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성장의 기회(6)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긴. 우선 첫 번째는 당연히 마족에 관한 거. 그리고 두 번째는…….”
이클레아가 현성의 가슴팍을 쿡 찌르며 말했다.
“네 심장에 관한 거지. 분명 사룡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했다고 했었나?”
“네, 저번에 말씀드린 내용 그대로입니다.”
마족의 아카데미 침공 이후.
알다시피 현성은 사룡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 했으며,
현재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식당에 모여 있는 그녀들과 이클레아.
그리고 미하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거 치고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걸.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고?”
이클레아가 현성의 몸을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보란 듯이 가볍게 몸을 풀며 대답했다.
“네. 아마 아직 흡수율이 그리 높지 않아서 그런 거 일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좋아졌다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 걸요.”
그런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였다.
교수 특유의 학구열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그녀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오, 그건 꽤 관심이 드는군. 좋아졌다면 어떤?”
“글쎄요…….”
이에 현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옥상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줍고는.
-콰악!
주먹을 움켜쥐었다.
딱히 그렇게 힘을 많이 주지도,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종이를 구기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을 뿐.
허나 그 순간이었다.
-푸스스.
현성이 손바닥을 펴기 무섭게 그 아래로 고운 돌가루가 떨어졌다.
마치 검은 밀가루를 보는 것과 같은 모습.
그와 함께 현성이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대충 이 정도일까요? 사실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고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물론 그 후로도 운동과 대련은 계속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트레이닝 룸에서 합의하에 이어진 것.
실전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하린과 대련을 하는 중에는 공격은 거의 삼가지 않았는가.
그만큼 현성은 막연히 신체능력이 향상되었음을 가능할 뿐.
그 정확한 위력은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진 모양이네요.”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피며 말했다.
어차피 실전이라면 다음 에피소드에서 질리도록 겪을 터.
정확한 위력을 확인하는 건 그때 가서 해도 충분했다.
“…….”
동시에 그런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아무 말 없이 그와 발아래 있는 돌가루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위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무슨 차력쇼도 아니고 맨손으로 돌멩이를 가루로 만들다니.
지금껏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그것도 그 주인공이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요?”
이클레아의 말에 현성이 식당가를 흘깃 바라보았다.
당장 식당가에만 해도 골드 드래곤부터 피의 여제, 하 가문 차기가주, 성녀까지.
상식 밖의 인물들이 가득했다.
그녀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않나.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바로 앞에 서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
“뭐.”
그런 현성의 시선에 이클레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돌멩이를 가루로 만드는 것보다, 아카데미의 연금술 교수가 사실은 매지컬 레드라는 쪽이 더 놀랄 거 같아서요.”
-흠칫.
이에 이클레아가 순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혀를 차며 손을 내저었다.
“됐다. 됐어. 무슨 말을 하겠냐.”
그나저나 드래곤 하트의 일부만 자리 잡은 게 저 정도면, 도대체 전부 자리 잡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가뜩이나 현성은 마법사 같지 않은 마법사.
거기다 드래곤 하트까지 더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꽤나 궁금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발 구르기 한 번으로 지진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그때쯤이면 이미 마법사라 부르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을 거 같았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마족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싶은데 괜찮을까?”
“물론이죠.”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에 이클레아가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마족이 아카데미를 침공한 이후. 주변에서 하나 둘씩 마족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그렇다면 그 말은…….”
“그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족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아. 물론 그 전에도 움직이고 있었을 테지만, 이제야 그 흔적이 발견되었다면 마족들이 수면에 드러날 정도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는 걸로 추정하고 있어.”
그 말에 현성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라…….”
원작의 전개상.
아카데미 습격 에피소드를 성공적으로 클리어 할 경우.
이후에 마족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그도 그럴게 사룡 카이락스를 이용하려던 계획도,
반인반마의 피도 얻지 못했으니 그동안의 손실된 전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클레아가 전해준 말은 사뭇 달랐다.
본격적으로 마족의 행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니.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보다 우선시해야할 다른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현성이 다음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원작대로라면 다음 에피소드는 기사단.’
마족이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주인공 일행은 마족에게 대항하기 위한 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기사단이다.
과거 마족을 몰아냈던 인간계 최고의 전력.
주인공은 아카데미의 교장, 미하일과의 대화에서 기사단의 존재에 대한 힌트를 얻고,
마침내 기사단의 잔재와 조우.
이 과정에서 <이스페리아>의 4부 메인보스,
사령의 왕이라 불리는 엘더리치 데이몬드를 쓰러트린다.
그 결과, 주인공은 기사단의 의지를 잇고, 마족에게 대항할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는 마족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상태.
덕분에 이는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족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즉, 기사단에만 집중하면 되는 에피소드.
‘헌데 이렇게 되면 움직이는 마족까지 신경 쓰면서 에피소드를 진행해야한다는 소리인데…….’
그 사실에 현성이 작게 혀를 찼다.
어째 해피엔딩을 위해 구르고 있는데도 점점 하드, 아니 헬 모드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여러 의미로 <이스페리아> 다웠다.
‘……뭐 이런 점 때문에 내가 이 게임에 빠졌던 거지만.’
흔히 소울류 게임이 그랬듯이,
실제로 그전까지 현성은 시중에 있던 게임들의 쉬운 난이도에 질려 더욱 더 큰 자극을 찾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스페리아>는 그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었으며.
동시에 현성과 비슷한 부류의 유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 곳이 바로 <이스페리아>였다.
곧 뒤지더라도 하드 모드.
자극에 목마른 망령들에게는 이것만큼 끝내주는 게임이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게임.’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
현성이 그렇게 되새기며 이클레아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마족의 흔적이 발견된 곳은 어디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원작과는 달리 마족까지 신경 쓰면서 에피소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현재 마족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안 그래도 그게 문제란 말이지.”
곧바로 이클레아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구겼다.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흔적이 발견되는 바람에 어느 한곳을 특정하기 어려워. 그래도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대로 이클레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흔적이 한 곳에 집중되거나 오래 남아있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는 꼭 뭔가를 찾는 거 같아.”
“……뭔가를 찾는 것 같다고요?”
“그래.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이클레아가 아카데미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러다가 다시 아카데미를 침공해오는 거 아닌가 몰라.”
“아뇨.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현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클레아의 걱정대로 마족이 재차 아카데미를 침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선 실제로 원작에서도 그랬으며, 아무리 반인반마의 피를 손에 넣지 못했다한들.
이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침공을 감행할 리가 없었다.
그 증거가 바로 마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부분.
만약 침공을 준비할거면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방금 전.
마족들은 뭔가를 찾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클레아의 말.
이는 사실상 반인반마의 피를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는 걸로 보는 게 맞았다.
‘물론 그 자세한 건 에피소드를 더 진행해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일단 지금 마족이 다시 아카데미에 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아니 현성이 알고 있는 마족들이라면 확실했다.
그 말에 이클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애초에 마족의 아카데미 습격을 예상한 것도 현성.
그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한다면, 그 부분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이에 이클레아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 그럼 그 부분은 미하일 님이랑 다른 교수들한테 전해둘게. 그리고 마족들의 행적에 관한 건……, 아마 너한테도 곧 정보가 들어갈 거야.”
“저 말인가요?”
“그래. 아니면 그 이상의 정보가 들어올지도 모르지.”
비단 마족의 행적을 주목하고 있는 건 이클레아 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현성의 메이드, 수연 역시도 그와 관련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입장.
그와 함께 이클레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과정에서 너희 누나에 관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
그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유하선. 설정 상 그의 누나이자, 마족에게 넘어간 인간.
그대로 현성이 대답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성과 이클레아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클레아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아. 그리고 네 드래곤 하트에 관해 저번에 말했던 거 말이야.”
“저번에 말했던 거라면…….”
“그래. 흡수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앞으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이상.
드래곤 하트의 흡수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이에 현성은 혹시나 싶어 이클레아에게 주변에 그 방법을 알만 한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봐 달라 하였다.
“아는 사람이 있던가요?”
“글쎄. 일단 네가 직접 만나봐야 알 거 같아.”
“……제가 직접 말입니까?”
“응. 너도 잘 아는 사람이거든.”
그러면서 이클레아가 아카데미 중앙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하일 님.”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대마법사의 제자의 이름이었다.
하긴 확실히 대마법사의 제자 정도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 찾아뵙도록 하죠.”
“좋아. 그럼 이걸로 전할 말은 전부 끝. 이제 가 봐도 돼.”
그와 동시에 이클레아가 손을 펼쳤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이에 현성이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이클레아가 그런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잠깐. 아직 할 말 남았어.”
“예? 방금 전은 가 봐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이클레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교수로서. 이번 건 개인적으로 할 말.”
이어서 이클레아가 잠시 긴장되는지 심호흡을 하고는,
머지않아 결심한 듯.
현성을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치지 마.”
“네?”
“다치지 말라고. 걱정되니까…….”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아카데미의 옥상.
이클레아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리며 작게 속삭였다.
동시에 이는 식당에 있는 그녀들의 설마 하는 직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