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종막(7)
솟아오른 자욱한 연기 속.
곧바로 수십 개의 검은 창이 현성을 향해 쏘아졌다.
과거 하선과의 전투 중, 그녀가 썼던 것과 비슷한 패턴.
-쉬이이익!!
이에 그가 오른손을 펼치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기존의 파이어 펀치에 속성마법 스톰까지.
그와 함께 붉은 화염이 현성의 팔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가 전방을 향해 힘껏 손을 휘저은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
화염을 머금은 폭풍이 회오리쳤다.
그대로 현성이 일으킨 화염 폭풍이 날아오던 검은 창을 집어삼켰다.
그 위력에 마기로 이루어진 창은 미처 그에게 닿기도 전,
-푸스스.
화염에 불타 검은 재가 된 채 흩어졌다.
허나 그때였다.
흩날리는 검은 재 사이로,
[끼에에에에엑!!]
귀를 찢는 듯한 기괴한 흉성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날개의 커다란 새였다.
아니 과연 저걸 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펄럭!
한 쌍의 날개는 독수리와 같은 조류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다른 한 쌍의 날개는 마치 박쥐 또는 와이번과 같은 피막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그 머리에는 바실리스크의 형상을 한 생물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키메라.
온갖 마수들을 합쳐 기형적으로 형태를 구성해둔 생명체였다.
무엇보다 그런 키메라의 등 위에는 엘카인이 올라타 있었다.
[제법 성가시군. 그럼 그 움직임 먼저 빼앗아주마.]
동시에 바실리스크 머리를 한 키메라의 눈을 타고 붉은 안광이 쏘아졌다.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 중 하나인 바실리스크.
그 능력은 다름 아닌 석화.
그리고 만약 키메라가 바실리스크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석화능력 역시도 여전할 게 분명했다.
이에 현성이 알레시아를 향해 외쳤다.
“알레시아!”
그러자 그런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의 바람이 폭발하듯 터지며 그녀가 아래로 쏘아졌다.
곧바로 방금 전 현성과 알레시아가 있던 자리에 날아다니던 좀비 와이번의 몸이 돌로 변했다.
-드드득!
이어서 바실리스크의 시야를 피해 속도를 올리는 알레시아와,
그런 그녀의 끝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는 키메라.
그럴 때마다 주변의 좀비 와이번은 물론이며, 마족과 연합의 병력들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석화 공격.
엘카인은 돌로 된 녀석들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그들을 거칠게 박살 내며 알레시아의 뒤를 추격했다.
그리고 키메라가 알레시아를 따라잡으려는 찰나.
그녀의 등에 있던 현성이 갑작스레 뛰어내렸다.
-파앗!
덕분에 양방향으로 갈라진 그와 알레시아.
그에 따라 키메라가 순간 타겟을 잃고 고개를 내저었다.
동시에 그런 키메라의 귓가를 타고 들려오는 소리.
-끼기긱….
그건 바로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였다.
이미 현성의 손에는 대궁이 들려있었으며,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향하는 곳은 키메라의 두 눈이었다.
“불스아이.”
그대로 현성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스킬의 발동을 알리는 증거였다.
궁사 클래스의 스킬 불스아이, 앞서 말했듯이 그 효과는 필중.
-피잇!
곧바로 현성이 시위를 놓자마자 화살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목표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화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키메라의 눈을 꿰뚫었다.
[끼에에에에엑!]
이에 키메라가 기괴한 흉성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목을 비틀었다.
이걸로 바실리스크의 석화 능력은 무효화시켰다.
하지만 그도 잠시.
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메라는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속도를 높였다.
그런 그가 향하는 방향은 현성이 떨어지는 곳.
알레시아와 떨어져 공중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우선적으로 노릴 생각이었다.
그대로 키메라에 등 위에 올라탄 엘카인이 손을 휘저었다.
그렇게 검은 마기 줄기가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며 현성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파지직…!
돌연 현성의 몸 주변을 타고 푸른 스파크가 일렁였다.
그리고 그가 히죽 웃은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따라, 푸른 섬광이 그어졌다.
-쿠르릉!
그 후로 한 반자 늦게 낙뢰가 꽂히며 지축을 울렸다.
이에 엘카인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의 눈앞에 보인 모습은 알레시아와, 그 위에 타고 있는 푸른 번개를 두른 현성이었다.
-철컥.
무엇보다도 그런 현성의 손에는,
방금 전의 대궁이 아닌, 날카로운 도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그대로 그가 검 끝을 엘카인을 향해 치켜든 채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환영난무(幻影亂舞).”
동시에 알레시아와 현성이 수직 낙하하고,
공중을 따라 수십, 수백 개의 푸른 섬광이 쉴 새 없이 그어졌다.
가히 신속(迅速)이라 불릴법한 속도.
그 모습은 마치 수십의 환영이 어지럽게 얽혀 검격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검사 클래스의 극의, 환영난무.
거기다 현성의 휴먼 라이트닝까지 섞여, 그의 검로(劍路)를 따라 이는 푸른 번개가 쉴 새 없이 하늘을 갈랐다.
“이게 무슨…….”
그 광경에 전장에 있는 하 가문의 검사들은 물론이며,
전 가주였던 진태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흡사 하늘이 베어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눈앞을 가득 메운 푸른 섬광.
전장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번개와 검격이 뒤섞인 아우성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푸른 섬광이 멎은 그때.
-꾸구국!
현성이 주먹을 쥐고 키메라를 타고 있는 엘카인을 주시했다.
동시에 그의 팔과 턱 아래를 따라, 검은 비늘이 솟아났다.
흑린(黑鱗), 그 모습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연이 움찔거렸다.
-고오오.
과거 아카데미 침공 당시,
사룡 카이락스에서 느껴졌던 것과 같은 그 기운이 현성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정제되고 다듬어진 기운.
드래곤 포스의 증거였다.
드래곤 피어가 용족의 패기라면, 드래곤 포스는 말 그대로 용족의 힘 그 자체.
그에 따라 현성의 주변에 있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뻗은 그 순간.
“용격(龍擊).”
일점에 모여 있던 섬광이 쏘아지며 엘카인을 집어삼켰다.
그 위력은 과거 카이락스를 소멸시켰던 그때와 비슷할 정도.
이에 사방을 타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앙!!
용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거칠게 갈린 황야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일직선상에 있는 마족과 마수들까지 전부 소멸시킨 공격.
엘카인이 타고 있던 키메라는 이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푸스스.
눈앞에는 그저 하얀 재만이 흩날릴 뿐.
그곳에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화연이 전율을 느끼며 작게 몸을 떨었다.
“……대단해.”
처음 그를 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방금 전의 위력.
“이 정도라면…….”
혹시 엘카인을 쓰러트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죽이고 전장을 주시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도 그랬다.
이대로 끝난 게 아닐까.
하지만 줄곧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하선에 이어,
임플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아직 일러.”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현성의 눈앞에 타고 하나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1페이즈 종료.]
[곧 2페이즈에 돌입합니다.]
총 3페이즈로 이루어진 보스전 중.
이제 겨우 1페이즈가 끝난 것뿐이었다.
이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용격이 훑고 지나간 메마른 황야를 바라보았다.
“…….”
그대로 저 멀리, 자욱한 잿더미 너머.
-처억.
엘카인이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그가 자신의 몸을 살폈다.
현성의 일격을 막아냈던 오른팔을 물론이며 옆구리는 이미 소멸한 지 오래였다.
-으득.
그 사실에 엘카인의 입을 타고 이 갈리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수백 년 동안 준비했던 자신의 계획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단 하나의 인간 때문.
이어서 엘카인이 흑발의 소년을 주시했다.
처음 탑을 파괴했을 때만 해도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 그의 생각은 사뭇 달라졌다.
단순히 이번 전장만 두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여왕의 궁전에서 도플갱어 퀸이라는 패를 잃었으며,
블랙마켓에서는 골드 드래곤을 빼앗겼다.
이어서 아카데미 침공 당시에는 사룡 카이락스라는 전력을 상실했고,
기사단의 무덤에서는 그의 수족, 이키펠까지 잃었다.
후에 데이몬드의 지하성을 찾아냈을 때는 역행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세력이 움직인 거라 생각했지만.]
하선이 마족을 배신하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병력들.
뱀파이어, 엘프, 기사단. 인간.
도저히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세력들이 전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뭉쳤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그대로 엘카인이 검은 두 눈동자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네놈. 미래를 알고 계획했구나.]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모든 걸 예측하고 한 발 먼저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과거에도 그런 자들이 있었지 않는가.
예언가라는 족속이라던가, 대마법사라던가.
그들은 한발 앞서 미래를 읽고 엘카인을 막아내려 했었다.
눈앞의 현성 역시도 그런 부류겠지.
그리고 현성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자신의 앞을 막아냈다면,
이를 종합하여 엘카인은 또 다른 사실을 도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허나 그 미래가 확정됐는지는 모르고 있구나.]
만약 엘카인이 실패하는 미래가 확정되었다면 구태여 현성이 이를 막아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그는 실패하니까.
그러나 현성은 지금 이 많은 세력을 모아가면서까지 엘카인을 막으려 들었다.
그럼 그 말은 곧 전쟁이 일어날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전쟁의 결과까지는 알 수 없다는 소리.
이에 엘카인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군.]
“…….”
그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엘카인의 말이 맞았다.
그는 미래는 알고 있었지만, 그 결과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현성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엔딩이 갈리는 것처럼,
엘카인에게도 100% 실패란 없다.
즉 엘카인은 그 짧은 사이, 현성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부터 그 사실까지 간파한 것이었다.
[좋아. 그럼 그걸로 충분하다.]
그와 함께 엘카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검은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소멸한 오른팔과 옆구리가 말끔하게 재생되었다.
-처억.
그리고 엘카인이 양손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이 수백 년에 다다르는 긴 세월 동안,
미래를 읽고 자신을 막아내려 한 자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최후는 전부 이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스페리아에서,
현성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려 한다면.
[그 최후 역시도 죽음뿐이다.]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엘카인의 등 뒤에서 커다란 눈알이 소환되었다.
그런 눈은 전장의 모두를 담으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또륵, 또르륵.
검은 마기에 뒤덮여 움직이는 커다란 눈동자.
거기다 붉게 물든 실핏줄까지.
기괴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
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알레시아가 황급히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
아니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모두! 지금 당장 자리를 피해야 한……!]
그대로 눈동자가 번쩍이며, 그 빛무리가 메마른 황야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와 함께 흐려지는 현성의 눈앞,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연달아 나타나는 붉은 경고창과.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2페이즈의 돌입을 알리는 메시지창이었다.
[2페이즈에 돌입합니다.]
[그에 따라 엘카인이 무저갱을 펼칩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