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종막(1)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아마 그동안 보낸 시간 중 가장 바쁜 두 달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현성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동시에 지금까지 모인 세력들이 그동안 보낸 시간이,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성 그 역시도 성장했지 않는가.
그대로 그가 자신의 눈앞에 뜬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폭풍의 창을 받아낸],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신화를 거머쥔],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새로운 주인공], [얼음무덤의 비밀을 알아낸], [악마의 진명을 부른], [철의 권7의 패왕], [거 삽질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수호자를 쓰러트린], [지나가다 벼락을], [번개를 자른], [레드 룸의 승자], [설산을 지배한], [드래곤 슬레이어], [여왕의 궁전에 발을 내딛은], [알레시아의 친우], [인간 같지 않은], [하 가문의 조력자], [아카데미의 구원자], [사룡(死龍)의 대적자], [드래곤 하트를 가진], [드래곤 하트를 완벽히 흡수한], [웨펀 마스터], [올 마스터],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른]
체력 100(MAX)
지력 85
민첩 90
행운 79
의지 84(+15)
*스킬상세
[파이어 펀치. LV10. MAX]
[얼음폭풍. LV10. MAX]
[휴먼라이트닝. LV10. MAX]
*검사스킬상세
*창술사스킬상세
*마법사스킬상세
*암살자스킬상세
.
.
.
*궁사스킬상세
*마검사스킬상세
*마창사스킬상세
특수스킬
[투신의 길. LV5. MAX]
[투신의 눈. LV4]
[삽질의 황태자. LV5. MAX]
[드래곤 피어(dragon fear)]
[드래곤 포스(dragon force)]
[용언(龍言)]
고유스킬
[게이머의 감각. MAX]
합동기
[빙혈. LV1]
[창천. LV1]
[용의 광시곡. LV1]
맨 처음만 해도 평균 3따리였던 스텟은 어느새 대략 평균 90에 다다랐다.
각 최대 스텟이 100인걸 고려하면 엔드스펙에 가까운 수치.
무엇보다도 스킬.
역행의 결과로 인해 그간의 클래스를 모두 흡수하면서, 스킬창은 너무 많아 생략될 정도였다.
거기다 히든스킬과 수많은 업적들은 어떤가.
이만한 수준이면 거의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하던 전성기 현성과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스킬의 개수만 두고 본다면 지금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무려 티리카의 비전스킬도 있으니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쉬이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
이젠 정말 최종장이었다.
그 결과는 단 두 가지 뿐.
세상의 멸망 혹은 구원.
꽤나 극단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기회는 단 한 번.
그것도 세이브와 재시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한 번의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만큼은 제 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알레시아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확실히 아니라고는 못 말하겠네.”
그가 피식 웃으며 아무도 없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아카데미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게 마족침공을 앞두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부 제 가문으로 돌아갔다.
굳이 아카데미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클레아는 간만에 사람들이 빠졌다며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제 가문으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현성이 그랬으며, 그 외 남아있는 학생들은 저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잠이 안 오나봐?”
현성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검은 단발머리의 소녀가 서있었다.
“……시연?”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하시연.
하 가문의 가주인 그녀라면 분명 가문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꽤나 의외였다.
그러자 시연이 그런 현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거든. 밤에 무단으로 외출하기.”
“뭐야. 그게.”
그런 시연의 대답에 현성이 쿡쿡 웃었다.
이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진짜인 걸?”
시연은 그동안 줄곧 학생회장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교칙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오늘이 유일한 일탈인 셈이었다.
물론 그게 마족침공 하루 전날이라는 점에서 꽤나 별난 경우긴 했다.
아마 현성이 웃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그러면서 시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도 아카데미에 남았다고 들었거든.”
“……그래?”
그와 함께 시연이 현성의 옆에 다가와 부드럽게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다면 단 둘이 아카데미에서 데이트 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시연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에 현성이 작게 움찔거렸다.
동시에 그런 현성의 모습에 시연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네.”
“당황하긴 누가 당황했대.”
“방금 그랬잖아?”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도 잠시.
그녀가 현성을 빤히 바라보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결국 마지막까지 못 들었네.”
“……뭐?”
“그때 고백에 대한 대답.”
그대로 시연이 고요한 아카데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적어도 지금쯤이면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
“그래도 괜찮아. 대답을 들려주기 전까지는 내 옆에 있어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녀의 가주 취임식 날.
하 가문의 작은 연못 앞에서 했던 약속이었다.
그와 함께 시연이 검집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 약속 아직 유효하지?”
“물론이지.”
“내일이면 그 대답을 못 들을지도 모르는데?”
두 달 전, 마족과의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듣고 난 후로,
아니 지금까지도 주변에서는 그런 말이 나왔다.
과거 10년 전 대변동의 재림이니, 인류의 존망을 둔 싸움이니.
전부 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현성도, 아버지도, 미하일도,
모두 마족에게 패배한다면 인류는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었다.
대변동의 피해는 그녀가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동시에 두려웠다.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까봐.
그래서 아카데미에 남아 현성을 보러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라면 언제나 마음이 안정됐으니까.
“글쎄. 그럴 일은 없을 걸?”
그대로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아무도 죽게 두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에 반드시 해피엔딩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완벽한 해피엔딩을.
현성이 그렇게 다짐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시연이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어느 누구라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허나 왠지 현성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선천강에서도, 불의 둥지에서도, 성 최상층에서도.
언제나, 항상 그랬듯.
그의 말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동시에 시연이 말했다.
“그럼 나도 계속 버텨야겠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야 대답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맞는 말이네.”
이에 현성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시연이 한결 편해진 듯,
작게 심호흡을 하며 철컥, 검집을 매만졌다.
방금 전까지 몸을 짓누르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역시 현성을 찾아오길 잘했다.
그러면서 시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봐.”
항상 강의가 끝나고 헤어질 때마다 하던 말이지만,
오늘따라 그 무게가 남달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현성 그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시연이 그렇게 다짐하며 등을 돌렸다.
아니 등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뭔가 할 말이라도 남은 걸까.
“……왜 그래?”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시연이 힘겹게 입을 떼었다.
“그게…, 혹시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에…….”
“헤어지기 전에?”
“아, 안아줄 수 있… 어?”
그렇게 시연이 말하는 그녀의 볼은 어딘가 부끄러운 듯,
붉게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꼭 말하고 싶었다.
왠지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냥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현성이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난 또 뭐라고.”
현성이 작게 웃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동시에 그런 시연의 귓가를 타고,
두근두근, 현성의 심장박동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을 풀며,
품 안에 있는 시연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됐어?”
그 물음에 시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중얼거렸다.
“……으, 응. 고마워.”
그러고는 시연이 아직 붉게 물든 볼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진짜로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 그럼 가볼게.”
“그래. 내일 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연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곧 시계탑에 다시 혼자 남은 현성.
“그럼 이제 우리도 돌아갈…….”
이에 현성 또한 슬슬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발견한 그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달빛 아래 반짝이는 진홍빛 머리칼.
그녀의 이름은 허풍쟁이 크로엘.
아니, 공간의 악마 레이아였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그런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제나 그렇듯,
의중을 알 수 없는 장난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말은,
‘아직 엘카인이 공간의 능력을 완전히 빼앗지 못했다는 뜻.’
그러면서 현성이 물었다.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러자 레이아가 작게 볼을 부풀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야. 그 말. 꼭 괜찮지 않았으면 하는 말 같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괜찮냐고 물었지?”
그대로 레이아가 천천히 현성을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그녀가 달빛 아래,
자신의 손을 뻗었다.
“……안 그래도 이제 한계야.”
-사아아.
앞으로 뻗은 그녀의 손이 흐릿하게 흩어졌다.
그와 함께 레이아가 나지막이 입을 떼었다.
“갈 시간이 됐다는 거지.”
“……작별인가.”
“그래. 그래도 마지막까지 혼자는 아니라 다행이야.”
그 와중에도 점차 흐릿해지는 손.
아니 손뿐만이 아니었다.
손에 이어 손목, 팔, 어깨를 타고 몸 전체가 흐릿해졌다.
“……현성이라고 했지?”
레이아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머지않았다.
그러면서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넌 꼭 원하는 결말을 얻기를 바랄게.”
“…….”
“잘 있어.”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순간.
흐릿하던 그녀의 몸이 흩어져 사라졌다.
레이아의 완전한 소멸이었다.
동시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엘카인이 공간의 악마의 힘을 완전히 흡수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스페리아>의 최종장.
에피소드 : 종막이 시작될 차례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