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종막(4)
하늘을 뒤덮은 모래폭풍.
이에 좀비 와이번들은 폭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오히려 그럴수록 거세지는 바람에 피막이 찢어지며 바닥으로 추락할 뿐이었다.
-콰앙! 쾅! 콰광! 쾅!
그대로 좀비 와이번들이 떨어질 때마다,
곳곳에서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
-처억.
오직 대궁을 든 현성만이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그 모습에 저 멀리, 수연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자신이 전장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
“…….”
과거 수연 역시도 그와 싸워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미 그때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동시에 수연이 단검을 꾹 쥐었다.
‘이렇게만 간다면…….’
마족과의 전면전.
처음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보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허나 지금 이대로만 간다면, 어쩌면 정말로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그녀의 아가씨, 하선 또한 그리 생각할 터.
그렇게 수연이 결의를 다지며 하선을 항해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이 이렇게 활약하는데, 이쪽도 질 수 없었다.
“자, 그럼 아가씨. 저희도 본격적으로 가볼…….”
하지만 그때였다.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하선의 표정.
무엇보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미처 떨쳐내지 못한 불안감이 맴돌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분명 승기는 이쪽이 쥐고 있었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선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냐. 아직이야.”
그와 함께 하선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에 수연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아가씨? 그게 무슨 말…….”
연이어 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선이 전장을 주시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진짜는 지금부터니까.”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사아아, 메마른 황야를 타고 검은 마기가 안개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기가 죽은 마수와 마족들의 시체를 뒤덮은 찰나였다.
-뚜둑! 우드득…. 콰득!
검은 안개 너머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뼈가 뒤틀리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소리.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다름 아닌 죽은 시체들이 비척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이에 수연이 움찔거리며 재빨리 단검을 치켜들었다.
“이, 이게 무슨…….”
마족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가슴팍에는 검은 결정이 박혀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썩어문드러진 살점이 얼기설기 달라붙고 있었다.
[그워어어억……!]
팔 다리가 잘린 녀석들도, 심지어는 목이 잘린 마족들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머지않아,
어느새 메마른 황야 위에는 되살아난 마족들의 군세가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수는 처음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정도.
중력역전마법으로 발을 묶고 융단폭격을 퍼붓고,
하 가문의 검사들이 그 틈을 노려 전장을 헤집었던 게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커스 오브 언데드(Curse of undead).”
하선이 작게 중얼거렸다.
과거 전쟁의 광기에 취한 대마법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흑마법의 하나로, 그 효과는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것.
그런 그들을 죽이는 방법은 오직 가슴팍에 있는 검은 결정을 박살내는 것 뿐.
바꿔 말하면 그들은 검은 결정을 박살내기 전까지는,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이 되었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가장 많은 시체들이 자리한 곳은 다름 아닌 현성이 있는 곳.
그에 따라 어느새 현성의 주변은 이미 수십, 아니 수백의 언데드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
그 뿐만이 아니었다.
되살아난 마족들이 일제히 현성이 서있는 한 곳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하선이 이를 갈며 누가 말리기도 전에 앞으로 뛰쳐나갔다.
-으드득!
‘현성이 위험하다…!’
하지만 이미 그 앞은 언데드로 가득 찬 상태.
현성이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그들을 처리해야했다.
동시에 그때였다.
“아가씨, 길은 제가 뚫겠습니다.”
단호한 수연의 한마디.
동시에 그녀가 재빨리 수십 개의 단검을 날렸다.
이어서 단검을 타고 푸른빛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퓻!
수연이 신형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오직 푸른 아지랑이만이 일렁일 뿐.
그대로 전장 한 가운데를 타고 푸른 섬광이 번쩍였다.
-콰가가가각!!
그와 함께 하선의 앞을 가로막던 마족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수연의 주특기, 순간이동마법을 통한 단검술이었다.
그런 그녀는 채 불사의 군단이 반응하기도 전에 가슴팍의 검은 결정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물론 머지않아 다른 마족들이 그 틈을 채우려 들 테지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성이 있는 곳까지 가는 데는 길이 열린 그 짧은 틈이면 충분했으니까.
-콰아아앙!
곧 수연이 길을 뚫기 무섭게 하선이 땅을 박차며 그녀의 검은 마기가 온 몸을 감쌌다.
* * * * *
흑마법으로 인해 재탄생한 불사의 군단.
그리고 이는 저 멀리, 시연과 하 가문의 검사들이 모여 있는 전장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검이 머리를 꿰뚫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마족들.
[크워어어억!!]
그대로 마족이 기괴한 흉성을 내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아니 팔을 휘두르려는 찰나.
시연의 검 끝이 반짝이며 마족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피잇!
이어서 다리, 어깨, 마지막으로 가슴팍에 박힌 검은 결정까지.
동시에 시연이 검을 거둔 그때.
검은 결정이 산산조각 나며 달려들던 마족이 제자리에 고꾸라졌다.
-콰아아앙!
그와 함께 그녀의 뒤에서 푸른 검기가 폭발하며 주변에 있던 마족들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등장한 것은 바로 시연의 아버지, 하진태.
“괜찮으냐.”
진태가 검을 털어내며 물었다.
이에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하지만…….”
시연이 유독 마족들이 뭉쳐있는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방향은 방금 전 현성이 있던 자리.
정체불명의 안개가 황야를 뒤덮자마자 터진 상황이었다.
이에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현성을 도와주러 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하 가문의 가주.
진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꾸구국.
시연이 검을 꾹 움켜쥐었다.
허나 그 순간이었다.
진태가 다시금 검을 치며들며 말했다.
“가봐라.”
“……네?”
“이곳은 내가 맡겠다.”
그대로 진태가 등을 돌렸다.
이에 시연이 멍하니 진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도 잠시.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어서 짧은 감사의 인사를 끝으로,
시연이 현성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연이 앞을 가로막는 마족들을 베어내며 계속해서 속도를 올렸다.
그런 그녀의 검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점점 더 날카롭고 간결해지고 있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
시연이 검 끝에 온 신경을 쏟아 부으며 불사의 군단을 돌파해냈다.
-피잇! 채앵! 끼기긱…. 서걱!
그 결과, 마침내 현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몰려드는 마족 사이, 그는 대궁을 든 채 위를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동시에 현성이 시위를 놓은 찰나.
위로 쏘아진 붉은 화살이 돌연 공중에서 갈라지며,
수십 개의 섬광으로 변해 머리 위로 쏘아졌다.
마치 붉은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풍경.
-피비비비빗!!
궁사 클래스의 최상위 스킬, 스플릿 샤워(Split shower)였다.
그대로 주변의 마족들이 붉은 섬광에 꿰뚫려 고꾸라졌다.
허나 마족들이 쓰러지는 속도보다 몰려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현성!”
이에 시연이 일검을 그으며 그의 뒤에 있던 마족을 베어버렸다.
곧 시연을 발견한 현성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연? 여긴 어떻게…….”
그녀는 지금쯤 하 가문과 같이 싸우고 있던 게 아니었던가.
그러자 시연이 재빨리 자세를 잡으며 대답했다.
“걱정 되서 왔어. 괜찮아?”
연이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반대편에서 푸른 섬광이 반짝이며 그 사이, 검은 마기가 가시처럼 솟아났다.
-콰드드득!!
솟아오른 검은 가시는 현성을 보호하려는 듯,
그 주변을 크게 둘러쌓다.
덕분에 잠시 방어벽이 생기며, 모습을 드러낸 건 흑발의 여성과 백발의 여성이었다.
“도련님!”
“현성, 다친 데는 없어?”
그대로 둘이 재빨리 현성을 향해 달려왔다.
그 중에서도 흑발의 여성은 유독 현성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에 시연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현성의 누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그리고 그건 하선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의 옆에 있는 검은 단발의 소녀.
무엇보다 가슴팍의 문양과 허리춤의 하얀 검집.
검술명가 하 가문의 문양과 그 가주임을 증명하는 검, 동백이었다.
확실히 수연에게 하 가문의 가주 역시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시연님.”
곧바로 옆에 있던 수연이 시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련님이 위험해보여서 달려온 거죠?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수연이 하선을 바라보며 흘깃 눈짓을 보냈다.
이에 하선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연에게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아,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수연이 작게 웃으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마치 저 잘했죠? 라고 말하는 듯한 수연.
그 표정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하선이 현성을 향해 말했다.
“현성, 여기 더 있으면 위험해.”
그러자 수연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방금 전 되살아난 마족들을 말하는 거라면 확실히 위협적이지만, 이 정도는 차근차근 정리하면…….”
불사의 군단은 검은 결정을 제거하면 처리할 수 있는 만큼.
수연의 말처럼 시간이 좀 들지언정, 침착하게 정리하면 다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허나 하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네?”
그와 함께 현성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엘카인을 말하는 거지?”
하선 그녀가 현성이 위험하다고 했던 건 단순히 불사의 군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흑마법으로 인해 되살아났다면, 당연히 마법의 시전자가 있다는 소리이며,
여기서 과거 대마법사가 만든 마법을 시전 할 수 있을만한 자는 단 하나였다.
대마법사의 제자이자,
<이스페리아>의 최종보스, 엘카인.
실제로 원작의 전개에서도 그랬다.
“……맞아.”
그런 현성의 말에 하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의 군단으로 진형이 밀린 지금, 엘카인이 등장하면 전세가 불리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만큼 엘카인이 나오기 전, 우선 물러나 다시금 전열을 다듬어야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뒤로 물러나야…….”
그대로 하선이 현성의 손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그녀가 하던 말을 멈추고 세차게 움찔거렸다.
-찌릿!
동시에 현성은 물론이며,
수연과 시연을 포함한 모두가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엇보다도 현성의 앞에 떠오른 빨간 경고 메시지창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눈앞을 가득 메운 경고창들,
그리고 온 몸을 타고 느껴지는 이 감각.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대로 현성이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온다.”
-쩌저적…!
그와 함께 메마른 황야를 뒤덮은 검은 하늘을 따라,
불길한 소리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