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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05화 (205/240)

205화 기사단의 무덤(3)

불청객이 등장했다는 모리안의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은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곳.

당장 현성도 공간의 악마 레이아의 사념체를 통해 왔지 않는가.

그만큼 이곳에 올 수 있는 존재는 한정되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폭발을 일으킬 녀석들은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었다.

즉, 이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추측할 수 있는 녀석들은 단 하나 뿐이었다.

“……마족.”

현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알레시아가 재빨리 마법진을 펼쳤다.

곧 알레시아의 발밑에 그려지는 푸른 마법진.

순간이동 마법진이었다.

물론 알레시아는 아직도 온전히 힘을 되찾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 거리는 문제없었다.

[현성…!]

“알고 있어.”

그대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현성과 모리안이 일제히 마법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둘이 마법진 위에 선 그 순간.

마법진을 따라 빛이 폭사되며 푸른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파아아앗!

머지않아 푸른빛이 걷히고.

현성이 이동한 곳은 다름 아닌 처음 그가 포탈을 통해 도착한 공터였다.

그리고 그런 현성의 앞에는 로브를 뒤집어 쓴 수십의 인형(人形)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늦은 손님맞이로군요.”

그러면서 맨 앞에 있던 녀석이 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마족임을 증명하는 선명한 역안과 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로 그가 뿔을 매만지며 꾸벅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이키펠. 엘카인님을 모시는 마족입니다.”

이키펠.

과거 하선의 편지에서 언급되었던 마족의 이름이자,

얼마 전 유령극단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키펠의 소개와 함께 그의 옆에 있던 자 역시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누나?”

현성의 누나.

유하선이 서있었다.

그리고 놀란 건 그녀도 마찬가지.

“현… 성?”

하선이 움찔거리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기쁜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현성아.”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무엇보다도 차갑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현성과 똑 닮은 모습이었다.

“아는 사이인가?”

이에 이키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하선이 현성을 향해 손을 펼치며 말했다.

“응. 내 동생.”

“……동생?”

그대로 이키펠이 현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가 순간 미간을 구겼다.

그래, 분명 여왕의 궁전에서 도플갱어 퀸을 쓰러트렸던 그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얼마 전.

아카데미 침공 당시, 유령극단을 통해 전해 들었던 녀석이 확실했다.

그와 함께 이키펠이 으드득,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내가 공들여 만든 꼭두각시를 박살낸 개자식이었군.”

유진을 말하는 거였다.

그와 동시에 이키펠의 옆에 있던 하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대로 그녀가 이키펠을 향해 나지막이 경고했다.

“개자식이라니. 말조심해. 내 손에 갈기갈기 찢어죽기 싫으면.”

그러고는 하선이 곧바로 현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미안해. 현성아. 내가 대신 사과할게.”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유하선. 그녀는 평소에 차갑고 무뚝뚝하기 그지없었지만.

방금 전과 같이 동생에 관한 이야기라면 유독 격하게 반응하고는 했다.

특히 동생에게 있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녀는 어김없이 지금처럼 강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는 현성에게 있어 간만에 봐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

허나 하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연신 작은 미소를 띠며 살갑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이런 게 운명이라는 걸까?”

그렇게 말하는 하선에게서는 어딘가 이유모를 소름이 끼쳤다.

그 모습에 이키펠이 혀를 찼다.

“……쯧.”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년이었다.

기껏 해봐야 운 좋게 엘카인님의 눈에 띤 인간주제에 건방지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유현성이라는 그 망할 놈의 누나였다니.

“이래서 인간은 안 된다니까.”

그가 자기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대로 이키펠이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방해할 셈이냐?”

여왕의 둥지부터 아카데미까지.

사사건건 방해하는 꼴이 여간 거슬렸던 인간이었다.

그러자 현성 대신 그 옆에 있던 모리안이 대답했다.

“물러나라.”

“……뭐?”

“물러나라고 했다.”

그의 사명은 이곳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상대가 마족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동시에 그런 모리안의 말에 이키펠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핫, 이거 손님맞이가 엉망이군. 우리가 이곳을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말이야.”

그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얼마 전,

마족들이 뭔가를 찾는 것 같다는 이클레아의 말을 떠올렸다.

그랬다. 마족들이 찾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미지의 땅.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이키펠이 한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너희들보다는 리치를 만나고 싶은데 혹시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이키펠의 말에 모리안이 흠칫거렸다.

그들의 목적은 다름 아닌 리치 데이몬드.

동시에 그런 모리안의 반응에 이키펠이 히죽 웃었다.

“보아하니 제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군.”

“…….”

“너무 경계하지 말라고. 안내만 해주면 넌 살려주도록 하지.”

그러면서 이키펠이 현성을 흘깃 바라보았다.

“……넌 안 될 거 같지만 말이지.”

현성은 이대로 보내기에는 거슬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이에 이키펠은 이참에 오늘 이 자리에서 그를 제거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허나 그러기 무섭게 하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죽이는 건 안 돼.”

“……엘카인님의 뜻에 거스를 생각인가?”

그러자 하선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현성을 죽이는 게 어딜 봐서 엘카인님의 뜻이지? 어디까지나 네 독단적인 판단 아닌가?”

“닥쳐라. 우리 계획에 방해하면 죽인다.”

“죽이는 건 안 된다고 했어.”

그와 함께 하선의 주위로 검은 마기가 넘실거렸다.

그 모습에 이키펠이 미간을 와락 구겼다.

“그럼 어떻게 할 셈이지? 이대로 곱게 보내주기라도 하란 말인가.”

“…….”

그의 말에 하선이 현성을 바라보았다.

이키펠의 성격상.

지금도 많이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현성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잠시 뒤로 미뤄야할 거 같았다.

그대로 하선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진 않아.”

“그럼?”

“내가 알아서 하지. 어차피 안 그래도 동생도 언젠가 엘카인님에게 소개할 생각이었어.”

그러면서 하선이 싱긋 웃으며 현성을 향해 말했다.

“저번에는 기회가 안됐지만, 오늘은 좀 다를 거야. 그러니까…….”

하선이 손을 뻗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랑 같이 가자. 현성아.”

그런 하선의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유진을 만난 하린이 이런 기분이었군.

이것 참 여러모로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럼 저쪽은 상대가 정해진 거 같고.”

이키펠이 하선과 현성을 번갈아보며 모리안을 향해 말했다.

“넌 어떻게 할 거지? 앞서 말했듯이 순순히 안내해준다면 살려줄 생각도 있…….”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죽음뿐이다.”

그대로 모리안이 이키펠의 말을 자르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이키펠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놈이나 저놈이나…….”

짜증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도 잠시.

이키펠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 그럼 원하는 대로 해주지.”

그런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달리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키펠이 모습이 순간 흩어지더니.

곧바로 모리안을 향해 쇄도하였다.

-스팟!

이에 모리안이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이키펠이 히죽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막을 게 아니라 피했어야지.”

동시에 그런 그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얼굴 없는 극단이 소환되었다.

악몽의 지휘자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이키펠의 능력,

유령극단이었다.

그대로 끼기긱, 소름끼치는 바이올린의 선율을 시작으로 극단의 연주가 모리안에게 쏘아졌다.

연주로 그의 움직임을 멈추고 단번에 끝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알다시피 극단의 연주는 즉발.

현성이 가지고 있는 검신 하신우의 검집처럼 특수한 아이템이 아니면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허나 이키펠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눈앞의 노인이 이곳을 지키는 마지막 기사라는 것.

-처억.

유령극단이 소환되고 연주를 시작한 그 짧은 찰나의 시간.

어느새 모리안의 손에는 거대한 검은 랜스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가 랜스를 앞으로 내지른 그때였다.

“폭룡창 제 1식. 광풍.”

모리안의 단호한 한마디와 함께 그의 랜스를 따라 거센 폭풍이 일었다.

-콰가가각!!

그대로 이키펠은 물론이며, 그 뒤에 있는 유령극단을 향해 쏘아지는 일격.

그런 모리안의 공격은 채 선율이 그에게 닿기도 전.

눈앞의 모든 걸 쓸어버렸다.

-사아아.

그렇게 머지않아.

거센 폭풍이 지나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령극단은 이미 소멸한지 오래.

그곳에는 오직 흉하게 갈린 대지가 자리할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중간보스 묘지기 모리안의 힘.

-푸스스.

곧 자욱한 먼지가 걷히고 그 사이에서 이키펠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는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너덜거리는 왼팔.

“…….”

모리안의 공격을 막아내려다 입은 상처였다.

그 모습에 모리안이 조금 전,

이키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막을 게 아니라 피했어야지.”

그와 동시에 으드득, 이키펠의 입을 타고 이빨 갈리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감히 인간 주제에……!”

그대로 이키펠이 거칠게 자신의 왼팔을 꺾었다.

그러자 뼈가 뒤틀리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도 잠시.

“정정하지. 네놈 역시도 죽여주마.”

이키펠이 멀쩡해진 왼팔로 주먹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선이 현성을 향해 말했다.

“……우린 저럴 필요 없어.”

“그것 참 듣던 중 고마운 말이네.”

“그러니까 순순히 잡혀줄래?”

하선이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에 현성 역시 피식 웃으며 손을 펼쳤다.

곧 그런 그의 손바닥을 타고 타오르는 붉은 화염.

-화르륵.

“미안. 그건 좀 힘들 거 같네.”

“유감이네.”

현성의 대답에 하선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주변으로 넘실거리는 검은 마기.

그대로 하선의 팔을 따라 검은 마기가 모여들었다.

-쿠드득!

마치 거대한 괴물의 팔을 연상케 하는 모습.

동시에 그녀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며 싱긋 웃었다.

“미안, 현성아. 조금 아플 거야.”

그 모습에 현성 역시 히죽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곧 그런 그의 팔을 휘감으며 솟아오르는 강렬한 불꽃.

“미안. 조금 뜨거울 거야.”

그대로 현성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렇게 그의 불꽃과 하선의 마기가 부딪힌 순간.

둘 사이를 타고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콰아아아앙!!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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