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성장의 기회(7)
이클레아가 현성을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역시나 부끄러운 모양인지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중얼거렸다.
“크흠, 항상 혼자서 무모하게 걱정되는 일만 하니까 하는 말이야. 알지? 이건 어디까지나 학생을 걱정하는 교수의 마음으로…….”
이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방금 전에는 분명 교수가 아닌, 개인적으로 하실 말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읏…!”
그런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움찔거렸다.
그러면서 그녀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다.
“…….아, 아무튼 그런 줄 알아.”
그때였다.
이클레아의 옆에서 하얀 토끼귀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정체는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터.
[밤새 연습한 거치고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걸?]
로미가 이클레아를 바라보며 키식 웃었다.
그대로 그녀가 당장 어젯밤,
어떻게 하면 현성에게 자연스럽게 다치지 말라는 말을 전할지 고민하던 이클레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움켜쥐고 고민하던 그녀의 모습이란.
정말이지 매지컬 레드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소녀 같았다.
그러자 그녀가 황급히 로미를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다, 닥쳐!”
하지만 이번에는 로미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토끼주제에 마치 한 마리 새가 곡예비행을 하는 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이클레아의 손을 피했다.
[흐응, 역시 나이를 먹어도 마법소녀는 소녀구나. 뭐 결국에는 그런 마음이 조금씩 모여 매지컬 레드의 힘이 근원이 되는 거 아닐까?]
“조용하라고 했지!”
[아아, 이게 청춘이라는 건가.]
그런 이클레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로미는 이때다 싶어 쉬지 않고 혀를 나불거렸다.
그동안 그렇게 맞고도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걸보면 역시 신수는 신수였다.
한마디로 가히 불굴의 의지.
‘……저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신수라고 할 수 있는 건가.’
현성이 작게 감탄하며 로미와 이클레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으드득, 이클레아가 이를 갈며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대로 잠시 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익숙한 비주얼의 야구방망이.
그런 방망이의 겉에는 못이 잔뜩 박혀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과거 여왕의 둥지에서 선보였던 마법봉 aka 야구빠따였다.
그와 함께 못하나가 빛나며 바람이 이클레아의 몸을 감쌌다.
전에 설명했듯이, 야구방망이에 박힌 못 하나하나에는 전부 마법이 담겨있었다.
-쉬익!
이번에 발동한 마법은 헤이스트.
그렇게 바람이 몸을 감싸기 무섭게 이클레아의 신형(身形)이 사라졌다.
곧바로 그녀가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로미의 바로 앞.
[……어, 어느새?!]
이어서 이클레아가 있는 힘껏 마법봉을 꾹 움켜쥐고 나지막이 말했다.
“넌 뒤졌다.”
동시에 아카데미의 옥상을 타고.
까앙! 하는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뒤에 들려온 토끼의 비명소리는 덤.
[아아악! 뼈! 뼈 맞았다! 뼈!]
이에 로미가 푸드덕거리며 고통 섞인 외침을 내질렀다.
허나 그녀의 외침은 이클레아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감히 전날 밤에 있던 일을 그대로 까발리다니.
“죽어! 그냥 죽어!”
이클레아는 마치 로미를 무뼈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연신 빠따질, 아니 마법봉을 휘둘렀다.
가벼운 혀 놀림의 대가는 죽음으로 갚는 게 마땅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그 말에 로미가 현성을 향해 앙증맞은 하얀 손을 휘적거리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혀, 현성! 빨리 말려…. 아니 살려줘!]
그러나 차마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 이클레아의 연타.
그대로 그녀가 양 손으로 마법봉을 치켜들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 네년의 인생에서 언어라는 체계를 삭제시켜주마.”
[으아아아악!]
이에 결국 보다 못한 현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클레아 교수님?”
-멈칫.
그 말에 순간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 끼기긱.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클레아의 얼굴이 돌아갔다.
“……말릴 셈이야?”
장담한다.
최근 들어 이렇게 소름 돋는 한마디는 숲속에서의 삼파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로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을 향해 말했다.
[미, 믿고 있었다구!]
하지만 잠시 뒤.
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로미의 기대와는 상반되는 말이었다.
“아뇨, 말리려는 건 아니고요.”
[……?]
애초에 남의 일에는 섣불리 끼어들지 않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계약에 관한 거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나름 자체적으로 잘 해결(?)하고 있지 않는가.
현성은 구태여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로미 그녀의 업보 아닌가.
그대로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피 안 튀게 조심하라고요. 여기 옥상이잖아요.”
“괜찮아. 과산화수소로 지우면 돼.”
단호한 이클레아의 대답.
이에 현성이 그런 방법이 있었다는 듯.
작게 감탄했다.
“오, 그렇군요.”
오늘의 리빙 포인트.
핏자국은 과산화수소로 지우면 된다.
혹시라도 나중에 핏자국을 지우거나, 자신의 흔적을 지울 때는 참고하도록 하자.
“그럼 안심하고 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깐. 나는? 나는!]
“아, 그래. 들어가도록.”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성이 인사를 하며 등을 돌렸다.
그 사이에 뭔가 로미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아, 안 돼…….]
그대로 현성이 옥상에서 퇴장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로미.
그리고 그 앞에 마법봉을 들고 있는 마법소녀.
-스윽.
그와 함께 이클레아가 천천히 팔을 들며 활짝 웃었다.
“야. 마법이니까 피하면 반칙이다.”
그와 동시에 그날 이후.
아카데미에는 한동안 옥상 구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의 비명이 들려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 * * * *
그렇게 옥상에서의 대화를 하고나서 이틀 정도 지났을까.
아카데미에 위치한 현성의 기숙사.
그곳에는 현성이 펜을 만지작거리며 노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그 노트는 지금까지의 에피소드.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에 관한 정보와 계획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펜을 툭툭 건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 그림은 그려졌다.’
전에 말한 대로.
다음 에피소드는 기사단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또한 원래대로라면 마족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에피소드를 진행하면 그만이었지만.
‘최근 마족의 동향을 보아하니 그건 어려울 거 같고.’
이에 잠시 기사단 에피소드를 뒤로 미룰 것도 생각해봤으나,
고민 끝에 현성은 예정대로 에피소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크게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첫 번째는 변수의 위험성 때문에.
애초에 지금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전체적인 전개 자체가 원작에 비해 앞당겨졌다.
동시에 그만큼 현성이 최종보스를 조우할 시기 또한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
혹시라도 최종 보스전을 이길 스펙이 갖춰지기 전에 보스전을 시작했다가는 그동안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될 터였다.
‘아무리 지금까지 해피엔딩을 위한 기반을 다져뒀다 한들, 최종 보스전에서 지면 꼼짝없이 배드엔딩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스펙을 올려두는 게 좋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였다.
스펙의 상승.
‘현재 내 스펙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드래곤 하트의 흡수율을 100%까지 올리는 것.’
그래서 현성은 빠르게 다음 에피소드를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드래곤 하트의 흡수율을 올리는 것과 에피소드의 진행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당장 이틀 전의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옥상에서 이클레아와 대화할 당시.
그녀는 드래곤 하트의 흡수 건에 관해 미하일을 찾아가보라 하였다.
이에 바로 다음 날.
현성이 미하일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그가 한 말은 이러했다.
“확실히 과거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마법사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워낙 흔치않은 사례라 제 힘으로도 섣불리 말하기 어렵군요.”
허나 주목할 점은 이 다음이었다.
“그렇지만 제가 아닌, 제 스승의 경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미하일의 스승.
그러니까 대마법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스승은 현재 종적을 감춘 상태.
그러나 이는 현성에게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대마법사 중 가장 뛰어난 자를 알고 있으니까.
그 자의 이름은 다름 아닌 데이몬드.
바로 이번 4막의 보스였다.
그리고 기사단 에피소드에 그가 보스로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데이몬드 그가 바로 과거 기사단을 이끌던 또 다른 수장이었으니까.’
잠시 시간을 되돌려 선천강,
그러니까 튜토리얼에서 데일런트를 상대할 때.
짧게 언급되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과거 레드 후드 기사단이 왕실 기사단이던 시절.
계속된 왕실의 부패로 인해 결국 기사단은 지금의 왕실을 반대하는 세력.
그리고 끝까지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세력, 이렇게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반대파가 승리하게 되며,
자신들이 모시던 왕을 죽였다.
그 후 많은 기사들이 회의감을 느껴 기사를 그만두고,
남은 기사들 역시 다른 기사들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은 결과.
그 끝에 가서는 결국 왕실 기사단은 해산되었다.
여기까지는 전부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여기서 숨겨진 사실이 존재했다.
기사단의 수장은 티리카 하나가 아니었다.
기사단이 내부에서 둘로 갈라지던 때.
티리카는 끝까지 대의를 지켰으며,
그 반대에는 반대파의 수장 데이몬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파에 속하던 데일런트가 결국 마족의 회유에 넘어간 것처럼.
데이몬드 그 역시 마족의 회유가 넘어가 인간임을 포기하고 리치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었다.
그에 따라 이번 에피소드는 타락한 데이몬드를 처치하고 기사단의 의지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 배경은 데이몬드의 성.
그곳이라면 당연히 온갖 마법서가 정리되어 있을 것이며,
그 중에는 드래곤 하트의 흡수율을 올리는 방법이 존재할 게 분명했다.
아니 설령 존재하지 않더라도 데이몬드 그 본인에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즉,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지금 상황에서는 다음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게 최적.’
현성이 그렇게 판단을 내리며 노트를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줄곧 그의 옆에 있던 알레시아가 말했다.
[현성, 벌써 밤이 깊었다. 밤샘은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런 그녀의 말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노트를 덮었다.
“아. 이제 슬슬 잘 생각이야.”
그러면서 현성이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마 내일부터는 꽤 바빠질 테니까 말이지.”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이 찾아온 아카데미.
그리고 그 안에는 이른 아침부터 벤치에 앉아있는 현성이 있었다.
[……현성. 분명 오늘은 아침 강의가 없는 날 아니었는가.]
“그렇지.”
[헌데 무슨 일인가. 하린과의 대련도 뒤로하고 말이지.]
알레시아가 현성의 어깨 위로 올라와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오늘은 아침에 아무런 일정도 없는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보다시피 밖에 나와 있었다.
그것도 항상 하던 운동과 대련도 뒤로하고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까지 거르다니.
이는 흔치않은 일이었다.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거든.”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대답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껏 현성과 같이 다녔지만,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정해져있었다.
시연과 하린, 레이첼.
이클레아 교수와 종종 미하일을 포함한 다른 교수들.
하지만 오늘은 전부 아닌 모양이었다.
[만날 사람이라. 그거 궁금하군.]
“그래? 안 그래도 이제 곧 만나게 될 거야.”
현성이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 누군가 걸어왔다.
-사박, 사박.
부드러우면서도 가벼운 발걸음과 옅은 진홍빛 머리.
거기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우쿨렐레까지.
그런 그녀에게서는 왠지 모를 신비함이 감돌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성과 똑같은 교복차림.
이는 그녀가 아카데미의 학생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서 정체불명의 소녀가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는,
-디리링.
우쿨렐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풀밭에 울려 퍼지는 기분 좋은 선율.
동시에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현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찾았다.”
우쿨렐레를 든 소녀의 이름은 허풍쟁이 크로엘.
매일 아침마다 아카데미에서 우쿨렐레를 연주를 하는 음유시인이자,
이번 에피소드의 주요 키포인트가 되는 npc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