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9화 (30/448)

2권-04화

아르탈 행성연합은 수많은 행성들의 집합체지만, 연합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소수의 거대 세력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세 개의 세력은 연합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했다.

연합 3대 중추기관이라고까지 불리는 그곳들은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를 섬기는 여신교단과, 인간이 아닌 수많은 지성체들을 아우르는 메네스 이종인 협회, 그리고 영능력자인 오버러들을 관리 통솔하는 오버러 이능관리국.

이중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꼽는다면 바로 여신교단이었다. 여신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만인의 지지를 받는데다, 아르탈 행성 연합이 결성될 수 있었던 상징적 구심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연합의 정치나 행정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연합을 주도하는 곳은 나머지 두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3대 세력 중 하나인 오버러 이능관리국의 국장을 맡고 있는 [베네트 로쉬하우어]는 자신 앞에 올라온 보고서에 흥미롭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홀로그램 데이터를 찬찬히 훑어보던 그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확실히 대단하군. 이제 지구에서 소환된 견습 오버러가 진멸 급을 단독으로 잡았다니 말이야.”

“프라이스호의 작전관이 결금마옥으로 가둬두면서 본래보다 조금 약체화 된 탓도 있었겠지요.”

부관이 자신의 의견을 첨언하자, 베네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그 영향이 아주 없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 정도면 혼자 잡은 거나 다름없어.”

“좀 더 관심을 갖고 주시할까요?”

부관의 물음에 베네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됐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실력을 가진 자라면, 좀 더 성장할 수 있게 본국에서 지원해 주는 게 좋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진멸급을 상대로 낸 성과는 꽤 놀랍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지. 시스템에 의해 각성한 오버러가 더 이상 레벨 업을 하지 못한다면 앞날은 안 봐도 뻔해.”

시스템에 의해 각성한 오버러들은 그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

물론 영능 자체를 깊게 파고드는 고전적인 수련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스킬이라는 형태로 이능을 아주 쉽게 습득하고, 레벨을 올려서 성장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훨씬 어렵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한 것을 찾기 마련. 재능부족으로 시스템의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도태되고 말았다.

“물론, 이 자가 레벨 업에 상관없이 앞으로 크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야. 적당히 봐 주는 건 좋지만, 굳이 필요 이상으로 지원해줄 필요는 없지.”

“그럼 말씀하신 대로 적당히 편의를 봐주라고만 명령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 정도가 좋겠군. 참, 그리고 그 자의 검술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다지? 처음부터 그런 실력을 가진 인물을 평범한 견습으로 놔두기도 뭣하니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검술교관을 겸임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예, 그럼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이진운에 대한 관심을 거둔 베네트는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그보다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유가 더 중요할 것 같군. 어떻게 된 거지?”

“어디선가 기밀이 유출된 것 같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군. 소환자들을 실어 나르는 함선들의 항로는 철저히 기밀에 붙였을 텐데. 그걸 인베이더 놈들이 어떻게 알아냈을까?”

“아무래도 내부에 간자가 있었겠지요.”

“큰일이로군. 그렇다면 간자가 상당히 고위직 중에 하나라는 말인데···”

베네트는 그렇게 되뇌면서 시름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지구인들이 탄 전함의 이동경로는 철저히 기밀에 붙여져 있었다. 이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자는 아르탈 행성 연합 내에서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기밀이 외부로 유출됐다고 하니, 크게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출된 경로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해. 이건 연합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중대한 사태야.”

“철저히 조사해서 유출자를 확실히 색출해 내겠습니다.”

기밀이 유출된 탓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번 회차에 소환된 지구인들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프라이스 호는 이진운이 분발한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끝났지만, 지구인을 수송하던 다른 전함들은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제 막 소환된 지구인들의 능력은 지금 현재는 크게 보잘 것 없는 상태지만, 앞으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까지 고려한다면 엄청난 전력손실이라 해도 크게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태도 그렇고··· 최근 돌아가는 정세가 심상치 않아. 조만간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군.”

베네트는 그렇게 읊조리면서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 * *

연회가 끝난 다음날, 이진운은 리스티의 공방을 찾아갔다. 전투에 사용했던 무기들을 점검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결과 이진운은 리스티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아저씨,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오오?”

“무슨 소리야?”

“창은 비교적 멀쩡한데, 검은 아주 엉망진창이에요. 점검 한번 안 받고 5년 쯤 막 굴린 것 같은 상태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지?”

그렇게 투덜거린 리스티는 검에 몇 개의 단자를 꽂고는 블랙박스화 되어 있는 데이터 코어를 통해 계측된 기록을 읽어 들였다. 그리곤 눈살을 찌푸렸다.

“와, 이 피로도 좀 봐. 겉보다 안이 훨씬 더 엉망이네.”

검의 내부에는 영력이 흐르는 복잡한 통로가 존재한다. 사용자의 영력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한층 더 증폭해주는 영자회로였다.

헌데 어지간해도 견디는 영자회로가 거의 폐기 직전의 과부하 상태로 판정되었다.

“대체 무슨 요술을 쓴 거죠? 이건 아저씨가 보유하고 있는 마나량의 수준을 한참 넘는 수치인데. 이런 과도한 양의 마나가 마구 지나다녔으니 검이 이 지경이 됐죠.”

“그럼 못 고치는 거냐?”

“이건 이제 못쓴다고요오오! 폐기하고 다시 만드는 수밖에. 아아, 진짜!”

제아무리 프로토 타입이라 해도 기껏 만들어준 무기가 한번 쓰고 망가졌는데,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추궁하듯 물었다.

“대체 아저씨 정체가 뭐에요? 어떻게 영력 수치가 하루아침에 폭등할 수가 있죠? 그것도 아저씨가 가진 그 무예의 운용법이 가진 비밀인가요?”

“그래, 어느 정도는 맞다.”

“대체 어떤 원리로요?”

두 눈을 반짝이며 계속 캐물어오는 리스티에게 이진운은 딱 잘라 말했다.

“그걸 말해줄 것 같아? 내 밑천인데? 처음부터 말했잖아. 기본적인 원리만 알려준다고. 더 이상 바라면 안 되지.”

“윽!”

“게다가 네가 만들어준 이 무기, 너무 약한 것 아니야? 최고 수준의 무기로 만들어준다던 약속하고는 너무 다른데?”

“그··· 그건 데이터 수집용 프로토 타입이라고 말했잖아요오오. 지금은 제대로 만들 재료도 없는데······.”

이진운의 거듭된 반격에 리스티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전의 거래조차 만족스럽게 충족시키지 못한 지금, 뭔가를 요구할 수조차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듀렌 박사가 궁지에 몰린 리스티를 보다 못해 슬며시 끼어들었다.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게. 리스티 양이 연구하던 게 있는데, 그게 풀리지 않아서 그러는 거니까.”

“그게 저하고 뭔 상관이랍니까?”

퉁명스럽게 내뱉는 이진운의 반응에, 듀렌 박사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가 가르쳐준 그 운용법 말이야.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 방법을 찾았더군. 하지만 몇 가지 문제에 막혀서 최근 진척이 없었지. 그래서 초조해서 자네에게 달라붙은 것일세.”

“흐음, 그래요?”

이진운은 호기심이 일었다. 그가 가르쳐준 것은 호흡을 통해 기운을 체내에 운용하는 기초 토납법이었다. 이걸로 뭘 어떻게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는 건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진운은 넌지시 말을 꺼내봤다.

“무슨 연구인지 나한테도 약간 보여줄 수 있을까?”

“···왜요?”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조심스럽게 이진운의 얼굴을 바라보는 리스티. 이진운은 그런 그녀에게 슬쩍 떡밥을 던졌다.

“네가 연구하는 게 정말로 괜찮은 거라면 나도 도울 의향은 있으니까. 지금처럼 기초이론만 던져주는 게 아니고 적극적으로 말이야.”

“저··· 정말요?”

“난 이런 걸로 거짓말 하지 않으니까, 빨리 결정해.”

“조, 좋아요!”

적극 도와줄 요량이 있다는 그 말에 리스티는 완전히 낚여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연구하던 것을 이진운에게 즉시 공개해 보여주었다.

옆에 있던 듀렌 박사는 이진운이 부리는 수작질을 보고 혀를 찼지만, 굳이 리스티를 말리진 않았다.

“호오··· 이런 걸 만들겠다고? 제법이군.”

홀로그램 창 위에 떠오른 연구내용과 결과물을 훑어본 이진운은 크게 감탄하고 말았다. 고작 토납법 정도의 이론으로 뭘 얼마나 만들었겠나 싶었는데, 리스티는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물건을 개발하고 있었다.

‘거 참, 놀랍네. 아르탈 행성연합의 과학력과 중원무림의 무학의 기초가 어우러지면 이런 것도 나올 수가 있는 건가? 나는 전혀 생각도 못해본 것인데, 이거.’

조용히 감탄하고 있는 그에게, 리스티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자랑했다.

“이것만 만들어진다면 지금의 전황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 걸요?”

“그렇지만 나한테는 크게 쓸모없겠어.”

그녀가 만드는 물건은 소수의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약자들의 역량을 몇 차원 끌어올려 전체적인 전력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사실 이진운에게는 크게 메리트가 없는 연구였다.

리스티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하긴··· 아저씬 진멸 급을 단독으로 상대하시는 분이니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저씨 같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된다고요?”

“뭐, 그렇긴 하지.”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으로 이 연구의 가치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겐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아르탈 행성 연합 전체에서 보면 아주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경우, 자신의 입지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일 터.

속으로 조용히 계산을 마친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뭐, 좋아. 나도 이 연구에 참여하도록 하지.”

“진짜로요오오? 지금 이거, 거짓말은 아니죠?”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가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는 리스티. 하지만 이진운은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그럼 진짜지.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있다.”

“···뭔데요?”

대체 무슨 조건을 들고 나올지 몰라, 리스티는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진운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즐기듯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악랄해 보였다.

“이거에 대한 지분은 확실히 나눠야지. 내가 가장 핵심이 되는 이론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

“그건 당연하죠. 그럼 지분 비율은 어떻게?”

그의 지분요구를 정당한 권리라고 여긴 리스티.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요구 비율에 그녀는 곧 기함하고 말았다.

“5:5!”

“에엑!? 반반이요? 말도 안 돼. 이론이야 아저씨가 제공했다 해도 연구의 주체는 저라고요. 연구기재나 여기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은 다 제가 투자하는 데도요?”

“어차피 내 이론이 없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연구잖아. 이 정도 지분비율은 당연한 거지. 게다가 이젠 기초이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더 제공할 예정이고.”

“와··· 정말 악덕 사기꾼!”

리스티는 질려버린 표정으로 이진운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진운은 그 정도로 물러설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리스티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게 바로 갑과 을의 현실이었다. 이 진리는 지구 밖에 있는 우주에서도 변치 않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