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6화 (27/448)

2권-01화

<<<제 2권>>>

[01.-천외오천]

[하? 버러지 주제에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는군. 그럼 이제 끝내주마.]

알데마란은 이진운의 그 말에 더욱 흉험한 살기를 드러내었다. 지금까진 적당히 가지고 논 정도라면, 이젠 진짜로 죽일 마음을 먹은 것이다.

“······.”

이진운은 검을 늘어뜨린 채 자연체 상태로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30년 내공은 잠깐의 격전으로 완전히 소모되었다. 지금으로선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채울 시간조차 없었다.

게다가 내상도 심상치 않았다.

‘지금 상태로 상대할 수 없다면, 억지로라도 저 위로 올라서주지.’

점창에는 북명신공(北冥神功)이 존재했다. 외부의 기운을 끌어들여 자신의 기운으로 삼다는 희대의 괴공.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기운의 종류를 불문하고 무작정 끌어들이니, 육체가 감당을 못하고 주화입마에 빠져 자멸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장되어 있던 괴공을 전생 시절의 천화운이 다시 재탄생시켰으니, 그것이 바로 만유합원신기(萬有合原神氣)다.

[만류귀종(萬流歸宗). 그것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이 다시 원류로 되돌아가 하나에 이름을 뜻하나니,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기운 또한 마찬가지로 이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지라. 만상의 기운이란 본디 하나에서 비롯되었으며 수많은 의념에 의해 분화, 변화된 형태이니······.

만상을 포용하는 올곧은 마음으로 근원을 향해 궁구하고 세상을 직시하라. 결국 삼라만상의 기운은 다시 흐름을 거슬러 태초의 혼원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니라.]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구결들.

이진운은 만유합원신기의 이치에 따라 자기 자신을 모든 것을 포용하는 혼돈의 그릇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주변의 막대한 기운들이 맹렬한 기세로 그에게 빨려 들어왔다.

“크······.”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다듬었다 해도, 만유합원신기는 지금의 이진운이 다루기 벅찬 신공이었으니까.

고작 간장종지만한 그릇에 그 많은 걸 억지로 다 눌러 담았으니, 무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열양공의 다음 단계인 현천진기를 운용했다.

본래 계획대로였다면 몇 달 더 열양공을 수련해 기반을 다진 후에 현천진기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열양공만으론 저 알데마란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리를 하는 수밖에.

우우웅!

막대한 기운이 전신을 타고 휘돌기 시작했다. 그 기운들은 현천진기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막힌 기맥을 뚫고, 혈도를 개척해 나갔다.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폭거였다. 혈맥이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거나 기운의 폭주로 주화입마에 빠져 즉사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짓이었으니까.

만일 이런 위기상황에 직면하지만 않았더라면, 이진운도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쾅쾅쾅!

막혀 있던 경락과 혈도들이 타통되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그때마다 격통이 느껴졌지만, 이진운은 초인적인 인내로 참아냈다. 여기서 자칫 어긋나기라도 하면 그에게 찾아올 결말은 비참한 파멸뿐이었다.

그렇게 참고 견딘 그 끝에···

고오오오!

···드디어 현천진기의 운용에 필요한 모든 경락과 혈맥의 타통이 이루어졌다.

과정은 길었으나, 이 모든 게 이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사이.

전신을 휘도는 거대한 흐름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뭐냐, 그건? 갑자기 왜 이런 기운이?]

갑자기 묵직해진 이진운의 기세에, 알데마란이 당황해 외쳤다. 거의 다 죽어가던 상대가 난데없이 갑절 이상은 강해진 느낌이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경각심이 든 알데마란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자신의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그 위로 떠오르는 구체 형상의 거대한 에너지 광류.

단순히 힘의 총량만 따진다면 적어도 이진운의 열배,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막대한 기운의 유동에 작전관이 경악에 젖어 신음했다.

“미친! 이곳을 구역 째로 날려버리기라도 할 작정인가?”

이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놈은 목표인 이진운은 물론, 이 주변까지 통째로 없앨 작정인 것이다.

[자, 전부 버러지답게 기면서 죽어라!]

알데마란은 이진운을 향해 죽음을 선고하며 손바닥을 뒤집었다.

쿠구구구!

에너지 구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작은 소행성의 낙하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모두들 절망에 빠져들었다. 조금이라도 막을 가능성이 있는 작전관은 이미 탈진 상태였고, 그 밖의 다른 이들은 그럴 실력조차 못되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의 두 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쥔 검 끝에서 맴돌던 기운은 어느새 시푸른 광망이 되어 한 자나 뻗어 나와 있었다.

완벽한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

검 끝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움직인 그것이 허공에 푸른빛 선을 아로새겼다.

삼절검(三絶劍) 제 2식. 낙인참(落刃斬)

연식(連式). 참공일섬(斬空一閃)

촤아악!

비단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모두의 눈앞에 정녕 믿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알데마란이 경악과 불신으로 소리 질렀다.

[베어냈다고, 그걸!?]

검기의 오롯한 궤적에 대기가 갈라지고, 공간이 베어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거대한 에너지 구체까지 수직으로 깨끗이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구체를 두 동강 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관성에 따라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진운은 멈추지 않고 거듭 출수했다. 쪼개져서 불안정해진 저것을 그대로 놔둘 생각은 없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2식. 낙인참(落刃斬)

연식(連式). 분절쇄공인(分節碎空刃)

낙인참의 연환전개형태인 분절쇄공인! 이미 둘로 쪼개져 구심점을 잃은 에너지 구체를 더 잘게 쪼개 나눠나갔다.

촤촤촤촥!

그의 참격이 단번에 수십, 수백 번이 전개된 순간, 에너지 구체는 어느새 반딧불보다 더 작은 조각들로 화해 있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3식. 진악세(鎭岳勢)

뒤이은 묵직한 붕검의 일초! 그것이 공간을 진탕시키며 작열한 순간, 미약해진 작은 에너지 조각들은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자연스럽게 스러져 버리고 말았다.

[···네놈, 대체 뭐냐? 어떻게 그걸 막아낸 거지? 네놈이 이레귤러라 해도 이럴 리가 없는데······.]

경악과 불신으로 가득 찬 알데마란의 질문에, 이진운은 조소로 화답했다.

“확실히 대단한 기운이긴 했지만, 응집력은 형편없었지. 그래서 보다시피 쪼개고 쪼개서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다.”

제아무리 막강한 기운이라 해도 응집구조 자체가 조밀하지 못하면 이렇듯 파훼되기 마련이었다. 기운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지만, 응집력만 놓고 본다면 강기(罡氣)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 정도는 검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쪼개 흩어버릴 수 있었다.

알데마란은 잠시 침묵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난적이군. 고작 내 반의 반절도 채 안 되는 에너지로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정말 몰랬다.]

“그래서 도망치기라도 하겠다고?”

이진운이 상대를 도발하듯 되물었지만, 알데마란은 지금 지극히 냉정했다.

[아니, 그래서 더 확고해졌다. 네놈을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는 결심이.]

말을 끝마친 그 순간, 알데마란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간을 가로지르며 쇄도해왔다.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놈의 목표는 바로 이진운이었다.

‘이놈이!?’

초동반응조차 전혀 없이 초가속 비행으로 날아오고 있는 알데마란.

기습적인 이 한 수는 이진운이라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쾅!

격렬한 충돌과 함께 이진운과 알데마란은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전함의 벽면 한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외부로 이어지는 전함의 비상출구까지 뚫고 더욱더 길게 뻗어나갔다.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큭! 젠장!”

전신에 치미는 격통과 함께 정신이 다 아찔해져왔다. 제아무리 철환극강기의 강진력으로 신체를 보호했다곤 해도 비상출구의 격벽과 부딪치면서 입은 데미지가 결코 적은 건 아니었다.

“떨어져!”

이진운은 점창파의 비전인 비천십이표(飛天十二飄)의 용무선회경(龍舞旋回勁)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전신에서 나선의 경력이 휘몰아치면서 자신을 끈질기게 밀어붙이고 있던 알데마란을 저 멀리 튕겨내었다.

간격을 확보한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전함의 비상구를 뚫고 나온 지금, 그가 서 있는 장소는 텅 빈 우주공간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놈의 수작에 당했어.’

애당초 놈이 돌진공격을 해온 것도 자신을 우주공간에 내던지기 위해서였던 게 틀림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가 입고 있던 배틀 슈트의 생존기능 덕분에 우주공간에서도 멀쩡히 숨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진운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던 그때, 알데마란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하하하! 생각보다 잘 먹혔군. 자, 어떤가. 이 광활한 우주공간이? 지구에서 온 네놈에게는 첫 경험이겠군.]

“그래, 아주 뻔한 속셈이군. 우주를 처음 경험하는 날 상대로 우주전을 해보겠다 이거지?”

[그래,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주의 잔혹함을 깨달으며 죽어라!]

예상했던 대로 놈은 우주공간에서도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아니, 오히려 전함 내에서 싸울 때보다 지금이 더 빠르고 기민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진운도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군. 바로 이렇게 쓰는 거였던가?”

그가 손목의 밴더를 조작하자, 배틀슈트의 기능 중 하나가 활성화 되었다.

위이잉!

등 뒤에서 길게 뻗어나가는 두 쌍의 광익. 이것이 바로 우주전을 상정한 배틀 슈트의 기능인 플로트 윙(Float Wing.영자익靈子翼)이었다.

그 광경을 본 알데마란이 냉소하며 날아들었다.

[헛된 짓거리다! 아무 훈련도 없이 플로트 윙을 곧바로 다룰 수 있을 것 같으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플로트 윙이 제아무리 우주비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해도, 그것을 다루는 적응 훈련은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우우웅!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신체를 길게 뽑아내 만든 거대한 참격!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중형함도 중파시킬 수 있는 그 공격은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뭣? 피했다고?]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알데마란은 재차 공격을 펼쳤지만, 이진운은 놀랍게도 빠른 기동력을 보이며 공격의 빈틈으로 빠져나갔다.

“이거 생각보다 쓰기 쉬운데?”

이진운 스스로도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플로트 윙을 제어하는 것이 예상보다 더 익숙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전생 시절에 어기비행술(御氣飛行術)로 공중전을 벌여봤던 경험 때문인가?’

물론 플로트 윙이 그와 완전히 같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 경험이 도움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놈이지?]

알데마란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상대가 이레귤러라는 건 눈치 챘지만, 이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존재일 줄이야.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자신의 상식을 초월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내 차례다.”

그때부터 이진운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플로트 윙을 다루기 시작한 이진운의 공격은 사나운 폭풍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알데마란은 전력으로 응수했지만, 이진운은 차근차근 그 공격을 분쇄하면서 접근해 나갔다.

그들 둘 간에 존재하는 힘의 격차는 여전히 컸지만, 이젠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갖추게 된 이진운은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알데마란의 머릿속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기계생명체로 태어나 두려움을 모르던 자신이 이런 감정을 떠올린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다가오던 이진운의 검 끝이 돌연 흐릿하게 변했다.

급풍쾌검(急風快劍) 1식. 풍령추인섬(風靈追認閃)

비의. 무흔절환광(無痕折換光)

어떤 형태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었지만, 알데마란은 그것을 읽어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분명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인지하기 어려운, 허깨비 같은 검로.

그것이 소리 없이 다가들었다.

[피··· 피할 수가!?]

써걱!

알데마란은 이 순간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감지조차 못한 일격에 어느새 자신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둘로 쪼개져 있었다.

이진운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빠르게 다가섰다.

“이걸로 끝이다!”

삼절검(三絶劍) 제 3식. 진악세(鎭岳勢)

연식(連式). 천붕일조(天崩日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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