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2화 (23/448)

1권-22화

먼저 검을 손에 쥐자 아주 좋은 일체감이 느껴졌다.

“손이 착 달라붙는 것 같군.”

이것이 소울 웨폰(Soul Weapon.영자무구靈子武具). 오버러들의 이능과 영력을 증폭시켜주는 전용 무구였다.

슬쩍 내공을 흘려 넣어보자, 검신을 타고 흐르는 진기의 흐름이 확실히 큰 폭으로 증폭되었다. 거의 배 이상은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 다음에는 창도 쥐어 봤는데, 성능은 검과 거의 비슷했다. 제자리에서 몇 번 가볍게 휘둘러 봤는데, 마치 십년 이상 사용하던 무리처럼 금세 익숙해졌다..

“4레벨 배틀 슈트에요. 솔직히 제일 좋다곤 못하겠네요. 하지만 지금 현재로선 이 정도가 제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등급이니까, 이걸로 만족하세요. 본래라면 아저씨 같은 견습은 절대 만져볼 수도 없는 물건이라고요.”

“그래, 잘 쓸게.”

리스티의 투덜거림에 이진운은 웃는 얼굴로 답한 뒤, 그녀가 건네준 배틀 슈트를 착용하였다. 입는 건 간단했다. 그냥 움직이기 편한 코트 같은 형태라서 지금 입고 있는 옷 위에 바로 걸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크기는 조금 컸지만 입자마자 신체에 맞게 저절로 줄어들었다. 슈트 자체에 내장된 사이즈 자동 조절기능이었다.

이것이 오버러들의 전용 방어구인 배틀 슈트(Battle Suit.영자무복靈子武服).

데미지 경감은 물론 우주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해주며, 약간이지만 영력을 증폭시키고 신체능력까지 강화해준다. 그리고 부상을 입을 경우엔 나노머신을 체내에 주입해서 자동적으로 응급구명조치까지 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여벌의 목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보다 움직이기가 아주 편한데? 전혀 입지 않은 느낌이야. 슈트라고 해서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전투에 지장은 안 주겠군.’

몇 번 가볍게 움직여본 이진운은 아주 맘에 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신강기를 전개할 수 있다면 이런 보호구 따윈 별 필요 없겠지만, 전생에 비해 턱없이 능력이 부족한 지금은 이런 신외지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장비 수령이 끝나자 곧 작전관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홀로그램 창을 허공에 띄운 작전관은 프라이스 호의 내부도를 투영시킨 뒤, 제 1 제네레이터로 향하는 경로를 가리켰다.

“현재 적들은 본 함의 심장인 제 1 제네레이터를 최우선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 경로를 차단하는 한편 놈들을 격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현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각 구역을 격벽으로 차단시켜 진격을 늦추는 한편, 중요 요지마다 3미터 남짓한 크기의 탑승형 기체인 무장기어들을 다수 배치해 약간의 시간을 벌고 있는 상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착실히 전투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들이 목숨 걸고 희생해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부대를 A와 B, 둘로 나눈다. A부대는 제1 제네레이터 입구를 방어한다.”

“예.”

“그럼 B부대는 이동 중인 인베이더 놈들의 뒤를 쫓는다. 그렇게 해서 전방과 후위 양 쪽을 점거한 뒤, 놈들을 앞뒤에서 협공하는 거다. 그게 이번 작전의 요지다.”

작전은 아주 간단했지만, 쓸 수 있는 수단이 한정되어 있는 지금 그보다 더 나은 작전을 찾기란 어려웠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자, 작전관은 계속 진행을 이어나갔다.

“우선 A부대는 내가 맡기로 하겠다. 나머지 B부대는 귀관이 맡는다.”

작전관이 지목한 상대는 바로 아리엔이었다.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현재 프라이스 호에 탑승 중인 D급 이상의 정식 오버러는 열 명이 전부였고, 그중에서 전투에 특화된 사람은 아리엔과 작전관 단 둘 뿐이었다.

그러니 아리엔이 B부대를 맡게 되어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삐빅!

“더 구체적인 작전내용은 데이터 형태로 각자의 모듈 밴더에 전송해두었다. 자신이 어느 부대에 편성되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움직이도록.”

모듈 벤더(Module Bander)는 모든 사람들이 소지하고 있는, 개인용 통신기기였다. 겉보기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팔찌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이 안에는 통신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들의 기능들을 전부 포함하고 있어 종합처리장치에 가깝다.

이진운의 눈앞으로 작은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확실히 이곳의 과학력은 차원이 다른지, 그냥 모듈 밴더의 기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난 B부대군.”

“저돕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사람 다 같은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다른 부대에 소속되었으면 네 녀석이 위험해져도 어떻게 손 써볼 수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것 참 든든한 말이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게 안심은 되지 않았다. 클레브도 자신이 스승으로 모신 이진운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지만, 상대는 정진 정명한 괴물이었다.

어지간한 도시 하나를 단독으로 몰살시킬 수 있으며, 중소형 전함도 어렵지 않게 썰어버리는 게 바로 진멸 급이었으니까.

그런 괴물을 과연 이진운이 감당할 수 있을까? 클레브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제아무리 앞선 무예를 체득했다 한들 그 결과가 그리 긍정적일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때였다. 강화병들 중 누군가가 작전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있습니다. 적의 전력은 어떻습니까?”

“양산 급 98기에 침공 급 6기, 그리고 진멸 급 1기로 확인된 상황이다.”

작전관의 답변에 여기저기서 동요가 피어올랐다. 지구인들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이 나지 않아 어리둥절해 했지만, 진멸 급에 대해 잘 아는 강화병들은 경악과 공포에 빠져들었다.

“지··· 진멸 급이라고!?”

“말도 안 돼! 진멸 급이라니!”

“이 작전 무모한 것 아닙니까? 진멸 급이라니요! 그런 괴물이 있으면 앞뒤로 둘러싸 협공한다 해도 승산이 너무 희박합니다. 오히려 우리 쪽이 먼저 녹아버려요.”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작전관의 뜻은 단호했다.

“무모해 보여도 지금 우리에겐 이 방법밖에 없다. 어차피 놈들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우린 이대로 죽게 되겠지. 이판사판 아닌가? 무모하다는 건 본관도 알지만 그 전에 살기 위한 발악이라도 해 볼 생각이다.”

“······.”

다들 입을 다물었다. 진멸 급과 우주공간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프라이스 호의 화력을 앞세워 그럭저럭 싸울 수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 내부로 침투해들어오면 사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작전관 말대로 무모해도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그냥 가만히 앉아 죽느냐 뿐이었다.

그래도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작전관이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번 진멸 급은 잘못 만들어진 돌연변이인지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치는 C+랭크 정도로 측정되었다. 시니어 급(C랭크) 오버러인 나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 진멸 급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쓰러뜨릴 생각이다. 그러니 귀관들은 침공급을 비롯한 나머지 인베이더들을 부탁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작전하달은 모두 종료되었다. 편성이 완료된 A부대는 작전관의 뒤를 따라 속히 이동을 시작하였다.

인베이더들보다 먼저 제네레이터 실 입구를 장악하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진운은 여전히 옆에 서 있는 리스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뭐냐? 리스티, 너도 싸울 생각이야?”

“그야 당연하죠. 당장 전함이 침몰하게 생겼는데 저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오.”

리스티는 연구생산 방면의 마법사. 본래대로라면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사태인 만큼 특별히 자진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기는?”

“리스티는 마법사라서요. 이것들만 있으면 되요.”

리스티 주변에는 작은 구슬 같은 게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기계로 만들어진 위성 같았는데, 그것이 그녀를 보조해주는 모양이었다.

과연 리스티가 전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법사인 만큼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뭐, 그렇다면 됐다. 알아서 준비했다니 내가 더 말할 것도 없겠네.”

이진운은 그렇게 내뱉고는 시선을 돌렸다. 마침 아리엔이 부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인베이더의 후방을 칠 겁니다. 기습적으로 들이칠 생각이니, 신호가 떨어지면 그 즉시 신속하게 이동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편으로부터 전투의 굉음이 전달되었다.

트르르륵!

쾅! 콰아앙!

실내를 뒤흔드는 총소리와 폭음.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전투가 얼마나 흉험하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하고 있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우자 함 내로 침입한 적들의 모습이 비쳐졌다.

“이게 그 기계 군단이란 놈들인가?”

이진운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미 교육을 통해 간단히 배운 바 있었다.

인베이더 9대 성좌 중 6위인 기계군주 타이론드의 군단.

실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구성원 전체가 로봇 같은 기계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집단이었다.

하지만 기계군단의 인베이더들은 단순 기계라기보다는 기계생명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인공지능이라 할 수 없는 높은 자아와 격을 갖췄으며, 업을 쌓아갈수록 점점 진화해나가는 놀라운 특성을 지닌 존재였다.

“쏴라! 전 화기 방포! 일반 화기도 상관없어! 통하지 않더라도 물리력으로 일단 놈들을 멈춰 세우면 돼!”

“멈춘 스파이더들한테 특수탄을 먹여! 양산형의 진격을 저지한다!”

영화 속의 로봇을 방불케 하는 무장 기어들이 기계 군단을 상대로 보유하고 있는 화기를 일제 전개하였다.

인베이더들에게 일반적인 화기는 거의 먹혀들지 않는다. 그들은 놀랍게도 기계이면서 영자력을 다루는 존재들이었고, 일반적인 물리력의 대부분을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통용되는 것은 영력의 힘이 실린 특수 탄환뿐이다.

쾅! 콰아앙!

하지만 특수탄을 쏜다 해도 인베이더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기민했고, 공간을 활용할 줄 아는 존재들이었다.

거미와 같은 형태의 로봇들이 벽과 천장을 타고 뛰어다니며 탄환을 피해냈다.

놈들의 이름은 스파이더, 기계군단의 주력 중 하나인 거미 형태의 양산급 로봇이었다.

물론 양산 급 중에는 스파이더보다 더 강한 개체도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얕볼 순 없었다.

놈들의 등 위에 있는 작은 포신이 무장 기어를 겨누는 순간, 작은 섬광이 일직선으로 뻗어왔다.

바아앙!

빛이 지나간 순간 무장 기어 둘의 상체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아, 지미! 로우!”

“정신 차려! 지금은 죽은 동료를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동료를 잃은 무장기어가 그들을 부르짖었지만, 옆에 있던 동료가 그를 질책하면서 전투를 종용하였다.

스파이더들의 움직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화기를 퍼부어 움직임을 저지해보려 했지만, 벽과 천장을 오가면서 움직이는 놈들의 움직임은 화기관제시스템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이용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가 왔다.

게다가 그들이 맞이해야 할 적은 양산형 스파이더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위험한 괴물들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었다.

기이잉!

인간과 같은 비율과 형상을 가진 사이보그 로봇들. 그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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