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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7화 (28/448)

2권-02화

“···이겼어? 그 알데마란을?”

아리엔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전함의 외부 상황을 비춰주고 있는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알데마란에게 마지막 치명타를 가하는 이진운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첫 실전에, 첫 우주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운은 믿기지 않는 전과를 보여주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진멸 급인 알데마란을 단독으로 상대해 쓰러뜨려보였다.

이 정도면 경악스럽다는 표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와, 대단해에에! 그렇게 강하던 진멸 급을 혼자 이겨버리다니.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저 아저씨, 정말로 다시 봤어.”

옆에서 같이 지켜본 리스티는 호들갑을 떨며 감탄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의 반응만 조금 독특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같은 지구 출신의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더했다. 겨우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이진운의 강함에 대한 충격이 더 컸던 것이다.

“저게 정말로 우리와 같은 지구인이라고?”

“인간이 정말로 저럴 수 있는 거야?”

“···거짓말. 분명 우리하고 같이 소환됐는데, 어떻게 저렇게 강한 거지?”

“또 모르지. 우리가 받은 것 외에 뭔가 다른 특혜라도 받은 게 있을지도.”

경악은 곧 두려움이 되었고, 그것은 다시 불신을 넘어 시기와 질투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이었다.

하지만 리스티는 그들과 달리 강한 흥미를 느꼈다. 이진운이 어떻게 그런 무위를 보일 수 있었는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걸까아아? 분명 마나량은 알데마란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낮았는데 말이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 아저씨가 말했던 독자적인 마나 운용 이론 때문일까?”

리스티가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혼자 떠들어대던 그때였다. 아리엔은 문득 중요한 사실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리스티에게 물었다.

“독자적인 마나 운용 이론이라고?”

“흐응? 아리엔은 몰랐나봐.”

“지금 처음 들었어.”

“저 아저씨 말이야. 우리가 알던 방식의 운용법을 전혀 사용하질 않더라고. 내가 들은 건 기껏 해봐야 기초적인 이론뿐이었지만 확실히 달라. 아주 독특해. 연구해 볼 가치가 있어. 그걸 머릿속으로 되새기기만 해도 영감이 막 퐁퐁 솟구친다니까!”

“그랬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리엔도 사실 처음 들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때는 지구에서 독자적으로 발원한 무예의 한 갈래 정도로 여겼을 뿐,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 많지도 않은 영력을 가진 상태에서 무려 진멸 급을 쓰러뜨렸다. 이 정도면 그가 익힌 무예에 뭔가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걸 배운다면··· 나도, 아니 우리 가문도 달라질 수 있을까?’

웰라우드 가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면서 아리엔은 쓰게 웃고 말았다.

한편 이진운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작전관은 영상속의 장면을 보면서 그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천외오천 이상의··· 역대급 이레귤러일지도 모르겠군.’

물론 지금 당장은 천외오천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들도 처음 소환되었을 때엔 오히려 이진운보다 못했었다.

그러니 그를 두고 천외오천 이상의 역대급 이레귤러라 판단하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번 일이 상부에 보고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짐작조차 안 가는군.’

직접 눈으로 본 자신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영상데이터가 증거로 남아있지 않았다면 상부에서는 이 사실을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판단은 윗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난 보고할 일만 남았군.”

그는 시름에 찬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젠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무리한 몸을 정양할 시간이었다.

* * *

알데마란은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액체금속으로 구성된 육체라 해도 입자 단위까지 파괴하는 천붕일조의 일격은 불사신에 가깝던 놈을 확실한 죽음으로 이끌었다.

점점 붕괴해가는 자신의 육신을 믿기 어렵다는 듯 내려다보던 알데마란이 기가 막힌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크크··· 진짜로 날 이기다니, 끔찍할 정도로 놀랍군. 너희 이레귤러들은 진짜 괴물들이야.]

“웃기지 마라. 괴물은 네놈이지.”

이진운이 즉시 되받아치자, 알데마란은 고소를 지었다.

[이제 막 소환되어서 이능을 각성한 녀석이 날 이겨버렸다. 그런 녀석을 괴물이라 하지 않으면 누가 괴물이란 말이냐?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더 괴물 같아질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

“······.”

[너야말로 나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진 정명한 괴물이다.]

이진운은 그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환생한 사실을 밝힐 게 아닌 이상, 일일이 반박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냥 무시해버리려던 그때, 놈이 의미 모를 말을 던져왔다.

[하지만 날 이겼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내가 죽는다 해도 어차피 너희 버러지들은 여기서 끝이니까.]

“뭐?”

[지금쯤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군.]

푸스스스

풍화되는 바위처럼 육신이 점점 흩어져가는 가운데, 알데마란이 불길하게 웃었다.

[전투에서는 네놈에게 패했지만, 전쟁은 내가 이겼다.]

그것을 끝으로 알데마란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전쟁에선 이겼다고? 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이진운은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처음에는 알데마란이 혼자 죽는 게 억울해서 남긴 말인가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그 말이 뭔가 심상치가 않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무심코 던진 블러핑(Bluffing) 같은 게 아니었다.

놈이 소멸하기 전에 지은 표정은 분명, 이진운과 프라이스 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게 될 거라고 단호히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대해선 더 길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알데마란이 남겼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실체가 바로 눈앞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진운의 머리 위로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건!?”

* * *

삐이익

프라이스 호의 메인 브릿지 내부가 갑자기 울려 퍼지는 경보음 소리로 크게 들썩거렸다.

함장은 즉각 사태 파악을 위해 나섰다.

“경보라니, 대체 무슨 일이냐?”

오퍼레이터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소···소행성입니다! 지름 34.9km의 소행성이 본 함을 향해 초속 72.9km로 돌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에 뜬 소행성의 모습. 그것은 현재 프라이스 호가 있는 곳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저렇게 큰 소행성의 접근을 왜 여태껏 감지 못했어?”

함장의 질책에 오퍼레이터들이 황급히 해명했다.

“놈들이 소행성을 광학 스텔스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재밍까지······.”

“더군다나 이 일대가 차원단층이라 시공간이 뒤틀려 있어 탐지센서의 반응거리도 짧았습니다.”

“교활한 놈들, 이중삼중으로 철저히 함정을 파뒀다 이거군.”

함장은 더 이상 오퍼레이터들을 탓하지 않았다. 적이 이렇게까지 철저히 함정을 파놨다면, 오퍼레이터들이 눈치 못챘다 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함장은 서둘러 외쳤다.

“회피! 서둘러 소행성의 궤도에서 벗어나”

“메인 제네레이터 기능 부진! 본 함, 소행성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뭐야?”

절규와 같은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함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멀쩡했던 제네레이터에 문제가 생겼다니!? 이건 너무 공교로운 일이 아닌가.

문득 떠오른 가설들이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설마 제네레이터 근처에서 벌인 전투의 여파가 간접적인 영향이라도 미친 건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하지만 지금은 그 원인을 규명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메인 제네레이터를 수리해 가동하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상황. 소행성은 이미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이를 악물며 머리를 쥐어짠 함장이 마지막 대책을 내놓았다.

“그럼 비상용 보조 제네레이터라도 가동시켜서 출력을 최대로 올려. 아니, 보조 제네레이터가 오버로드로 터져나가도 좋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소행성의 궤도를 벗어나!”

“아··· 안 됩니다! 본 함 좌현에 박힌 적함에서 추진력 발생. 본 함을 강제로 소행성 궤도를 향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크··· 이것도 전부 처음부터 계획된 함정이었나?”

잇따른 악재에 함장은 쓴물을 집어삼킨 듯한 얼굴로 신음했다.

단순히 함 내부로 침투하기 위한 특공인 줄 알았더니, 설마 이럴 속셈이었나?

이젠 정말로 모든 수단이 막혀버렸다.

제네레이터가 기능 부진 상태인 이상 회피는 물론, 방어도 불가능했다. 출력이 일정 이상 회복되지 않으면 주포로 소행성을 요격할 수도 없었다.

프라이스 호를 포기하고 비상용 소형정으로 탈출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함장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프라이스 호와 소행성이 맞부딪친다면 이 일대 주역을 뒤덮는 엄청난 대폭발이 벌어질 것인데, 비상탈출용 소형정의 속도론 폭발의 영역을 벗어날 수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재앙 앞에, 사람들의 얼굴 위로 짙은 절망이 드리워졌다.

고오오오!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까워져 오는 소행성의 모습에 이진운도 아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치겠군. 저걸 어떻게 막지?”

전생 시절이라면 저 정도 소행성쯤은 우습게 없애버렸겠지만, 지금은 절대로 무리다.

지금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만유합원신기의 공능으로 경지를 억지로 끌어올린 탓에 반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자멸을 각오한다면 어찌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진운도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외에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젠장, 뭔가 다른 방법이······?’

헌데 그때였다. 등 뒤쪽 방향의 우주공간에서 돌연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야, 이 기운은!?”

깜짝 놀란 이진운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낯선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대체 언제 나타난 거지? 나도 못 느꼈는데?’

일부러 기운을 방출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풍겨오는 존재감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좀 전에 본 알데마란도 최소한 5갑자 이상은 되었는데, 이건 그마저도 훨씬 초월한 수준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우주공간이 떨리는 듯했다.

만일 이 사내가 자신의 적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진운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적이냐?”

목소리가 거기까지 닿았는지, 사내의 시선이 이진운을 향했다. 그는 우주공간에 나와 있는 이진운의 존재가 뜻밖이었던지, 두 눈에 이채를 띈 채 대답하였다.

“아니, 난 너희의 아군이다. 프라이스 호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날아왔지.”

“···구원군이었나?”

경계할 필요 없다는 그 말에, 이진운은 긴장을 풀었다. 사내는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절대강자였지만, 그가 적이 아니라면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자초지종은 대충 전해 들었다. 프라이스호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일단은 저 소행성부터 정리해야겠군.”

사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행성이 날아오는 쪽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이젠 너무 가까워져서 부딪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진운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사내에게 물었다.

“다른 아군은 안보이던데··· 설마, 저 소행성을 혼자 처리하려고?”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다른 도움은 필요 없어.”

자신 있게 대답한 사내는 자신이 등 뒤에 메고 있던 긴 장총을 빼들었다. 사내는 마치 서부영화 속의 카우보이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차림새가 이곳 환경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우주공간을 활보하는 카우보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정신 나간 복장을 하고 다니는 거지?’

이진운이 기가 막혀 하거나 말거나, 사내는 소행성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의 장총을 겨누었다.

“이곳은 나의 영역. 내가 쏜 탄환이 꿰뚫지 못하는 것은 없다.”

그가 뜻 모를 말을 되뇐 그 순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기운이 총신으로 응집되었다. 그것은 아주 특이한 형태로 가공되더니, 곧 총구로 몰려가 성대한 기세로 방출되었다.

“카오스 이레이저(Chaos Eraser).”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는 남보랏빛 벼락불! 그것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뻗어나가 소행성의 정면을 그대로 직격하였다.

콰우우우우!

우주공간이 나선으로 비틀리며 이지러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우주의 공간보다 더 진한 칠흑빛 공허가 탄생하였다.

끄그그그긋!

시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소리. 그것이 우주를 뒤흔드는 순간, 그토록 거대했던 소행성은 산산이 부서지다가 곧 칠흑빛 소용돌이에 휘말려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단 한발의 탄환으로 소행성을 깨끗이 지워버린 사내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이진운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내 이름은 연정운. 사람들에게 [마탄의 사수]라고 불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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