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09화
* * *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베네트는 부관에게 쓴 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 일을 저지르셨더군요. 이번에는 기세를 뿜어대셨다고요? 그것도 이제 막 소환된 지구인한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직접 보니까 보고로 전해들은 것보다 더 뛰어나더군.”
“적당히 좀 하시죠. 뭔가 관심거리가 생기면 생각 없이 저지르는 그 버릇, 제가 국장님 때문에 수명이 얼마가 줄어드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알았어, 알았어. 조심할 테니까 진정 좀 해.”
“그 말을 믿으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그 소릴 들은 것도 아마 십만 번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부관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푸념했다. 베네트의 부관이 된 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국장이 저지른 일을 뒷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진운이란 녀석, 앞으로 주시하도록 해. 뭔가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좀 더 지원도 해 주고.”
갑작스런 베네트의 명령에, 부관은 또 무슨 변덕인가 싶어 되물었다.
“지원을요? 레벨업을 못한다고 해서 관심 끄신 건 아니었습니까?”
“레벨업 따윈 중요하지 않아. 이미 그 녀석은 완성되어 있어.”
이전과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리는 베네트였다. 부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이제 막 소환된 지구인입니다. 영능도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한테 완성되었다는 말은 맞지 않을 텐데요?”
“으음, 말로는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는군. 하지만 경지는 이미 완숙되어 있는 상태야. 다만 자신이 완성한 격을 육체가 따라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
설명이 이어질수록 더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그래도 부관은 알아서 해석해 들었다.
“그러니까··· 깨달음과 육체의 성능이 서로 괴리하고 있다 이거군요. 수준에 맞지 않게 말입니다.”
“오, 그래!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었어.”
부관이 거의 비슷하게 알아듣자, 베나트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만큼 이진운의 상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식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매우 특이한 경우군요. 어떤 계기로 대오각성이라도 했던 걸까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적어도 S랭크까진 성장할거야.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말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부관이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그 자를 천외오천 급의 이레귤러라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그래.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베네트의 단언에, 부관의 얼굴도 나름 진지해졌다. 베네트가 평소 장난기가 많고, 허술해 보여도 이런 사실에 대해선 허언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이진운이란 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지요.”
“감시한다거나 구속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 앞으로 크게 될 자다. 지금부터 호감을 얻어내면 더 좋겠지.”
“예, 그럼 모두 고려해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술교관 임명 건도 바로 이행하지요.”
사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이진운은 기껏 해봐야 전도유망한 신인 유망주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제아무리 진멸 급 알데마란을 단독으로 쓰러뜨렸다 해도,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자는 아르탈 행성 연합 전체를 보면 제법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진운에 대한 처우를 결정한 베네트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이번 사태··· 어떻게 된 건지 아직도 파악이 안 됐나?”
“적어도 저희 쪽은 아닙니다. 여신교단 쪽도 깨끗했고요.”
“연합 5대 가문들은? 메네스 이종인 협회도 있잖은가?”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대로 본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으음······.”
아무런 흔적이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말에, 베네트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여신교단과 5대 가문, 그리고 메네스 이종인 협회는 이능관리국과 더불어 아르탈 행성 연합을 주도하는 가장 큰 세력들이라 할 수 있었다.
헌데 그들에게서 기밀 누출의 흔적이 없다면, 대체 누가 그랬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의심 가는 세력은 이제 단 둘 뿐이다. 베네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공화국과 제국, 둘 중 하나일까?”
“현재로선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둘 다 일수도 있겠죠.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부관의 대답에, 베네트는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론데니움 제국과 메세니아 공화국은 동맹 관계였다. 두 세력의 규모는 아르탈 행성연합과 비교하면 크게 뒤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들 둘이 합치면 아르탈 행성 연합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으니까.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정이군.”
지금까지 아르탈 행성 연합이 인베이더와 비등하게 다툴 수 있었던 것은, 제국과 공화국의 역량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그 두 세력이 내부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1000년 동안 겨우겨우 버텨왔던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해야겠지. 앞으로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최대한 조심해야겠어.”
대책을 강구하기로 결정한 베네트는 부관에게 명령했다.
“조사는 계속하도록 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원은 무제한으로 하지. 그러니까 무조건 결과를 내도록 해.”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중요 안건을 처리한 그때, 부관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런데 그 상처는 뭡니까, 국장님.”
“뭐, 상처!?”
상처라는 말에 베네트가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부관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 뺨 말입니다. 왼쪽 뺨. 날카롭게 베인 것 같은 흔적이 있는데요.”
“··· 설마, 나도 모르는 새에 상처를 입힌 건가?”
베네트는 홀로그램 창을 열고는, 그 성질을 빛을 반사하는 형태로 변화시켜 거울대용으로 만들었다. 그것으로 얼굴을 비쳐보고는 놀라움과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후후··· 재미있군. 아주 흥미로워. 설마 이렇게까지 해줄 줄이야.”
“국장님이 상처도 다 입으시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부관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베네트는 그 높은 직위 이상으로 대단한 실력자였다. 혼자서 인베이더 대함대를 상대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그가 상처를 입다니.
대형 급 전함의 주포를 맨몸으로 맞아도 견뎌낼 수 있는 그에게 대체 누가 상처를 입혔단 말인가?
“그렇군. 그때였어. 그 녀석이 손가락으로 내리그으면서 내 기세를 분쇄하더니, 그때 남은 잔재가 내 뺨을 베고 지나갔던 건가?”
“그럼 설마··· 그 상처가 이진운이란 지구인 때문이란 말입니까?”
“맞아. 분명 그럴 거야. 그때가 아니면 내가 상처 입을만한 순간이 없었어.”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이건 너무도 비상식적입니다. 이제 갓 소환된 자가 어떻게······.”
부관은 점점 갈수록 자신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대체 이진운이란 자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하나하나 드러날수록 자신이 알던 상식의 궤를 초월한 작자였다.
“날 상처 입힌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게 평범한 상처가 아니라는 사실이지. 그때 이진운이란 자가 보인 한수에는 의념이 담겨 있었어.”
“의념이라니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내 회복력이라면 그때 상처를 입었어도 바로 회복되었겠지. 그런데 이게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걸 보면, 그 녀석의 의념이 회복을 방해하고 있던 게 틀림없어.”
단언하는 그 말에, 부관은 놀라다 못해 이젠 질려버린 얼굴이 되었다. 베네트의 말이 전부 다 사실이라면, 이진운의 격은 자신이 상상하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현재 육체적 스펙이 따라주지 못해서 그렇지, 어쩌면 영혼의 격 그 자체는 천외오천과 동급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후후··· 이래서 우주는 넓다는 거야.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새하얗게 질려버린 부관과 달리, 베네트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베네트가 돌아간 뒤, 지구인들은 이능관리국원의 안내에 따라 숙소를 배정받았다. 그들이 머물게 될 숙소는 교육생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었다.
일종의 기숙사나 다름없었지만, 지구에서 본 기숙사하고는 전혀 달랐다. 모든 것이 첨단화 되어 있었고, 화려하기도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마 지구의 최고급 호텔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 된 자동화 기능 덕분에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아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의 숙소를 둘러본 이진운은 놀라다 못해 혀를 차고 말았다.
“싸우다 죽기 전에 마지막 호사라도 누려보라는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이 천룡검신으로 활보할 때에도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봤지만, 이보다는 훨씬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개 교육생에게 제공하는 대접 치고는 너무도 과했다.
그때였다. 그의 숙소를 제어하는 인공지능이 소리를 내었다.
[이진운 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날 찾아왔다고 누군데?”
[이능관리국 국장직속비서실 소속, ‘필리스 브란테인’입니다.]
“국장직속비서실이라고? 그럼 대단히 높은 사람이란 말인데······.”
생각지도 못한 방문객이라니? 이진운은 놀라다 못해 어리둥절해졌다. 그런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일로 자신의 숙소를 다 찾아온단 말인가?
‘혹시 좀 전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인가?’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아까 베네트란 국장과 기세 다툼을 하던 일 밖에 없었다.
“들어오게 해. 만나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숙소 안으로 불러들인 필리스 브란테인이란 자는 놀랍게도 국장의 부관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수려한 외모와 달리 무려 65세에 달하는 노년의 인물이기도 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노화를 억누르고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도 많이 발달한 모양이었다.
그와 대면하게 된 이진운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뭐요? 나더러 지금 검술 교관을 맡으라고?”
“예, 이진운 씨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진운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자신이 조금 실력을 드러냈다고는 하지만 설마 교관 자리를 제안받게 될 줄이야.
“난 이제 교육생입니다. 그런 내가 교관이라니, 너무 성급한 것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 이진운 씨에게 할 수 있는 교육은 기껏 해봐야 기초상식 아니면, 인베이더와 전투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도겠지요. 사실 지구인 분들이 받게 될 교육의 대부분은 전투 쪽인데, 지금 이진운 씨의 실력이라면 저희가 가르칠 게 별로 없을 겁니다.”
“으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검술이나 무예에 대해선 그가 누군가에게 배울 입장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능이나 마법이란 것에 어느 정도 흥미는 있지만, 그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무공이었다. 괜히 새로 검술이나 무예를 배운답시고 누군가에게 간섭받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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