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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32화 (232/240)

232화 종막(15)

그대로 현성이 눈앞에 떠있는 금색의 퀘스트창을 주시했다.

히든 퀘스트의 발동.

그와 함께 현성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됐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니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과거 티리카가 기사단과 함께 마족을 막아낸 그 날,

그가 종말의 악마를 쓰러트렸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때문에 현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악마화 된 엘카인을 마주하는 게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마지막 조건이라는 걸.

동시에 이것이 증명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사실.

‘역시 기존의 해피엔딩은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도 그럴게 만약 정말로 엘카인을 봉인하는 게 해피엔딩이라면,

히로인의 희생과 함께 이야기는 전부 여기서 끝.

자연스레 그를 상대로 5분간 버티라는 조건도 없을 테고,이미 엔딩까지 다다른 이상.

히든 퀘스트는 영원히 깰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페리아>에서 구조적으로 깰 수 없는 퀘스트를 만들었느냐.

아니. 그럴 리 없다.

그것하나만은 단연코 자부할 수 있었다.

물론 <이스페리아>는 이걸 깨라고 만든 건지 모를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조건을 걸어두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적어도 구조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깰 수 없는 퀘스트를 만들지는 않았다.

더럽게 어려울지언정, 꼭 깰 수 있게 만든다.

이게 현성이 그간 <이스페리아>를 공략하면서 느낀 절대불변의 명제였다.

그리고 히든 퀘스트가 발동된 지금 이 순간.

기존의 해피엔딩이 사실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또 다른 노말엔딩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그의 가설은 좀 더 명확해진 셈.

그 사실에 현성은 도저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흥분되는 고양감이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 곧 그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터.

-두근두근.

이를 증명하듯 현성의 심장 박동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두려움이 아닌, 순수한 기대.

그런 현성의 모습에 엘카인이 나지막이 말했다.

[……미쳤군.]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

엘카인이 악마화를 이루고, 인간계와 마계를 잇는 문이 완성된 지금.

이제 이곳에 그를 막을 존재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로 인간계는 머지않아 마계에 흡수당할 것이며, 세상은 엘카인이 원하는 이상향으로 변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까 전부터 온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과,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짙은 마기.

전부 악마화를 이룬 엘카인에게 느껴지는 힘이었다.

-고오오.

그런 그의 기운은 공간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은 현성 그 스스로도 웃길 지경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눈앞에 떠오른 히든 퀘스트를 바라보았다.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

<기사왕 티리카의 전설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티리카의 의지를 이을 자격을 충족하였다.>

퀘스트 내용

-스킬 : 투신의 길 사용하기. (완료)

-티리카의 업적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으시오.(진행 중)

-첫 번째 업적 : 폭주한 불의 악마 크루페돈을 격퇴하시오.(완료)

-두 번째 업적 : 골드 드래곤 알레시아와 조우하기.(완료)

-세 번째 업적 : 데이몬드에게 자격을 인정받으시오.(완료)

-네 번째 업적 : 종말의 악마를 상대로 5분간 버티시오. (진행 중)

보상 : 티리카의 비전스킬.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그 마지막 조건은 종말의 악마를 상대로 5분간 버티는 것.

마치 선천강에서의 튜토리얼을 떠올리게 하였다.

눈앞에 금색의 히든 퀘스트창이 뜬 것도,

그 내용이 보스를 상대로 5분간 버티라는 것도,

실패하면 죽는다는 것도 그랬다.

처음 시작을 알리는 튜토리얼과 끝을 알리는 엔딩이 겹쳐 보인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눈앞의 엘카인을 바라보았다.

“…….”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엘카인과 현성.

그 둘 모두 지금 이게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정적이 흐르는 신전.

메마른 바람이 멈춘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콰아아아앙!!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현성.

이에 엘카인이 쉴 새 없이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런 그를 따라 생성되는 수백 개의 검은 마법진.

-처억.

그리고 주문을 마친 그가 현성을 향해 손을 내리그은 그때.

마치 검은 소나기가 내리듯,

수백의 흑마법이 현성에게 쏘아졌다.

-콰아아아아!!

눈앞을 가득 메운 검은 저주의 향연.

그 모습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상태창을 펼쳤다.

-촤르륵.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빽빽한 상태창.

이에 현성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튜토리얼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보스의 공략을 모른다는 것.

선천강에서 데일런트를 상대할 때는 스텟을 쓰레기였지만,

모든 패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공격을 피하고, 반격기라는 공략을 이용해 그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종말의 악마 엘카인.

그에 대한 공략은 <이스페리아>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현성조차도 말이다.

물론 악마화가 된 엘카인을 아예 상대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다.

모든 트라이 전부 실패.

패턴 몇 개는 어떻게든 뚫어냈지만,

그를 쓰러트리는 것까지는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악마 엘카인에 대한 공략집은 현재 미완성.

그러던 도중 게임에 빙의한 것이었다.

허나 왜일까.

오늘은 뭔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수백 번의 트라이 끝에 공략을 완성시킬 때의 그 감각.

그때의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확신.

흔히 게이머의 감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이에 미완성된 공략집.

그 공략의 시작을 알리는 현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스트 메자이.”

연이어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특수스킬 : 라스트 메자이를 발동합니다.]

[사용할 클래스 다섯 개를 선택하십시오.]

특수스킬 : 라스트 메자이.

<이스페리아>의 업적, 웨펀 마스터와 올 마스터를 달성하면 사용할 수 있는 스킬로,

플레이어 임의로 클래스 다섯 개를 조합하여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종의 합성기였다.

“검사, 연금술사, 블러드메이지, 암살자, 프리스트.”

그대로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섯 개의 클래스를 선택했다.

각각 하시연, 이클레아, 레이첼, 이수연, 유하린의 클래스로,

사전에 그가 종막을 대비해 만들어둔 최종조합이었다.

[조합을 확정하시겠습니까?]

[Y/N]

이에 현성이 Y를 누르기 무섭게.

메시지창이 떠오르며 푸른 오라가 그의 몸을 감쌌다.

[조합을 확정했습니다.]

[선택한 클래스 : 검사, 연금술사, 블러드메이지, 암살자, 프리스트.]

-파아앗!

그와 동시에 현성이 자신에게 쏘아지는 흑마법의 소나기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리고 그 손이 흑마법에 닿은 순간이었다.

-쩌저적…. 챙강!

마치 현성이 처음 용언(龍言)을 사용했을 때처럼,

흑마법이 소멸하며 엘카인의 마법진이 산산조각 났다.

그대로 검은 먼지와 마법진의 파편이 사방에 흩날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티디딕, 서서히 재구성되기 시작하는 마법진.

그런 마법진의 위치는 다름 아닌 현성의 바로 뒤였다.

-우우웅!

어느새 현성의 뒤에 자리한 수백 개의 마법진.

그를 따라 마법진이 구동하는 소리가 신전을 울리고 있었다.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이게 바로 연금술의 극의, 재구성이었다.

그 원리는 간단했다.

애초에 연금술이라는 학문자체가 금속에서 금을 정련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처럼,

그 성질은 다른 물체를 변화시킴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해체-재정립-재구성.

이에 현성은 엘카인의 마법을 해체하고, 재정립, 재구성하여 자신의 마법진으로 만든 것이었다.

마법의 역이용.

그 결과, 악마화를 이룬 엘카인의 방대한 마나는 전부 현성의 마법진의 거름이 된 셈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손가락을 퉁긴 순간.

공중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마법.

바람, 뇌격, 화염이 한 데 뒤섞여 쏘아지는 풍경은 마치 유성우를 연상케 하였다.

이어서 현성의 귓가를 타고 폭발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가가각! 파지직! 쿠오오오!

무엇보다 그 사이,

현성의 눈앞을 따라 떠오르는 메시지 창.

[남은 시간 : 3분.]

그리고 끊이지 않는 폭발음 속,

엘카인이 미간을 구겼다.

마법 하나하나가 전부 그의 마나가 담겨있는 만큼 그 위력은 상상 이상.

그러나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크아아앗!!]

엘카인이 자신의 마기를 끌어올리며 힘껏 손을 휘저었다.

-콰드드드득!

그와 함께 허공이 갈라지며 검은 어둠이 아가리를 벌렸다.

공간을 찢어 전부 삼켜버릴 셈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몰아치는 마법의 유성우 사이 엘카인이 본 모습은.

-퓻!

그림자와 함께 흩어지는 현성의 모습이었다.

그대로 공허의 공간이 마법을 삼키기 무섭게,

순식간에 검은 섬광이 번쩍이며 엘카인의 옆구리를 갈랐다.

-촤악!

동시에 터져 나오는 검은 피.

마스터 암살자의 궁극기, 쉐도우 브레이크였다.

무엇보다 이는 총 5번의 공격을 가하는 스킬.

이를 증명하듯 재차 검은 섬광이 그의 팔을 가르며 지나갔다.

악마화를 이룬 엘카인의 눈으로도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보이는 것은 오직 공중에 흩어지는 검은 섬광의 잔해뿐이었다.

-핏! 피잇! 피비빗!

그렇게 세 번, 네 번.

검은 섬광이 그어지고.

마지막 다섯 번째 순서.

-스팟!

돌연 엘카인의 뒤에서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알다시피 쉐도우 브레이크는 공격을 가하면 가할수록 그 위력은 점점 강해지며,

마지막에 가서는 가장 높은 데미지를 자랑하는 일격을 날리는 구조.

그 중에서도 마지막 5번째 공격은 100% 확률로 백어택판정.

그대로 엘카인의 뒤를 잡은 현성이 그의 목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쉬이익…. 콰직!

그와 함께 검은 섬광이 뚫고 지나간 그 자리.

엘카인의 목을 타고 검은 피가 솟구치며,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남은 시간 : 2분.]

하지만 그도 잠시.

엘카인의 목을 따라 검은 촉수가 얼기설기 얽히며,

그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이어서 엘카인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감히 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이에 엘카인이 살기등등한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현성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이대로 찢어주마!!]

-끼기긱…, 콰드드드득!!

그러자 마치 공간이 억지로 일그러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양 쪽에 검은 폭풍이 생성되었다.애초에 인간계와 마계를 잇는 문을 완성시킨 이상.

구태여 신전을 지킬 이유도 없었다.

그대로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몰아치는 검은 폭풍은 신전전체를 찢어발김은 물론이며,

그 주변에 쳐져있던 결계까지 박살내며 현성을 집어삼켰다.

-콰가가가각!!

이에 날카로운 폭풍이 말 그대로 현성을 갈아 버리며,

그의 몸 곳곳을 따라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몰아치는 두 개의 폭풍 사이.

-처억.

현성은 발도 자세를 취한 채, 똑똑히 엘카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손에 들린 하얀 태도(太刀).

그런 그의 발밑을 따라 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르륵.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의 자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동시에 그때였다.

흘러내린 붉은 피가 그의 하얀 검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사아아…!

그리고 현성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은 그 순간.

붉은 섬광이 번쩍이며 폭풍을 갈랐다.

그대로 폭풍을 가른 현성의 검격을 따라, 붉은 피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피잇.

혈화요란(血花繚亂).

마치 붉은 꽃이 불에 타오르듯 피어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붉은 꽃잎 속.

-파아앗…!

현성의 머리칼이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찬란한 빛.

이는 다름 아닌 신성력의 증거였다.

-철컥.

이어서 현성이 검을 고쳐 잡고 위로 올려 벤 찰나.

그의 일검(一劍)을 따라,

바닥을 타고 눈부신 빛기둥이 날개를 펼쳤다.

-콰아아아아!!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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