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07화
“그···그런데 지금 그건 뭐요? 그 인간 같지 않은 힘은······?”
“영능이란 겁니다. 다른 말로 이능력, 혹은 초상능력이라고도 하지요. 여러분의 세계인 지구에선 이능이란 개념이 실존하지 않았겠지만, 이곳에서는 이런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게 가능합니다. 영력이란 보이지 않는 힘을 다뤄서 말이죠. 제가 보여드린 것처럼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담담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대답해주는 아리엔.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경악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이런 게 실제로 가능하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군.”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곳에 불려오게 된 것도 바로 이 영능 때문이기도 하죠.”
“그게 무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영능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온 자신들이 대관절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이곳으로 불려왔다는 소린가?
“여기 계신 분들은 특별히 선별되어 오셨습니다. 수많은 지구인들 중에서도 영능에 대해 매우 특출한 자질을 타고나신 게 그 이유지요.”
“뭐라고?”
“우리가 여기 강제로 끌려온 게 그런 이유였다고?”
뒤이은 아리엔의 첨언에 모든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영능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떤 힘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판국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보여준 결과물로 본다면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인 모양인데, 그것에 대해 자질이 있단 이유로 자신들을 이곳으로 강제로 불러들였다고? 대체 무슨 목적으로?
“우리가 여기 끌려온 게 가진 영능의 재능 때문이라고? 그럼 너흰 앞으로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설마 실험체로 삼으려고······?”
“그런 야만스런 짓을 할 생각은 없으니 쓸데없는 억측은 접어두시는 게 좋겠군요.”
누군가가 던진 섣부른 추측에 대해, 아리엔은 그 말을 중도에 딱 자르며 부정해버렸다.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곤 말했다.
“좋아요. 일단 오해가 없도록 간단히 설명부터 해 드리죠.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영능이란 것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다루게 될 겁니다. 그리고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배운 힘으로 위험천만한 전선에 나가 싸우게 될 거예요. 물론 각자의 특기나 개성에 따라 최전선이나 아니면 후방지원 혹은 생산직으로 나뉘겠지만요.”
“뭐··· 뭐야, 전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전선이라면 전쟁터를 말하는 거 아냐?”
“세상에··· 그럼 우린 병력을 충당하기 위해서였어!?”
“미쳤어! 이 새끼들이 누구 맘대로 우릴 전쟁터로 끌고 가? 네놈들 뜻대로 고분고분 따라줄 것 같아?”
다시 아우성치는 사람들.
하긴 무리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지구인들 중 전쟁을 경험해 본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여태껏 평화롭게 살던 사람을 난데없이 납치해와 전쟁터에 내던지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소란스러워지자 아리엔이 다시 진화에 나섰다. 그녀가 일보를 내딛는 순간, 떠나갈 듯한 굉음이 장내를 강타한 것이다.
바로 진각이었다.
콰앙!
“우웃!”
“뭐야, 이 소린!”
소란스럽던 사람들의 시선이 굉음이 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말도 안 돼.”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발 구름이라고?”
엄청난 위력이었다. 파고든 깊이만 무려 10cm였고, 직경만 해도 50cm에 가까웠다. 심지어 평범한 지표면도 아니고 단단한 금속제 바닥을 이토록 내려앉게 만들다니.
진각의 흔적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 제 설명이 끝날 때까지 좀 조용히들 하세요. 갑자기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서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 상관없는 전쟁이 아니에요. 지구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지구와도?”
“그럴 리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의 전쟁에 끌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며 반신반의했다.
“일단 이번 일에 대한 간단한 배경설명부터 하죠. 우리 아르탈 행성 연합은 이름 그대로 아르탈 행성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행성들의 연합체입니다. 이 일대 우주에서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상당한 거대 세력이죠. 아마 지구에서 오신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냥 그렇다고만 알아두세요. 나중에 보다 자세하게 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한 사람이 조용히 손을 들어보였다. 남들과 다르게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백발의 노과학자. 그의 가슴 부분에는 지구 출신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NASA라는 소속명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한 가지만 묻겠네. 아르탈 행성연합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설마 지구가 속한 은하계하고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나?”
그 물음에 아리엔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그렇진 않아요. 같은 은하에 속해 있죠. 그런데 위치라. 우리 연합에서 지정한 공용좌표방식을 모르니 이야기 해줘봐야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아, 그래! 우리 연합의 행성들 중 지구의 태양계에 가장 인접한 행성이 대충 300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생각보다 꽤 가까운 편이죠?”
“그럴 리가. 그렇다면 아르탈 행성연합의 역사는 얼마나 되나?”
“지금 같은 연합의 형태를 띤 것은 대략 1000년 정도 됐다고 보면 됩니다.”
아르탈 행성연합이 300광년 떨어져 있다면,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300년 전의 모습일 것이다.
“1000년이라. 이해할 수가 없어. 그 정도 거리라면 우리 지구인들이 가진 관측 장비로 당신들의 존재를 발견 못했을 리가 없는데.”
더더욱 의문이었다. 지구의 우주과학자들은 달에 진출한 이후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를 끊임없이 관측해오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만한 유의미한 성과는 걷지 못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물이 풍부한 행성은 여러 차례 발견되었지만, 실제로 문명의 흔적을 찾아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리엔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실소하며 말했다.
“아직 태양계도 벗어나지 못하는 지구의 과학력으로요?”
“······.”
일순 할 말을 잃은 노과학자. 그만큼 상대의 말이 통렬했던 것이다.
“저희 아르탈 행성 연합은 범우주적인 규약에 따라 수준 이하의 문명레벨을 가진 행성의 지성체들에게 관측되지 않도록 각종 수단을 동원해 철저히 존재를 은닉하고 있어요. 하물며 우주진출도 채 이루지 못한 지구권 문명이 저희를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죠.”
“그··· 그렇군.”
노과학자는 결국 어렵게 수긍하고 말았다. 하긴 수많은 행성들이 거대한 연합체를 이룰 정도라면 문명의 수준이 어떠할지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우리라.
지구의 문명도 나름 상당하다고 자부해왔는데, 지금 그 모든 것을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구보다 월등한 문명을 갖고 있다 해서 그렇게 상황이 좋은 건 아니랍니다. 저희는 오래 전부터 큰 위협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바로 인베이더라는 침략자 세력 때문이죠.”
“인베이더? 그놈들은 또 다른 우주적인 세력인 모양이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노과학자의 얼굴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인베이더란 놈들이 바로 자신들을 이곳으로 불러오게 된 이유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예. 그들의 목적은 지성체들의 멸망. 타협조차 불가능한 악의 세력입니다.”
“허··· 지성체의 멸망이라고?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차라리 인력과 영토,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침공했다면 모를까, 무작정 상대를 멸망시켜서 그놈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지?”
“충분히 이득이 됩니다. 나중에 영능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배우면 알게 되겠지만, 여기에는 업(業), 즉 카르마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있지요.”
“업? 설마 불교에서 말하는 그건가? 생전의 행실에 의해 쌓인다고 하는, 그 형이상학적인 개념?”
노과학자의 표정이 일순 해괴하게 변했다. 여기서 그런 허무맹랑한 종교관적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예, 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적인 것이죠. 하지만 놈들은 지성체들을 멸망시켜서 그 업이란 것을 축적해 갑니다. 보다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죠.”
“업을 쌓아 완전한 존재로 거듭난다니··· 이건 단순한 진화론 이야기 같진 않은데 말이야. 아무튼 우리 지구의 상식으로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뿐이군.”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영능학을 조금만 공부하셔도 제 말이 전부 사실이란 걸 아시게 될 겁니다.”
“하긴··· 우리의 좁은 상식으로 섣불리 재단할 일이 아니었군.”
노과학자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결론 내렸다.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애당초 믿지 못할 거였다면, 이 상황 자체도 전부 다 비현실적인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한 사람만큼은 아리엔이 하는 설명을 이해하고 있었다.
‘업이라··· 하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군.’
영능학이란 건 잘 모르겠지만, 방금 언급된 업에 대한 것은 이진운도 나름 집히는 부분이 있었다.
중원무림에도 그와 비슷한 개념을 추구하는 자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바로 도사들이었다. 도(道)란 이름의 업을 갈고 닦아 신선이라는 상위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수행들.
인베이더라는 놈들과는 정 반대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서 선업을 쌓고 나아가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인베이더의 성향과 비슷한 곳을 찾자면 혈교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피를 보고 인신공양을 해야 훗날 혈불이 되어 극락정토에 다다른다는 황당무계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교리의 기저에는 악업을 쌓아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목적이 잠재되어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었던 누군가가 돌연 튀어나와 소리쳤다.
“거기 박사님. 그 유명한 NASA에 소속되신 분 같은데 지금 저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여기가 외계의 행성이라니! 게다가 업? 이건 또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랍니까?”
다른 사람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그와 비슷한 생각인 듯 보였다. 노과학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잘 좀 생각해보게. 그렇게 따진다면 말이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이곳에 불려온 사람들은 죄다 인종도, 국가도 다른데 이렇게 서로 말이 통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아, 그러고 보니!”
따로 통역기랄 만한 것도 없는데도 서로 말이 통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너무 당황한데다, 의사소통이 자연스러워서 다들 눈치 못 채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만 봐도 명백하지. 이곳은 지구가 아니야.”
NASA의 이름난 노과학자, 듀렌 밀리어스는 그렇게 단언했다. 지구의 과학 수준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내놓을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 생겨버렸다. 듀렌의 시선이 다시 아리엔을 향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당신들도 감당 못한 적을 어떻게 우리더러 상대하라는 거지? 단순 소모품으로 쓰기 위함인가?”
“소모품이라니요.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리엔이 아니라며 그 말을 부정하려 했지만, 듀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앞서 가로막았다.
“그럼 나 같은 늙은이가 누군가하고 싸울 수나 있을 것 같은가? 게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싸움과는 전혀 연관 없는 삶을 살아온 자들이야. 인베이더가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들의 문명 수준을 보면 절대 만만찮을 것 같은데, 그런 놈들을 우리더러 상대하라고? 이건 애당초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리엔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의 상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군요. 저희의 문명 수준이 지구보다 높긴 하지만, 그게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데에 절대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방금 제가 보여드렸던 영력이란 힘을 활용할 수 있어야 인베이더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있지요. 놈들은 일반적인 물리력이 거의 통용되질 않는 진정한 괴물들입니다.”
“뭐야? 진짜 말도 안 되는군. 물리력이 안 먹혀!? 그건 또 무슨 물리법칙을 씹어 먹는 소리지?”
“초능력 따윈 첨단무기의 상대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아리엔의 대답에 장내가 발칵 뒤집혔다. 제아무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총기 같은 첨단화기 앞에서는 무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반대라니!
“어째서 그런지 자세한 원리 같은 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드리기로 하죠. 아무튼 인베이더를 상대함에 있어 영능의 힘은 가장 기본적인 필수요건. 영능을 다룰 수 없으면 감히 대적조차 못한다고 이해하시면 맞을 겁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으음, 아르탈 행성연합이란 곳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자질을 가진 영능력자의 수는 생각보다 희소하다는 말이겠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듣고 있던 이진운도 듀렌의 그 말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영능력자들이 아르탈 행성연합 내에 그렇게 넘쳐났다면, 굳이 먼 변두리 행성인 지구의 사람들을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추측이 틀리진 않았는지 아리엔의 입가에 잠시 쓴웃음이 떠올랐다.
“지금 하신 그 말이 아주 틀리다곤 할 수 없겠군요. 영능력자의 수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오해하고 계신 게 있는데··· 지구인분들이 이곳으로 소환된 일은 사실 저희들의 뜻하고는 전혀 무관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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