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8화 (19/448)

1권-18화

웰라우드 류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이진운의 그 말에, 아리엔은 크게 놀란 나머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 웰라우드 가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있는 비밀이었다.

내부인도 아는 자가 별로 없는데, 심지어 그냥 외부인도 아니고 이제 막 지구에서 소환된 자가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그녀는 곧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추궁하였다.

“대체··· 그 사실을 어디서 들었죠, 당신?”

“듣기는. 내 눈으로 보고 알았다. 클레브와 비무하면서 말이야. 그때 알게 되었지.”

“아니, 그 말을 저보고 믿으란 말인가요, 지금?”

아리엔에게는 너무도 황당무계한 소리였다. 비무 때 딱 한 번 경험해본 무예의 문제점을 꿰뚫어 본다고?

“믿기 힘든 소리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내 눈엔 분명히 보인다. 그 검술에 뭐가 문제인지, 그리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아리엔이 빤히 노려보자 이진운이 멋쩍은 표정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말 하면 자화자찬 같아서 재수 없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좀 천재라서 말이지. 그냥 보면 다 알 수가 있어.”

“······.”

아리엔과 클레브는 일순 할 말을 잃고 이진운을 쳐다보았다.

설마 자기 입으로 대놓고 천재라고 할 줄이야.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이진운도 그렇게까지 뻔뻔하진 못했던지, 두 사람의 집중된 시선에 머쓱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눈으로 계속 쳐다보면 나도 좀 쑥스러운데.”

잠시 한숨을 내쉰 아리엔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다 치지요.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요? 천재라고 저한테 자랑이라도 할 생각으로 꺼낸 말은 아니실 테고···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이유라. 정확히 말하자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안이라고요?”

이진운의 영문 모를 소리에 저도 모르게 되묻는 아리엔. 이진운이 돌연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너희 웰라우드 가와 한 가지를 두고 거래를 하고 싶다.”

“거래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거래를 언급해오는 이진운의 모습에 아리엔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대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뒤이어 튀어나온 그의 제안은 아리엔을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웰라우드 가가 내게 전심전력으로 협력한다고 약조한다면, 나도 너희들이 잃어버린 무예를 다시 원상태로 복원시켜주지. 그게 내 제안이다.”

“뭐, 뭐라고요!?”

처음에는 뭔가 잘못들은 게 아닌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만큼 그가 해온 제안이 아리엔에겐 충격적이어서였다.

웰라우드 류가 지금처럼 몰락하게 된 것은 인베이더와의 대전쟁 속에서 상위 등급의 전승자들이 한 자리에서 몰살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검술의 핵심 운용법 일부가 실전되었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걸 이진운이 해주겠다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새하얗게 변했던 아리엔의 머릿속도 조금 진정되었다.

‘복원이라고? 아니야. 그런 게 정말로 가능할 리가 없어. 우리 무가의 사람들이 백년 넘는 시간동안 매달려 왔는데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는데, 일개 개인의 능력으로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성을 되찾은 아리엔이 이진운을 차가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이진운 씨. 허튼 소리 그만 하세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제안이라고 하시는 건가요, 지금?”

“허튼 소리? 어째서 허튼 소리라고 생각하는 거지?”

“복원이라고요 그 말을 어떻게 믿죠? 전 당신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이제 막 영능을 각성한 지구 출신의 소환자. 영능에 대한 기초적인 기반지식도 거의 없는 사람에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하하하. 맞아.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겠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논리 정연한 그녀의 반박에 이진운은 크게 웃고 말았다. 자신의 제안을 거짓말 취급하는 것은 못마땅했지만, 받아들이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웃음을 멈춘 뒤, 이진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난 분명히 말했다. 내가 천재여서라고.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 천재.”

상식이란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었다.

석기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몇 번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어왔었고, 그때마다 기존의 상식이란 것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다수의 범인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든 사람이 다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정 못 믿겠다면 이 자리에서 직접 보여주지.”

그렇게 내뱉은 이진운은 자신의 오른 손을 곧게 펴 수도(手刀)로 만들었다. 당장 손에 검이 없으니 손을 칼날처럼 세워 대신할 생각이었다.

그의 수도가 머리 위로 높이 들린 순간, 아리엔은 뭔가가 등골을 타고 오르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목덜미에 검날이 들이밀어진 듯한 위기감이었다.

“자, 두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이것이 바로 너희들이 잃어버린 웰라우드 류의 진면목이다.”

그의 수도가 아리엔의 정수리를 향해 천천히 내리그어졌다.

빠르지도 않은 맨손 동작이었지만, 그 순간 무시무시한 중압과 기세가 그녀를 짓눌러오고 있었다.

우우우웅!

웰라우드 류

위진(危振)

‘이건 설마······!?’

아리엔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진운이 보여준 이 한수의 정체를!

검 대신 수도로 펼쳐서 미처 몰랐는데, 온 몸을 압박해오는 막강한 무게감을 겪고서야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진운을 상대로 클레브가 선보였던 웰라우드의 검식 중 하나인 위진.

하지만 그때하고는 차원부터가 달랐다. 이건 아예 다른 검식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 의심은 곧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녀도 언젠가 본가의 서고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실전되기 전의 진짜 위진이 어떤 모습의 검식이었는지를.

이름 모를 그 서적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었다.

[한 번 휘둘러지면 대기를 떨게 만드는 검압이 일어나나니, 심령마저 짓누르는 검세 앞에 노출되면 피할 길이 없도다.]

그 이후, 그녀가 상상 속에서나 그려봤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모습이 지금 이진운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안 돼! 피할 수가 없어!’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에 짓눌리기라도 한 듯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책에 적혀 있던 내용 그대로였다.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아리엔은 모든 영력을 끌어올려 움직여 보려 했지만, 몸은 석상처럼 굳어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머리 위로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수도의 일격. 그것이 끝까지 궤적을 그리게 된다면, 자신의 머리는 두 쪽으로 쪼개져 즉사하게 될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점점 다가오던 수도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정확히는 아리엔의 정수리로부터 불과 한 뼘 남짓한 간격을 남겨둔 지점에서였다.

푸하학!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단지 수도를 묵직하게 내리 그은 것만으로 발생한 검압의 힘이 막대한 바람을 일으켰던 것이다. 만일 그가 멈추지 않았더라면 검압은 그냥 바람 수준이 아니라 위맹한 경력이 되어 아리엔의 육신을 뭉개버렸을 것이다.

아리엔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멈춘 수도를 넋 나간 듯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클레브도 마찬가지였다.

수도의 일격을 멈춰 세운 이진운은 그들 둘에게 나직이 고했다.

“이게 너희들이 잃어버린 진짜 위진이다. 단순히 강하게 내리쳐 베는 검식이 아니라, 자신의 심기를 가중시켜서 상대를 위압하는 기세지도의 검이지.”

“이게··· 위진······?”

직접 겪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자신들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검식의 진체가 이렇게 강력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잃어버린 핵심 운용법을 이진운이 복원했다는 사실도.

하지만 뭐라 더 말할 새도 없이 아리엔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다리의 힘이 풀려서였다.

“어어? 다리가······.”

당황해하는 아리엔에게 이진운이 걱정할 것 없다며 말했다.

“지금 한 수로 내기가 진탕되었다. 다리가 풀리는 것도 당연하지.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질 테니 염려 안 해도 된다.”

이진운이 도중에 멈췄다곤 하지만, 수도에 실린 경력은 진짜였다. 멈춘 뒤에 흘러나간 후경(後勁)에 의해 골이 살짝 흔들리고 내기가 진탕되었으니 다리가 풀릴 수밖에.

주저앉은 채로 잠시 멍하니 있던 아리엔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정말이었군요. 복원할 수 있다는 게.”

“그래, 정말이다. 지금 복원한 것은 위진 하나뿐이지만, 시간만 있다면 더 못할 것도 없지.”

자신만만한 그 대답에 아리엔은 새삼스런 눈으로 이진운을 쳐다보았다.

이 세상에 상식을 뒤엎는 천재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 봤지만, 직접 보고 나니 놀라울 뿐이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지? 이만하면 거래 대상으로는 충분 하다고 보는데.”

이진운의 물음에 아리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본가에 연락은 해 보겠어요. 저한테 결정 권한이 없어서요. 그렇지만 제 생각으로는 본가에서도 제안에 긍정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당장은 어렵겠지?”

“지금은 연락조차 불가능 하니까요. 아르탈 행성에 도착한 다음에나 되겠죠.”

현재 그들이 타고 있는 전함은 초광속 항행을 넘어 워프 단계에 접어들었다. 초시공간 영역으로 접어든 상태에서는 일절 외부와의 통신이 불가능했다.

“그럼 그때까지는 일단 복원이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야겠군.”

이진운은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설마 통신이 불가능할 줄은 미처 생각 못해서였다.

“아무튼 복원은 그때까지 끝내놓고 있을 테니까. 내 제안이나 잘 생각해 봐.”

이진운은 그렇게 말하고선 아리엔을 남겨놓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곧 지구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이진운은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클레브가 자신을 경악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이 스승님이 그렇게 위대해 보이냐?”

“스승님··· 정말 인간 맞습니까? 실전된 무예 복원을 무슨 즉석요리 만들듯이 하냐고요?”

“이 자식이, 하늘같은 스승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졸지에 제자로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이진운은 클레브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고 말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