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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20화 (220/240)

220화 종막(3)

저 멀리서 시작된 검은 그림자는 점차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림자가 움직였다.

비단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그림자.

그 모습은 과거 하선과 그 휘하에 있던 마족들이 등장하던 그때와 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그림자가 황야를 전부 뒤덮은 그 순간.

콰아아, 일렁이던 그림자가 사방으로 치솟으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름 아닌 거대한 흑염(黑炎)이 황야를 집어삼킨 모습이었다.

[그워어어어…!]

동시에 그 사이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대로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메마른 황야는 단숨에 언데드와 마수로 가득 찼다.

-펄럭!

그런 그들의 위로는 좀비 와이번이 썩어 문드러진 날개를 펼쳤다.

거기다 그 뒤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

그들은 저마다 머리에는 길쭉한 뿔을, 눈에는 번들거리는 역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진득하게 흘러나오는 검은 마기.

이는 과거 10년 전, 대변동 당시에 나타났던,

마족들의 군세였다.

“……왔군.”

그 모습에 진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대로 그가 옆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 가문을 이끌 준비가 됐느냐.”

그녀의 이름은 하시연.

하진태를 이어, 하 가문을 이끌 가주의 이름이었다.

이어서 그녀가 마족과 언데드로 가득 찬 황야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

잿빛으로 물든 하늘.

10년, 대변동 때와 같은 풍경이었다.

동시에 그날의 참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주변에는 온통 박살난 도시의 잔해와 몬스터인지 사람인지 모를 시체로 가득했다.

들리는 건 오직 절망에 찬 비명뿐이었으며,

당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박살난 도시의 잔해도, 몬스터인지 사람인지 모를 시체도.

절망에 찬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꾸구국!

그대로 시연이 자신의 검집을 꾹 쥐었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하 가문을 이끄는 가주의 증거,

동백이 들려있었으며,

그 뒤로는 수백의 하 가문의 검사들이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

시연이 저 멀리 서있는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혼자가 아니다.

현성과 함께한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나아갈 수 있었다.

동시에 채앵! 시연이 검을 뽑아들며 나지막이 말했다.

“준비. 됐습니다.”

“……좋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는 더 이상 망설임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진태가 작게 웃었다.

그가 병실에 누워있던 동안, 시연은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와 함께 무너진 지하철 사이.

처음 시연을 만났던 그날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잃지 않는 세계.

그것이 소녀의 소망이었으며,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소망을 실현할 차례였다.

“하 가문의 검사들이여! 검을 뽑아라!”

그대로 쩌렁쩌렁한 진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저히 5년이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고 믿기지 않는 우렁찬 목소리.

이에 시연의 뒤에 있던 병력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처억.

시연의 검 끝이 마족들을 향한 그때였다.

그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하 가문의 가주로서 명한다! 눈앞의 적을 섬멸하라!”

그런 시연의 외침과 동시에,

와아아아!! 수백에 다다르는 검사들이 마족들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저희도 갑시다.”

미하일의 짧은 한마디.

그와 함께 우우웅, 마나가 진동했다.

이어서 미하일이 앞으로 양 손을 뻗었다.

“……시작은 제가 열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마족과 언데드, 마수들이 즐비한 황야를 따라,

수십, 아니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대로 미하일이 마나를 끌어올리며 외쳤다.

“제 1진, 마법진 최대출력으로 전개!”

이에 마법사들의 주변을 따라 일렁이던 푸른 마나가 단번에 치솟으며,

수백 개의 마법진이 발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전에 준비한 마법진은 다름 아닌.

“리버스 그래비티 (Reverse Gravity).”

본디라면 술자가 지정한 일정 지역에 중력을 역전시키는 마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 범위가 달랐다.

무려 미하일 그를 포함한 4써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펼친 마법이었다.

그에 따라 마법의 범위는 황야 전체.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드드득!!

방금 전만 해도 황야를 메운 마족과 언데드, 마수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아니 끌려갔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들은 마법에 저항하려는 듯 몸을 비틀었으나 중력에 거스르는 건 불가능.

이에 마족과 언데드, 마수들이 한 데 뒤섞여 공중을 몸부림쳤다.

그와 동시에 미하일이 자신의 옆에 있는 이클레아를 향해 외쳤다.

“이클레아!”

“알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클레아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공중에 떠오른 마족의 군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대로 그녀가 말했다.

“제 2진, 발사!”

그리고 그때였다.

이클레아의 손을 따라 쏘아지는 한 줄기의 섬광.

과거 여왕의 궁전에서 선보인 적이 있던 그녀의 필살기.

매지컬 빔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를 이어, 하늘을 메우는 형형색색의 마법들.

다른 마법사들의 공격이었다.

그렇게 이클레아의 빔과 마법이 합쳐져 대기를 가르고 한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공중에 떠오른 마족들.

-콰가가가각!!

그대로 섬광이 마족들을 뚫고 지나가기 무섭게,

공중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그 후로도 계속되는 융단폭격을 연상케 하는 마법의 향연.

[키에에에엑!!]

그에 따라 사방에서 폭발임이 끊이지 않으며,

그 사이 마족과 마수들의 비명들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적진으로 파고든 하 가문의 검사들.

-촤아아악! 끼기긱…, 채앵!

그들이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푸른 검기가 대지를 가르며,

보라색 피가 튀어 올랐다.

그렇게 하 가문의 검사들은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기세로 적들을 베어나갔다.

제1진의 대규모 중력역전 마법을 시작으로,

제2진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진을 붕괴.

마지막으로 하 가문의 검사들이 붕괴된 진형에 들어가 남은 적들을 쓸어버린다.

그들의 전략은 보다시피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전략을 구상한건 다름 아닌 현성.

그대로 이를 지켜보던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먹혔다.’

<이스페리아>의 마지막 에피소드 종막.

여기서 전투를 수월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대규모 전투에서 승기를 가져와야 했다.

그에 따라 공략 역시 얼마나 초반에 이득을 보느냐로 갈리기 마련.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들은 공통적으로 이 전략을 채용했다.

무엇보다 처음 그 공략을 만들고, 전략을 세운 건 바로 현성.

그는 공략의 창시자답게 보란 듯이 첫 전투에서 승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분위기를 굳힐 차례.

곧바로 현성이 전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가자, 알레시아.”

그 말과 동시에 알레시아와 현성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대로 잠시 뒤.

콰아앙! 현성이 바닥을 찍으며 등장했다.

[그워어어어어!]

그러기 무섭게 현성을 향해 달려드는 언데드와 마수.

이에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쓸어버려.”

현성의 단호한 한 마디.

그와 함께 아직 공중에 있던 알레시아가 날개를 펼쳤다.

이어서 그녀의 날개 끝을 따라 펼쳐지는 두 개의 마법진.

-고오오!

오른쪽에는 광풍(狂風)을,

왼쪽에는 염화(炎火)를,

그리고 그 둘을 합친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화염의 폭풍이 현성에게 달려들던 언데드와 마수를 무자비하게 집어삼켰다.

이에 몸부림치며 불타오르는 몬스터들.

그대로 화염이 맹렬하게 회오리치며 현성 주변을 흔적도 없이 정리했다.

-푸스스.

그 끝에 남은 건 오직 검은 재 뿐.

그 광경에 주변에 있던 마족들이 시선이 일제히 현성에게 향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자는 눈앞에 보이는 흑발의 소년.

그와 함께 마족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죽여야 했다.

“죽어라!!”

그들이 저마다 검은 마기를 넘실거리며 현성의 몸을 찢어버릴 기세로 공격을 날렸다.

실제로 그들의 본능에 따른,

위험요소를 제거해야한다는 행동은 나쁘지 않았다.

허나 지금만큼은 그 판단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인벤토리에서 손을 뻗어, 그의 무기 스태프를 꺼내들었다.

-철컥.

이어서 스태프 끝이 펼쳐지며 푸른 마나가 일렁였다.

그렇게 형상을 이룬 것은 다름 아닌 망치.

그대로 현성이 양 손으로 망치를 움켜쥐고.

-부웅!

강하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드드득…. 콰아아아앙!!

그런 현성의 공격에 땅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충격파가 솟구쳤다.

고위급 마법, 어스퀘이크(Earthquake).

그 효과는 말 그대로 지진.

만약 예전의 현성이었다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현재의 그는 역행마법으로 인해 다른 클래스의 스킬들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상태.

방금 전의 어스퀘이크 또한 그로 인한 결과였다.

이에 딛고 있던 땅 전체가 박살남에 따라,

달려오던 마족들이 속수무책으로 균형을 잃고 공중을 날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자신의 스태프를 쥐었다.

-철컥.

그와 함께 재차 스태프의 모습이 변했다.

망치의 형상에서 이번에는 길쭉한 도검(刀劍)의 형태.

곧바로 현성의 검신을 따라, 심상치 않은 바람이 일었다.

-사아아.

마법사의 원소 스킬 중 하나인, 스톰(storm).

연달아 검사 클래스의 상위 기술, 일도양단(一刀兩斷).

그대로 현성이 세차게 획을 긋듯, 검을 휘둘렀다.

-피잇!

이에 순간 주변의 바람이 일제히 멎었다.

그리고 현성이 검을 거둔 때였다.

수십 개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그 사이, 날카로운 검격이 끊이지 않았다.

-콰가가가각!

마법사의 스톰과 검사의 일도양단을 합친,

듀얼 클래스 마검사의 스킬, 폭풍의 시였다.

이에 공중의 마족들이 보라색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화염의 폭풍, 지진, 거기다 방금 전의 검격까지.

전부 현성 하나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퓻!

곧 현성의 몸이 쏘아지며, 다른 마족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한 번 승기를 잡았을 때, 쉴 새 없이 몰아쳐야한다.

그렇게 판단한 그가 검을 휘두르며 마족의 목을 베었다.

-서걱!

그 후로 펼쳐진 풍경은 현성의 일방적인 무대였다.

불씨와 얼음파편이 흩날리며, 날카로운 검격과 바람마법이 팔을 찢고, 정권이 심장을 꿰뚫었다.

압도(壓倒). 그 찰나의 순간, 마족은 물론이거니.

마법사들과 하 가문의 검사들까지.

전장에 있는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상이었다.

이에 하늘에 있는 마수들마저 전부 현성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끼에에에엑!!]

땅이라면 몰라도, 제공권이라면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이어서 그 사실을 깨달은 다른 마족들이 좀비 와이번을 타고 현성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허나 그 생각이 박살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철컥.

또 다시 변하는 현성의 스태프.

그와 함께 선보인 형태는 지금껏 처음 보는 형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활, 그 중에서도 대궁(大弓)이었다.

-끼기긱…….

그대로 현성이 침착하게 시위를 당겼다.

한 달 전, 그가 한창 세력을 모으러 다닐 때.

현성은 청화길드의 화연에게도 찾아갔다.

그리고 그가 화연에게 요청한 게 바로 스태프의 개조.

기존의 형태에서 다른 무기로도 변환 가능하게 커스텀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과정에서 화연이 무기의 종료를 물었지만, 당시 돌아온 현성의 대답은 이랬다.

“전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한 사람이 모든 무기를 다룬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허나 역행마법으로 인해 웨펀 마스터라는 업적을 달성한 그에게 있어,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스트 스톰(dust storm).”

-고오오.

동시에 그의 주변을 따라,

심상치 않은 모래먼지가 일며 화살 끝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불스아이(Bullseye).”

현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궁사 클래스의 스킬 중 하나로,

무엇보다 그 효과는 필중(必中).

그에 따라 현성의 눈을 따라 붉은 빛이 일렁였다.

스킬이 발동했음을 알리는 증거였다.

그와 함께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가 표적에 정지하고.

현성이 시위를 놓은 순간이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중에 있는 마족의 머리를 꿰뚫기 무섭게,

거대한 모래폭풍이 좀비 와이번 무리를 집어삼켰다.

-콰가가가각!!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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