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5화 (26/448)

1권-25화

물론 클레브가 그동안 해온 노력을 그녀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어서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던 사람이었는데, 잠깐의 가르침으로 저렇게까지 실력 상승을 이루다니.

일순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이젠 클레브에게 정말로 재능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오래 전에 핵심 운용법을 잃고 2류로 전락한 웰라우드 류가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재능여부의 문제를 초월할 만큼 이진운의 가르침이 특별했던 걸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클레브에게 찾아온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이진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 임무 달성을 방해하는 불확정 요소 발견!]

아리엔을 상대하던 아마데인이 돌연 경고성을 발했다. 눈앞의 아리엔보다는 자신과 동급의 개체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린 이진운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쿠아아앙!

놈은 즉시 등 뒤의 부스터에서 불을 뿜으며 이진운을 향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클레브와 이진운에게 한눈을 팔던 아리엔으로서는 붙잡을 새조차 없었다.

“앗!”

그녀가 놀라 경호성을 토해낸 사이, 이진운이 아마데인의 기습적인 공격에 반응하고 나섰다. 다른 인베이더들을 쓸어버리면서도 아리엔이 맡고 잇던 아마데인에게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끼리릭!

검 끝이 돌연 기이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니었다.

하나의 선이 마구 얽히고설킨 기괴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불규칙한 곡선!

아리엔은 그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디 검이라는 것은 적을 속이는 허초가 아닌 이상, 일단 최단거리로 공간을 단축시켜서 상대를 빠르게 베는 것이거늘··· 지금 이진운은 왜 불필요한 궤적을 그리면서 오히려 속도를 늦춘단 말인가!

하지만 불합리하게 보이던 그것이 믿기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촥! 촤촤촥!

문득 뭔가가 베어지는 듯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마데인의 전신이 보이지 않는 뭔가에 난자되어 분해되어가고 있었다.

[저의 공격··· 판독 불가! 이해··· 불명!]

아마데인은 혼란에 빠진 괴성을 내지르며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그것을 아리엔의 두 눈도 함께 크게 흔들렸다.

“대체··· 이게!?”

이게 진짜 검술이란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본가의 절학인 웰라우드 류가 오래 전에 핵심 운용법을 잃고 2류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그녀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자부심만큼은 잊지 않았었다. 언젠가 다시 복원만 해 낸다면 웰라우드 류가 누렸던 명성과 영광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

그렇지만 그녀가 품어왔던 그 자부심이 지금 이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건 아예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재능이나 자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니 뭘 어떻게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검술의 묘리!

‘인간이 쌓아온 무예가 이렇게까지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거야?’

웰라우드 류 외에도 아르탈 행성 연합 내에는 많은 무가가 존재했지만, 저런 묘리를 담아낸 검술은 보지 못했다. 웰라우드 류 외의 무가들이 다루는 무예는 어디까지나 이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온 것들 뿐.

그녀가 아는 한, 순수한 검술 자체만으로 이런 믿기지 않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예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이진운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것이 바로 사양요요(射陽拗嶢). 점창파의 검학들 중에서도 손꼽는다는 사일검법의 절초였다.

하지만 아리엔을 경악케 만든 이마저도 완전한 게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사양요요였다면 단 한수에 이 일대를 장악하여 모든 인베이더들을 모조리 제거했을 것이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야.’

부족한 내공도 내공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육체가 문제였다. 정신은 아득히 먼 곳에 닿아 있는데, 육체는 거기에 한참 못 미쳤다.

그는 호흡을 다스리며 몸을 추슬렀다.

이미 인베이더들은 대부분 정리된 상태였다. 강화병들과 지구인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쓰러진 인베이더들을 정리했다.

“방심하지 마라! 놈들은 일반 생명체가 아닌 기계생명체다. 작동을 정지하기 전까지는 결코 죽은 게 아니니 완전히 박살을 내서 확인해라!”

“예!”

기계군단의 인벤이더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몸 자체가 기계인 만큼 제아무리 파손되어도 중추만 무사하면 완전히 정지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크, 진짜네! 이놈 아직 안 죽었잖아.”

“조심해! 그러다가 다 죽어가는 놈한테 죽는다!”

지구인들은 조심조심 인베이더들을 제거해 나갔다. 이미 무력화된 것들을 박살내는 일은 각자 조심만 하면 그리 큰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마지막 적이 하나 더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재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벅찬 강적이었다.

“쉽지 않겠어.”

이진운은 분명하게 느꼈다. 작전관과 함께 저 얼음 덩어리 속에 갇힌 진멸 급 알데마란의 강렬한 존재감을.

기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최절정 고수 급. 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기운의 양은 어지간한 화경 급에 버금갔다.

전생 시절이라면 웃을 가치도 없었겠지만,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너무도 벅찬 상대였다.

“다들 서둘러 정리를 마치세요. 이제 곧 결금마옥이 해제될 겁니다. 알데마란을 상대하려면 서둘러요!”

아리엔은 서둘러 부대원들을 독려해 움직였다.

결금마옥의 표면에 시시각각 날카로운 금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것은 결금마옥을 유지하고 있는 작전관도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모든 정리를 끝마친 부대원들이 아리엔의 명령에 따라 즉각 진형을 구축하였다.

진멸급인 알데마란을 상대로 근접전을 벌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고로 현재로선 중거리에서 화력을 집중 투사할 수 있는 진형을 구축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부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주시하던 그때, 결금마옥의 얼음이 마침내 부서져 내렸다.

빠직! 콰드드득!

[우우! 짜증나는 것들! 감히 잔재주를 부리다니! 이 딴 수법으로 날 가둬둘 수 있을 것 같으냐?]

알데마란이 분노에 찬 포효성을 터뜨렸다. 얼마나 막대한 영력이 담겼는지, 몇몇 사람들은 그 소리에 위압되어 주저앉을 정도였다.

놈의 기운은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반면 놈을 가둬두었던 작전관의 기운은 아예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아리엔.”

“뭐죠?”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왜 자신을 부르냐며 책망하는 투로 시선을 주는 아리엔.

그렇지만 이진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저 괴물을 잠시 상대하겠다. 그러니 그동안 저 작전관인가 뭔가를 빼내와. 더 이상 싸울 수도 없어 보이니까.”

“지금 그 말 농담이시죠?”

알데마란을 단독으로 상대하겠다고? 물론 그가 놀라운 수로 아마데인들을 제압했다곤 하지만, 알데마란은 아마데인과 차원이 달랐다.

소환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지구인이 그런 괴물을 상대하겠다니! 아리엔으로서는 그가 겁을 상실하다 못해 아예 정신이 나간 거 아닌가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잘 들어! 내가 놈을 상대한다. 붙잡아 놓는 동안 어떻게든 작전관을 빼내!”

“이봐요, 지금 무슨!?”

이진운은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낸 뒤,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즉시 전면으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분광착영의 섬화탄신(閃化彈身)이었다.

[하, 이젠 별게 다 덤벼드는구나. 이 몸이 그렇게도 우습게 보인단 말이냐!? 이 버러지가!]

반쯤 무력화 된 작전관에게 다가가 베어버리려던 알데마란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진운의 모습이 기가 막혔다.

움직임이 제법 빠르긴 했지만, 그 정도론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죽어라!]

알데마란이 손가락을 뻗자 작은 총구 형태가 되었다.

투학!

손끝에서 뻗어 나오는 강렬한 섬광. 그것은 어지간한 소형 전함도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더 전진하면서 검 끝으로 원을 그렸다.

위이잉!

공진하는 대기! 그리고 잔잔히 퍼져나가는 동심원 형태의 파장!

그것에 섬광이 닿는 순간, 마치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빛이 사방으로 비산되어 흩어졌다.

[뭣!?]

알데마란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일개 버러지를 제거하기에는 과한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막아낸다고?

그것은 기봉검(起鳳劍)의 천운구봉(天運究鳳). 검에 실린 경력의 파장을 제어하여 다양햔 변화와 결과를 일으키는 절초. 파장의 힘으로 섬광에너지에 간섭함으로서 사방으로 분산시킨 것이다.

그리고 놈의 당황을 틈탄 그는 어느새 알데마란의 코앞까지 다가들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1식. 섬진쾌(閃震快)

연식(連式). 섬영우(閃影雨)

그의 검 끝에서 뿜어진 궤적의 연타! 눈으로 시인하기 어려운 쾌검의 연속 출수였다.

피피피핑!

알데마란의 전신이 순식간에 걸레가 되었다. 제아무리 진멸 급이라 해도 예기치 못한 기습 공격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진운은 거듭 공격을 퍼부어 더 큰 타격을 주려 했지만, 알데마란은 즉시 각부에 부스터를 만들어 고속 이동해 물러섰다.

‘아쉽군. 놈에게 좀 더 공격해서 타격을 줄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목적은 달성했다.’

눈으로 보고 있진 않았지만 이진운도 기감을 통해 느끼고 있었다. 아리엔과 리스티가 기진맥진한 작전관을 후방으로 빼내고 있는 기척을.

이제 거치적거리는 장애물도 없어졌으니, 마음 놓고 알데마란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진 않을 것 같았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입은 알데마란의 상처가 어느새 멀쩡하게 메워지고 있었다.

그 대신 기운은 조금 약해졌지만, 그래봐야 강물에서 몇 바가지 퍼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알데마란이 경각심 어린 모습으로 물음을 던져왔다.

[···크, 생각보다 우습게 볼 버러지가 아니었구나. 네놈은 뭐냐?]

“지구에서 불려온 이진운이다.”

이진운의 대답에 알데마란의 얼굴 부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구겨졌다.

[하? 농담인가 그거? 여기 타고 있는 지구인들은 이제 막 소환된 걸로 아는데, 그 중에 너 같은 녀석이 있다고?]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지.”

[그렇군. 이레귤러군.]

이진운의 말에서 조금도 거짓을 읽어내지 못한 알데마란. 그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는 결단을 내렸다.

[네놈만큼은 여기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한다. 천외오천(天外五天) 같은 놈들이 더 이상 나오게 할 순 없어.]

“천외오천? 그게 뭐지?”

[알 것 없다. 넌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처음 듣는 소리에 되묻는 이진운. 그렇지만 알데마란은 대답 대신 그의 죽음을 선고했다.

“그게 말처럼 쉬울까? 어디 해 볼 테면 해봐!”

이진운은 냉소를 흘리며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장내가 차갑게 식어갔다. 알데마란과 이진운이 내뿜는 살기에 공간이 잠식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점에 이른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쾅!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두 신형이 중간에서 격돌하였다. 고작 인간 크기의 둘이 격돌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충격량이었다.

하지만 충돌의 결과는 이진운의 열세. 그는 신음을 토하며 물러섰다.

“큭!”

[고작 이거냐!]

알데마란은 더욱 가속하면서 이진운을 몰아붙였다. 믿기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실내 공간에서 극초음속마저 아득히 넘어선 속도로 이동하는 아마데인의 모습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빛과 같았다.

‘젠장!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진운은 이를 악물었다. 상대의 움직임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의식속도는 이미 가속화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육체의 스펙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제아무리 상대의 움직임을 느리게 인지한다 해도 몸이 따라주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가진 힘의 크기도 너무나 컸다. 어떻게든 사량발천근이나 이화접목 같은 화경의 수법으로 충격을 흘려보내곤 있지만, 힘의 차이가 이 정도로 크면 다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누적되어가는 충격에 뼈마디가 울려왔다. 내장이 흔들려 핏물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절학과 깨달음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기반이 없으면 지금처럼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컥! 크으!”

무시무시한 충격에 이진운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미처 다 해소하지 못한 충격이 밀려오면서 그의 전신을 으스러뜨릴 듯 눌러오고 있었다.

그나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도 배틀 슈트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충격을 경감해주지 않았더라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 제법이긴 하다만, 그것이 버러지의 한계로군.]

“고작 이 정도로 우쭐대지 마라!”

이진운은 알데마란에게 그렇게 받아쳤지만, 사실 승산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고작해 봐야 검기를 발출하는 것이 한계. 그마저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잠깐 뿐이었다. 이 상태로 알데마란 같은 괴물을 상대한 다는 것 자체가 무모했다.

내공은 바닥이고, 몸 상태는 최악.

그는 자조하고 말았다.

“그래, 그동안 잊고 있었어.”

지구에서 다시 환생했을 적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내공을 되찾으면서 현재의 자신을 잊고 말았다. 고작 쥐꼬리만 한 내공을 회복한 것만으로 너무 전생 시절의 느낌에 취해 있었다니.

전생의 깨달음만으로 막연히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부터가 우스운 짓이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자 그는 비로소 작금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난 더 이상 천룡검신 천화운이 아니야. 이제 막 무인으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무명소졸 이진운이지.”

이제 영광스럽던 전생의 옛 모습은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는 이진운이었다.

아직 약자에 불과한 주제에 강자처럼 행세를 하려 했던 것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필사적이고, 발악적으로 싸울 수밖에.’

더 이상 전생 때와 같은 강자의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쥐어짤 생각이었다.

그는 입가의 피를 닦아내었다. 그리곤 알데마란을 향해 고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진짜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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