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6화 (7/448)

1권-06화

‘그래, 이건 분명 내공이다! 환생한 이후 내공을 조금도 다룰 수 없었는데, 이런 곳에 내공을 다루는 자가 있다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놀랐다.

기운이 거칠고 정순하지 못한 것이 흠이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에 대한 운용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면 대충 일류고수 수준은 되겠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때였다. 기척을 느낀 방향에 있던 금속 벽면이 저절로 스르르 올라가더니 숨겨져 있던 커다란 입구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어···?”

“뭐야, 갑자기!?

“입구가 나타났어?”

사람들은 놀라며 경계심부터 드러냈다.

보기에는 이곳을 벗어나게 해줄 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신중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성질 급한 자들은 사방이 밀폐된 이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벌써부터 입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미처 입구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진운이 느꼈던 기척의 주인이 먼저 그곳에 당도했다. 아니 기척은 내공을 다루는 자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류고수 수준은 되는 기척들까지 다수 느껴지고 있었다.

이진운은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입구를 응시했다. 기척의 주인들이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돌연 입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자, 이곳을 벗어나려 했던 사람들이 당황해 멈춰 섰다.

자신들을 납치한 원흉의 정체가 외계인일 거라고 강하게 주장하던 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이것들은!?”

“···사람이잖아! 정말로 외계인이 배후가 아니었던 거야?”

“설마 이거 몰래카메라, 뭐 그런 거 아니지?”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어림잡아도 백여 명은 될 법한 무장 병력들. 그들은 마치 SF영화 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미래지향적인 형태의 무구들을 장비하고 있었다. 전신을 감싼 기계적인 슈트는 물론, 손에 들고 있는 총도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무장병력들의 선두에는 뜻밖에도 여중생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짝 달라붙는 형태의 제복을 입은 소녀의 허리춤에는 뜻밖에도 길쭉한 검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다른 병력들이 첨단병기로 보이는 총과 강화슈트로 무장한 것을 생각하면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는 빈약한 복색이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 점을 당연하다 여겼다. 소녀는 충분히 그럴만한 강자였으니까.

‘방금 전 내가 느꼈던 일류고수의 기척이 저 소녀라고?’

조금은 뜻밖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놀라운 건 아니었다. 전생 시절의 중원무림에서는 어린 나이에 일류 고수가 된 경우가 생각보다 허다했으니까.

하긴 그런 녀석들은 대부분 이름난 문파나 무가 출신들이었다. 온갖 영약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상승무공에 깨달음까지 따로 전수받는 주제에 고작 그 정도 성취도 못 이룬다면 진짜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다는 소리다.

물론 저 소녀가 그들처럼 금수저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공을 갖지 못한 지금의 자신에게는 꽤나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야겠군.’

이진운은 더욱 경각심을 높였다.

전생에서는 천마를 제외하고는 세상 무서울 것 없을 정도로 잘나가던 강자였지만, 지금은 자그마한 위협에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일반 소총탄 정도라면 외공으로 적당히 단련된 육신만으로도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겠지만··· 저들이 들고 있는 것들은 한눈에 봐도 소총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천만하게 느껴진다.

만일 저게 휴대용 레일건이라도 된다면, 이진운도 본인의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신의 집에 남아 있을 3억짜리 진검이 아쉬워졌다.

‘그 검이라도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기껏 도검소지허가까지 어렵게 받아가며 거금을 주고 구매했던 진검이었는데, 정작 필요할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잠든 새에 이곳으로 이동된 탓에 신발조차 없는 얇은 잠옷 차림 상태. 이 상태로 저들과 대적하는 것은 이진운이라 해도 사실상 무리다.

일단은 잠자코 지켜보면서 돌아가는 사태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저들이 자신들을 납치한 원흉이라면 분명한 목적이 있을 테니, 알아보고 나서 행동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신중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무장병력의 등장에 잠시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자들이 곧 이성을 잃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당신들이야? 우릴 납치해 이곳에 가둬둔 게?”

“어서 돌려보내줘요! 제발······!”

“왜 우릴 납치한 거야? 당신들 무슨 생각이야? 내 여기서 나가고 나면 당신들부터 가만두지 않겠어!”

애원하는 자들부터 시작해서 두고 보자며 협박을 하거나, 혹은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격분하는 자들까지 다양했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심리가 그만큼 불안정해졌다는 의미였다.

이대로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폭동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던 그때, 잠자코 있던 소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조용히! 이곳에서 소란은 금물입니다.”

작지만 분명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사람들이 울고불고 악을 쓰는 와중에도 그 소리는 너무도 또렷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섰다. 이건 마치 각 사람들의 귓전에 직접 대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군.’

이진운은 그 수법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하고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사자후나 육합전성과 같은 음공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하찮은 기교였다.

하지만 내공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신기한 수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소란이 조금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설명하기에 앞서 소개부터 하죠. 저는 아르탈 행성연합의 오버러 이능관리국 소속 D랭크 정식요원 [아리엔 웰라우드]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이들은 같은 소속인 E랭크 견습요원들이지요.”

자신을 아리엔이라 소개한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충격적인 사실에, 장내는 또다시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뭐? 지금 뭐라 그랬어? 무슨 행성연합이라고? 그럼 여기가 지구가 아니란 말이야?”

“그럼 정말로 외계인이었어? 생긴 건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정말로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자신들과 같은 생김새를 가진 사람이면서 지구인이 아닌 외계의 존재라니.

그렇지만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비현실적인 일들을 생각해보면, 아주 못 믿을 소리도 아니었다.

“으음, 하긴 외계인이라고 해서 사람이 아니란 법은 없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도저히 못 믿겠어. 지금 이거 몰래카메라지? 맞지?”

“증거를 가져와! 너희들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어디서 사기를 쳐!? 우리가 그렇게 쉽게 속을 줄 알았어?”

“그만 돌려보내줘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아리엔의 말이 거짓말일 거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자들도 있었다.

소란이 점점 커지자, 아리엔이 먼저 진화에 나섰다.

“자, 조용히 해주세요. 이제부터 여러분의 신병은 저희들의 소관이 됩니다. 그러니 제가 지시를 내리면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시에 따르라는 말이 오히려 불안과 초조로 들끓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뭐야, 지금! 납치범들 주제에 우리더러 니들 말에 순순히 따르라는 거냐? 무슨 자격으로!”

“어째서··· 어째서 우릴 여기로 납치해 끌고 온 거냐? 왜? 무슨 이유로!”

“이것들이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우릴 우습게 보는 거냐? 뭐, 지시에 따르라고!? 웃기지 마라!”

사람들의 동요는 어느덧 폭동으로 이어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리엔은 곤란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폭동 그 자체가 염려스러운 건 아니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범인들이 폭동을 일으켜봐야 제압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일단 벌어진 폭동을 강압적으로 진압할 경우, 앞으로 그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사람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자신의 통제에 따라주지 않으면 여러모로 성가셔지게 될 터.

그녀는 곧 결단을 내렸다.

“어쩔 수가 없군요. 저도 이런 강압적인 방식은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푸념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은 아리엔이 허리춤의 검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우리한테 그 검을 휘두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그래, 좋은 말 대신 폭력을 쓰겠다 이거지?”

“역시, 이제야 본색이 나오는구나! 어디 해 봐! 죽여보라고!”

움츠러든 것도 잠시 뿐. 위협 따위에 지지 않겠다는 건지, 사람들은 좀 전보다 더 악을 쓰며 대거리 질을 해오고 있었다.

아리엔은 더 이상 입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이성을 잃어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었으니까.

몸의 중심을 낮춘 그녀가 용수철처럼 몸을 당긴 그 순간, 검집을 빠져나온 검신이 전면에 패도적인 궤적을 그려내었다.

맹렬하면서도 사나운 단 한 번의 휘두름. 그것이 낳은 결과는 모두를 경악시켰다.

웰라우드 류.

위진(危振)-격풍(擊風)

콰우우!

대기를 가르는 한 줄기 파공성. 그리고 세찬 바람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어리둥절해 하던 순간, 사람들의 뒤편에서 뭔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콰드드득!

저도 모르게 다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으헉! 뭐야 이거!?”

“벽이··· 뭉개져 버렸어?”

“미친!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아하하··· 뭐지, 지금 그건? 내가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사람들이 경악과 불신에 찬 표정으로 넋 나간 듯 부르짖었다. 자신들이 뭘 잘못 본 게 아닌가 눈을 의심될 지경이었다.

어떠한 짓을 해도 흠집조차 내기 어려워 보이던 두터운 금속제 벽이 본 모습을 찾기 어려울 만큼 찢기고 뭉개지다니. 단지 검을 휘둘러 일으킨 바람만으로 이런 짓이 가능하다고? 이게 정말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분명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을 마냥 부정할 수만도 없었다.

사람들의 위축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리엔이 사뭇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여긴 여러분들이 살던 지구가 아닙니다. 기존의 상식과 관념, 모든 게 다르죠. 예전에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했다간 호된 일을 당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말과 행동에 유의해주셨으면 좋겠군요.”

“······.”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리엔이라는 소녀가 그나마 만만해 보여 분노를 쏟아냈던 건데, 이건 숫제 괴물이었다.

이젠 불합리한 일을 당한다 해도 감히 항변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들 움츠러든 상황에서도 유독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이진운이었다.

‘검풍(劍風)이라니··· 역시, 내가 느낀 대로 이자들은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군.’

이로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곳은 자신들이 살던 지구의 어딘가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물론 아리엔이란 소녀와 그 일행들의 생김새는 겉으로 볼 때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었지만, 설령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지구인 출신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가 그렇게 단정 지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바로 다름 아닌, 영력의 활용 유무였다.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지구에서는 온 세상을 다 뒤져봤어도 내공이나 기를 다루는 자는 찾아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자들은 달라. 어설프긴 해도 내기를 확실하게 다루고 있어.’

이건 단순히 영력의 존재를 깨우쳤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었다.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기운, 영력을 의식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능이 있는지 없는지의 유무였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에게 꼬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구인은 영력을 거시적으로 다룰 능력 자체를 애당초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히 자각의 여부만으로 판가름 나는 문제였다면, 이진운은 진즉 내공심법을 체득해서 전생에 이뤘던 경지를 상당부분 회복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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