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외전 3. 마법소녀의 소망
아름다운 은하수가 내리던 밤.
하얀 토끼가 붉은 머리의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소녀가 토끼의 손을 잡은 그 순간.
-파아앗!
밝은 빛이 날개를 펼치며,
따스한 온기가 소녀의 온 몸을 감쌌다.
동시에 하얀 토끼가 말했다.
[마법소녀가 된 걸 축하해.]
그와 함께 소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이클레아가 쾅! 책상을 치며 잠에서 깼다.
“안돼애애애!!!”
그렇게 눈을 뜬 곳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에 위치한 그녀의 연구실.
책상 가득 잔뜩 어질러진 자료들.
서재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온갖 연금술 서적들.
“후우….”
이에 이클레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스르륵 주저앉았다.
다행히도 그냥 단순한 꿈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냥 꿈은 아니었다.
방금 전의 꿈은 그야말로 이클레아가 그녀의 인생에 있어 지우고 싶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최악의 악몽이었던,
그때의 풍경이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야? 파트너.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야?]
그와 함께 허공에 뿅! 하고 하얀 토끼가 등장했다.
그녀의 이름은 로미.
이클레아를 마법소녀의 길로 이끈 원흉이었다.
“죽어.”
그대로 이클레아가 로미를 향해 중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가뜩이나 악몽을 꿔서 기분이 더러운데,
눈앞에 악몽의 근원이 튀어나오니 더더욱 기분이 더러워졌다.
-처억.
이어서 이클레아가 책상에 놓여있던 안경을 썼다.
아니 쓰려는 찰나였다.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히며 빤히 자신의 안경을 바라보았다.
“…….”
곧게 뻗어있던 안경다리는 한쪽이 ㄱ자로 꺾여있었다.
그리고 렌즈는 박살나 운명을 달리한지 오래.
아무래도 방금 악몽에서 깰 때 책상을 내리치며 박살난 모양이었다.
“써글.”
그대로 이클레아가 작게 중얼거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악몽에다 안경이 박살나기까지.
정말이지 오늘 운수는 최악이었다.
안경점이 어디 있더라.
이클레아가 그렇게 생각하며 박살난 안경을 치웠다.
그러자 줄곧 옆에 있던 로미가 물었다.
[근데 안경은 왜 쓰고 다니는 거야?]
“……뭐?”
[그야 넌 마음만 먹으면 저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있잖아. 왜냐면 마법소녀의 힘이 있…….]
그리고 로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마법소녀라는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이클레아가 머리를 쥐어 싸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닥쳐.”
마법소녀.
이클레아가 첫 번째로 싫어하는 단어였다.
여담으로 두 번째는 레드다.
아무튼 로미의 말대로 이클레아는 딱히 안경이 필요할 정도로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마법소녀.
즉, 신수의 계약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인간보다 우월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이건 시력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안경을 쓰고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우우웅!
그리고 그때였다.
돌연 이클레아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그녀가 전화를 받자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
[매지컬 레드 맞죠? 저는 한선일보의 기자 김유철…….]
“안 사요.”
그대로 이클레아가 전화를 끊고 미간을 와락 구겼다.
얼마 전,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는 현성이 엘카인을 쓰러트린 후.
그때 이후로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이클레아에게 전화를 오는 빈도가 부쩍 늘어났다.
아무래도 최후의 결전 때, 매지컬 레드의 모습을 드러낸 게 화근인 모양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랬으면 인류는 꼼짝없이 멸망이었다.
하여간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길거리만 지나가도 정체를 들킬 수 있었다.
당장 아카데미의 연구실을 탈환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런데 여기서 매지컬 레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된다면?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와 함께 이클레아가 박살난 안경을 흘깃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당장 안경을 사러가는 게 좋겠군.”
괜히 맨 얼굴로 돌아다녔다가 매지컬 레드냐는 의심을 받는 건 사양이었다.
물론 이런 건 애초에 그 화근부터 막아둬야 했다.
그러면서 이클레아가 로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이 녀석부터 죽이고 싶지만…….’
어찌된 게 눈앞의 허여멀건한 토끼는 별짓을 해도 죽지 않았다.
덕분에 계약 해지조차도 불가능.
그대로 이클레아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
만약 그날,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클레아가 자신의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연구실을 나섰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내에 위치한 한 안경점.
이클레아가 진열된 안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시에 그 옆에서 고등학생 정도로 추정되는 학생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 내용을 조금 엿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너 마법소녀 매지컬 레드라고 알지? 글쎄 내 친구가 아카데미에 다니는데, 교수 중에 매지컬 레드가 있대.”
“뭐? 그게 정말이야?”
“응, 아카데미 측에서는 숨기고 있긴 한데 거기 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나봐.”
과거 10년 전 대변동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아이돌 메지컬 레드의 귀환.
당장 아이돌이 복귀한다는 소식만 해도 난리가 나는 게 요즘 시대인데 그 대상이 인류를 구한 영웅이라고 해보아라.
이에 기성세대는 물론이며, 10대들까지 그 소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아카데미 측에 사정한 결과,
최대한 내부에서 소문이 퍼져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지만,
본디 소문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히려 아카데미에서 숨길수록 대중들의 의심들은 증폭되며,
그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젠장…….”
다행히 안경점에 오는 동안에는 별일은 없었지만,
길거리에는 이미 매지컬 레드에 관한 것들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장 안경점에서 들려오는 대화들이 그 증거.
이렇게 된 이상.
아무거나 빨리 고르고 돌아가는 게 좋겠다.
이클레아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 진열된 안경을 집은 그때였다.
“전 그것보다는 옆에 있는 거 더 어울릴 거 같은데요.”
바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다름 아닌 현성이 서있었다.
“……현성?”
곧바로 이클레아가 흠칫 놀라며 니가 왜 여기서 나오느냐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현성이 멋쩍게 웃으며 이클레아의 맨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교수님과 같은 이유일걸요.”
“……아.”
이에 이클레아가 짧은 단발마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최후의 결전 이후, 매지컬 레드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이 언급되는 게 바로 현성이었다.
그도 그럴게 현성은 무려 인류를 멸망에서 구해낸 주인공.
덕분에 그 역시도 주변의 관심에 꽤나 난처한 찰나였다.
거기다 하린의 짐을 전해주러 교단에 얼굴을 비추고,
시연과 놀이공원에 가고 나서 유독 심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현성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
이클레아처럼 안경이라도 쓸까 싶어 나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주변 안경점은 이곳밖에 없는 탓에 이렇게 둘이 만난 모양이었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도 고생이다.”
“뭘요. 매지컬 레드만 하겠…….”
“조용히 해.”
“아, 예.”
그와 함께 현성이 옆에 있는 안경을 건네며 말했다.
“아무튼 교수님은 이게 더 어울릴 거 같은데 어때요?”
“……그래?”
이클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모습에 현성이 중얼거렸다.
“물론 맨 얼굴도 예쁘지만요.”
-움찔.
갑자기 훅 들어온 현성의 말.
이에 이클레아가 말을 더듬으며 얼굴을 붉혔다.
“뭐, 뭐라는 거야.”
그런 그녀의 반응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진열된 안경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저도 하나 골라주실래요?”
그리고 잠시 뒤.
무사히 안경을 고른 현성과 이클레아가 안경점을 나섰다.
애초에 둘 모두 시력이 나쁜 건 아니었으니, 따로 렌즈를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대로 현성이 말했다.
“안경 사주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고마워요.”
그 말에 이클레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됐어. 저번에 준 선물의 답례라고 생각해.”
과거 그가 선물해준 유니콘의 피.
그에 비하면 안경 정도는 별거 아니었다.
하여간 그렇게 현성과 이클레아가 길가를 걸어가던 찰나였다.
-멈칫.
순간 이클레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스티커 사진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앞에 전시된 학생들의 사진.
사진 속의 학생들은 저마다 여러 포즈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한참동안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그녀가 마법소녀가 되었을 때.
그녀 또한 사진 속의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하지만 이클레아에게는 그들과 같은 인생이 허락되지 않았다.
한창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 시기에, 이클레아는 마물을 쓰러트렸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좋아하고, 응원했지만,
마물을 쓰러트리고 난 뒤.
남은 건 온 몸에 가득한 상처와 지독한 고독이었다.
그 시절, 이클레아는 그런 적막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더욱 더 마법소녀 활동에 박차를 가했던 것도 있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사람들의 환호에 적막감을 느낄 새도 없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이클레아는 그 나잇대 다른 학생들이 하고 다니는 걸,
자연스레 하나 둘 씩 포기하게 되었다.
그 흔한 스티커 사진하나 없는 게 그 증거.
“교수님.”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이클레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희도 찍을래요?”
“……뭐?”
“안경 산 기념으로요. 어때요?”
그대로 이클레아가 정신을 차린 뒤에는,
이미 현성과 같이 사진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동시에 그런 그의 손에는 어느새 이런저런 소품들이 들려져있었다.
“나, 난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봤…….”
“어, 시작한다.”
이어서 이클레아가 뭐라 말하기도전에,
셔터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하나 둘씩 사진이 찍히고, 어느새 마지막 대기시간.
“…….”
현성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에 이클레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왜 그래?”
“너무 멀리 있는 거 같아서요. 원래 이런 건 조금 붙어야 더 잘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대로 현성이 이클레아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조금만 가까이 올래요?”
“그, 글쎄 나는 이런 거 찍어본 적이 없다니까…….”
이클레아가 움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현성이 싱긋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아요.”
“…….”
그런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마디에 모든 긴장이 녹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찰칵.
마지막 사진이 찍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대로 머지않아,
현성이 인출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요. 역시 마지막이 제일 잘나왔죠?”
그렇게 현성이 가리킨 사진에는,
그와 이클레아가 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 자리한 작은 미소.
제법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에 이클레아가 사진 속 모습처럼,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네.”
잠시나마 그때 못해본 소망을 이룬 덕분일까.
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마치 잠시 꿈을 꾼 거 같은 느낌.
하지만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그럼 이제 가자.”
그렇게 이클레아가 발을 돌린 찰나.
돌연 현성이 말했다.
“혹시 더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동시에 이클레아가 멈칫거렸다.
평소라면 그런 현성의 말에 괜한 소리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왤까.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이대로 헤어지기 싫었다.
그와 함께 옛날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한 가지 소망이 떠올랐다.
“불꽃놀이.”
그대로 이클레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변가에서 불꽃놀이를 해보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
그리고 이에 대한 현성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곧바로 그가 이클레아를 향해 손을 뻗었으며 말했다.
“그럼 갈까요?”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가 보이는 어느 백사장을 따라,
쏴아아,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 있네요.”
현성이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해가 저물어 아스라한 불빛만이 남아있는 백사장은 꽤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에 현성이 이클레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런 데는 어떻게 알고 계셨어요?”
이곳을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이클레아.
평소 연구실에 틀어박혀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러자 이클레아가 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전부터 좋아했거든. 바다.”
그리고 그녀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아무튼 그럼 시작해볼까?”
그와 함께 이클레아가 사온 폭죽을 하나 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와 같이 폭죽을 준비하던 현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근데 해변가에서 폭죽놀이는 불법 아니었나요?”
“아마 그럴걸. 근데 우리는 괜찮아.”
“왜요?”
이에 이클레아가 대수롭지 않게 백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내 땅이야.”
“……예?”
“말했잖아. 바다 좋아한다고.”
그대로 이클레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그냥 샀어.”
“오우…….”
실제로 이곳은 그간 그녀가 마법소녀 생활과 교수직을 하며 벌어온 돈을 부어 구매한 땅.
그런 이클레아의 답변에 현성이 작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곳에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아무튼 그럼 문제없지?”
이클레아가 양 손 가득 폭죽을 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런 문제없겠네요.”
그럼 이제 마음껏 폭죽을 터트릴 차례.
그와 함께 현성과 이클레아가 폭죽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 퍼펑! 펑! 퍼엉!
하얀 백사장을 따라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늘을 장식하는 화려한 불꽃들.
그 모습은 꼭 은하수가 내리던 그날,
마법소녀의 계약을 맺었던 때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날, 하얀 토끼가 붉은 머리의 소녀에게 손을 내밀듯.
이클레아가 현성에게 손을 내밀며 나지막이 말했다.
“……폭죽놀이, 다음에도 나랑 같이 봐줄래?”
이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맞잡은 그 순간.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을 배경으로 이클레아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약속했다?”
그렇게 파도가 밀려오는 하얀 백사장.
맞잡은 손을 타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내리던 그날처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