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20화
[05.-소리 없이 찾아오는 위협]
지구인들이 이능제어 훈련에 여념이 없던 그 시각.
그들을 태운 준대형 전함 프라이스 호는 기나긴 초시공간 터널 안을 지나고 있었다.
변동중력장을 형성하여 초시공간을 관통하는 웜 홀을 만들어 이동하는 워프 항법. 이것을 통해 초광속항행마저 넘어서 공간 자체를 뛰어넘는 항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프라이스 호의 메인 브릿지.
함장석에 앉은 사내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내뱉었다.
“아, 정말 지루하군. 지루해. 언제까지 지구 출신 햇병아리들 싣고 다녀야 되는 건지 원. 이 짓도 벌써 10년이군.”
그가 이 일을 맡은 시기는 지구인들이 아르탈 행성 연합으로 소환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편히 쉴 수 있는 적당한 한직이어서 나름 만족했는데, 이젠 실어다 나르기만 하는 이 일이 이젠 슬슬 좀이 쑤셔왔다.
그렇지만 부함장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전 차라리 햇병아리들 담당하는 게 더 낫습니다. 최전선에 배치되기라도 하면 위험하잖아요. 옛날처럼 목숨 간당간당한 건 사절입니다.”
“뭐, 그건 그렇지. 흐흐. 나도 아직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두고 먼저 죽고 싶진 않다고.”
함장은 키득거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햇병아리들을 보살피는 게 좀 지루하긴 하지만, 부함장의 말처럼 역시 안전이 제일이었다.
“어이, 우리 조타수 군. 이제 어디쯤 왔지? 슬슬 워프 아웃 할 지점이 다 되가는 것 같은데 말이야.”
“예, 함장님. 현재 시간으로부터 약 10분 뒤 본 함은 EKB-0746지역의 차원단층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망할 놈의 차원단층. 이것 때문에 대체 얼마나 멀리 돌아가야 되느냔 말이야. 그것만 아니면 적어도 나흘은 더 일찍 도착했을 텐데 말이야.”
함장은 그렇게 푸념하며 함장석에 깊게 몸을 묻었다.
차원단층은 우주공간의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면서 생겨난 시공간의 버그였다. 아르탈 행성 연합에서 주력으로 사용되는 워프 항법은 웜 홀을 열어 공간을 도약하는 놀라운 방식이지만, 차원단층 지역만큼은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 차원단층과 마주치게 되면 워프 항법을 즉각 중단한 뒤 통상 항행으로 해당 지역을 우회하는 것이다.
차원단층을 무시하고 워프를 가능케 하는 신기술이 중앙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소문을 얼마 전에 들은 적 있지만, 아직 실용화 단계가 아닌 만큼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함장은 느릿느릿한 어조로 명령했다.
“아무튼 슬슬 나갈 때가 됐군. 워프 아웃 준비해.”
“예, 그럼 통로를 유지하고 있는 변동중력 필드 조절에 들어갑니다. 워프 아웃 게이트 형성.”
“우리가 나갈 때까지 웜 홀의 통로가 수축되지 않도록 주의해. 잘못하면 우리까지 말려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조타수와 오퍼레이터들이 일제히 대답한 후, 곧장 워프 아웃 준비에 들어갔다.
“함체 보호에 들어갑니다. 디스토션 필드 출력 상승.”
“제네레이터 출력의 30%를 디스토션 필드에 할당합니다.”
우우우웅!
프라이스 호를 둘러싼 방어결계의 힘이 강화되었다. 최대출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웜 홀의 터널을 유지하고 있는 변동중력필드의 여파로부터 함체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이다.
그리고 기나긴 웜 홀 끝에 드디어 출입구가 보였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더 가속화한 프라이스 호는 입구를 통과해 나갔다.
“본 함, 입구를 빠져나갑니다.”
“휴, 드디어 빠져나가는군. 이제 이번 차원 단층만 지나면 마지막 워프 인이겠어.”
함장의 넋두리 같은 중얼거림과 함께 조타수가 외쳤다.
“워프 아웃(Warp Out) 종료. 본 함 웜 홀 게이트(Warm Hole Gate)를 무사히 빠져나갑니다.”
프라이스 호의 거대한 함체가 입구를 벗어났다. 그리고 브릿지의 화면으로 광활한 우주공간이 펼쳐졌다.
헌데 그때였다. 홀로그램 모니터 위로 붉은 창이 떠오르더니 신경 날카롭게 하는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삐이익! 삑삑!
“뭐냐? 무슨 일이야?”
뭔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함장의 외침에 오퍼레이터가 비명
“츠··· 측면에서 강력한 열원 다수 포착! 필드 위로 직격합니다.”
“열원이라고? 막아! 출력을···!”
위기감을 느낀 함장이 긴급히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명령을 다 내뱉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공격이 함체를 직격하였다.
쾅! 콰아아앙!
성대한 굉음과 함께 프라이스 호 전체가 크게 진동하였다. 항상 디스토션 필드로 함체를 보호하고 있는 프라이스 호가 이 정도로 흔들릴 정도면 상당히 강력한 공격이라는 의미였다.
“우우욱! 뭐야 이건!?”
흔들리는 좌석에서 간신히 자세를 잡은 함장이 즉시 오퍼레이터를 닦달했다.
“현재 상황을 보고해! 어서!”
“디스토션 필드 관통. 함 측면이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피해는!?”
“필드 출력 저하. 제네레이터 기동 저하. 외벽이 부서지면서 EW-07구역부터 EZ-45구역이 노출되었습니다.”
“으음.”
생각보다 더 큰 피해에 함장은 침음성을 흘렸다. 워프 아웃 전에 디스토션 필드만 최대치로 가동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피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인데.
설마 적들이 이곳을 찾아내 기습공격을 할 줄이야. 만약을 대비하지 못한 안일함이 피해를 키워버렸다.
“서둘러 격벽 가동시켜. 일단 피격으로 외부에 노출된 구역들을 전부 폐쇄한다. 제네레이터는?”
“별달리 손상을 입진 않았지만, 방금 직격으로 함체의 에너지 순환 기관에 약간의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지금 이상의 출력 상승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젠장, 데미지가 적지 않군.”
저절로 욕지기가 나왔지만, 지금은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프라이스 호를 공격한 적은 아직 제대로 특정하지조차 못했다.
“적은? 대체 어떤 놈이냐?”
“인베이더입니다. 중형모함인 가란드 급 한 척으로 추정!”
전면의 스크린 위로 적함의 모습이 나타났다. 좌측에서 출몰한 중형 전함이었다. 물론 인간의 것이 아니라서 생김새는 마치 유기체를 떠올리게 했지만, 성능 자체는 전함과 거의 동일했다.
“인베이더라고!? 하필 이런 곳에서? 그런데 가란드 급이라면서 고작 한 척으로 어떻게 우리 함의 디스토션 필드를 뚫고 이만한 데미지를 준 거지?”
함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인베이더의 중형인 가란드 급과 준대형 급인 프라이스 호의 출력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방금 전의 디스토션 필드의 출력이라면 놈들의 최대출력의 주포라도 넉넉하게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인데··· 대체 어떻게 뚫린 것이지?
그에 대한 의문은 곧 풀렸다. 뒤이은 오퍼레이터의 입에서 터진 경악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출력이···!?”
“출력이 왜?”
“믿기지 않습니다. 적함 추진속도 계측! 분명 크기나 외형은 가란드 급인데, 출력은 준대형인 가루다 급에 가깝습니다.”
“뭐라고!?”
함장은 크게 놀라 숨을 삼켰다. 너무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놈들이 고작 가란드 급에다가 가루다 급의 제네레이터를 탑재했다는 건가, 지금?
‘설마, 놈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서······?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하지만 더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들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가란드 급, 본 함을 향해 급속도로 가속해 옵니다. 이대론 충돌합니다!”
“이런!”
함장은 거듭된 보고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선제공격으로 이득을 본 상황에서 함체를 가속시켜 충돌하겠다고? 무슨 특공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주 단단히 작정한 건지, 가란드 급 전함의 선체 전면이 변형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뾰족한 막대 같은 것이 치솟았다. 그것은 바로 충각(衝角.Ram)이었다.
그리고 충각 위로 선명한 빛 에너지가 형성되었다.
“빔 램(Beam Ram) 포착. 적함은 지금 본 함을 꿰뚫을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함장은 깨달았다. 놈들은 아예 작정하고 가란드 급을 개조시켜서 프라이스 호를 노린 특공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지금 현재 취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은 몇 가지 없었다.
제네레이터의 출력이 저하된 이상 피하는 건 어려웠고, 이미 데미지를 입은 디스토션 필드로도 막을 수 없는 상태.
그렇다면 충돌 전에 먼저 적을 소멸시킬 수밖에.
“어서 격추시켜! 충돌하기 전에 주포로 날려버려!”
명령이 떨어지자, 화기관제 담당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늦었습니다! 너무 가까운데다가 빨라서 시스템의 자동화기 관제가 따라가질 못합니다.”
갖가지 종류의 포화가 가란드 급을 노리고 쏘아졌지만, 이미 엄청난 가속력이 붙은 상태.
조금이라도 거리가 떨어졌다면, 조준할 시간이라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가까우면 격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분에, 적함의 상당 부분이 포화 속에서 조금씩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가란드 급의 핵심 중추는 큰 데미지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속도를 붙여오고 있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지척에 이른 적함.
오퍼레이터가 비명처럼 외쳤다.
“이대로 충돌합니다!”
“디스토션 필드 현재 출력에서 최대치로 전개. 충돌 부분에만 최대한 집중시켜!”
과연 현재 제네레이터의 출력으로 얼마나 강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크!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함장의 경고가 함 전체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렬한 굉음! 그것이 프라이스 호를 격렬하게 떨게 만들었다.
쿠아아앙!
좀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충격에 메인 브릿지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리고 충격이 지난 뒤, 함장이 시급히 물었다.
“어떻게 됐나?”
“데미지 심각. 좀 전에 직격 당했던 부분을 관통 당했습니다.”
“젠장!”
역시 놈들이 계획적으로 벌인 짓이었다. 기습적인 주포 공격으로 필드와 외벽을 뚫은 뒤, 그곳으로 특공을 감행하다니.
이건 애당초 철저히 작전을 짠 게 아니라면 이런 정교한 시도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항행은 가능하지만, 전투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적함은.”
“현재 본 함의 좌측면에 깊게 박혀있는 상태입니다. 특공 때문에 적함의 제네레이터도 정지된 건지, 유폭될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기어들을 내보내. 빨리 저 거슬리는 적함을 본 함에서 떼어내라고.”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조치하는 오퍼레이터를 바라보면서 함장은 불길함을 느꼈다.
인베이더 놈들도 고작 이 정도 피해를 주려고 특공작전을 시작한 것은 아닐 터. 뭔가 다른 꿍꿍이속이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짐작을 확신이라도 시켜주듯, 곧 경고음이 또다시 울려퍼졌다.
위이잉!
“뭐냐 또?”
“저··· 적입니다! 본 함에 적이 침투했습니다.”
“뭐, 적!? 어디서?”
“본 함을 뚫고 들어온 가란드 급에 잔존해 잇던 적들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타입은?”
함장은 침착하게 물었다. 적함이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닌 이상, 적이 침투하는 경우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양산 급 98기. 침공 급 6기. 그리고···”
말을 잇던 오퍼레이터가 일순 굳어져 버렸다. 뭔가에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가 이내 목이 메는 듯한 어조로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지··· 진멸 급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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