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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화 (20/448)

1권-19화

교육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이론과 상식뿐만 아니라 실습교육도 같이 진행되었다.

실습교육의 주 내용은 고유스킬, 즉 각자가 각성한 이능의 기초 제어였다.

이능은 다르게는 초상능력이라고도 불리며, 사람마다 그 특성이 같지 않고 매우 다양했다. 그렇지만 이능은 강력하면서도 편리하지만, 그만큼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 자칫 제어에 실패해 폭주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사용자를 해치는 흉기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능을 각성한 이후에는 철저한 집중교육이 필요했다.

지금도 다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이능제어 연습에 전념하고 있었다.

“오오옷!”

“타올라라!”

여기저기서 발동되는 다양한 이능들.

하지만 아직은 다들 미약한 수준이었다. 촛불보다 조금 큰 불을 일으키거나, 혹은 작은 물체를 허공에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앞으로 꾸준히 정진하면서 몇 번 실전을 겪다보면 실력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열띤 학습 장소에서 남들과 달리 홀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클레브가 이진운을 힐끔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따로 훈련 안하십니까?”

“훈련? 무슨 훈련? 검술 말이냐?”

“그게 아니라 각성이능 말입니다. 시스템에선 고유 스킬이라고 되어 있을 텐데요.”

“아아, 고유 스킬.”

이진운은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체화스킬이 어떤 행동을 반복 훈련하면서 얻는 후천적인 것이라면, 고유 스킬은 타고난 영적 재능. 지금 지구인들이 강화병들을 교관 삼아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이능이 바로 고유스킬인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지금이 훈련시간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 것도 안하시니 무슨 일이 있나 해서요.”

그 말에 이진운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클레브가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긴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넌 이 스승더러 농땡이 피우지 마라··· 이 소리가 하고 싶은 거냐?”

아주 낮게 깔리는 목소리.

거기서 위기감을 느낀 크레브가 황급히 둘러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다들 훈련하고 있는데, 스승님만 안 하고 있으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드린 말입니다.”

듣고 보니 클레브의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신만 아무런 연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길 만도 했다.

이진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무슨 소린지는 알겠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못한다니요? 고유스킬에 무슨 문제라도?”

“그래, 문제가 생겼지.”

가볍게 한숨을 내쉰 이진운은 클레브에게 숨겨온 사실을 밝혔다.

“난 현재 내 고유스킬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다.”

“모른다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고유스킬은 모든 사람이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재능에 따라 여러 개를 한꺼번에 각성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아예 한 가지도 없을 수는 없어요.”

그랬다.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유스킬이라는 건 각자가 타고난 영적 재능.

그렇기에 재능에 따라 더 강력한 이능을 각성할 수 있고, 다수의 고유스킬을 각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고유스킬을 타고나지 못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유스킬이 없다는 게 아니야. 스킬 자체가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어서 알아먹을 수 없다는 게 문제지.”

“물음표요? 허어···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클레브도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도 견식이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고유스킬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경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만일 이전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면 아르탈 행성연합 전체에 진작 알려지고도 남았을 터.

그 말은 이진운의 고유스킬 문제는 전례가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오히려 내가 더 묻고 싶은 심정이다. 시스템이란 것도 여기 와서 처음 접해본 것인데 내가 알 턱이 있나. 레벨업 불가에 이번에는 고유스킬 불명이라. 아무튼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

이진운은 그렇게 푸념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만일 자신이 무공을 알지 못했더라면 입장이 제법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고유스킬이 없다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데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 이능 훈련은 못 하시겠군요. 그럼 검술 훈련이라도 하시는 게 어떨까요?”

검술 훈련으로 대신하자는 그 말에 이진운은 쓸데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훈련? 이 스승은 지금도 훈련 중이시란다.”

“훈련 중이라고요? 내가 보기엔 그냥 가만히 서 계시기만 하는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클레브. 이진운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네가 그걸 알아볼 수준이 됐다면 내게 배울 필요도 없었겠지.”

“그럼 제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겁니까?”

“열양공에 대해 배웠으니 운공이 뭔지 알고 있지?”

“예.”

“난 일상생활 중에도 운공상태를 항시 유지하고 있다. 밥 먹고 쉴 때도, 움직일 때도, 그리고 잘 때도 이 상태를 계속 유지 중이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말도 안 됩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도 힘든데, 계속 운공상태를 유지 중이라고요?”

설명을 들은 클레브는 크게 기함했다. 요 며칠간 가르침을 받으면서 무공에 대한 기초 지식을 겉핥기나마 알게 된 상태.

평상시처럼 움직이면서 운공을 유지한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 클레브에게 이진운은 조금 이르지만 그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 언제 무엇을 하든 의념을 항시 단전에 두고 행동해. 진기의 흐름이 원전부단(圓轉不斷)하게 이루어진다면 운공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정말 쉽지 않겠군요.”

과연 그게 자신에게 가능하긴 한 것일까? 클레브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까마득해 보여 저도 모르게 한숨짓고 말았다.

“그래, 언제나 운공을 염두에 둬야 하는 만큼 쉽지 않지. 하지만 어느 정도 숙달되면 진기는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너의 의념 중 일부는 언제나 단전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이진운도 그런 방식으로 열양공을 운용하여 내공의 최대치를 조금씩 불려나가고 있었다. 30년 내공이 결코 적은 건 아니지만, 그가 가진 깨달음의 수준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문제는 효율이 그다지 안 좋다는 거지.’

운공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제대로 자리 잡고 하는 좌공보다는 훨씬 못했다. 게다가 열양공은 점창의 기초 심공이라서, 진기의 축적도 더딘 편이었다.

그나마 열양공의 장점은 기초적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전신 혈도와 경락을 개척하고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이진운의 내부는 열양공을 통해 내기를 축적하며 전신의 혈맥을 단단히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전생에 비한다면 진척이 꽤 빠른 편이지.’

아마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기초를 다지면 그 다음 단계인 현천진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쾅!

그때였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훈련장 중앙에 비치해 두었던 10mm 두께의 금속판이 단숨에 우그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전신이 근육으로 뭉친 것 같은 건장한 30대 중반의 사내. 그의 전신에서는 전류의 불꽃이 연이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파직! 파지지직!

“미친! 몸통 박치기로 저걸 뭉개버려?”

“이능을 각성한 건 우리와 똑같은데, 완전 괴물이네.”

주변에 있던 지구인이 경악성을 내뱉었다.

자신들이 발휘하는 이능은 그저 신기한 눈요기 수준에 불과할 뿐인데, 저 사내는 이미 실제로 초인적인 능력을 선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마틴이다!”

“고유스킬을 두 개나 각성했다고 하더니 위력이 완전 미쳤네, 미쳤어.”

마틴이라 불린 사내와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에게 마틴이라 불린 사내의 정식 이름은 마티아스 로우슈벨라. 러시아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남들과 달리 신체를 강화하는 강체력과 발전능력 두 가지를 각성함으로서, 보기 드문 듀얼 스킬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이능을 제어하고 다루는 자들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적어도 이류 수준은 되겠군.’

그 광경을 지켜본 이진운은 마틴이란 사내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다. 두 가지 이능은 크게 대단할 것 없었지만, 그 둘을 같이 활용하니 위력이 상당한 편이었다.

게다가 신체 활용능력도 제법 괜찮았다. 움직임 자체는 투박했지만 특수부대에서 사용할 법한 무술까지 체득해서인지 실전적으로 보였다.

현재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지구인 출신 중에서는 손꼽는 수준일 것이다.

이진운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벌써부터 파벌이 생기고 있나?”

“예, 슬슬 지구인 무리 중에서도 파벌이 생겨나고 있더군요. 그거야 예전 기수에도 그랬지만요.”

클레브의 대답에 이진운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사람은 셋 만 모여도 파벌이 생기는 법이지.”

그렇지만 좋게만 보이진 않았다. 파벌을 형성해 단합하는 건 좋지만, 그렇게 뭉친 집단이 소수의 무리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클레브도 그 점을 우려했다.

“하지만 별로 좋은 일은 아닙니다. 파벌이란 게 다 나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악만 끼치더군요.”

무력이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집단이 형성되면,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런 경우 약자는 노예나 다름없는 최하층계급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파벌은 여럿 존재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세력이 큰 것은 마틴의 파벌. 그를 중심으로 뭉친 인원만 해도 무려 500명이 넘었다. 같은 장소에 소환되었던 지구인의 수가 대충 1500명 남짓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려 1/3이나 되는 숫자였다.

그래서일까? 리더인 마틴의 두 눈에는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이 넘쳐흘렀다. 녀석도 이진운의 시선을 눈치 챈 건지, 이쪽을 향해 눈길을 주고 있었다.

마틴은 곧 이진운을 향해 입가 위로 조소를 떠올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자신 있으면 언제든 덤벼 보라는 가벼운 도발이었다.

“저 건방진 놈이!

그것을 포착한 클레브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제아무리 듀얼 스킬 각성자라 해도 이제 겨우 이능을 각성한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그런 녀석이 감히 자신의 스승을 비웃는다고?

“저런 애들 장난 같은 도발에 괜히 열 내지 마라.”

“하지만···”

“웃을 가치도 없는 일이다.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려.”

클레브를 그렇게 만류한 이진운은 마틴의 속셈을 깨닫고는 내심 실소를 지었다.

놈이 이렇듯 자신을 도발하는 것은 아마 소환됐을 적에 크게 주목받았던 일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6급의 체화스킬을 터득했으니, 무슨 경쟁심이라도 생긴 거겠지.

‘속보이는군. 나를 상대해 이겨서 사람들에게 확실히 힘을 보여준 뒤 파벌을 확대하겠다는 건데.’

그렇지만 이진운이 볼 때, 마틴이나 파벌을 주도하는 지구인들의 레벨은 말 그대로 하찮은 수준이었다. 지금 현재는 다른 이들보다는 제법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그래봐야 도토리 키 재기 수준. 아직은 좀 더 두고 보는 게 좋겠지.”

일단 파벌 문제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아직 실전도 치르지 못한 지금, 파벌이든 뭐든 지구인들이 뭉칠 필요가 있었다.

‘다만 하는 짓이 도를 넘어서면 그때는 손을 써야겠지.’

이진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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