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에필로그 : 낯선 천장
낯선 천장이다.
그와 함께 환한 빛이 난반사되며 눈을 찔렀다.
맨 처음 <이스페리아>에 빙의되었을 때와 똑같은 풍경이었다.
“…….”
이에 현성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런 그의 손끝을 타고 침대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 주변에는 하얀 커튼이 쳐져있었다.
무엇보다 몸 곳곳에 감겨있는 붕대와 환자복까지.
현성이 이곳이 병원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끼익.
그대로 현성이 상반신을 일으켜, 침대 옆 선반에 놓여있는 작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안에는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흑발의 소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처음에는 그토록 적응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허나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런 소년의 이름은 유현성.
<이스페리아>의 삼류 악역이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 손을 휘젓자,
그의 눈앞에 상태창이 펼쳐졌다.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폭풍의 창을 받아낸],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신화를 거머쥔],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새로운 주인공], [얼음무덤의 비밀을 알아낸], [악마의 진명을 부른], [철의 권7의 패왕], [거 삽질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수호자를 쓰러트린], [지나가다 벼락을 맞은], [번개를 자른], [레드 룸의 승자], [설산을 지배한], [드래곤 슬레이어], [여왕의 궁전에 발을 내딛은], [알레시아의 친우], [인간 같지 않은], [하 가문의 조력자], [아카데미의 구원자], [사룡(死龍)의 대적자], [드래곤 하트를 가진], [드래곤 하트를 완벽히 흡수한], [웨펀 마스터], [올 마스터],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른], [최초의 결말을 이루어낸]
체력 100(MAX)
지력 100(MAX)
민첩 100(MAX)
행운 100(MAX)
의지 100(MAX)
*스킬상세
[파이어 펀치. LV10. MAX]
[얼음폭풍. LV10. MAX]
[휴먼라이트닝. LV10. MAX]
*검사스킬상세
*창술사스킬상세
*마법사스킬상세
*암살자스킬상세
.
.
.
*궁사스킬상세
*마검사스킬상세
*마창사스킬상세
특수스킬
[투신의 길. LV5. MAX]
[투신의 눈. LV4]
[삽질의 황태자. LV5. MAX]
[드래곤 피어(dragon fear)]
[드래곤 포스(dragon force)]
[용언(龍言)]
고유스킬
[게이머의 감각. MAX]
[티리카, MAX]
합동기
[빙혈. LV1]
[창천. LV1]
[용의 광시곡. LV1]
그곳에는 튜토리얼부터 종막까지 달려온 그간의 행적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삼류 악역 유현성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처음에는 5를 넘어가는 스텟이 없었다.
예정된 운명은 주인공의 손에 죽거나,
멸망이 다가올 세상에서 죽는 게 전부였다.
허나 결국에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엔딩을 만들어냈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마지막 업적.
[최초의 결말을 이루어낸]
그대로 현성이 아무 말 없이 눈앞에 떠오른 업적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해피엔딩. 도저히 깨지 못할 것만 같은 그 과제를 깨고,
그간 <이스페리아>에 발견해내지 못 한 엔딩을 달성해낸 증거였다.
그와 함께 서서히 최후의 전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석양이 지는 메마른 황야, 이스페리아.
엘카인이 공허의 문과 함께 소멸하고, 현성은 그곳에서 엔딩 크레딧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잠깐만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렇지 않았던 건지,
현성은 눈을 감자마자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들었고,
직후 알레시아와 다른 히로인들에 의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옮겨진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났으나,
그 후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
다만 정신이 말끔한 걸로 보아,
꽤나 오래 잠들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뜬 게 바로 지금.
-스윽.
이에 현성이 자신의 어깨와 옆구리를 살폈다.
병원의 치료덕분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는 스텟은 물론이거니,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여 엔드스펙에 다다른 상태.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그간의 피로와 상처가 씻은 듯이 없어졌다.
당장 영원히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 깨끗이 낫다니.
역시 드래곤 하트가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크게 기지개를 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그가 줄곧 쳐져있던 커튼을 걷기 무섭게.
-철컥.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수연.
유 가문의 유일한 메이드였다.
“도련… 님…?”
그런 수연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난 현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다음은.
-쉬익!
현성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수연의 모습이 흩어졌다.
그야말로 가히 마스터 암살자다운 신속(神速).
머지않아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현성의 바로 앞.
-포옥.
그와 함께 수연이 현성을 껴안았다.
그대로 그녀는 한참동안 현성을 껴안은 채 놓지 않았다.
이어서 수연이 작게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
그런 수연의 말에 현성이 멍하니 품에 안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도 잠시.
현성이 수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에 수연이 아무 말 없이 더욱 더 힘을 주며 현성을 끌어안았다.
그 다음 다시 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수연이 천천히 포옹을 풀었다.
“그럼 조금 늦었지만…….”
그러고는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 일어나셨습니까.”
주말의 아침마다 수연이 그를 깨우며 했던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언제나 그렇듯 작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미소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이야.”
언제나 그렇듯 주말의 아침마다 주고받던 인사였다.
이어서 현성이 물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잠들어있었지?”
안 그래도 줄곧 궁금하던 사실이었다.
이에 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 2년 정도 됐습니다.”
“……?”
그런 수연의 단호한 대답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수연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농담이고 생각보다 별로 안됐습니다. 3일 정도?”
“다행이네.”
그녀의 농담에 현성이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수연 역시 피식 웃어보이고는,
바깥을 흘깃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도련님도 일어났겠다. 한시라도 빨리 아가씨를 포함한 다른 분들한테도 이 소식을 알리고 와야겠네요.”
“……한시라도 빨리?”
그 말에 현성이 흘깃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대략 30분 동안은 계속 이러고 있던 거 같았는데.
한시라도 빨리 일어났다는 소식을 알리기에는 조금 늦은 게 아닐까.
동시에 그때였다.
수연이 현성의 생각을 읽은 듯,
환환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그야 첫 번째로 들어온 보상은 받아야죠.”
그리고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애초에 병실은 그녀와 하선을 포함한 다른 히로인들이 번갈아가며 상태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다 수연이 현성이 일어난 타이밍에 운 좋게 들어온 셈이었다.
“그럼 모두에게 알리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수연이 병실을 나서고,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 밖을 따라 심상치 않은 소리가 삐져나왔다.
“아니 글쎄 내가 먼저!”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
“맞아요. 일단 오빠도 방금 일어났을 텐데.”
그 사이, 드문드문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
순서대로 레이첼, 시연, 하린이었다.
그와 함께 창가를 따라 들려오는 목소리.
[일어났구나. 현성.]
그런 창가에는 어느새 알레시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현성이 익숙한 듯,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와. 근데 방금 깨어난 건 어떻게 알았대.”
그러자 알레시아가 날개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자네의 계약자다. 그 정도는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처음 계약을 맺을 때부터 알레시아는 줄곧 현성과 이어져있었다.
블랙마켓을 시작으로 이스페리아까지.
심지어는 그가 악마가 된 엘카인과 홀로 싸울 때도 말이다.
그리고 그만큼 오래 연결되어 있는 만큼,
그녀가 알고 있는 건 더 많았다.
그대로 알레시아가 물었다.
[……티리카를 보고 왔느냐.]
마지막 결전 이후, 현성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
그것은 분명 티리카의 것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그날 본 티리카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레시아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잘 있는 모양이군. 그거면 됐다.]
무엇보다 지금 그녀의 곁에는, 그의 의지를 이은 현성이 있지 않은가.
살아 돌아오겠다는 약속.
현성이 그 약속을 지키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약속, 지켜줘서 고맙네.]
이에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꼭 지키겠다고.”
그런 현성의 말에 알레시아가 그르릉거리며 얼굴을 비볐다.
그렇게 알레시아와의 재회를 가지고.
잠시 뒤, 그녀가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나가보게나. 자네를 기다리는 손님이 많은 모양이니까.]
“그럴까?”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철컥.
그리고 현성이 문을 연 순간.
그의 눈앞에 보인 모습은,
<이스페리아>의 모든 히로인이 한 자리에 모인 풍경이었다.
앞서 말한 레이첼과 시연, 하린.
거기다 제일 먼저 병실에 왔던 수연과 하선, 이클레아까지.
전부 그날, 마족과의 전쟁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전부 살아있다는 게,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무사히 엔딩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현성을 안도하게 하였다.
그대로 병실 복도를 타고 침묵이 흘렀다.
“…….”
하지만 그도 잠시.
그들의 표정이 하나 둘씩 변하기 시작했다.
시연은 현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간만이네.”
그렇게 말하는 시연의 목소리에는 그가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다시 그를 볼 수 있다는 반가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 너, 너 내가 얼마나…!”
레이첼은 할 말은 많은데 정작 그 첫 마디가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수록 빨개지는 그녀의 얼굴.
그리고 그런 레이첼의 옆에 있던 하린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오빠…….”
이클레아는 머뭇거리며 달려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수연은 하선의 손을 잡은 채 밝게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반응.
이에 현성이 먼저 침묵을 깨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는 모두를 향해 작게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수고했어. 모두.”
유독 햇살이 밝았던 그 날.
그런 현성의 말과 동시에 그녀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향해 달려오며 그렇게 <이스페리아>의 막이 내렸다.
* * * * *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완)
지금까지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