
사태가 어쩔 수 없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어지간하면 이번만큼은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진멸 급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이었다.
“그럼 진멸 급은 제가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오르큐스가 덧붙여 말했다.
“그는 이미 B+급 진멸 급을 쓰러트린 전력이 있습니다. 아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튼 준장의 얼굴 위로 놀람과 희망의 감정이 떠올랐다. 진멸 급만 상대할 수 있다면 이번 공세를 버티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진운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쾅! 콰아앙!
여기저기서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빛이 번쩍이면서 성대한 포화가 공간을 수놓았고, 저 하늘에서 쏟아지던 탄환의 비가 도중에 폭발을 일으켰다.
“화망을 좀 더 촘촘히 구성해! 놈들의 폭격이 날아든다!”
“빌어먹을 인베이더 놈들! 죽어!”
병사들은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며 화기를 제어했다. 처음 인베이더와 맞닥뜨렸을 때엔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있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몇 번의 공세 속에서 옆에 있던 동료가 죽고 친인들을 잃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이젠 악밖에 남지 않았다.
고오오오!
지상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인베이더들의 소형 전함인 가프랑 이십 척과 중형 전함인 가란드 급 세 척이 주둔군 진형을 노리고 있었다.
병사들이 절망감에 찬 표정으로 욕지기를 터뜨렸다.
“오, 젠장!”
“이놈들이 오늘 아주 작정을 했잖아.”
현재 주둔군에 남아 있는 전력으론 저 가란드 급 세 척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아군이 겨우 보전하고 있던 소형 급인 소리엔 전함 다섯 척이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벌써부터 전자장 필드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헌데 그때였다. 어딘가로부터 전장을 뒤흔드는 높은 구동음이 들려왔다.
우우웅!
“저··· 저건!?”
“앗, 교육생들이 타고 온 그 전함이잖아!”
저 멀리 있던 프라이스 호가 천천히 하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전장만 무려 수km에 이르는 류테인 급 준대형 전함인 프라이스 호는 중형 전함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단순히 부상한 것만으로도 군영 전체를 가릴 정도로 거대했다.
프라이스 호가 디스토션 필드를 전개하자. 주둔군 일대의 제공권이 완전히 장악되어 버렸다. 적어도 프라이스 호가 격침되기 전에는 인베이더의 전함들이 군영을 공격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야 싸워 볼 만하겠군.”
그제야 전의를 되찾은 병사들. 하지만 그 전에 또 한번 시련이 닥쳤다.
쿵쿵!
어딘선가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관측병이 소리쳤다.
“본 자이언트다! 본 자이언트 20기 급속 접근 중!”
“뭣!?”
전열돌파형 침공급인 본 자이언트. 두텁고 단단한 뼈들이 얽혀 만들어진, 리빙 아머와 같은 언데드 괴물이었다. 공격 자체는 단순했지만, 무려 6미터에 이르는 신장에서 나오는 돌파력은 결코 무시하기 어려웠다.
콰앙! 쾅!
무시무시한 포격이 목표물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본 자이언트들은 포격을 맨몸으로 견디면서 돌진을 계속해 왔다. 랭크는 D+수준이었지만, 놈들의 방어력만큼은 C랭크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오베드 주둔군도 이런 경우를 상정해 대비하고 있었다.
오른팔에 거대한 포신을 달고 있는 전고 7미터 남짓한 로봇, 메탈 기어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영자 제네레이터 출력 65%, 전력량 100% 충전!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영자력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준비된 기체부터 발포를 시작한다. 저 뼈다귀 거인들을 산산이 부숴버려라!”
콰아아앙! 콰앙!
지휘관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메탈 기어의 포신으로부터 막대한 전하의 폭발이 일어났다.
메탈 기어의 전용 병기 중 하나인 영자레일건이었다. 물리력이 거의 통용되지 않는 인베이더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레일건의 탄자에 영력이 실릴 수 있도록 개발된 무기들 중 하나였다.
극초음속의 속도로 포신을 떠난 선명한 빛줄기가 일직선으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하던 본 자이언트들이 급기야 자신들을 노린 레일건의 빛줄기와 격돌하였다.
콰아앙! 쾅!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비록 폭발력은 없는 레일건의 탄자라지만, 거기에 실린 물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본 자이언트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놈들을 보호하고 있는 영력의 힘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쏴라! 계속해서 놈들의 영자방어력을 깎아내!”
지휘관은 당황하지 않고 계속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인베이더의 물리방어도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놈들이 가진 고유의 영자방어력 내구도가 다 소진되고 나면 통상의 무기들로도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으니까. 게다가 레일건 탄자에 실린 힘이 놈들의 돌진을 저지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퍼부어져야 할 메탈 기어들의 포화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아직 본 자이언트들의 영자방어력을 다 깎아내지도 못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 왜 안 쏘고···!?”
메탈 기어들을 돌아보던 지휘관은 하던 말을 다 하지 못하고 굳어져 버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불길하기까지 한 검붉은 아우라를 피워내고 있는 인간형 개체 때문이었다.
써걱!
마지막 남은 메탈 기어가 놈이 휘두른 검에 수십 토막이 되어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메탈기어들도 이미 놈의 검 앞에 수천 개의 쇳조각이 되어 있었다.
“레이즈 워커···!? 대체 언제!!”
지휘관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부르짖었지만, 놈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레이즈 워커가 휘두른 검은 색 장검이 궤적을 그린 순간, 지휘관의 몸은 수직으로 쪼개지면서 피안개를 흩뿌렸으니까.
“검은 악마다! 크아악!”
“사··· 살려줘!”
주변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레이즈 워커가 움직이자마자 전열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어온 인베이더의 병력은 인간들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유린해 나갔다.
아머리 웨폰으로 어느 정도 영력을 다룰 수 있는 강화병들이 나섰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일개 양산형 인베이더는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B+랭크의 진멸 급 레이즈 워커를 상대로는 일개 병사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수백 명의 강화병들이 놈에게 전멸당한 것은 불과 5분 남짓에 불과했다.
“그만둬!”
쿠우웅!
멀리서 다가오고 있던 반중력 전차가 묵직한 탄자를 쏘아냈다. 이건 평범한 탄환이 아니었다. 영력을 봉입해 넣은, 대 인베이더 전용 탄자였다. 적중만 한다면 진멸 급 인베이더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 순간, 레이즈 워커가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양분하는 칠흑빛 궤적! 그것이 반중력 전차가 쏜 탄자의 궤도상에 걸렸다.
콰아앙!
베어진 탄자가 맥없이 터져나갔다. 제아무리 대 인베이더 전용 탄자라 해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쿠우우!
자신을 공격한 반중력 전차가 놈을 자극한 것일까? 레이즈 워커가 불길한 괴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해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그 속도는 이미 초음속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이익! 너무 빨라! 자동조준이 놈의 속도를 따라가질 못해!”
믿기지 않는 기동성! 이것이 기존의 병기 성능으로는 고위 인베이더를 상대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처럼 강력한 인베이더들은 그 격에 맞는 고위 오버러가 아닌 이상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줄기 궤적이 끼어들었다. 그것은 벼락과도 같아서, 레이즈 워커가 쇄도하고 있던 궤도 사이에 정확히 끼어들었다.
콰드드득!
자신을 가로막는 위협적인 공격에 레이즈 워커는 황급히 감속해 멈춰 섰다. 다리를 지면에 고정시키는 바람에 지표면이 길게 고랑이 패였지만, 그 정도로 손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놈은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오른손에 쥔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사내는 레이즈 워커를 가만히 훑어보면서 말했다.
“그렇군. 한 눈에 봐도 알겠어. 이놈이 그 레이즈 워커란 놈이었군.”
사내의 정체는 바로 이진운이었다. 반중력 전차가 인베이더의 공격에 노출된 광경을 보자마자 바로 손을 쓴 것이다.
마음 같아선 이번 기습으로 놈을 끝장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반중력 전차까지 휘말랄 것 같아 일부러 공격을 빗나가게 해서 놈을 물러서게 만든 것이다.
그런 이진운의 모습을 본 병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 오버러다! 오버러가 왔어!”
“저 괴물 같은 레이즈 워커가 물러섰잖아!”
하지만 병사들의 외침을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진운은 무형의 기세를 내뿜어 레이즈 워커를 견제하는 한편, 같이 온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클레브, 아리엔.”
“예.”
“너희들은 저 뼈다귀 거인부터 상대해라. 놈들 때문에 아군의 진형이 엉망이 되고 있어.”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럼 바로 시작하지요.”
뼈다귀 괴물이 본 자이언트임을 알아챈 두 사람은 그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예전이라면 특유의 방어력 때문에 상대하기 쉽지 않은 괴물이었지만, 지금 현재의 실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둘이 군영의 방어진을 부수고 있는 본 자이언트를 향해 달려간 뒤, 이진운은 레이즈 워커를 응시했다.
놈은 아리엔과 클레브를 공격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진운이 뿜어내고 있는 존재감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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