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화 (4/448)

1권-03화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눈으로 직접 보고 겪으면서도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17대 1 같은 싸움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현실에서라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각종 무술과 실전으로 단련된 스무 명이나 되는 정예들을 혼자서 한순간에 때려눕힌다고?

믿을 수 없는 결과였지만, 이진운에겐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제아무리 내가무공을 사용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전생에 이뤘던 깨달음과 경지는 이미 그의 영혼에 각인된 상태.

마음만 먹으면 날아오는 총알조차 정지된 영상처럼 인식할 수 있는 판국인데, 한낱 조직폭력배가 휘두르는 느려터진 주먹과 흉기 따위가 어디 안중에나 있었겠는가.

순식간에 조직원들을 인사불성상태로 만들어놓은 이진운은 그들을 내버려두고는 김덕수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김덕수의 집무실은 수호대가 머무는 대기실 바로 옆에 있었다.

쾅!

단단히 잠긴 문을 억지로 열어젖히고 들어서자 이번 의뢰의 목표 대상인 김덕수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바싹 긴장한 채 이진운을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CCTV를 통해 이쪽 상황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던 듯싶었다.

김덕수가 먼저 성난 외침을 터뜨렸다.

“너 뭐하는 놈이야? 어디서 왔어?”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 뭘 묻나?”

“이 자식이!”

이진운의 비웃음 섞인 되물음에, 이를 악무는 김덕수.

하지만 금세 흥분을 가라앉혔다. 비합법적인 조직을 이끌면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어왔었다. 지금의 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사태일수록 좀 더 냉정하고 신중해야 했다.

물론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수호대가 이렇게 박살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믿고 있는 게 있었다.

“그래, 네놈 말대로 대충 짐작은 가는군. 헌데 스물이나 되는 내 수하들을 다 때려눕힐 줄이야.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솜씨도 총구 앞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김덕수는 숨기고 있던 권총을 꺼내 이진운을 겨눴다.

러시아 밀매무기상을 통해 입수한 호신용 권총이었다. 최근 조직들 간의 세력다툼이 격화되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매했던 건데, 설마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권총? 하긴 너처럼 저열한 놈이라면 준비해둘 법한 한수로군. 그걸 믿고 내 앞에서 자신만만해 하는 거냐?”

“그래, 이게 내 비장의 한수지.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날 죽이겠다고? 고작 그걸로?”

엄포를 놓는 그 말에 코웃음 치는 이진운. 하지만 김덕수는 대답 대신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한 차례의 총성. 하지만 총탄은 이진운을 꿰뚫지 않았다. 그 대신 옆에 있는 벽면 위에 깊은 탄흔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건 못 맞춘 게 아니었다. 일부러 살짝 빗나가게 조준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김덕수가 추궁하듯 물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네놈이 수상한 움직임만 보이면 나는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 그러니까 좋게 해줄 때 말해! 누구냐? 널 보낸 놈이.”

하지만 이진운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위협사격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군. 고작 권총 한 자루 손에 쥐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말이야. 네 수하들이 조금 전 어떻게 당했는지 잊었어?”

그의 담대한 태도에 김덕수의 얼굴도 자연 일그러졌다. 배후를 추궁하려 했더니 이건 외려 자신을 협박하는 게 아닌가.

“총구 앞에서 건방을 떨다니. 그 따위 허세가 지금 먹힐 거라 생각하나? 싸움 실력이 제법 대단하긴 해도 이 총 앞에서는 네놈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말해. 네놈의 배후가 누군지! 솔직히 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역시 사람을 죽여 본 놈이라서 그런지 하는 말마다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진운에게는 그런 태도가 가소롭고 불쾌하기만 했다.

“정말이지 너 같은 놈들은 총만 들었다 하면 하나같이 주제 파악들을 못하는군.”

그는 가볍게 한숨지었다. 눈앞에 있는 김덕수만 이런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청부업을 해오면서 봐온 인간 군상들은 죄다 그러했다.

본신의 실력은 보잘 것 없는 주제에 무기 하나 들었다고 자신이 상대의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처럼 까불다니. 옛 속담처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다.

“이놈이! 진짜 죽고 싶은 거냐?”

이진운이 생각했던 것처럼 호락호락하질 않자, 당황과 분노를 드러내는 김덕수.

이젠 더 참기 어려운지 당장이라도 총을 쏠 것처럼 방아쇠를 당겨가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당기면 총구가 바로 불을 뿜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경고였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면 말뿐인 협박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쏘겠다는 의미겠지.

그렇지만 이진운은 겁을 먹기는커녕 외려 차갑게 웃어보였다.

“그런 쓸데없는 협박 말고 어디 쏴볼 테면 쏴 봐.”

정말로 쏠 것처럼 위협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김덕수는 굳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가 곧 결단을 내린다.

“···배짱 한번 좋군. 정 말을 하지 않겠다면 나도 네놈을 굳이 살려줄 이유가 없지. 그럼 잘 가라.”

탕!

말을 끝맺자마자 총구가 드디어 세찬 불을 뿜었다. 발사된 총탄의 궤적 끝에는 이진운의 가슴팍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 이진운은 죽지 않았다. 분명 가슴이 뚫려 죽거나 치명상을 입어 쓰러졌어야 할 이가 여전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살아 있었다.

김덕수가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분명 총을 쐈는데··· 그런데도 죽지 않는다고? 어떻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분명 총구의 조준이 빗나간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쐈는데, 총탄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리도 없지 않은가.

경악과 불신으로 일그러진 상대를 향해 이진운이 자신의 오른손을 펴 보였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작은 금속조각 하나가 보였다.

“설마 그거······!?”

그것을 본 순간 김덕수의 머릿속으로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떠올렸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떼구르르.

이진운이 손바닥을 기울이자 금속조각이 바닥 위로 굴러 떨어졌다. 그것은 분명 권총의 탄두였다. 끝부분이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방금 전에 쏜 권총의 탄환임에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어 보였다.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사람이 맨손으로 총알을 잡아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질 나쁜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김덕수에게 이진운이 조소하며 내뱉었다.

“그래, 네놈 상식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내 상식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단다.”

이진운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하자, 김덕수는 두려움과 공포로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어버렸다. 권총 하나만 믿고 당당하게 굴었는데, 이젠 그 마지막 보루마저 허물어진 것이다.

“으으··· 죽어! 죽으라고! 이 괴물!”

탕탕탕!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시 방아쇠를 당기는 김덕수.

총성이 잇따라 울려 퍼지면서 이진운의 목숨을 노렸지만, 그 어떤 것도 몸에 닿지 못했다. 그의 오른손이 빠르게 허공을 누빈 순간, 음속의 세 배나 된다는 총탄들을 전부 잡아낸 것이다.

“쓸데없는 발악을 하네. 시끄럽게 말이야.”

그가 다시 한 번 오른손을 펴자, 찌그러진 총탄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거짓말··· 그 총탄들을 전부!?”

두려움에 젖다 못해 반쯤 넋이 나간 김덕수. 탄창의 실탄을 전부 소모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 도심에서 총을 쏠 거면 최소한 소음기 정도는 달아두라고. 물론 이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야.”

“자··· 잠깐!”

다음 생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외쳤지만, 이진운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방금 전에 총탄을 잡아냈던 오른손이 어느새 그의 가슴팍에 닿고 있었다.

그 순간 장저(掌低)로부터 발해지는 한 줄기 암경(暗勁).

투웅!

눈에 보이지 않는 경력(勁力)은 진동과 함께 내부로 스며들어가 치명적인 장기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심장이었다.

심근을 이루고 있던 근섬유들이 암경에 의해 완전히 파열되었고, 그 결과는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커컥! 꺼으으······!”

김덕수가 돌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심장이 뛰지 않는 이상 제아무리 강건한 사내라 해도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그는 몇 초 지나지 않아 금세 숨이 끊어져 절명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쥐어짜 호의호식해 왔던 악인의 최후였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이런 결말이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이런 놈들은 편히 죽여선 안 되는데 말이야.”

마음 같아선 놈을 좀 더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건물 내에 있는 조직원들은 물론 경찰까지 몰려올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해도 감당 못할 건 없었지만, 뒷수습까지 생각하면 일이 무척 번거로워지게 된다.

“그럼 이제 슬슬 여길 벗어나 볼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다. 그는 먼저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너머로 10층 건물 아래의 정경이 보였다.

창틀 위로 올라선 이진운은 곧 그 아래로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기행이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한 순간, 그는 즉시 발을 뻗어 양은이파 빌딩의 외벽을 박찼다. 그러자 수직낙하 하던 그의 신형이 비스듬하게 곡선을 그리며 빌딩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침 양은이파 빌딩의 맞은편 쪽에 있던 상가 건물이 그의 눈앞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쿵!

다시 발을 뻗어 상가 건물의 외벽을 세게 박찼다. 그러자 이진운의 신형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곡선 낙하하면서 양은이파 빌딩 외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마찬가지로 외벽을 향해 먼저 다리를 뻗었다.

쿵!

그렇게 외벽을 박차면서 두 건물 사이를 몇 차례 지그재그로 오간 그는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각력이었다.

그는 자신이 뛰어내려온 빌딩 위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현재 양은이파의 내부상황은 혼란 그 자체. 건물 바깥에서 봐도 큰 소란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 틈에 사라지는 게 좋겠군. 여기 더 있다간 성가셔지겠어.”

그는 골목 구석에 미리 준비해둔 가방을 꺼내 옷을 갈아입고는 얼굴도 다시 변형시켰다. 어지간해서는 다시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한 인상의 얼굴이었다. 생김새는 물론 옷차림까지 전부 달라졌으니 어느 누구도 그를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것이다.

준비가 끝난 그때, 멀리서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살인사건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이미 늦었어, 이 양반들아.”

피식 웃으며 실없는 소릴 내뱉은 이진운은 유유자적 그 지역을 벗어났다. 곳곳에 CCTV가 있었지만, 사각지대를 전부 파악해둔 그에겐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덕수의 사망소식은 9시 뉴스까지 오르게 되었다.

* * *

의뢰를 마친 이진운은 다시 폐건물을 찾아가 바텐더를 만나보았다.

“의뢰는 확실히 처리했더군.”

“별 거 아니었어. 김덕수 그 작자도 생각보다 잔챙이였고.”

“총까지 들고 설친 녀석을 잔챙이라니······.”

“총을 들었다고 해서 삼류 나부랭이가 진짜 일류가 되는 건 아니잖아.”

잔챙이라고 폄하하는 그 말에 바텐더가 어이없다는 투로 반응했다.

김덕수의 싸움 실력은 한 조직의 보스 치고는 평범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총을 든 자를 상대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제아무리 싸움에 능한 자라 해도 죽거나 부상을 각오해야 할 일이다.

헌데 이진운은 스무 명이나 되는 수호대를 다 병신으로 만든 걸로도 모자라 총을 든 김덕수까지 완벽하게 끝장내 버렸다. 그러고도 본인은 별다른 상처 하나 없었으니··· 이미 몇 년간 의뢰를 중계해준 바텐더로서도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아무튼 의뢰인도 결과에 만족스러워 하시더군.”

“잔금은?”

“이미 그 계좌에 넣어두었어. 평소 넣는 계좌는 알지?”

“그래? 돈이 들어왔다니 한동안은 풍족하게 지낼 수 있겠군.”

의뢰 시작할 때 받은 착수금도 적지 않았지만, 그 뒤에 들어온 잔금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평범한 서민이었다면 족히 몇 년은 풍요롭게 지내고도 남을 정도.

그렇지만 이진운에게는 불과 몇 달도 못가 다 사라질 액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의뢰는?”

다음 의뢰를 묻는 그 말에, 바텐더가 이진운을 쏘아붙였다.

“아직 없어. 네 실력은 확실하다만, 그 대신 의뢰를 받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잖아. 거기에 부합하는 의뢰를 찾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줄 알아?”

“아직은 없단 말이군. 그럼 당분간은 본의 아닌 백수 신세인가?”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해서 의뢰의 기준조건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고작 돈을 벌기 위해 선량한 사람의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히는 건 영 찜찜했으니까.

바텐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동안 휴가 좀 받았다고 생각하고 편히 쉬고 있어. 의뢰가 들어오면 내가 알아서 부를 테니까.”

“알았어. 그럼 그 말만 믿고 난 이만 돌아가겠어.”

이진운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폐건물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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