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12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운공을 통해 진기를 축적하는 방식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이진운은 만유합원신기로 대량의 기운을 체내로 유입한 뒤, 그것을 현천진기로 흡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만유합원신기로 받아들인 외부의 기운을 전부 현천진기로 전환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냥 운공하는 것보다 몇 배의 효율을 보이고 있는 상태.
지금 상태로 계속 나아간다면 적어도 교육을 마칠 즈음에는 내공 총량이 거의 일 갑자 반에 도달할 것 같았다.
‘무시무시하군. 고작 6개월 만에 반 갑자(30년 내공)라니. 전생의 경험이 있다는 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그가 천화운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방법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가 절정고수가 됐을 땐, 아직 북명신공을 배우지도 못했었고, 배웠다 하더라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을 테니까.
외부의 방대한 기운을 체내로 유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미 반선지경의 깨달음을 가진 지금의 이진운처럼 기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보유하지 못했더라면, 이런 방식으로 내공을 쌓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덕분에 관리국에서 제공해준 영약들은 전부 클레브와 아리엔의 차지가 되었다. 이진운한테는 전부 무용지물이니 차선으로 제자들에게라도 사용할 수밖에.
덕분에 두 사람의 내공은 단숨에 급증한 상태. 아리엔만 해도 내공이 벌써 3갑자나 되었고, 본래 기에 대한 감응력이 낮아서 축적량이 적었던 클레브도 어느덧 일 갑자를 훌쩍 넘어섰다. 이젠 아머리 웨폰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영력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욱!”
한 차례 숨을 들이마신 이진운은 다시 만로연강공을 수련해 나갔다. 노인들이 건강체조삼아 수련하는 태극권만큼이나 느린 동작이었지만, 한번 움직일 때마다 그의 전신에서는 비지땀이 흘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가 이런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이정도로 지쳐 땀을 흘리다니.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그가 수련하고 있는 이곳에는 평상시의 수십 배에 이르는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고 있었으니까.
중력수련실. 2달 전 관리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대가로 제공받은 장소 중 하나였다.
일반인이라면 서있기는커녕 뼈가 으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중력의 부하였지만, 이진운은 이것을 버텨내면서 움직였다.
그가 중력수련실을 요구한 것은 점창의 외문무공인 철환극강기를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육체에 과부하를 가하여 육체와 혼을 단련시키고 나아가 그 둘을 합일하는 것이 철환극강기의 궁극적 목표였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그야말로 한참이나 멀었다. 어려서부터 시작한 수련으로 도검불침 수준은 간신히 넘겼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철환극강기는 깨달음보다는 오랜 시간을 두고 단련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진운은 생각을 조금 달리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답습해오던 평범한 수련방식으로 기간을 단축할 수 없다면,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방법을 수련에 도입해 보자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과부하를 중력수련실의 힘으로 가함으로서, 신체의 단련을 몇배로 가속화하는 것이다.
덕분에 이진운의 철환극강기 성취는 빠른 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고작 3성 수준에 머물렀던 성취가 어느새 4성을 넘어 5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진운은 새삼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이 수련이 효과가 좋아. 내가 고안해내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사실 외공은 이진운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전생 시절에도 철환극강기를 체득하긴 했지만, 그 성취는 그리 높지 못했다.
기껏해야 8성 수준. 그가 익힌 대부분의 무공들이 10성 이상이거나 12성 대성을 이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만큼 철환극강기의 단련이 쉽지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전신의 근육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는 규칙적인 호흡으로 체력을 가다듬으면서 동작을 이어나갔다.
현재 그가 버티고 있는 중력은 40배 수준. 그의 본래 체중이 82kg 정도니, 중력이 작용하고 있는 지금은 무려 3톤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 또한 특수하게 제작된 것들이다. 단순히 중력이 가해지는 게 아니라, 체내로도 골고루 작용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냥 입고만 있어도 근골은 물론 내장과 뼈, 혈관과 신경, 그 밖의 세세한 말단까지 중력의 부하가 작용하기 때문에 육체를 고루 단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후우, 이제 슬슬 끝내야겠군.”
평소의 일정대로 개인수련을 모두 마친 이진운은 깨끗이 샤워를 한 뒤 서둘러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평소와 복장이 달랐다. 그동안 그가 입었던 옷이 교육생의 것이었다면, 오늘부터 입는 정복은 바로 교관의 것이었다.
홀로그램 거울 앞에서 자신의 복장상태를 살핀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교관이라. 뭐, 적당히 가르치면 되겠지.”
오늘이 바로 이진운이 검술 교관으로 활동하는 첫 날이었다.
지난 2달간은 주로 기초상식과 이능에 대한 이론 교육을 중점으로 해왔기 때문에, 검술 교육 시간이 배정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남은 4개월 동안은 실습과 실전 위주의 교육이 배정된 만큼, 이진운도 비로소 교관으로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가 검술 교육 수련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아, 들어봤어. 우리 같은 지구인이면서 알데마란을 혼자서 잡았다는!”
“그게 진짜일까?”
“와, 진짜 출세했네. 같은 시기에 소환되었는데, 누구는 교관이고 누구는 교육생이라니.”
온갖 감정이 뒤섞인 소리들. 거기에는 타인을 질시하고 부러워하는 감정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진운은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그들 앞에 섰다.
“오늘부터 교육생들의 검술 교육을 맡은 이진운이라고 한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검술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몸으로 직접 체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첫 교육의 서두를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돌연 손을 들어 외쳤다.
“질문 있습니다.”
“질문? 어디 말해보도록.”
“굳이 검술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내 주 무기는 검이 아닌데.”
무예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품을 수 있는 의문이었다. 이진운은 첫 교육이니만큼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건 나도 안다. 이중에서는 당신처럼 검이 주력이 아닌 경우가 더 많겠지. 하지만 일단은 검술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검을 사용하는 적을 만날 경우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배워 두는 게 앞으로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군요.”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질문한 사람 외에도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오버러들 대다수의 주력이 이능이나 마법 같은 초상능력이 대부분이니, 검술과 같은 무기술에 대해선 관심이 적었을 것이다.
그나마 무기를 하나씩 선택해 배우는 것도 적이 가까이 접근해 왔을 때, 근접전을 대비하기 위한 비상수단이었을 뿐. 이를 깊게 배우는 자들은 극히 적었다.
헌데 그때, 누군가가 빈정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흥, 말은 뻔드르 하군. 하지만 그 전에 당신한테 우릴 가르칠만한 실력이 있을지 부터가 궁금한데?”
이진운은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했다. 상대는 익히 잘 아는 자였다.
같은 프라이스 호에 탔던 지구인들 중에서도 유독 두각을 드러내었던 사내 마틴. 그가 이진운을 향해 돌연 적의를 내보인 것이다.
이진운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교관인 내 실력에 의심이 간다 이건가?”
“그래, 당신이 교관이 된 게 그 잘난 실력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인맥 때문인지 우리야 알 수가 없는 노릇이잖아. 안 그래?”
“맞아.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모르는 놈이 교관이라니!”
“우리가 같은 기수의 지구인한테 뭘 배우란 거냐?”
“건방지게 교관 짓 하지 말고 나와!”
그러자 지구인들 중 일부가 그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들 대부분은 마틴의 파벌에 속한 자이거나, 혹은 프라이스 호에 타지 않았던 지구인들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동조하고 나서자, 마틴은 더욱 득의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자, 봤지.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말이야.”
사태가 이쯤 되니 오히려 화도 나지 않았다. 이진운은 차갑게 웃으며 놈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지?”
“교관 짓을 하고 싶으면 먼저 검증을 받으라 이거야. 우리한테 말이지.”
그야말로 기고만장한 태도였다. 고작 교육생 주제에 관리국에서 정한 교관을 제 마음대로 내리겠다고?
무슨 소릴 하려는 건가 지켜볼 생각이었던 이진운은 끝내 실소를 짓고 말았다. 마틴이 이렇게 나온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아서였다.
“마틴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찍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있더니, 요즘 좀 배운 게 있다고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군.”
“뭐야?”
“그럼 어디 덤벼봐. 내게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직접 시험해 보란 말이다.”
“하, 건방진 소리를! 지난번에 한번 운 좋게 활약한 걸 가지고 그게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랬다. 이게 마틴의 본심이었다. 그는 이진운이 알데마란을 상대로 보였던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당시에는 이진운의 실력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관리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실력이 빠르게 늘어가자, 어느 순간부터 이진운을 이길 수 있다고 자기 자신을 과신하게 된 것이다.
“어딜 가나 주제파악을 못해서 앞뒤 분간 못하는 천치들이 있지. 어디 덤벼볼 테면 덤벼 봐. 혼자서 덤빌 자신이 없으면, 너와 한패거리들을 다 끌어들여도 상관없고.”
“웃기지마!”
이진운의 도발에 발끈한 마틴이 자신의 이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진 전류가 제법 거센 기세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면을 박찬 순간, 마치 총구에서 탄환이 쏘아지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쩌저정!
마틴은 마치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기세로 다가왔다. 레일건의 원리를 이용해 자기 자신을 탄환처럼 쏘아내는 초고속 이동법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이 한발 옆으로 움직인 순간, 그의 신형은 텅 빈 허공만 치고 지나쳤다.
“움직임이 제법 빠르긴 하지만, 상대를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조금 더 속도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여. 이래서는 쓸데없이 힘만 낭비할 뿐이다.”
“닥쳐! 어디서 훈계질이야!?”
이진운의 지적에, 마틴은 더욱 화난 기색으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의 지적을 아주 무시하진 못하겠는지, 속도는 조금 줄었지만 이전보다 더 정확한 움직임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이야아아압!”
큰 기합성과 함께 마틴의 주먹이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자기 자신의 몸을 탄환처럼 쏘아냈던 것처럼, 이번엔 주먹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가속화시켜서 연속 펀치를 날려온 것이다.
총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권격! 대기를 관통하는 파공성이 실내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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