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화 (34/448)

2권-08화

“이능관리국의 국장?”

“그럼 연합 내에서도 대단히 높은 사람인 거잖아.”

“그런 사람이 우릴 마중하러 직접 나왔다고?”

마중 나온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 지구인들이 깜짝 놀라 웅성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르탈 행성연합에 대해 여러 가지를 배운 그들도 이젠 잘 알고 있었다. 오버러 이능관리국이 어떤 곳이고, 국장이 얼마나 높은 직위인지를 말이다.

오버러 이능관리국의 국장은 연합 내에서도 한 손에 꼽는 존재. 지구로 따진다면 미합중국 대통령과 비슷한 위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유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 둘은 애당초부터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성계들을 아우르는 연합의 권력자인 베네트 국장과, 고작 한 성계 내에 속한 일개 국가를 대표하는 위치인 미합중국 대통령이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그 둘 사이에는 거대 제국의 황제와 작은 촌마을의 촌장만큼이나 큰 격차가 존재했다.

헌데 그런 엄청난 거물이 직접 마중 나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베네트 국장은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지게 되어서 다들 두렵고 어색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됐든 이제부터는 이곳의 삶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후에는 우리 모두의 주적인 인베이더와 싸워야겠지요.”

인베이더가 언급되자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얼마 전 겪었던 전투 때문이었다.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놈들과 다시 싸워야 한다니··· 다들 두려울 수밖에.

“허나 이건 저희의 본의가 아니라서, 따로 어떻게 해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시스템에 의해 소환된 이상 여러분은 무조건 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요.”

그때 듀렌 박사가 손을 들어 물었다.

“난 특성이 연구 계열이라던데, 그래도 나가서 싸워야 하오?”

“그건 각 개인의 적성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전투에 적성이 있다면 직접 전투에 나서야 할 것이고, 생산이나 연구 쪽에 적성이 있다면 그 방면에서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인베이더를 무찌르는 데에 기여한다는 게 중요하니 말입니다.”

“만일 제대로 기여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요.”

그 순간, 베레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강제 추방당하게 됩니다. 시스템에 의해서 말이죠. 추방당한 자가 어디로 가게 되는 지는 저도 모르지만, 아마 별로 좋은 꼴은 못 볼 겁니다. 맨 몸으로 우주 공간에 떨어질 수도 있고, 인베이더의 소굴로 강제 추방될 수도 있겠죠.”

“그렇구려.”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듀렌 박사.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처럼 전부 이성적인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강제 추방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극도의 두려움마저 느꼈다.

“강제 추방이라니··· 미친!”

“목숨이 아까워 적당히 하는 건 용납 않겠다는 건가?”

강제추방 문제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다고 여긴 베테트가 사람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불안해하는 마음은 저도 이해합니다. 낯선 곳에 떨어져 너무 많은 일을 겪었으니 불안하고 초조하셨겠지요. 그래서 저희 오버러 이능관리국은 여러분들이 아르탈 행성 연합 내에서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도 그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면 여러분들에게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노력만 한다면 강제 추방되지 않는 것은 물론, 쌓은 공로에 따라 높은 직위와 권력, 그리고 부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

반대급부를 언급하는 그 말에도 사람들은 조용했다.

당장 자기 한 목숨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그가 제안하는 부귀영화가 제대로 와 닿지 않아서였다.

‘지금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베네트는 지금 그들에게 욕망이란 미끼를 뿌렸다. 당장은 크게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이곳 생활에 적응하다 보면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는 지구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부귀영화라. 웃기는 소리군.’

이진운은 내심 코웃음 쳤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런 식의 동기부여를 하다니.

하지만 문제는 그런 방법이 사람들에게 잘 먹힌다는 것이다.

지구와 비교할 수 없는 고도의 문명. 이곳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건 한 가지 더 있었다.

‘베네트 로쉬하우어라. 만만치 않은 실력자군.’

처음 그가 나타났을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지금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감히 대적할 수조차 없는 절대강자라는 사실을.

어쩌면 연정운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강할지도 몰랐다. 전생의 경지에서 1할에도 못 미치는 현재 실력으로는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 이진운의 따가운 시선을 눈치 챈 건지, 베네트의 시선도 이쪽을 향했다.

그것은 마치 관찰하는 듯한 눈동자였다.

‘날 아는 건가?’

하긴 알데마란을 쓰러드린 사실이 위로 보고되었다면, 자신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진운을 향해 묵직한 존재감이 닥쳐왔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분명 실제하고 있는 기세의 압박이었다.

‘큭! 이건!?’

마치 대기 자체가 무거워지면서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이진운은 이를 악물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실로 무지막지한 중압. 이건 중력이 한순간에 수십, 수백 배로 가중된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뼈마디가 으스러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아무도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마치 이런 압력 자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아리엔과 클레브도 베네트의 기세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기세를 오직 나한테만 집중했다는 건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높은 경지에 이르면 기운의 수발도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마음 가는 곳에 기세를 집중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이능이란 것도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군.’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베네트는 분명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여주는 이 기세지도는 무공을 익힌 절대고수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만류귀종이라더니. 결국 경지에 오르면 이능도 다 비슷해지는 모양이군.’

현천진기로 끌어올린 진기가 전신을 보호하면서 기세를 밀어냈다. 덕분에 한결 숨통이 트인 이진운은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놈은 지금 날 시험하고 있다. 아마도 알데마란을 쓰러뜨렸다는 내게 호기심을 느꼈겠지.’

그렇지 않고선 남들 몰래 이런 식으로 도발하듯 기세를 쏘아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고작 이 따위 기세 정도로 날 시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는 평범한 지구인이 아니었다. 전생에는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지에 올라선 절대자였고, 중원무림을 전부 뒤져봐도 그와 맞설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천마 한 사람 뿐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자존심은 이 따위 기세에 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쿵!

그는 가볍게 일보 물러섰다. 그러자 그를 압박하던 기세가 슬쩍 틀어졌다.

그것을 느꼈는지 베네트의 얼굴에도 ‘호오’ 하는 감탄의 기색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었다. 일보 물러선 것은 어디까지나 다음 한수를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물러섰던 발을 다시 앞으로 내딛는 순간, 틀어진 기세의 흐름이 와류를 그리며 제어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비천십이표(飛天十二飄) 제 1식. 무상회련추(舞翔徊連追)

비의(秘意). 환반경(換反鏡)

일보의 내딛음으로 되받아쳐진 기세가 당사자인 베네트를 향했다.

베네트는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설마 자신의 기세를 이런 식으로 되돌려 보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였다.

되돌아온 기세를 받아 분쇄한 베네트가 이진운에게 전음과 비슷한 수법으로 직접 의사를 전달해왔다.

[재미있는 한수군. 그럼 나도 조금은 더 보여주기로 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세가 이번에는 정련된 형태로 밀려왔다. 좀 전의 기세가 방사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아주 잘 응집된 형태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느낀 이진운은 방금 전과 같은 수법으로는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전생의 환반경이라면 충분히 되돌려줄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수련도 부족하고 경지가 미천해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검결지를 만들었다. 곧게 세워진 검지와 중지가 정면을 가리킨 순간,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렸다.

기세도, 형태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이 뻗어나가 대기를 갈랐다.

일양지(一陽指)

단천쇄격섬(斷天灑擊閃)

피이잉!

작은 소음과 함께 베네트의 기세의 첨단이 허물어졌다. 이진운의 검결지에서 일어난 무형지기가 정확히 결을 베어낸 것이다.

위력은 베네트의 기세지도가 더 강했지만, 이렇게 결을 베이고 나면 자연히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지금 뭔가 오싹한 느낌이었는데?”

“날씨가 추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오한이 오는 것 같아.”

사람들도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몸을 떨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같이 흉험한 기세의 충돌이 오갔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기세를 주고받으면서 더 흥미를 느낀 베네트가 한번 더 손을 쓰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천외오천의 일인인 연정운이었다.

“적당히 하시죠. 국장. 흥미가 생긴 건 알겠지만, 이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그렇군. 내가 실수를 했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베네트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험만 해볼 생각이었는데, 이진운이 너무 잘 대응하는 바람에 흥이 올라서 정도 이상의 기운을 쓰게 된 것이다.

“미안하게 됐군. 내가 결례를 범했어.”

“결례라는 걸 아니 다행이군. 더 이상 도발은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 적당히 해.”

이진운은 짜증스런 말투로 화답해주었다. 상대가 아르탈 행성 연합의 최고 권력자라 해도, 그쪽이 먼저 도발해온 이상 굽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걸세.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네에게 많은 지원을 약속하지.”

그 말을 끝으로 베네트는 다시 사람들을 거느리고는 물러갔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연정운이 이진운을 살폈다.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군. 어디 다친 데도 없어 보이고.”

“원래 저런 인물인가?”

“뭔가에 흥미가 생기면 주체를 못하지. 그래서 가끔 문제도 일으켰고.”

“저런 작자가 이곳 우두머리라니, 참 암담한 노릇이군.”

그렇게 내뱉은 이진운은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그가 전개한 일양지의 단천쇄격섬은 심검의 묘리를 일부 담아낸 것이었다. 물론 전생에 비한다면 흉내 내기 정도에 불과했지만, 상대가 보내온 기세를 허물어뜨리기엔 충분했다.

‘역시··· 이곳도 만만치 않아.’

만일 베네트가 진심으로 기세를 일으켰다면, 방금 전의 한수로도 절대 막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연합 내의 강자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확인한 이진운은 다시금 다짐하였다.

‘좀 더 서둘러서 예전의 경지를 회복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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