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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3화 (24/448)

1권-23화

사이보그 로봇들의 이름은 아마데인. 기계 군단의 주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침공 급 개체들이었다.

지구인들은 그 실물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교육을 통해 대략적인 생김새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선명한 화질로 보니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터미네이터!?”

“미친! 진짜로 T-800하고 거의 똑같잖아!”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그것이 정말로 현실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지구인들은 깜짝 놀라 외쳤다. 하지만 그 성능은 그들이 알던 T-800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쾅! 콰르르릉!

아마데인들은 무시무시한 기동력으로 움직이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놈들은 단순한 로봇이 아니었다. 기계이면서 영력까지 다룰 수 있는 괴물이었다. 놈들이 휘두른 팔에 기어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고, 입을 벌릴 때는 강력한 에너지의 분류가 쏟아지면서 가로막는 것을 불살라 버렸다.

그 결과, 50여 기나 됐던 무장기어들은 한순간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세상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을 우리더러 상대하라고?”

영상 속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지구인들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전의 따위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였다.

그들이 본 무장기어들의 화력은 엄청났다. 지구의 군대와 맞붙는다면 어지간한 군단 급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헌데 그런 막강한 병력이 눈앞에서 개미처럼 짓밟혀 사라졌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마데인이 적들이 가진 최고 전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괴물은 따로 있었다.

마침 그 괴물이 드디어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수은 덩어리가 뭉쳐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아마데인들을 호위처럼 거느린 채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이진운도 일순 기가 막혀서 헛웃음 짓고 말았다.

“이젠 별 놈들이 다 기어 나오는군. 이번엔 T-1000이냐!?”

C랭크 오버러인 작전관마저 죽음을 각오하게 만든 진멸 급 인베이더, 알데마란.

놈은 다른 녀석들과 달리,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생명체였다.

그렇기에 신체를 부수거나 베는 정도로는 쓰러뜨릴 수조차 없었다. 놈을 없애는 방법은 단 두 가지. 더 이상 복원될 수 없도록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도록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알데마란은 기계 군단의 진멸 급 중에서도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널리 알려진 상태다.

앞으로 나선 알데마란은 전면을 가로막은 격벽 앞에 섰다.

현재 기계군단의 전진은 이곳에서 멈춘 상태였다. 무장기어들은 몰살시켰지만, 그들 뒤에 있던 두터운 격벽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의 공격이 퍼부어졌지만, 격벽은 무척이나 견고했다. 약간의 그을음 빼고는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은 프라이스 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제네레이터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제네레이터를 철저히 보호해야 하는 만큼, 이곳의 격벽도 다른 것들과는 비할 수 없이 더 견고했던 것이다.

[비켜라. 이런 것도 해결 못하다니 정말 성가시게 구는군.]

알데마란의 짜증에, 아마데인들이 일제히 좌우로 물러섰다.

주르륵!

놈은 자신의 오른손을 기다란 은색 칼날로 변형시켰다.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만큼 신체를 어떤 형태로 변형하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위이잉!

칼날이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욱 맹렬하게 진폭을 키워나갔고, 곧 그 위로 선명한 빛 에너지까지 맺혀들었다.

진동하는 칼날과, 그 위로 공진하는 빛 에너지.

그것이 곧 격벽 위로 주저 없이 그어져 내렸다.

스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격벽 위에 뚜렷한 선이 그어졌다. 지금까지 어떤 포화로도 뚫을 수 없었던 격벽이 단 한 번의 칼질에 베어져 나간 것이다.

알데마란이 재차 세 번을 더 휘두르자, 격벽이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게 잘려나갔다.

쾅!

이미 잘려나간 격벽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알데마란이 발로 살짝 걷어차자, 정사각형으로 잘려나간 격벽 부분이 뒤로 묵직한 소리와 함께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구멍 너머로 제네레이터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이 보였다.

[후흐흐··· 역시 그렇군. 여기서 쥐새끼처럼 도사리고 있었던 거냐?]

알데마란은 비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베어 버린 격벽 너머에는 제법 강해 보이는 인간 하나와 조무래기들 여럿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관은 굳은 얼굴로 외쳤다.

“왔구나, 괴물 녀석.”

[고작 이 정도로 날 막겠다고? 우습구나, 우스워.]

파직! 파지지직!

알데마란의 전신 위로 스파크가 튀었다. 놈에게서 흘러나온 막대한 영력이 분출되면서 방전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 대충 C랭크 정도구나. 하긴 그 정도 되니까 자신 있게 나섰겠지. 내가 생각보다 약해 보이니까, 너 정도면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거냐?]

상대의 실력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는 알데마란이었다. 작전관은 잠시 허를 찔린 듯 움찔했지만, 곧 무겁게 대답했다.

“···그래, 목숨을 건다면 네놈의 발목 정도는 잡을 수 있지.”

[하지만 그게 오판임을 알았어야지.]

오판이라고? 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알데마란의 그 말에 작전관은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냥 상대의 허세로 치부한 그는 갈무리하고 있던 자신의 영력을 이끌어내었다. 체내에 잠자고 있던 영력이 일순간에 끓어오르자, 그가 서 있는 주변이 차갑게 식어나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작전관이 보유한 고유스킬인 만결로(滿結路). 그를 중심으로 뻗어 나오는 선을 따라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강력한 이능이었다.

쩌저저정!

빠르게 뻗어오는 냉기의 푸른 선!

이건 유동성 있는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알데마란에겐 극상성이나 다름없는 힘이다.

하지만 놈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소하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여기가 곧 네 무덤이 될 거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데마란을 중심으로 막대한 영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얼마나 강력하던지, 그 여파에 휘말린 냉기의 선이 박살나 흩어지고 있었다.

“뭣!? 이 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한 작전관은 아연한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일순간 알데마란의 기운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폭증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놈은 그가 파악했던 C랭크 수준의 진멸 급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적어도 B랭크,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무시무시한 영력의 파도가 주변을 장악해 버렸다. 그가 뿜어내고 있던 냉기의 선은 그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몸이 힘 좀 감춘 걸 모르고 자신 있게 나서다니. 그것이 네 죽음을 재촉했구나. 역시 인간은 어리석단 말이야.]

“큭!”

작전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정말로 예상 밖의 변수였다.

나름대로 괜찮은 작전을 짰다고 생각했는데, 진멸 급 하나로 인해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설마 놈들이 자신의 힘을 의도적으로 감출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경우였다.

‘오늘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르겠군.’

죽음을 각오한 작전관이 바닥을 차며 뛰어들었다. 적보다 자신이 열세임을 인정한 이상, 선제공격은 필수였다.

“천빙절쇄(天氷切碎)!”

그가 도약한 순간, 무수한 푸른 선들이 허공에 그려지는 가 싶더니 그것들은 곧 하나의 궤적 속에 녹아들었다.

이것이 천빙절쇄. 냉기의 선을 집약시켜 모든 것을 절단하는 그만의 비기였다.

[크하하하! 어디 발악해 봐라!]

알데마란의 오른손 검날이 시리디 시린 광채를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마치 채찍과 같은 궤적을 그리는가 싶더니, 전면으로 날아온 냉기의 선을 무참히 부숴버렸다.

역시 기본 역량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결과를 대충 예상하고 있던 작전관은 다음 수를 발동시켰다. 그가 뿜어내고 있던 냉기의 선은 어느새 구름과 같은 형상으로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쾅!

“컥!”

한 차례 피를 토한 그는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대체 언제 움직인 건지, 알데마란은 어느새 그를 몸통박치기로 치고는 저 만치 움직이고 있었다.

작전관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알데마란은 상대하기 까다로워.’

눈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어느새 신체를 변형한 알데마란은 전신 각부에 부스터를 만들어 초가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느리구나, 느려. 그래서 언제 날 잡을 셈이냐?]

놈은 작전관을 조롱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얼마나 빠른지, 이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승산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단 한번 정도는 역전의 기회가 있었다.

“···지금, 날 가지고 놀겠다는 거냐? 그 오만함이 네 목을 옥죄게 될 거다.”

준비하던 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냉기의 선은 수많은 궤적을 그리며 구름 같이 뿜어져나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이제 발동할 일만 남았다.

그는 낮게 되뇌었다.

“결금마옥(結禁魔獄)!”

새하얀 냉기가 온 사방으로 뻗어나가, 일정 공간을 설원으로 만들었다.

온통 새하얀 동토.

이것이 작전관의 마지막 한 수인, 결금마옥이었다.

공간을 냉기의 선으로 사방을 뒤덮어 모든 것을 동결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입자조차 들어가기 힘들 만큼 고밀도(密度)에 가까워서 일단 한번 휘말리면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

이 한 수에는 알데마란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큭, 이런 무식한 짓을! 이런 짓을 하면 네놈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제아무리 빨라도 공간 자체를 통째로 동결시키는 한수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미리 예상했다면 모를까, 이미 휘말린 이상 여기서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알데마란에겐 치명적이었다.

“그래, 무사하긴 어렵겠지. 나 또한 여기에 같이 동결되는 것이니까.”

[이 미친 놈! 목숨을 걸겠다는 거냐? 게다가 이만한 규모와 위력! 그냥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니야!]

냉기에 붙잡힌 알데마란의 전신이 얼어붙어갔다. 이젠 놈이 떠드는 소리조차 작아지고 있었다.

작전관은 이 한 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단순히 적과 함께 얼어붙는 정도가 아니라, 결금마옥 자체에 자신의 진원까지 담아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알데마란은 결금마옥의 구속을 쉽게 떨쳐내고 벗어났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잠시간의 시간 벌기지.’

그가 진원을 희생해 벌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 정도. 그 사이에 인베이더의 후위를 치기로 한 B부대가 합류해서 이들을 쓸어주는 게 그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그러니 그동안은 어떻게든 알데마란을 최대한 붙잡아둬야 했다.

자신이 이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이 전투, 절대 승산이 없었다.

마침 그때, 점점 얼음으로 가려지는 시야 너머로, 기다렸던 B부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인베이더의 후방을 치면서 놈들의 대형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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