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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01화 (201/240)

201화 허풍쟁이 크로엘(1)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크로엘의 연주가 끝난 직후.

벤치에 앉아있던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연주 잘 들었어.”

현성이 작은 박수와 함께 말했다.

그러자 크로엘이 싱긋 웃고는 우쿨렐레를 고쳐 잡았다.

“이거 관객이 있는 줄을 몰랐는걸? 아무튼 고마워.”

그녀가 마치 중세시대의 악단이라도 된 것처럼,

교복치맛단을 잡으며 인사했다.

이에 현성 역시 작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만나서 반가워. 크로엘.”

“어머, 내 이름을 알고 있었나보네?”

현성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크로엘의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녀가 들고 있는 우쿨렐레를 가리켰다.

“매일 아침마다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학생은 흔하지 않으니까.”

허풍쟁이 크로엘.

그녀는 앞서 말했듯이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npc중 하나로,

매일 아침 이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그 이명만큼이나, 그녀는 말을 걸때마다 학생에 불과한 주제에 왕년에 자기가 드래곤을 잡았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떨고 다니는 개그성 캐릭터였다.

심지어 말을 걸때마다 그 래퍼토리가 달라졌다.

언제는 드래곤을 잡은 게 아니라, 그저 1학년 때 본 것에 불과하다는 둥.

실제로 자기 기숙사 서랍에는 드래곤의 이빨이 있다는 둥.

하여간 당장 이런 무용담부터 밤12시에 아카데미의 석상이 움직인다는 잡소문까지.

크로엘은 아카데미 곳곳에 별별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헛소문 중에는 전부 거짓만 섞여있던 건 아니었다.

크로엘의 이야기 중에는 드물게 사실이 존재했으며, 덕분에 현성도 그 덕을 본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허수아비 단련법.

혹시 그가 공개대련을 앞두고, 스텟을 올릴 때가 기억나는가?

그러니까 지금 같은 피지컬이 아닌 스텟 평균 고작 3따리인 삼류 악역 시절 말이다.

‘……그때가 하루 이틀 전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당시의 현성은 스텟을 올리기 위해 굳이 최신식 설비가 마련된 신식 훈련장이 아닌,

구식 훈련장의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을 고집했다.

훈련용 허수아비를 계속해서 치면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그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에 계속해서 허수아비를 가격한 결과.

현성은 같은 허수아비 1000번을 가격하면 5개의 스텟 중 하나를 랜덤하게 1올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현성은 모든 스텟을 10까지 올리고 성공적으로 공개대련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그녀가 말하는 소문 중에는 플레이어에게 유용한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크로엘을 찾아온 이유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크로엘의 역할은 다름 아닌 길잡이.’

우선 원작의 전개는 이렇다.

아카데미 침공 이후, 주인공 일행은 미하일에게 기사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정보를 얻기 위해 아카데미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문수색 퀘스트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어느 누가 정보를 알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아카데미의 학생들부터 교수들까지.

한명씩 전부 찾아가서 기사단이라는 키워드로 대화를 걸어야했다.

덕분에 해당 퀘스트는 꽤나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현성은 이미 퀘스트의 답이 되는 인물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눈앞의 진홍빛 머리칼의 소녀.

이에 현성은 피곤하게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탐문수색을 하는 것 대신,

곧바로 크로엘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크로엘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하나 묻고 싶은데 있는데 잠시 괜찮을까?”

“응? 묻고 싶은 거?”

그런 현성의 말에 크로엘이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그도 잠시.

그녀가 슬쩍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현성을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뭐야, 역시 너도 내 소문에 대해서 듣고 온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크로엘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어쩔 수 없구만.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인간계로 유희를 나온 드래곤 이야기? 그게 아니면 전설의 검이 숨겨진 미지의 동굴? 아,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아카데미의 정원도 괜찮지.”

순간 드래곤이라는 말에 알레시아가 눈매를 좁히며 전음을 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유희를 나온 드래곤 이야기는 나도 들어보고 싶군.]

‘……관심 있어?’

[실제로 그런 드래곤도 꽤 있으니 말이지. 뭐 애초에 인간계 유희라면 드래곤 말고도 악마를 포함한 여러 종족들이 즐기는 취미 아닌가.]

그런 알레시아의 전음에 현성이 작게 웃었다.

‘하긴. 안 그래도 그런 악마는 곧 보게 될 거야.’

[……유희를 나온 악마 말인가?]

‘그래.’

아무튼 일단 이 이야기는 뒤로하고.

크로엘은 현성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고를지 잔뜩 기대하고 있는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것보다는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말이지.”

“……기사단?”

그런 현성의 말에 크로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그녀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기사단이라……. 꽤나 흔치 않은 소재군.”

“그래서 몰라?”

“모르다니. 실례야.”

동시에 크로엘이 양 볼을 작게 부풀렸다.

그리고는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하지만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비싸서 말이야.”

그대로 크로엘이 싱긋 웃으며 현성을 향해 말했다.

“그 대가로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줄래?”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 창이 펼쳐졌다.

[퀘스트 : 허풍쟁이 크로엘의 부탁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N]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크로엘이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글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따라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더라고. 정말이지 나는 언제나 이렇게 유익한 정도만 제공할 뿐인데 왜 그럴까 몰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연히 그 이유는 그녀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허풍이기 때문이었지만, 크로엘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내 아름다운 연주도 못 들려주고 있어서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 그나마 오늘은 네가 들어줘서 고맙지만, 이 정도로는 내 예술가의 혼이 만족하지 못한단 말이지.”

“……그래서?”

“아카데미의 모두에게 내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 그렇기 위해서는 그만한 장소가 필요할 텐데 어디보자……. 그래!”

그와 함께 크로엘이 시계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왕이면 저런 곳이 딱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런 크로엘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의 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허풍쟁이 크로엘의 부탁]

퀘스트 내용

-허풍쟁이 크로엘은 아카데미의 모두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녀를 도와주십시오. (진행 중)

성공 조건 : 최소 50명의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동시에 크로엘의 연주를 들을 것.

보상 : 기사단에 대한 소문

그 내용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전부 그가 알고 있던 대로였다.

그리고 본디 이 퀘스트를 공략하는 정석은 이러했다.

1. 저번 에피소드에서 박살난 시계탑을 보수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자제를 수급한다.

2. 아카데미 게시판에 구인공고를 올린 후, 인원을 모아 시계탑을 보수한다. (이 과정에서 목공스킬이 있을 경우, 훨씬 수월함.)

3. 보수된 시계탑에 크로엘을 데려간다.

‘……덕분에 내가 팔자에도 없는 노가다를 뛰어야 했지.’

그대로 현성이 과거 본 퀘스트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현성은 한발 앞서 퀘스트를 성공시킬 다른 공략을 준비했다.

“나쁘지 않네. 그런데 결국은 모두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게 목적이지?”

현성이 크로엘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그런 셈이지?”

“좋아.”

그렇다.

이번 퀘스트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조건은 시계탑의 보수가 아닌,

어디까지 최소 50명의 아카데미의 사람들에게 그녀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

“자, 그럼 가자.”

동시에 현성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크로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시계탑으로 가려고? 그런 거면 그냥 걸어가도 되지 않아?”

“시계탑으로 안 갈 거야.”

“뭐?”

“곧 알게 될 테니까 일단은 손, 잡을래?”

그런 현성의 말에 크로엘이 의아해하면서도 우선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현성이 줄곧 자신의 어깨 위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알레시아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준비됐어. 알레시아.”

“……알레시아?”

[그래. 그럼 가도록 하지.]

그와 동시에 현성과 크로엘의 몸을 따라 바람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으로 바람이 몰아쳤다.

-퍼엉!

그에 따라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하늘로 솟구치는 현성과 크로엘.

알레시아가 펼친 마법, 플라이였다.

그대로 잠시 뒤.

-휘잉!

어느새 그 둘은 아카데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푸른 하늘 위에 떠올라있었다.

이에 현성이 크로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여기라면 모두에게 들릴 거 같은데?”

“와아아아…!”

그 말에 크로엘이 크게 감탄을 토해내며 신기한 듯 공중에 떠있는 자신과 발밑을 번갈아보았다.

사실 이쯤 되면 무서워할 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런 기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좋아, 그럼…….”

아니 오히려 크로엘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곧바로 우쿨렐레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힘껏 우쿨렐레의 현을 퉁겼다.

그와 함께 디리링! 아름다운 선율이 공중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크로엘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바람.

그 바람들은 그런 그녀의 연주소리가 아카데미 곳곳까지 전해지도록 증폭시켜 주었다.

마치 앰프와 같은 역할.

곧 이를 증명하듯 연주소리는 정원, 본관, 기숙사를 지나 아카데미 전체를 에워싸고,

머지않아 퀘스트의 성공을 알리는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퀘스트 : 허풍쟁이 크로엘의 부탁]

퀘스트 내용

-허풍쟁이 크로엘은 아카데미의 모두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녀를 도와주십시오. (완료)

성공 조건 : 최소 50명의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동시에 크로엘의 연주를 들을 것.

보상 : 기사단에 대한 소문

이에 퀘스트 완료를 확인한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변을 감싸던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며, 현성과 크로엘이 천천히 착지했다.

그렇게 그들이 내려온 곳은 시계탑 최상층.

그곳에는 아직도 유진과 싸웠을 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크로엘이 무사히 착지한 걸 확인하고 그녀를 향해 물었다.

“이 정도면 만족했어?”

“최고였어!”

그런 현성의 물음에 크로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도 약속한대로 이야기를 해줘야겠지?”

그와 함께 크로엘이 우쿨렐레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한 번 밖에 안 들려줄 테니 잘 들으라구.”

동시에 크로엘의 연주와 그녀의 목소리가 한 데 뒤섞여 울려 퍼졌다.

부드러운 연주와 어딘가 신비로운 음색.

그런 크로엘의 모습은 허풍쟁이라기보다는 중세의 음유시인을 연상케 하였다.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크로엘의 연주가 끝났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잘 들었어?”

“덕분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왕실 기사단의 존재.

왕실의 부패로 두 파로 갈린 기사단.

그리고 해체된 기사단까지.

애초에 전부 알고 있던 이야기인 만큼 이해하는 데는 어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다음 이야기.

그녀의 노래에 따르면, 티리카를 주축으로 한 기사단은 은거를 택했으며,

데이몬드는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을 이끌고 미지의 땅으로 향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가 향한 미지의 땅이 바로 현성이 찾고 있던 장소였다.

“그럼 그 미지의 땅으로 가는 방법은?”

현성이 물었다.

이에 크로엘은 그저 작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글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 처음 발견한 모험가의 말에 의하면 이리저리 해매이다 찾았대. 그마저도 다시 찾으려 했다가 못 찾았지만.”

그러면서 크로엘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마 악마와 계약하지 않고서는 힘들걸?”

“악마와 계약이라…….”

“그러니까 그만큼 찾기 힘들다는 거지.”

크로엘이 현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굳이 말해준다면……. 이거 하나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네.”

그와 함께 크로엘이 현성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레이아.”

“…….”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그리움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서 알아내길 바랄게.”

그 말을 끝으로 크로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여기까지. 이만 가볼게. 다음에도 궁금한 이야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줘.”

동시에 그녀가 등을 돌리며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는 찰나였다.

-터업.

현성이 크로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이대로 갈 생각이야? 크로엘. 아니 레이아라고 불러야하나.”

“……뭐?”

그런 현성의 말에 크로엘이 멈칫거렸다.

그대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걸 어떻게…….”

이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서 알아내라고 했잖아. 그렇지, 레이아?”

허풍쟁이 크로엘.

그녀의 진짜 이름은 레이아.

<이스페리아>에서 공간을 다루는 악마의 진명이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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