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23화 (223/240)

223화 종막(6)

그대로 잠시 뒤.

모두가 지켜보고 있던 그 순간,

그들의 눈앞을 타고 도저히 믿기지 못할 풍경이 펼쳐졌다.

-챙강!

쏘아지던 소멸의 빛이 돌연 일그러지며 부셔진 것이었다.

곧이어 힘없이 공중에 흩어지는 입자들.

이에 줄곧 가만히 있던 엘카인이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

갑작스레 사라진 소멸의 빛.

그와 함께 엘카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그 모습에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동시에 그런 현성의 눈앞에는 여러 개의 메시지 창이 떠올라있었다.

[성공적으로 동쪽 탑을 파괴하였습니다. (남은 탑의 수 3/4)]

[성공적으로 서쪽 탑을 파괴하였습니다. (남은 탑의 수 2/4)]

[성공적으로 남쪽 탑을 파괴하였습니다. (남은 탑의 수 1/4)]

[성공적으로 북쪽 탑을 파괴하였습니다. (남은 탑의 수 0/4)]

그건 다름 아닌 탑을 파괴했다는 메시지.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그 다음 메시지였다.

[모든 탑을 파괴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엘카인의 능력에 일부 제약이 생깁니다.]

그대로 현성이 차고 있는 무전기를 따라, 연이어 다른 목소리들이 삐져나왔다.

[여기는 길드연합의 화연. 탑은 완벽하게 처리했어.]

[매드독. 말한 대로 탑을 무너트렸다.]

[블랙 하운드. 임무 성공.]

시작은 길드연합의 화연의 목소리였다.

이어진 목소리는 매드독의 칼스와 블랙 하운드의 케르반.

곧 쉬지 않고 기사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성님, 들리십니까? 이쪽은 엘프들과 힘을 합쳐 성공적으로 목표의 성을 장악했습니다. 그럼 다음 명령을.]

[아아, 말한 대로 완전히 박살냈어. 내가 말했지?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이에 현성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은 보나마나 레이첼이겠군.

그러면서 그가 공중에 떠있는 엘카인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스페리아>의 최종 보스 엘카인.

그는 확실히 최종 보스인 만큼, 그동안 상대해왔던 보스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펙을 자랑했다.

금지된 흑마법과 마족의 군세, 그리고 공간의 악마 레이아의 능력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사기적인 능력을 꼽자고 하면 그건 당연 레이아의 능력이었다.

두 차원의 경계를 허물뿐만이 아니라, 방금 전처럼 공간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공략법이 존재한다.

바로 곳곳에 세워진 검은 탑을 파괴하는 것.

무엇보다 전에 말했던 대로 이는 일종의 송신탑.

그 정확한 효과는 엘카인의 힘을 퍼트리는데 있었다.

후에 인간계와 마계의 완벽한 통합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탑은 엘카인이 직접 만든 것.

그렇기 때문에 탑 자체에도 그의 힘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송신탑을 파괴한다면?

탑에 불어넣은 그의 힘 역시도 소멸한다.

물론 그 정도가 대단히 크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의 능력을 ‘일부’ 제약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엘카인이 쏘아낸 소멸의 빛이 부서진 것이 그 증거.

그러니까 이는 개발사 측에서 최종전을 앞두고 설계한 일종의 공략 포인트였다.

그에 따라 현성은 사전에 엘카인이 등장할 타이밍에 맞춰.

나머지의 병력에게 탑을 박살낼 것을 지시해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대성공.

이걸로 가장 사기적인 공격 능력 하나를 막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다루는 능력 자체는 유효하지만, 엘카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계와 마계를 합치는 것.’

차원문을 유지하며 방금 전처럼 공간채로 소멸시키는 능력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엘카인이 미간을 좁히며 재차 다시 손을 펼쳤다.

-처억.

그러자 이번에는 메마른 황야를 따라, 그려지는 검은 마법진.

흑마법의 증거였다.

그대로 엘카인이 현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탑을 파괴한 선택은 칭찬해주지. 하지만 겨우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가 마법진을 발동하기 무섭게,

처음 커스 오브 언데드를 시전할 때와 같이 짙은 검은 마기가 쏟아졌다.

그런 마기는 곧 황야를 메운 마족과 마수들에게 흡수되었다.

-콰아아!

그와 함께 하선이 주춤거렸다.

주변의 마족과 마수들의 기운이 더욱 더 강해졌다.

무엇보다 이를 느낀 건 수연과 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강화형 마법인 모양이군요.”

수연이 단검을 꾹 쥐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는 마족과 마수들의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흑마법.

그만큼 이들을 상대하는 게 더더욱 까다로워진 상황이었다.

[그워어어어……!]

이에 주변의 마족들이 억지로 몸을 비집으며 하선이 친 검은 가시덤불을 뚫으려 했다.

당장에라도 안쪽으로 들어와 그들을 덮치려 하는 마족과 마수들.

드드득, 그렇게 검은 가시가 완전히 뚫리기 직전이었다.

“겨우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라고 했었지?”

현성이 엘카인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가 무전기를 움켜쥐며 히죽 웃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메마른 황야 전체에 거대한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곧 현성의 뒤로 눈부신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파아앗!

이어서 그 사이,

철컥. 드드득! 정체불명의 소리가 전장을 메웠다.

마치 거대한 공학 장치가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

그리고 마침내 빛 무리가 걷히기 무섭게.

-철컥…. 촤아아악!!

엘카인 그가 등장했을 때와 같이 허공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거기다 균열의 가장자리를 메우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기계장치.

그 숫자는 비단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씩 생성되기 시작하는 차원문.

그것은 바로 청화 길드의 마이스터이자,

황금공방의 주인 진화연이 직접 설계한 대규모 전송 장치, 일명 디멘션 게이트였다.

-치익, 치지직…!

그러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현성의 무전기를 따라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디멘션 게이트 설치 완료. 발동시작. 이제 곧 전부 한 곳에 모일거야. 아, 그리고 유하린이라고 했던가? 역시 대단하던데? 역시 성녀의 재림이라 불릴만하더라고.]

길드 연합과 함께 움직이기로 한 하린.

그녀가 제대로 제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디멘션 게이트가 발동했다는 화연의 말을 증명하듯 무전기를 따라 하나 둘씩 다른 세력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매드독, 움직인다.]

[블랙하운드, 전 암살조 투입.]

[기사단 전원, 돌입준비.]

매드독, 블랙하운드 거기다 기사단까지.

그 목소리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두두두두!

그 와중에도 주변의 마족과 마수들이 차원문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도착했어.]

무전기 너머로 듣기만 해도 든든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마족들이 차원문을 박살내려는 찰나였다.

“……건방져.”

돌연 균열 너머에서 들려오는 단호한 한마디.

그와 함께 달려오는 마족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콰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크기의 붉은 폭풍이 눈앞의 모든 걸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짙은 혈향이 느껴지며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말했지? 별 거 아니라고.”

밝게 빛나는 은발과 와인을 연상케 하는 붉은 눈동자.

그녀의 이름은 레이첼.

피의 왕국의 공주였다.

이어서 그녀의 양 옆에는 익숙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임플과 그의 반려자 란트였다.

무엇보다 그 뒤로 자리한 수백의 뱀파이어 군단.

“……긴 말은 필요 없겠지?”

그대로 임플이 그를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런 현성의 대답에 임플이 작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처억.

그리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그럼 긍지 높은 피의 종족들이여, 저들에게 알려주어라.”

그러면서 임플이 마족을 가리키며 있는 힘껏 외쳤다.

“과연 저들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말이다!!”

그런 그의 외침과 동시에,

와아아아아!! 지축을 흔드는 함성과 함께 수백에 다다르는 뱀파이어족이 일제히 마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앙! 콰직! 드드득…. 콰아아아아!!

그와 함께 전장은 한순간에 피로 휩싸였다.

붉은 창을 쥔 뱀파이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족의 가슴팍을 꿰뚫었으며,

곳곳에서는 혈마법으로 일으킨 붉은 폭풍과 해일이 몰아쳤다.

또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이어 공중에 생긴 차원문이 발동하였다.

이에 하늘에 있던 좀비 와이번들이 일제히 차원문을 저지하기 위해 쏘아졌다.

[키에에에엑!!]

하지만 그때였다.

[전군! 폭룡창 제 1식 전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차원문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쉬이익…. 콰아아아앙!!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쏘아지던 와이번들이 낙엽처럼 추락했다.

곧 자욱하게 솟은 검은 연기 속,

펄럭! 날개를 펼치는 소리와 함께 은빛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저마다 와이번에 탑승한 채, 한 손에는 랜스를 들고 있었다.

과거 기사단의 무덤에서 모리안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무기.

그들의 정체는 바로 와이번의 둥지에 있던 마지막 기사들이었다.

[전군! 적을 섬멸하라!!]

그리고 선봉에 선 기사의 외침을 시작으로,

와이번을 탄 기사들이 공중을 돌파하였다.

제 아무리 좀비 와이번이 엘카인의 마법으로 강화되었다고 한들,

데이몬드가 직접 육성한 와이번 나이트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오히려 그들이 랜스를 한 번 내지를 때마다,

콰아아아앙!! 마치 폭풍을 연상케 하는 공격이 쏘아지며 무자비하게 좀비 와이번의 육체를 찢어버렸다.

그렇게 뱀파이어와 기사단의 등장으로 인해 지상은 물론이며 공중까지.

전장의 분위기는 점차 현성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허나 이걸 가만히 보고 있을 엘카인이 아니었다.

[감히 건방지게 내 앞길을 가로막느냐!!]

엘카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기사단들을 단번에 뿌리치고 손을 펼쳤다.

그런 그의 머리 위를 따라 펼쳐지는 검은 마법진.

그대로 엘카인이 손을 휘젓기 무섭게, 메마른 황야 전체에 검은 벼락이 내리쳤다.

[죽어라, 어리석은 미물들이여!!]

-콰르르르릉!!

그러나 그의 번개가 지상의 군대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엘카인의 번개가 닿기 직전,

-파아아앗!

전장 한 가운데에서 따스한 빛 무리가 날개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침공 당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규모의 빛 무리.

그 중앙에는 금발의 소녀가 서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하린.

<이스페리아>의 주인공 유진의 여동생이자,

성녀의 운명을 타고난 등장인물이었다.

또한 그녀의 옆에 있는 화연과 다른 길드마스터들.

곧바로 화연이 양 옆에서 수십 개의 캐논을 소환하며 말했다.

“우리도 질 수 없겠지?”

이어서 그녀가 손가락을 퉁기며 외친 그때.

“전부 쓸어버려!!”

-콰아아아아!!

캐논을 따라 가공할만한 푸른 화염포가 쏘아졌다,

그 모습은 가히 그녀가 속한 길드의 이름처럼,

청화(靑火)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그 뒤를 뒤따르는 헌터들까지.

그들은 헌터답게, 빠른 속도로 마수들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중 미처 처리하지 못한 마족과 마수들이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피잇!

그들의 생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건 살수집단 블랙하운드.

그대로 어쌔신들의 리더, 케르반이 들고 있던 단검을 까닥이며 명령했다.

“죽여. 하나도 남김없이.”

그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퓻! 마치 그림자가 움직이듯,

수백의 어쌔신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숲의 아이들이여! 정화를 행할 시간이 왔다!]

그와 함께 저 멀리, 절벽 위.

엘프장로의 외침이 울려 퍼진 찰나,

공중을 타고 빽빽한 화살비가 내렸다.

-피비비비빗!!

마족들은 이에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려고 몸부림쳤으나,

엘프들의 화살이 그들을 빗나가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뱀파이어, 기사단, 길드연합부터 매드독, 블랙 하운드, 엘프까지.

수천에 다다르는 세력들이 한 곳에 모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현성이 달려오는 마족의 머리를 밟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파앗!

동시에 그가 외쳤다.

“알레시아!”

[알고 있다!]

이에 알레시아가 날개를 펼치고,

곧바로 현성이 그녀의 등위에 올라탄 채 수직상승했다.

그 둘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엘카인이 있는 공중.

-쉬이익!!

그대로 머지않아,

현성이 엘카인의 바로 앞에 다다른 순간.

그의 주먹을 타고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화르륵!!

아니 붉은 색을 넘어서, 점차 검은색으로 변하는 불꽃.

티리카의 건틀렛에 내장된 크루페돈의 불꽃이었다.

이어서 현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말했지?”

[……?!]

“그 말, 그대로 돌려준다고.”

그와 함께 현성이 주먹을 내지른 그때.

좀비 와이번과 기사단이 어지럽게 섞여있는 공중을 따라,

엘카인의 마기와 현성의 불꽃이 격돌하며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