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24화
아리엔은 작전관과 알데마란이 맞닥뜨리자마자 곧바로 작전을 개시하였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놈들의 뒤를 기습적으로 들이칠 기회가 없었다.
그녀와 강화병들이 먼저 앞장서자 지구인들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인베이더가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방금 전 영상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다. 어차피 싸우지 않으면 다들 죽게 된다는 것을.
복도를 두 번 정도 꺾어 달리자, 드디어 인베이더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작전관과 알데마란이 결금마옥 속에 함께 갇혀 얼어붙어 있는 모습도.
아리엔은 보는 즉시 사태를 파악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작전관님의 결금마옥이 유지되는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그 시간 안에 나머지 인베이더들을 정리해야 해. 그래야 승산이 있어.’
순식간에 결단을 내린 그녀는 부대원들에게 공격을 지시하였다.
“자, 가자! 눈앞의 적들을 쳐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돌진하는 부대원들. 바짝 긴장한 지구인들도 그 기세에 휘말려 함께 돌격해 들어갔다.
“오, 원군이 왔다!”
“살았어!”
지금까지 인베이더들을 상대로 악전고투하던 A부대원들이 화색을 띄었다. 반대로 인베이더들은 후방으로부터 들이쳐 온 B부대의 역습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먼저 선두에 선 아리엔의 선공이 시작되었다. 달려 나가는 속도를 그대로 실은 그녀의 검 끝이 수직으로 궤적을 그리는 순간, 위맹한 검풍이 공간을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웰라우드 류
위진(危振)-격풍(擊風).
쿠콰콰콰!
검풍의 궤적에 말려든 스파이더 다섯 기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분쇄되었다. 어지간한 화기조차 따를 수 없는 위력이었다.
그 다음에는 뒤따라온 부대원들이 인베이더들을 덮쳐들었다.
“우오오오!”
우렁찬 기합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아가는 한 사내.
그는 마틴이었다.
푸른 전류를 휘감은 채 나아간 그의 주먹이 다른 A부대원을 덮치려던 스파이더를 그대로 강타하였다.
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스파이더의 몸체가 두 동강 나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하하! 자, 봐라. 이것들 별 거 아니다. 그러니까 괜히들 쫄지 말고 싸워!”
발전 능력으로 형성한 전자기력으로 육체의 움직임을 순간순간 가속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틴이 가진 강함의 비밀이었다.
물론 인간의 육체로 이런 짓을 했다간 진작 터져나갔겠지만, 그는 강체 능력까지 겸비한 듀얼 스킬 보유자. 이 정도 과부하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다.
마틴이 먼저 나서서 전과를 보이자, 두려움과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지구인들도 그제야 전투다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설쳐대기는.”
이진운은 그런 마틴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자신의 제자를 돌아보았다.
“클레브.”
“예.”
“내게 배운 후 첫 실전이다. 어디 마음껏 해 봐. 실수해도 뒤는 내가 봐줄 테니까.”
“그렇다면 스승님만 믿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클레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배운 검술이 아직 익숙하진 않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숙달하는 데엔 실전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내딛는 발걸음. 그것이 두 번째로 이어지는 순간, 클레브의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졌다.
삼절검(三絶劍) 제 1식. 섬진쾌(閃震快)
도움닫기에 이은 한 줄기 궤적. 그것은 원호를 그리며 스파이더 한 기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아직은 극쾌라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양산급인 스파이더가 피하기에는 너무도 빠른 일검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을 맞은 스파이더는 아직 완전히 정지하지 않았다. 기계생명체인 놈들은 어지간한 파손으로는 멈출 수 없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1식. 섬진쾌(閃震快)
연식(連式). 섬영우(閃影雨)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검초! 이번에는 섬진쾌의 연속 출수였다.
현란한 궤적의 무리가 공간을 난자한 순간, 저항하려 했던 스파이더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한 기의 스파이더를 순식간에 해치운 클레브는 멈추지 않았다. 그 다음 제물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클레브의 전투를 살펴본 이진운은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새로 배운 검술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그동안의 실전 경험으로 모자란 부분을 훌륭하게 메워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하고 있어. 이 정도면 어지간한 놈들 상대로는 죽지 않겠는데.’
그러면서 옆에 있던 스파이더 두 기를 단숨에 베어 두 동강으로 만들었다. 검경(劍勁)이 실린 참격을 일개 양산형 따위가 버텨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봐야겠군.”
클레브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그가 지금까지 벤 인베이더의 수는 일곱.
B부대가 인베이더들을 덮쳐들면서 어느 정도 전황이 호전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스파이더야 상대 못할 것도 없었지만, 놈들에게는 침공 급 아마데인만 무려 여섯 기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저 아마데인들의 등급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D+랭크. 아리엔이라 해도 하나 이상은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일단은 저것들부터 정리해야겠어.’
팟!
목표를 정한 순간 이진운의 움직임이 한층 더 가속화 되었다. 점창의 보법인 분광착영(分光捉影)의 한 수였다.
기이잉!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 오는 이진운을 발견한 아마데인 한 기가 즉시 반응해 움직였다. 놈의 왼 손을 드는 순간, 손바닥 부분이 갈라지는 가 싶더니 작은 포구가 형성된 것이다.
부아아아앙!
순간 무시무시한 빛이 공간을 내달렸다. 포구로부터 쏘아진 그것은 이진운의 전면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쥐지 않은 자신의 왼 손을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에너지 광선이 이진운의 왼 손에 닿는 순간, 돌연 광선의 궤도가 휘어지면서 다시 아마데인에게 되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화경(化境)의 극치 중 하나인 이화접목의 한 수였다.
[!?]
아마데인이 당황해 반응하려 했지만, 되돌아온 광선의 속도가 더 빨랐다.
쾅!
자신이 쏜 광선에 왼팔을 잃고 만 아마데인.
놈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신체의 일부를 망실한 지금, 자신의 눈앞의 적은 그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그래서 즉각 공격을 감행하려 했지만, 이진운의 속도가 더 빨랐다. 고작 두 걸음을 내딛는 순간, 이진운은 벌써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서걱!
대체 언제 벤 것일까? 작은 절삭음과 함께 아마데인의 전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직으로 쪼개져 있었다.
불과 1초 남짓한 사이에 한 기의 아마데인을 쓰러뜨린 이진운은 다음 상대를 찾아 움직였다.
현재 한 기의 아마데인은 아리엔이 상대하고 있었고, 나머지 네 기의 아마데인들은 다수의 강화병들이 억지로 붙잡아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신 희생이 적지 않았는지 강화병들 여럿이 쓰러진 모습이 눈에 보였다.
‘속전속결로 친다!’
결단을 내린 이진운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창을 들었다.
쿠웅!
진각과 함께 발생된 반동이 근골의 경로를 따라 전신을 내달렸다. 그것은 뒤틀리고 회전하는 육체의 움직임과 함께 더욱 증폭되었으며, 전신을 휘도는 진기와 더해져 가공할 형태로 재탄생되었다.
맹렬하게 뻗어내는 오른팔의 움직임을 따라 뻗어나가는 창이 어느새 한 줄기 섬광이 되어 공간을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이진운이 아직 다룰 수 없는 관일창의 절초를 간략화 시켜 만들어낸 하위 투창술 망일비섬창(亡日飛閃槍)!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쿠오오오!
강화병들을 상대하던 아마데인들이 대기를 관통하는 굉음소리에 놀라 반응했지만, 이미 이진운의 창은 순식간에 놈들을 꼬치처럼 꿰뚫고 있었다.
두 놈을 한꺼번에 산적처럼 꿰뚫은 창은 그 힘이 다하지 않고 뻗어나가 벽면에 깊게 꽂혀버렸다.
“뭐, 뭐야? 지금 그건?!”
“아군의 공격인가?”
강화병들이 영문을 몰라 당황해 했지만, 설명해줄 시간은 없었다. 이진운은 순식간에 파고들어가 창에 관통당한 두 명의 아마데인들을 동시에 베어버렸다.
검 끝의 궤적이 수평으로 선명한 궤적을 그리는 순간, 놈들의 허리어림도 그대로 쪼개져 있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2식. 낙인참(落刃斬)
촤악!
동료의 죽음에 남은 두 명의 아마데인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반응해왔다.
[위험! 위험!]
놈들의 전신 각부에서 각종 무기들이 솟구쳐 올랐다. 각종 소형 화기는 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암기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그것을 사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허리 어림으로부터 시작한 한 줄기 뚜렷한 검광! 그것은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처럼 어느새 아마데인들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적의 공격··· 이해 불가.]
[분석이······]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아마데인 둘이 곧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리곤 가슴 부분이 뭔가에 절단된 듯 쩌억 갈라지더니, 상체가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역시··· 무리였나.”
믿기지 않는 한수로 놈들을 쓰러뜨린 이진운은 쓰게 웃었다.
지금 보인 수법은 점창의 절학 중 하나인 분광십팔수검의 섬뢰일정(閃雷一挺).
제대로 펼친 것도 아니고 흉내만 냈을 뿐인데도 벌써 몸에 무리가 오고 있었다.
그것은 상승무공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몸이 제대로 단련되지 못했다는 증거라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무리는 하지 말아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이진운이 인베이더들의 경계 대상이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던 것들까지 그를 노리고 있었다.
스파이더들이 꽁지부분으로 일제히 뭔가를 쏘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스파이더 웹이었다.
사방에서 뿜어지는 거미줄은 피할 수조차 없어보였지만, 이진운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바구니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유운신법(流雲身法)의 한 수였다.
“세상에!”
“저게 지구에서 며칠 전에 소환된 사람이라고?”
강화병들이 두 눈을 비비며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상대했던 아마데인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고, 이젠 스파이더들을 단신으로 도륙하고 있다니.
본부로 돌아가 자신들이 지금 본 것을 말한다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리엔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데인 한 기를 상대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그녀는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 앞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녀가 처음 놀란 것은 클레브의 분전이었다.
웰라우드 가에서 사사받은 클레브의 실력은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았다. 그의 실력으로는 아머리 웨폰의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스파이더 두셋 이상은 도저히 무리였다.
헌데 지금은 뭔가? 스파이더들을 순식간에 무려 열이나 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자신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클레브가 왜 이렇게까지 달라진 거지?’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그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원인은 이진운에게 있었다.
클레브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나서였던 것이다.
고작 며칠뿐이었는데···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클레브는 완전히 환골탈태 한 것처럼 탈바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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