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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14화 (214/240)

214화 기사단의 무덤(12)

“일단은 아카데미로 돌아가야겠지.”

[자네의 누나 때문인가?]

“……그것도 있고.”

알레시아의 말에 현성이 대답했다.

우선은 아카데미로 돌아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정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유하선.

그녀에게서 마족과 엘카인의 행보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물론 그게 생각대로 잘되리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볼 생각이었다.

‘……이대로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니까.’

전에 말했듯이 만약 정보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 돌아오는 이득은 상상이상.

그만큼 우선 그녀를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그 주체가 현성이라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제단의 정리를 마친 모양인지,

데이몬드가 현성과 알레시아를 향해 다가왔다.

[다들 여기 있었군.]

그러면서 그가 현성의 몸을 이곳저곳 살펴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역행마법의 부작용은 없는 모양이군. 불편한 부분은 없나?]

“예, 문제없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흔쾌한 현성의 대답에 그가 안심이라는 듯 말했다.

아마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이미 나타나고도 남았을 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다면, 앞으로도 괜찮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역행 중 보여준 그 모습.’

일제히 빛을 발하는 구슬들과 환골탈태를 이룬 현성.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문헌에 적힌 대로 그가 진정 영웅의 운명을 타고났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갈 예정인가?]

“네, 이제는 더 남아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현성의 말이 맞았다.

이곳에 온 목적은 전부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아니 오히려 드래곤 하트의 완벽한 흡수뿐만이 아닌,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성장을 이루었다.

무려 웨펀 마스터와 올 마스터의 달성.

거기다 환골탈태까지.

이 정도면 종막에 필요한 스텟은 거의 갖췄다고 봐도 무방했다.

“전부 데이몬드님 덕분입니다.”

현성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데이몬드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자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네.]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미래를 먼저 덧씌워 육체의 기반을 만들고,

나머지 미래를 전부 받아들인다.

전부 현성의 머리에서 나온 방법이었다.

만약 그 방법이 아니었으면 역행은 필시 실패했을 터.

데이몬드는 그저 기회를 만들어줬을 뿐.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 현성이었다.

그와 함께 데이몬드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가기 전에 잠시 전해줄 게 있는 데 괜찮겠나?]

“……전해줄 것 말입니까?”

[그래.]

동시에 그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이어서 검은 마법진이 펼쳐지며 데이몬드가 그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빛바랜 목걸이와 낡은 책이었다.

[받게나.]

그대로 데이몬드가 현성을 향해 목걸이와 책을 건넸다.

이에 현성이 둘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건?”

[와이번의 둥지. 그곳에 내가 키운 기사단들이 있다네. 원래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육성해둔 병력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자네에게 맡기는 게 더 나을 거 같군.]

그러면서 데이몬드가 목걸이를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그 목걸이라면 녀석들도 군말 없이 따를 것이야.]

[이런 걸 제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데이몬드가 작게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네가 아니면 누구에게 맡기겠나. 그리고 그 책은 그동안의 이야기가 담긴 내 일기장이네. 언젠가 꼭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 후에 아카데미에서 돌아가서 읽어보게나.]

“……감사합니다.”

그대로 현성이 그의 목걸이와 일기장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알레시아가 데이몬드를 향해 물었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거지?]

그런 알레시아의 말에 데이몬드가 자신의 성을 흘깃 바라보았다.

모리안도 자신의 사명을 지키고 약속을 끝마쳤으며, 원하던 대로 티리카의 후예도 만났다.

그 역시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자네만 괜찮다면 우리와 같이…….]

하지만 알레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

데이몬드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배려는 고맙지만,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네.]

아무리 광증에 빠져있을 때라고는 하나, 그의 손에 죽어간 생명이 얼마인가.

자신을 지키겠다는 사명 아래, 죽어간 기사가 얼마인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가기에는 희생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난 끝까지 이곳에 남겠네.]

그게 데이몬드에게 허락된 마지막 속죄였다.

그러면서 그가 현성과 알레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라도 다른 마족이 찾아와 역행마법을 노릴 걱정은 하지 말게나. 그동안의 연구 자료와 역행에 관한 건 전부 소각시켰으니.]

방금 전 정리할 게 있다는 말은 그런 말이었나.

현성이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데이몬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직접 전해줄 수 있겠군.]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우득, 그가 돌연 자신의 갈비뼈 사이에 손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잠시 뒤.

-처억.

데이몬드의 손에는 보라색 빛을 내뿜는 보석이 들려있었다.

다름 아닌 리치의 심장이라 불리는 라이프 베슬이었다.

이어서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라이프 베슬을 힘껏 움켜쥐었다.

-콰직…. 파스스.

[데이몬드, 자네 무슨…!]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데이몬드의 라이프 베슬이 산산조각 나며 바스러져 내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펼친 데이몬드의 손바닥위에는 라이프 베슬대신 금색의 조각이 빛나고 있었다.

익숙한 금색의 조각.

이는 다름 아닌 티리카의 영혼조각이었다.

그대로 데이몬드가 현성을 향해 조각을 건넸다.

[받게나. 자네에게는 그 자격이 있으니.]

“…….”

그렇게 현성이 금색의 조각에 손을 뻗기 무섭게,

조각이 빛을 내뿜으며 그에게 흡수되었다.

그 모습에 데이몬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제 주인을 찾아갔군.]

그런 데이몬드의 모습은 어딘가 후련해보였다.

허나 라이프 베슬은 리치의 심장이자 근원.

그걸 파괴해버렸으니, 이제 그는 더 이상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데이몬드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택한 선택.

이에 알레시아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겠는가.]

[어차피 진즉에 죽었어야할 몸이었네.]

데이몬드가 초연하게 대답했다.

부인도, 딸도, 동료들도 전부 죽은 마당에 무엇이 그리 아쉬우리.

티리카의 후예를 만나 전할 걸 모두 전한 지금.

죽지 못해 부지하고 있던 목숨을 계속 쥐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놓아줄 때가 왔다.

그대로 데이몬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무엇보다 당장 죽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의 말대로 리치는 라이프 베슬을 파괴했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더 이상 불멸의 존재가 아닌, 죽음이 허락된 존재로서,

그간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일 뿐이었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그런 데이몬드의 말에 알레시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를 무슨 자격으로 막겠는가.

오히려 그를 보내주는 게, 그를 위한 일이었다.

[만나서 반가웠네. 데이몬드여.]

알레시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데이몬드가 대답했다.

[나 역시 그랬다네. 알레시아, 그리고…티리카의 후예여.]

데이몬드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떠날 시간이 왔다.

그와 함께 알레시아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럼 잘 있게나.]

이에 데이몬드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현성과 알레시아의 주변에 푸른 마나가 일렁였다.

공간마법의 발동을 알리는 전조였다.

그대로 머지않아.

-파아앗.

푸른 빛 무리가 솟아오르며, 둘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졌다.

그리고 둘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지하성에는 오직 데이몬드 그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

적막감이 맴도는 지하성.

데이몬드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생전 모리안이 가지고 있던 폼멜이었다.

[드디어 따라갈 수 있겠구나. 모리안.]

그가 폼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눈에 타오르고 있던 붉은 안광이 꺼졌다.

* * * * *

현성이 기사단에서의 무덤에서 아카데미로 돌아오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카데미에 위치한 그의 기숙사.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직후.

그는 곧바로 교장 미하일과 이클레아 교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공유했다.

과거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이키펠이 이번에는 직접 움직였다는 것부터.

와이번의 둥지에 기사단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까지.

그리고 그중에는 현성의 누나, 하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에 아카데미는 우선 하선을 임시 구속시키기로 하였다.

아무리 현성의 누나이자 인간이라고는 하나,

지금껏 마족에게 붙어있던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잠정적 위험 대상.

하선에게 붙은 낙인이었다.

물론 그만큼 아직 그녀의 처우에 대해서는 보류상태에 들어갔으며,

대부분의 의견은 정보를 얻어내는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녀가 호의적으로 나오는 건 오직 현성 뿐.

그 나머지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며, 입 하나 뻥끗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억지로 입을 열게 하다 역으로 당한 인원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결과. 사실상 현성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갇힌 곳에 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로군.]

알레시아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현성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둔 채.

펜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오늘도 가볼 생각인가?]

최근 현성은 계속해서 하선과 접촉하며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입을 여는 건 현성 앞에서 뿐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알레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스페리아>의 전개상.

기사단 에피소드가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카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이키펠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다 그런 그가 죽었다면,

엘카인 역시도 지금 당장 움직인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아니었다.

지금 현성이 불안함을 느끼는 원인 역시 이곳에 있었다.

지금껏 알고 있던 정보로는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섣불리 확정지었다가는 계획이 꼬일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다고는 하지만…….’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하선을 찾아가는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만약 그녀에게서 엘카인이 언제 움직인다는 정보만 얻어도 그만큼의 준비기간이 생기는 거니까.

‘아카데미에서도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

처음에는 아카데미 측도 현성의 의견과 같이 정보를 얻어내자는 쪽으로 갔으나,

이 이상 수확이 없다면,

하선이라는 위험대상을 계속 살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이스페리아>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라도,

하선을 위해서라도,

그게 맞는 길이었다.

[현성. 시간이 됐다.]

그와 함께 알레시아가 말했다.

어느새 하선과 면회를 가질 시간이 찾아왔다.

이에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이 말했다.

“가자. 알레시아.”

그대로 현성이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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