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08화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게 무슨 헛소리야, 지금! 우리가 이곳에 끌려와서 가장 이득을 보는 게 당신들이잖아!”
“우릴 소모품으로 전쟁에 내몰 생각이었으면서, 그딴 소리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냐?”
여기저기서 성난 목소리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신변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는 판국에, 정작 자신들을 소환한 걸로 짐작되는 자들이 이를 부정하고 있으니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오해였다. 아리엔은 무거운 표정으로 화답해주었다.
“믿기 힘든 건 알겠지만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소환한 것은 저희들의 뜻이 아닙니다. 바로 시스템이죠.”
“시스템?”
“예, 전 우주를 아우르는 초월적인 개념입니다.”
이것이 대체 언제 생겨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주 까마득한 옛적부터 존재해왔으며, 침략의 위기에 처한 곳에는 언제나 이 시스템의 존재가 나타났다.
시스템의 정식 명칭은 [초월자양성시스템 오로라베이스].
침략의 위기에 놓였던 수많은 행성의 지성체들은 시스템을 접한 후 영능을 각성하여 싸울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미 영능을 깨우쳤던 자들은 직관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의 도움으로 보다 높은 경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체는 지금 이곳으로 소환된 모든 지구인들의 눈앞에 현실로 드러났다.
띠링!
[지구에서 소환되신 여러분은 영능력자로 각성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영능을 갈고닦아 우주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인베이더에게 대적해야 합니다. 본 시스템 오로라베이스는 여러분들을 지원합니다.]
“뭐야, 이게!?”
“갑자기 내 눈앞에 이상한 글씨가 떠올랐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그래!”
“서··· 설마, 증강현실!? 대체 뭐야, 이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두 눈을 비비기까지 했다.
텅 빈 허공에 나타난 홀로그램 메시지.
혼란해하는 그들에게, 아리엔이 그 정체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여러분들이 지금 보시고 계신 것이 바로 시스템의 실체입니다.”
“이게 그 시스템이라고?”
“무슨 게임 스테이터스 창 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당황스러워 하였다. 서브컬처에서나 볼법한 일이 현실로 벌어지다니··· 그럼 지금까지 들은 말이 다 사실이란 말인가?
하지만 눈앞의 결과를 보고서도 여전히 불신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냥 눈속임 아니야? 당신들 세상의 과학 수준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이런 홀로그램 창 정도는 간단할 거 아니야! 아니, 홀로그램이 아니라 망막투영인가?”
“속임수가 아니에요. 여러분들도 지금은 분명 느끼고 있을 텐데요. 주변에 가득 차 있는 영자의 존재를.”
처음엔 그냥 기묘한 이질감 정도로 치부했던 사람들은 아리엔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는 무형질, 무실체의 힘을! 그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감각이었다.
무의식적으로만 느꼈던 영력의 존재를 아리엔의 지적을 듣고서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 정말이다! 뭔가가 느껴져!”
“그냥 기분이 묘하게 이상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왓! 진짜야! 이것 봐. 지금 내 손에서 불꽃이 일어났다고.”
영력을 감지한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그 중 일부는 실제 영능을 발현해 보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그 수준은 보잘 것 없는 정도였지만, 이제 막 영능을 각성한 자가 별다른 교육과 훈련 없이 이능을 발현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현상은 마찬가지로 이진운에게도 찾아왔다.
[이진운님께서 영능을 각성하셨습니다.]
‘시스템이라고? 설마 이런 말도 안되는 게 존재할 줄이야.’
이진운은 지금 보고 느끼고 있는 이것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영능에 대해 무지했던 자들이,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현실적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진운의 체내에서는 점창의 신공절학으로도 불가능했던 기의 운용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진기가··· 진기가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렇게나 노력해도 되지 않던 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계기로 가능해 지다니.’
사실 이전에도 기감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반선지경 초입까지 넘봤던 그는 외부의 기운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외가기공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다루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언가에 금제라도 된 듯 진기를 축적시켜 운용하는 것만큼은 절대 불가능했는데, 지금은 단전을 시작으로 전신의 혈도와 경맥을 타고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움직일 조짐도 보이지 않던 내공심법이 드디어 정상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환생 이후로 처음 겪는 진기의 순환에 가늘게 떨며 전율했다.
‘이게 시스템의 힘이란 건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막혀버렸던 내가공부가 이런 식으로 가능해지다니. 대체 시스템이란 것의 정체가 뭐지?’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현재 그의 체내를 휘도는 진기의 양은 대략 30년 남짓. 지난 20년간 내가무공을 익히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하면서 축적된 것이었다.
그동안 체내 깊은 곳에 조용히 잠재되어 있었지만, 시스템에 의해 한꺼번에 촉발되면서 이만한 양이 되었을 것이다.
무려 천년내공을 가졌던 전생에 비한다면 별 것 아니겠지만, 그동안 외공 하나로 버텨왔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호신 정도는 가능하겠군. 인베이더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점창파의 기본심공인 열양공을 운용하자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타고 휘돌았다. 그 양은 고작 반 갑자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다루는 게 이진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부족한 내공을 보완할만한 대안도 나름 갖고 있었다.
그는 신기해하며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이진운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그곳에 직관적인 형태로 적혀 있었다.
*Status*
상태 : Loading······.
-아이디 : 이진운
-레벨 : 1 -클래스 : 없음
-타이틀 : 없음 -상태 : 정상
-소속 : 없음 -성향 : 중립 ? 중용
-근력 : 164 -체력&회복력 : 173
-순발력&명중률 : 172 -내구도 : 199
-민첩성 : 125 -정신력&영력회복력 : 451
-항마력 : 122 -영력 : 30년
-스테이터스 포인트 : 없음
-업적 포인트 : 0p
‘허··· 이건 완전 게임 그 자체군. 내 능력이 이런 식으로 표기되다니. 레벨이란 게 오르면 정말 게임처럼 능력이 상승되기라도 하는 건가?’
헌데 그때였다. 멀쩡하던 시스템 창이 돌연 붉게 물들었다.
[긴급!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이진운님께 시스템을 올바로 적용시킬 수가 없습니다.]
“뭐?”
당황해하는 그의 눈앞에 새로운 내용이 떠올랐다.
[경험치 축적에 의한 레벨 업이 불가능해집니다.]
*Status*
상태 :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아이디 : 이진운
-레벨 : 1 -클래스 : 없음
-타이틀 : 없음 -상태 : 정상
-소속 : 없음 -성향 : 중립 ? 중용
-근력 : 164 -체력&회복력 : 173
-순발력&명중률 : 172 -내구도 : 199
-민첩성 : 125 -정신력&영력회복력 : 451
-항마력 : 122 -영력 : 30년
-스테이터스 포인트 : 없음
-업적 포인트 : 0p
“느닷없이 오류라니, 이건 또 뭐야?”
이진운의 얼굴이 팍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적용된 시스템이란 것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상태 표시는 여전히 되는데, 레벨 업이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다는 건가?’
그건 곤란했다. 지금 현재 그가 달성한 신체적 능력과 30년 내공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최저 기준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이진운이 아리엔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자,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히 그에게 집중되었다.
“무슨 일이죠?”
“지금 시스템인가 뭔가 하는 것에 오류라는 게 떴다. 왜 이런 거지?”
“오류라고요?”
이진운의 말에 아리엔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시스템에 오류라니.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방금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다고 나왔다. 이런 경우도 있나?”
“그럴 리가요. 시스템에 오류라니요! 한번 제게 보여주시겠어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아리엔. 그녀가 이진운에게 시스템 창의 열람을 요구해왔다.
“보여준다고?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개인의 시스템 창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게 맞아요. 하지만 당사자가 보여주겠다는 의사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주는 게 가능하죠.”
“그래?”
방법을 듣자마자 이진운은 즉시 자신의 시스템 창을 보여주었다.
“레벨 업 불가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난 아리엔은 혼란스런 낯빛으로 신음했다. 그녀가 알기로 이런 경우는 아르탈 행성 연합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법이 없나?”
이진운이 해결책을 물었지만, 아리엔도 별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저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시스템에 간섭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어요.”
“······.”
“일단 상부에 문의는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답변이 어찌 내려올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나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아리엔. 하지만 마땅한 방도가 없다고 하는데,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진운은 쓰게 웃고 말았다.
“뭐,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어차피 시스템이란 수상쩍은 것에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무공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무공의 경지를 전생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는 혹시나 싶어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점창파의 기본 심공인 열양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체내를 휘도는 진기가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축기가 이루어졌다.
‘미미하지만 내공은 분명 축적되고 있어. 굳이 레벨 업이 아니더라도 성장 자체가 완전히 막힌 건 아니란 건데··· 그렇다면 오류로 레벨 업이 막혔다는 소린 게임 방식의 성장만 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이진운의 얼굴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눈치를 보아하니 주변 사람들은 별 탈이 없는 모양인데, 자신만 시스템 오류로 불이익 받는 것 같아서였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어차피 이런 미심쩍은 것에 의존할 생각도 없었다.’
전생의 경지만 다시 되찾으면 시스템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게임처럼 레벨 업을 할 수 있다면 그 기간을 꽤나 단축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이미 한번 걸었던 길을 다시 되짚어가는 건 쉬운 일이니까.
헌데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떠오른 시스템 창의 메시지.
[체화스킬. 열양공(熱陽功)(6급)을 체득하셨습니다.]
“어?”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가볍게 운용했을 뿐인 열양공이 시스템에 스킬이란 형태로 등록될 줄이야.
그는 조금 기막혀하며 중얼거렸다.
“난데없이 스킬이라니··· 정말로 게임과 다를 게 없다는 건가.”
반면 옆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아리엔은 깜짝 놀라며 부르짖었다.
“맙소사, 각성하자마자 6급 체화스킬을!? 말도 안 돼!”
“뭐? 6급 체화스킬?”
“영능을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게 정말이야?”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지구 출신 사람들은 그게 뭐가 대단한 건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지만, 아르탈 행성연합 출신들은 아니었다.
“그 체화스킬, 대체 어디서 배운 거죠?”
“일종의 전통무예야. 오래 전부터 일인전승으로 겨우 이어져왔는데, 내가 이번 대의 계승자지.”
이진운은 일단 그렇게 둘러대었다. 자신이 전생의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굳이 밝힐 이유가 없어서였다. 괜히 이야기해봤자 상황만 복잡해질 뿐이다.
“그럴 리가요. 영능이 금지된 지구에 체화스킬로 등록될만한 수준의 무예가 남아있을 리가······.”
아리엔이 불가사의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눈앞에 명백한 결과가 나타나 있는데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로서 상부에 보고해야 할 사안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지구의 영능이 금지되었다고? 역시 그랬군.’
이진운도 나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에서 지구의 영능만 금지된 것일까?
의문이 일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궁금해 할 때가 아니다.
지구로 되돌아갈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도를 궁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은 수련부터 해야겠군. 전생 시절의 경지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되찾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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