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07화
이진운은 우선은 기본심공부터 전수하기로 했다. 웰라우드 류가 잃어버린 핵심 중에는 바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진기 운용법도 있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전을 이용하는 방식은 아니고, 전신에 존재하는 기맥 몇 개를 기점으로 삼아 진기를 운용하는 방식이지.’
이진운은 진기로 아리엔의 내부를 한번 살핀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원리를 알아챘다. 중원무림에서도 이런 방식의 무공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내공을 증폭하고 초식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 대신 몸에 부담은 많이 가겠군.’
이건 마치 잠력을 폭발시키는 외도의 수법에 가까웠다. 다만 웰라우드 가의 것은 단점을 최소화시켜서 잠력폭발 특유의 부작용을 방지한 것 같았다.
물론 그만큼 증폭 비율도 낮아졌지만,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기운을 증폭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다만 지금은 핵심적인 부분을 잃어버리면서 증폭력도 그만큼 약해져 본연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젠장, 이걸 보니 천마 그 자식이 괜히 떠오르는군.’
이진운은 전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거의 다 이긴 싸움이었는데, 천마가 마성을 폭발시키는 바람에 동귀어진 할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분할 수밖에.
‘이걸 잘만 이용하면 제법 그럴 듯한 게 나오겠군.’
점창에도 잠력을 폭발시키는 수법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역기충혈대법. 남은 기력이나 기운을 폭발시켜 평소의 몇 배나 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대신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사용 후에는 탈진 상태는 기본이고, 며칠 몸조리해야 할 정도로 몸이 상하거나 심지어 진원지기까지
그래서 이진운도 전생 시절에는 거의 사용한 적이 없었던 수법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복원이 그리 어렵진 않겠어. 모자란 부분들은 역기충혈대법의 묘리나, 다른 잠력 폭발 수법에서 따와서 채워 넣으면 되겠군.’
이진운은 중원의 셀 수 없이 많은 무학들을 모조리 알고 있다. 그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못할 것이 거의 없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웰라우드 류의 운용법을 복원하는 것쯤은 크게 어려울 일도 아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제자의 의욕을 꺾으면 안 될 테니, 나중에 다 복원되고 나서 알려줘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이진운은 곧바로 운용법 전수에 들어갔다.
“우선은 본문의 운용법부터 가르쳐주겠다.”
“운용법을요?”
“그래, 지금 네가 배운 웰라우드 가의 것은 불완전해서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 그러니 완전히 복원하기 전까진 본문의 것을 배우는 게 더 나을 거다.”
“음, 완전히 다른 운용법을 배우는 건데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내공심법은 그 성질에 따라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중원무림에서는 같은 계열이나 문파의 심법이 아니면 새로운 심법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다.
헌데 아리엔이 우려하는 기색을 내보이는 걸 보니, 이곳에서도 새로운 운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네가 배울 현음공은 너희 가문의 운용법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 확인했으니까.”
일단은 클레브처럼 명문혈에 손바닥을 대고 직접 진기를 불어넣어 운용법의 경로를 체득하게 해주었다.
그가 전수하는 심법은 점창의 기본심공 가운데 하나인 현음공(玄陰功).
클레브에게 전수해준 열양공이 남자의 체질에 맞는 열양지공이라면, 현음공은 여성에게 맞는 음한지공이었다.
전신에 걸쳐 방만하게 퍼져 있던 기운이 단전이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뭉치자, 아리엔이 움찔 놀라며 반응했다. 이전과는 전혀 색다른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진운이 조용히 다그쳤다.
“놀라지 말고 지금 흐르는 기운의 경로를 잘 기억해 두도록 해. 이 경로가 바로 현음공을 운용하는 기본 형태니까.”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아리엔은 그 운용법을 전부 몸과 머리에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단전에 몰아넣고 나니 일 갑자가 훨씬 넘는군. 거의 일 갑자 반은 되겠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었다. 이 정도 내공이면 절정 수준까지도 무난하게 오를 것 같았다.
현음공을 체득한 아리엔이 지금 현재 상태가 너무도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영력을 운용하는 게 이렇게 쉽고 편안하다니요. 고작 운용법을 바꿨을 뿐인데······.”
“기초심공이긴 해도, 현음공은 오랜 세월을 거쳐 보완된 완전한 운용법이다. 너희 가문이 핵심을 잃어버린 운용법하고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이진운의 차분한 대답에 아리엔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그럼 저희 가문의 운용법도 복원되고 나면 이렇게 대단해질 수 있을까요?”
“적어도 지금 배운 현음공보다는 뛰어나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점창의 무공이 뒤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현음공은 어디까지나 기초 중의 기초. 그 보다 상위의 운용법은 얼마든지 있다. 네가 열심히만 하면 그것들도 조만간 배울 수 있겠지.”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각오를 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이진운은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부터 배울 것은 클레브와 마찬가지로 점창의 기초검술인 삼절검이었다. 이진운은 클레브에게 외쳤다.
“클레브. 우선 네가 배운 삼절검으로 시범을 보여라. 자, 숙련된 조교 앞으로.”
“예?”
한창 삼절검을 수련하던 클레브는 이진운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동작을 멈췄다.
“이리 와서 시범을 보이라고.”
“뭘 말입니까?”
“답답하긴. 척하면 착 알아들어야지. 지금 수련하던 삼절검을 아리엔 앞에서 시범을 보이라 이 말이다. 그래도 모르겠나?”
“아, 예. 이제 알겠습니다.”
이진운이 그제야 화급히 달려와 아리엔 앞에 선 클레브.
이진운은 그저 혀를 끌끌 차고 말았다. 생각보다 눈치가 없는 녀석이었다. 앞으로 대사형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자, 시작해.”
이진운의 말에 따라 클레브는 삼절검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펼쳐보였다. 정확한 동작으로 펼치는 삼절검의 초식은 하나하나 따로 볼 때는 무척 간단했지만, 그것들이 서로 연환되면 상당히 복잡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클레브가 몇 차례의 시연을 마친 뒤, 이진운이 아리엔에게 물었다.
“보고 나니 어떠냐? 감상이?”
“생각보다 연계가 복잡하네요.”
잠시 고민 끝에 내놓은 아리엔의 대답에, 이진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정확히 보았다. 네 말대로 복잡하지.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형태도 다채로워지고.”
“지금까지 배운 것하고는 전혀 달라요.”
“그럴 수밖에. 이번에 인베이더를 상대하면서 알았다. 놈들은 빠르고 강하더군. 그리고 공격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위력적이고 말이야. 그래서 웰라우드 류가 변화보다는 단순하면서도 빠르고 강한 것을 우선하는 성향으로 발전해 왔겠지. 하지만 점창은 인간을 상대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빠르면서도 변화가 심해. 상대를 속이고, 허점을 파고드는 특성을 가졌지. 지금까지 배운 것하고는 완전히 다를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진운은 아리엔의 생각과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재능도 뛰어났지만,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분석하는 자세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클레브는 우직한 맛이 있지만, 재능과 오성이 뒤떨어지는 만큼 무조건 주입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대로 가면 내 소싯적 수준보다 더 앞설지도 모르겠군.’
아리엔의 나이는 불과 17세. 이대로 계속 배우면서 발전해 나간다면, 자신의 저 나이 대에 이룬 전생의 경지를 앞서게 될 것이다.
* * *
그로부터 2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리엔은 그동안 이진운에게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무공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부터 시작해서, 신법과 보법, 그리고 혈도에 대해서까지 기초의 대부분을 체득한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익힌 거라 숙련도 자체는 낮았지만, 그건 앞으로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그동안 진주가 진흙 속에 묻혀 있었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
이진운은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아리엔의 재능에 감탄했다. 자신의 전생의 재능에 비한다면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이 정도면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즐겁고 편했다.
반면 클레브는 지지부진했다. 열성적인 노력 덕분에 그럭저럭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리엔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애당초 저 녀석을 제자로 받은 것도 노력과 근성 때문이었으니까.’
그래도 지금처럼 우직하게 나아간다면, 적어도 남들과 비교해 뒤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두 제자에게 가르침을 베풀면서 지내던 중, 드디어 프라이스 호가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때가 되자 함 전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모든 탑승자들에게 알립니다. 본 함은 이제 아르탈 행성에 들어섭니다. 대기권으로 강하하면서 충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모두들 안전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겨우 다 왔나 보군.”
전함이 넓어서 불편한 건 없었지만, 밀폐된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이진운은 진저리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느덧 대기권 강하가 시작되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프라이스 호의 함체가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쿠구구구!
하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몇 분 정도 지나자, 그렇게나 요란스러웠던 함체의 진동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멎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방송이 도착을 알렸다.
[본 함, 아르탈 행성의 오버러 이능관리국 지점 착륙포인트 E536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탑승하고 계신 분들은 안내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내리시기 바랍니다.]
곧 강화병들의 지시에 따라 지구인들도 프라이스 호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리자마자 본 것은 거대한 도시의 정경이었다.
“이곳이 그 아르탈 행성인가?”
수많은 행성들을 아우르는 연합체의 맹주 역할을 하는 곳. 이곳이 바로 아르탈 행성이었다.
환경은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렀으며, 주변에는 녹음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정면에 존재하고 있는 도시의 광경은 그들이 상상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을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세상에.”
“도시의 일부가 하늘에 떠 있어.”
그랬다. 도시는 땅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 하늘에도 이어져 있었다. 건물들 자체가 하늘을 부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곳저곳 날아다니는 작은 비행선들. 아마도 저게 지구의 승용차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모두가 넋 나간 듯 보고 있던 그때였다. 한 중년 사내가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지구인들 앞에 나타났다.
마중을 나온 것일까? 그는 지구인들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어서 오십시오. 지구 여러분. 아르탈 행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오버러 이능관리국의 국장직을 맡고 있는, 베네트 로쉬하우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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