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기사단의 무덤(8)
-우드득!
그대로 데이몬드의 뼈가 으스러지며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에 순간 데이몬드의 눈을 타고 당황한 기색이 흘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감히……!]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기 무섭게 데이몬드가 주먹을 내질렀다.
방금 봉인에서 풀려났다고 믿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
이미 그는 완전한 리치화가 진행된 상태.
그만큼 데이몬드의 능력치는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때였다.
-콰드드득…!
현성이 날아오는 데이몬드의 주먹을 붙잡았다.
앞서 말했듯 그는 이미 인간을 초월하였다.
허나 데이몬드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눈앞의 흑발의 소년 역시도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하다는 것.
물론 6퍼센트밖에 불과하나, 그는 사룡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만큼.
보통 인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꾸구국!
데이몬드의 주먹을 붙잡은 것이 그 증거.
이에 그의 안광이 재차 번뜩이며 턱뼈를 움직였다.
[네놈…. 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드래곤의 기운인가?]
데이몬드가 현성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자신의 손목에 달린 해골 손을 거칠게 털어내며 작게 조소했다.
“그럼 뭐 어쩌게?”
[네놈은 실험할 가치가 충분하겠군.]
“글쎄. 할 수 있으면 해보던지.”
-화르륵…. 콰아아앙!
그런 그의 말에 현성이 재차 폭발을 일으키며 거리를 벌렸다.
그대로 데이몬드와 대치하고 있는 현성.
곧 그가 자신의 앙상한 손을 쥐었다 펼치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다시 봐도 신기한 마법이군.]
원리를 파악할 수 없는 독특한 마법구조와 드래곤의 피가 섞이기까지.
데이몬드의 입장에서 현성은 그야말로 구미가 당기는 실험체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현성이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현성, 괜찮나?!]
동시에 어느새 현성의 곁에 온 알레시아가 재빨리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난 괜찮아.”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것만 빼고는 문제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알레시아가 왠지 모르게 현성을 주시하고 있는 데이몬드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자네 또 무슨 짓 했는가.]
“아무것도 안 했어.”
[왠지 저번에 누나라 했던 자가 자네를 바라볼 때와 비슷한 눈빛이네만.]
물론 조금 다르긴 했지만, 은은한 집착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에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몰라. 알 게 뭐야.”
그의 누나 하선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다만,
해골에게서 받는 관심이라면 이쪽에서 사양한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데이몬드를 바라보았다.
“…….”
그대로 그가 품속에 있는 폼멜을 꾹 쥐었다.
모리안의 말대로라면 데이몬드의 봉인을 풀었을 때.
머지않아 모리안의 경우와 같이 특수 이벤트가 발생했어야 했다.
허나 이번에는 아무런 메시지창도 나타나지 않고 곧바로 전투에 진입했다.
물론 그렇다고 모리안의 대사가 거짓말은 아닐 터.
역시 모리안의 죽음으로 변수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뭔가 다른 조건이 존재하는 건가.’
변수가 발생했긴 했지만,
그렇다고 데이몬드의 특수 이벤트까지 날아가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아마 그가 모르는, 아직 충족하지 못한 다른 조건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에 현성이 그동안 특수 이벤트가 발생한 상황을 되새겼다.
얼음무덤에서의 헌리스의 영혼.
불의 둥지에서의 크루페돈.
그리고 블랙 마켓에서 만난 알레시아와 묘지기 모리안.
전부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을 소지하고 있을 때 발생한 특수 이벤트였다.
허나 그도 잠시.
‘좀 더 정확히는 상대가 건틀렛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라고 하는 게 맞겠지.’
현성이 알레시아를 흘깃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데이몬드와 전투에 진입한 이상.
어느 쪽이던 이벤트 발생의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데이몬드가 건틀렛의 존재를 인식하든,
폼멜의 존재를 인식하든.
아니면 두 개를 동시에 인식하든.
우선은 특수 이벤트가 발생하는 조건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눈앞을 따라 금색의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
<기사왕 티리카의 전설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티리카의 의지를 이을 자격을 충족하였다.>
퀘스트 내용
-스킬 : 투신의 길 사용하기. (완료)
-티리카의 업적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으시오. (진행 중)
-첫 번째 업적 : 폭주한 불의 악마 크루페돈을 격퇴하시오. (완료)
-두 번째 업적 : 골드 드래곤 알레시아와 조우하기. (완료)
-세 번째 업적 : 데이몬드에게 자격을 인정받으시오. (진행 중)
보상 : 티리카의 비전 스킬.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간만에 보는 익숙한 히든 퀘스트 창이었다.
무엇보다 중간에 추가된 새로운 문장.
그곳에는 데이몬드에게 자격을 인정받으라고 적혀있었다.
‘자격의 인정이라…….’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크루페돈 격퇴나 알레시아를 조우하라는 그동안의 업적과는 달리.
직관적인 조건이 달려있는 업적이 아니었다.
그대로 잠시 뒤.
현성이 작게 웃었다.
방금 전 히든 퀘스트 창으로 확실해졌다.
일단 현성 그가 가지고 있는 자격.
이는 모리안이 말했듯.
기사왕 티리카의 후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틀렛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특수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자격이란 간단했다.
단순히 건틀렛의 소유자가 아닌, 기사왕 티리카의 후예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내라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곧바로 현성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데이몬드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지?]
“글쎄.”
동시에 현성이 주먹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보면 알 거야.”
그와 함께 현성의 신형(身形)이 데이몬드를 향해 쏘아졌다.
순간 그의 몸이 흩어질 정도로 빠른 속도.
이에 데이몬드가 재빨리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길을 따라 바닥에 검은 그림자가 깔렸다.
머지않아 그림자 안에서 기어 나오는 스켈레톤과 좀비.
과거 아카데미 상공에서 펼쳐졌던 지옥의 문과 흡사한 기술이었다.
[그워어어억…!]
허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공을 메우는 크고 작은 검은 마법진.
그 사이에서 검은 불꽃과 사슬, 창이 한데 뒤섞여 쏟아졌다.
바닥에는 언데드들이,
위에는 수십 개의 마법들이.
도저히 아무런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욱 더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언데드와 쏟아지는 마법들이 현성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투신의 길.”
현성이 입을 열었다.
동시에 눈앞의 시간이 멈췄다.
아니 멈췄다고 착각할 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그대로 느리게 흐르는 찰나의 시간 속.
티리카의 형상과 현성의 모습이 겹쳐진 그때였다.
빽빽하게 막힌 눈앞, 그곳을 따라 보이지 않던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아아.
어느 곳에 발을 내딛어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최적의 경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
현성의 발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언데드.
당장에라도 그를 뚫을 기세로 날아드는 검은 창.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그때, 현성의 발이 움직였다.
-스팟.
그가 좀비와 스켈레톤 사이를 절묘하게 뚫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현성이 몸을 비틀기 무섭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있던 곳에 검은 창이 박혔다.
[그워어어억!]
빗나간 창은 애꿎은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직후, 다시 창이 날아왔다.
도저히 피하지 못할 각도.
하지만 현성은 멈추지 않았다.
피하지 못할 창은 튕겨내면 그만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주먹을 내지르며 창을 박살 냈다.
-콰드드득!
그 사이 양쪽에서 검은 사슬이 현성의 팔을 포박했다.
그러기 무섭게 쏘아지는 화염구.
이에 현성의 팔을 따라 검은 화염이 타올랐다.
-화르륵.
티리카의 건틀렛에 내장된 악마의 불꽃이었다.
그런 검은 불꽃은 사슬을 단숨에 녹여버리고,
포박을 풀어낸 현성이 쏘아지는 화염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화염구가 소멸되며 그 앞으로 자욱한 먼지가 솟아올랐다.
동시에 그 사이.
모습을 드러낸 현성이 거침없이 데이몬드를 향해 질주했다.
-채앵…. 끼기긱! 콰직! 콰드득!
검은 창을 튕겨내고, 좀비의 공격을 피하며 사슬을 끊어낸다.
곧바로 쏘아지는 화염구를 소멸시키고 달려오는 현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투신(鬪神) 그 자체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말 그대로 완벽한 타이밍이 만들어낸 투신의 길.
그렇게 찰나의 시간.
언데드를 비롯한 모든 마법을 파훼한 현성이 데이몬드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 투신의 눈을 발동했다.
이에 곧 모여드는 푸른 입자들.
그리고 현성이 주먹을 내지른 그때.
일점에 응축시킨 일격이 쏘아졌다.
“용격(龍格).”
그대로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상케 하는 공격이 데이몬드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앙!!
고열의 섬광이 터져 나오며 지하성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푸스스.
하얀 재가 흩날리는 왕좌.
그런 현성의 앞에는 데이몬드가 서있었다.
방금 전의 공격에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현성이 노렸던 건 그게 아니니.
동시에 그때였다.
[이건 설마…….]
데이몬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띠링!
그리고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현성의 눈앞을 타고 메시지 창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데이몬드가 당신의 자격을 인정합니다.]
[업적 획득 : 데이몬드의 인정을 받은]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
<기사왕 티리카의 전설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티리카의 의지를 이을 자격을 충족하였다.>
퀘스트 내용
-스킬 : 투신의 길 사용하기. (완료)
-티리카의 업적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으시오. (진행 중)
-첫 번째 업적 : 폭주한 불의 악마 크루페돈을 격퇴하시오. (완료)
-두 번째 업적 : 골드 드래곤 알레시아와 조우하기. (완료)
-세 번째 업적 : 데이몬드에게 자격을 인정받으시오. (완료)
보상 : 티리카의 비전 스킬.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이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앞서 말한 자격, 그러니까 기사왕 티리카의 후예의 증명.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티리카의 비전스킬.’
오직 티리카만이 쓸 수 있던 그 기술.
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쓸 수 없던 유일의 스킬이자,
현성 그가 티리카의 후예라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어찌 네놈이 티리카의 기술을…….]
“데이몬드님.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그대로 현성이 그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런 손바닥 위에는 모리안이 전해준 폼멜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멈칫.
데이몬드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어서 그의 머릿속을 따라 휘몰아치는 기억.
주변에는 수십의 기사들이 서 있었다.
-처억.
무엇보다 그 중앙.
왕좌에서 내려온 한 남자가 무릎을 꿇은 기사에게 다가가 하나의 물건을 하사했다.
폼멜, 눈앞의 장식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에 기사는 폼멜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이며 충성을 맹세했다.
기사의 맹약을 맺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사가 얼굴을 들었다.
흑갈색의 머리칼, 밝게 빛나는 녹안.
그의 이름은 데이몬드.
과거 왕을 지키던 기사이자,
지금은 리치로 변한 자의 이름이었다.
동시에 데이몬드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내질렀다.
[큭…! 크아아아악!!]
그런 그의 주변으로 검은 마기가 휘몰아쳤다.
전하, 기사의 맹약, 폼멜.
그때의 풍경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뚝. 데이몬드의 비명이 멈추었다.
그대로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폼멜을 바라보았다.
낡은 폼멜.
봉인에 들기 전, 자신이 모리안에게 건네준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앞에 있는 흑발의 소년.
[……자네가 티리카의 후예로군.]
방금 전에 휘몰아치던 검은 마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광기가 느껴지던 붉은 안광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데이몬드가 입을 열었다.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데이몬드. 이 성의 주인이자, 과거 기사단을 이끌던 수장일세.]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리치 데이몬드가 폼멜을 알아봅니다.]
[조건을 달성함에 따라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리치 데이몬드의 상태가 적대적에서 우호적으로 변경됩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