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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16화 (216/240)

216화 그 날의 약속(2)

“수호의 반지. 네가 가지고 있었구나.”

하선이 현성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싱긋 웃었다.

“다행이야. 혹시라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거든.”

“…….”

그 말에 현성이 반지를 작게 쥐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는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라있었다.

[수호의 반지]

[등급 : 커먼]

설명 : 유하선이 가장 아끼는 반지. 어릴 적, 그녀의 동생 유현성이 누나를 위해 만들어준 선물이다.

아이템 설명창에 따르면,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이 하선에게 준 선물.

허나 <이스페리아>에 빙의한 현성의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에 현성은 수연에게 연락해 반지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봤고,

그 과정에서 이 반지라면 그녀를 회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 이 자리, 현성이 하선의 앞에서 반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동시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반지를 기억하고 있다면,

가능성은 있었다.

“그럼 반지의 이름이 왜 수호의 반지인지도 기억해?”

현성이 하선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때 약속했잖아.”

그대로 하선이 투명한 유리벽 너머, 현성과 반지를 번갈아보았다.

그와 함께 그 날,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과거 그가 선물로 반지를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날로 기억한다.

“현성아, 하나 물어봐도 돼?”

유 가문의 저택,

그리고 2층에 자리한 하선의 방.

그곳에는 언제나 그렇듯, 현성이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아있었다.

매주 주말.

그 날은 그녀의 방에서 하선이 현성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무릎 위에 앉아있던 현성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응? 뭔데?”

하선의 물음에 현성이 동화책을 펼친 채, 빤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 하선이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번에 이 반지 보고 수호의 반지라고 했잖아. 그 이유가 뭐야?”

겉보기에는 딱히 귀하지도, 아니 오히려 조잡해 보이는 반지.

이는 얼마 전, 동생이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성은 수시로 하선을 찾아와 물어보곤 했다.

“누나, 반지는 잘 끼고 있어?”

처음에는 그저 자신이 준 선물을 확인하고픈 마음인줄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보기에는 뭔가 미묘했다.

그도 그럴게 항상 반지를 끼고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현성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하선이 가문의 일이 생겨 잠시 저택을 비우고 온 날이면,

현성은 자신이 오자마자 그녀의 손가락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세상 진지하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이다.

그러니 하선의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반지에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혹시 수연이 따로 마법처리라도 해둔건가.’

그대로 하선이 아래층에 있을 메이드 수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게 처음 반지를 줄 당시.

현성의 말로는 수연과 같이 만든 물건이라 했었지 않나.

무엇보다 그녀는 메이드임과 동시에 마법사.

그만큼 자신이 모르는 효과라도 담겨있을 수도 있었다.

그대로 잠시 뒤. 현성이 입을 열었다.

“수연이 그랬어. 마법은 무언가를 바라는 소망이 담긴 주문이라고. 그래서 반지를 만들 때 수연이랑 같이 기도했어.”

“……기도?”

“응, 언제나 누나를 꼭 지켜달라고.”

그와 함께 현성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반지를 끼고 있으면 내가 누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거야.”

그런 현성의 말에 하선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선이 작게 웃으며 반지를 매만졌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반지의 이름이 수호의 반지였던 것도,

저택을 비운 날이면 유독 손가락을 먼저 확인하던 것도,

전부 그런 이유였다.

그대로 하선이 자신의 무릎에 앉아있는 현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이지 미워할 수가 없는 동생이었다.

“그럼 앞으로도 꼭 끼고 다녀야겠다. 그래야 현성이가 날 지켜줄 수 있으니까. 그렇지?”

“응! 맞아.”

현성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하선이 결국 참지 못하고, 현성을 냅다 껴안으며 얼굴을 비볐다.

“아이구,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할까.”

“누, 누나, 나 답답해.”

“아, 몰라!”

그와 함께 현성이 잠시 저항했지만,

하선은 이때만큼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기특한 동생을 끌어안기에 바빴다.

진짜 마법이 부여되지 않았다 해도 어떤가.

이토록 귀여운 동생이 준 선물인데.

하선이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 더 강하게 현성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몰랐다.

얼마 뒤.

실제로 현성이 말했던 것처럼,

그가 그녀를 지킬 일이 올 줄은.

* * * * *

아마 아버지의 명으로 먼 지방에 다녀올 일이 생겼던 때로 기억한다.

유독 비바람이 심상치 않던 날.

일을 마치고 가문으로 돌아가던 중, 사건은 발생했다.

-끼기긱…. 콰앙!

인적이 드문 산길에 난 도로.

트럭 한 대가 검은 세단을 들이받았다.

그 충격에 세단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가드레일을 뚫고,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런 세단에는 하선과 그녀를 비롯한 유 가문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에 하선은 처음에는 단순 추돌 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아가씨! 도망…!”

-푸욱!

가문에서 하선을 보좌하던 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

시린 섬광이 번쩍이더니 그의 목을 타고 붉은 피가 치솟았다.

털썩, 그대로 비서가 차가운 바닥에 고꾸라졌다.

“……쯧.”

그와 함께 우비를 뒤집어 쓴 녀석이 작게 혀를 차며 피를 털어냈다.

곧이어 그를 따라 여기저기서 나오는 검은 그림자.

그 모습에 하선이 미간을 좁히며 뒷걸음질 쳤다.

‘제길…….’

세단을 들이박은 트럭.

그리고 그 트럭에서 나온 의문의 암살자들.

이런 정황들이 알려주는 사실은 하나 밖에 없었다.

‘……보나마나 이번 회담의 반대파겠군.’

대변동 이후.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가문들의 경쟁이 과열된 게 원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적지 않은 가문이 사라지고 바뀌길 반복했다.

또한 당시 유 가문 역시, 그 과열된 경쟁의 중심에 있었다.

아마 이번 사고 또한 그 연장선일터.

이 자리에서 차기 가주의 자리에 오를 하선을 제거하여 가문의 힘을 꺾어둘 셈이 분명했다.

“…….”

이에 하선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뒤.

눈 깜짝할 사이,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스팟.

순간이동 마법이었다.

그대로 한 놈의 배후를 잡은 하선이 재빨리 손을 들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단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콰직!

하선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동시에 이를 시작으로,

주변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비 내리는 어두운 숲 속,

하선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뚝, 뚜욱…….

피가 흐르는 복부와 팔.

거기다 온 몸에 가득한 크고 작은 상처까지.

그런 그녀의 꼴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일부 녀석들을 처리하는 건 성공했지만, 모두를 처리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하선은 우선 그들을 따돌리는 걸로 목적을 변경했다.

그와 함께 그녀가 연신 뒤를 확인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하아…….”

조금만, 조금만 더.

하선의 기억이 맞다면 머지않아 가문의 영역 안에 들어선다.

무엇보다 지금쯤이면 가문 측에서도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무사히 살아 돌아 갈 수 있었다.

“그리 멀리… 않…. 당장 찾아…, 추적을 계속… 지마!”

저 멀리서 흐릿하게 사람들의 외침과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사냥개를 푼 모양이었다.

이에 하선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지독한 새끼들…….”

그리고 하선이 풀 숲 너머로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사냥개 무리.

그대로 하선을 발견하기 무섭게, 사냥개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드득!

그와 함께 하선이 황급히 몸을 틀어 도망쳤다.

하지만 그도 잠시.

도망치던 그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멈칫.

그런 그녀의 바로 뒤에는 낭떠러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점점 가까워지는 사냥개들의 소리.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모양이었다.

이에 하선이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이제 바로 앞까지 들려오는 사냥개들의 소리, 흐려지는 시야.

이대로 끝인가.

하선이 반지 낀 손을 꾹 쥐었다.

그렇게 그녀의 눈이 감기기 직전이었다.

“누나!!”

어디선가 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하선이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는 거짓말처럼 현성이 와있었다.

그런 그는 비에 흠뻑 젖은 채, 한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다름 아닌 수연의 단검이었다.

곧바로 그가 하선을 향해 말했다.

“누나!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이제 곧 올 거야. 그 전에 상처를…….”

그러면서 현성이 피가 흐르는 하선의 상처를 막으려했으나,

상처를 막기에는 그의 손은 너무나도 작았다.

이에 하선이 애써 웃으며 현성을 달랬다.

“누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우선 자리를 피해서…….”

이곳은 너무 위험했다.

자칫하면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

그만큼 하선은 일단 현성을 데리고 몸을 숨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파앗!

풀숲 사이를 헤치고, 사냥개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녀석이 하선을 물어뜯으려는 찰나.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향해 몸을 던지는 현성이었다.

* * * * *

그 이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그저 눈을 뜨고 난 곳이 저택이었다는 사실 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수연에게 물어본 결과.

피투성이가 된 현성이 자신을 업은 채,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고 했다.

그 결과, 수연이 현성과 하선을 발견.

무사히 둘을 구출해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현성은?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저택 안 그의 침실에 있다고 한다.

“…….”

이에 하선이 곧바로 현성의 방으로 향했고,

그런 그의 침대 위에는 옅게 숨을 내쉬고 있는 현성이 있었다.

그 모습에 하선이 휘청거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생이 살았다는 안도감.

동시에 자기 때문에 동생이 다쳤다는 죄책감.

두 감정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미안해…….”

하선이 현성의 손을 쥐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반지…, 끼고 있었네?”

그가 하선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매만졌다.

그와 함께 현성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이제는 내가… 지켜준다고.”

“…….”

그 날, 현성의 방 안.

그런 그의 말에 하선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현성을 꽉 껴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 * * * *

“기억하고 있구나.”

현성이 유리벽 너머, 구속구를 낀 하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하선이 아무 말 없이 수호의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 동생이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하선은 강해져야 했으며,

그 다짐은 부모님이 죽고, 가문이 몰락했을 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랬다.

엘카인이 세상의 멸망을 이끌고 올 때도,

동생만큼은 그녀의 손으로 지켜내야 했다.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하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괜찮아.”

-스르륵.

그와 함께 줄곧 사이를 가로막던 유리벽이 서서히 내려갔다.

그대로 현성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하선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과거 그의 방 안.

현성이 그녀를 향해 했던 그때의 말과 똑같았다.

이에 하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멈칫.

그런 현성의 말에 하선이 고개를 숙였다.

안 돼. 흔들리지 마.

그녀가 그렇게 다짐하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내가 누나를 다시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었지?”

“무슨…….”

“지금 당장 믿어달라는 뜻은 아니라고,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다고. 왜냐하면 계속 기다릴 테니까.”

숲 속에서 하선을 다시 조우하던 날.

그녀가 마족과 함께하자는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때 했던 말이었다.

“나도 계속 기다릴게.”

“…….”

“그러니까 대신…….”

현성이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싱긋 웃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내 옆에서 지켜봐줘.”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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