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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96화 (196/240)

196화 성장의 기회(3)

트레이닝 룸 안쪽에 자리한 대련용 링.

그 위에는 현성과 하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글러브를 매만지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준비 끝났으면 말해.”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하린이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글러브를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성이 건틀렛을 마주칠 때와 비슷했다.

그와 함께 하린이 자세를 잡으며 대답했다.

“준비됐어요.”

아카데미 침공 에피소드가 지나간 이후.

추가된 새로운 루틴이란 다름 아닌 하린과의 스파링이었다.

그리고 그 맨 처음 시작은 그녀의 부탁이었다.

반인반마의 피가 개화하고, 하린이 성녀로서 각성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마족화의 경험이 남아있던 탓일까.

하린의 육체는 전과는 사뭇 달라져있었다.

현성이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고 운동량과 식사량이 늘어간 것처럼.

하린 역시도 기본적인 피지컬 자체가 꽤나 향상되었다.

아마 스텟 상으로도 꽤나 큰 성장을 맞이했을 터.

하나 그 성장의 폭이 너무 큰 탓일까.

하린은 그 이후로 제 몸을 다루는 데 있어 의도치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장 간단한 일상생활부터 힘의 제어까지.

분명 예전이라면 의식하지 않고 아무 문제없이 해낼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가령 머그컵이 떨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과거라면 그냥 떨어지는 걸 잡거나, 놓치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신체능력이 향상된 지금은 떨어지는 머그컵 정도는 순간적으로 반응하고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머그컵을 잡는 찰나.

힘 조절 실패로 머그컵이 박살나는 참사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현재 하린의 기숙사에 있는 물건들은 점차 하나 둘씩 그 생명을 마감하고 있었다.

‘……당장 저번 주에만 멀쩡했던 펜 5자루를 박살냈다고 했지.’

현성이야 스텟이 올라갔다 해도, 그동안 쌓아온 전투 경험으로 인해 그 힘을 어림잡는 게 가능했지만, 하린은 상대적으로 전투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이에 하린은 참다못해 현성에게 sos를 요청했고,

그 결과가 지금 보는 대로였다.

지금 하린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키우는 데에는 운동과 스파링만큼 적절한 게 없었다.

“그럼 갑니다.”

동시에 하린이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방으로 속도를 좁혀오는 그녀.

그와 함께 주먹이 닿는 사정거리까지 도달한 그때.

-쉬익!

하린이 현성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애초에 아무리 그녀의 육체가 급격한 성장을 했다한들, 둘의 수준차이는 꽤 벌어져있었다,

게다가 현성 또한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면서 스텟이 오른 상태.

하린의 웬만한 공격은 현성에게 닿지 못했다.

그만큼 현성은 그녀에게 스파링 중에는 진심으로 자신을 쓰러트릴 각오로 공격하라고 몇 번씩이나 강조한 상태.

그리고 슬슬 그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대를 때린다는 사실에 망설였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턱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만 해도 그렇지.’

무엇보다도 주먹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오빠만큼이나 그 잠재력하나는 대단하다니까.’

전에 말했듯이 <이스페리아>의 주인공 유진은 검 말고도 다른 어떤 클래스를 택해도 두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재능은 하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시연이나 유진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날카로운 공격.

그대로 현성이 고개를 꺾어, 하린의 주먹을 피했다.

이에 그녀의 공격이 말 그대로 종이 하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현성의 얼굴을 지나갔다.

-피잇.

현성도 기왕 스파링을 하는 이상.

되도록이면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있었다.

덕분에 하린도 불이 붙었다.

“아직 안 끝났어요!”

하린이 자신의 공격이 빗나감에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비어있는 현성의 복부를 향해 왼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터업.

어느새 현성의 손이 그녀의 왼 주먹을 막고 있었다.

그대로 그가 하린을 향해 말했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

그런 현성의 물음에 하린이 작게 웃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와 함께 하린이 재빨리 자세를 바꿔 킥을 내질렀다.

현성의 상단을 노리고 날아오는 킥.

허나 그때였다.

-휘릭!

돌연 그 궤도가 바뀌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무릎을 축으로 중간에서 공격방향을 바꾸는 브라질리언 킥이었다.

이에 현성이 최소한으로 발을 움직여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공격.

그러나 현성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기껏해야 요 며칠사이에 이만한 수준이라니.

“이런 건 어디서 배웠대?”

“요새 스파링하면서 공부 좀 했죠.”

이어서 하린이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심호흡을 했다.

“아무튼 그럼 계속 갑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린과 현성이 한참동안 공방을 주고받았다.

사실 현성은 스파링의 목적이 하린의 적응이니만큼, 공격을 하기보다는 주로 방어위주로 그녀가 자신의 움직임에 익숙해지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덕분에 하린도 서서히 자신의 힘의 정도와 그에 따른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연신 자신의 공격이 빗나감에 조바심이 생긴 모양인지.

자기도 모르게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읏…!”

그대로 하린의 스텝이 꼬이며,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에 그녀가 넘어지기 직전.

현성이 재빨리 하린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포옥.

이에 하린은 어느새 현성의 품 안에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 그녀의 몸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괜찮아? 다친 데는?”

“…….”

“하린아?”

현성의 품에 안긴 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도 잠시.

“그, 그게…….”

하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현성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거기다 품에 안기기까지.

‘……하지만 나쁘지 않을지도.’

어차피 지금 트레이닝 룸에는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지 않는가.

조금정도는 이 시간을 만끽해도 되지 않을까.

하린이 그렇게 생각하며 현성의 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는 찰나였다.

“둘이 스파링 중이라더니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이에 하린이 뻗으려는 손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움찔.

그와 함께 하린이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검은 단발머리의 소녀.

하시연이 서있었다.

“사이가 참 좋아 보이네요.”

시연이 그런 둘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동시에 미소 사이 느껴지는 묘한 차가움.

그러자 현성이 하린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왔어? 시연아.”

전에 말한 하린의 스파링.

그리고 그 상대는 비단 현성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빠른 적응을 위해서라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으며, 오늘 시연이 이곳에 온 것 역시 그 경험을 위함이었다.

“네. 왔죠.”

현성의 말에 시연이 짧게 대답했다.

어딘가 조금, 아주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

이에 가만히 있던 알레시아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질 뻔 했군. 운동 중 부상은 조심해야지. 안 그런가. 하린?]

그 말에 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 그러게요. 저도 모르게 조금 무리했네요.”

“…….”

그런 둘의 대화에 시연이 현성과 하린을 번갈아보았다.

정황상 하린이 넘어질 뻔한 걸 현성이 막아준 모양이었다.

그대로 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게 속삭였다.

“그 정도면 뭐…….”

이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시연? 무슨 말 했어?”

“어? 아무것도 아냐. 그냥 혼잣말.”

시연이 대충 얼버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도 잠시.

시연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현성과의 스파링은 끝났나요? 만약 하린 양만 괜찮으시다면 다음 상대는 저로 어떠신가요?”

그러자 현성이 싱긋 웃으며 하린에게 말했다.

“검사를 상대로 해보는 것도 경험 쌓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 그렇겠죠?”

하린이 작게 움찔거리며 애써 미소 지었다.

물론 경험 쌓기에는 좋겠지만, 방금 전의 싸늘한 목소리 때문일까.

오늘의 시연 선배는 어딘가 조금 무서웠다.

‘……괜찮겠지?’

그런 하린의 눈빛에 시연이 안심하라는 듯 싱긋 웃으며 링 위로 올라왔다.

“걱정 마세요. 후배를 위하는 것도 학생회장의 업무 중 하나니까요. 대련이라면 자주 해봤답니다.”

그러면서 하린이 자신의 연습용 목검을 꺼내들었다.

그대로 그녀가 목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그와 동시에 하린이 이유 모를 소름을 느끼며 주춤거렸다.

하지만 이미 낙장불입.

그래, 이것도 훈련의 일환이야. 무엇보다 시연 선배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하린이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그런 하린의 말에 시연이 웃으며 목검을 쥐었다.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하린과 시연, 둘의 대련이 종료되고.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시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 수고하셨습… 니다……. 흐아아아.”

하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졌다지만, 연이은 스파링은 역시 쉽지 않았다.

거기다 그 상대가 무려 아카데미 부동의 1위, 검술명가의 하시연 아닌가.

현성은 힘의 조절에 초점을 맞추고 상대해줬다면,

시연은 그야말로 철저한 실전에 초점을 맞춘 스파링이었다.

분명 목검을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씩이나 진검을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이미…….’

하린이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지며 침을 삼켰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대로 시연이 목검을 거두며 말했다.

“그 전까지는 스파링 경험이 없었다고 했죠?”

“네? 확실히 그 동안은 그냥 마법만…….”

“그런데 이 정도라니. 대단하네요.”

시연이 하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스파링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시연은 일평생 같은 가문의 사람들과 대련을 해왔다.

또한 그들 하나하나가 검술명가 하 가문인 만큼.

대련 역시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으며, 하물며 시연은 그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던 검사가 아닌가.

아직 몸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하린이 이 정도까지 시연의 대련을 버텨낸 것은 분명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대로 시연이 작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의 모습이 굉장히 기대되네요.”

전의 싸늘한 목소리와는 다른 따뜻한 격려의 말.

그런 그녀의 말에 하린이 배시시 웃었다.

“고맙습니다.”

이에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현성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무엇보다도 하린의 성장속도와 전투센스.

이 정도 속도라면 금방 적응을 끝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성녀 본연의 신성력까지.

여러모로 앞으로의 전개에 큰 도움이 될게 분명했다.

‘원작에서는 하린은 후방포지션이었지만 이대로 가면 여타 히로인처럼 전투포지션도 가능할 지도 모르겠군.’

반인반마의 압도적 피지컬을 베이스로 성녀의 신성력을 쓴다?

전에 스쳐지나가듯 말한 신성계열 인파이터가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양 손에 신성력을 두르고 연격을 꽃아 넣는 성녀라.

‘……제법 괜찮은데?’

원작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조합이 현성의 구미를 당겼다.

마침 현성의 클래스는 격투가 포함된 힘의 마법사.

앞으로 하린에게 여러 격투기술을 가르쳐봐야겠다.

라고 현성이 생각하며 둘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볼까? 운동 후에 끼니는 꼭 챙겨야지.”

대련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아침식사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에 안 그래도 힘이 빠졌던 하린이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시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링에서 내려왔다.

“좋아요!”

“그럴까?”

그렇게 현성의 말과 함께 하린과 시연이 식당으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트레이닝 룸 바깥으로 나온 순간.

그 앞에서 그들을 줄곧 기다리고 있던 은발의 소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늦었어.”

그녀는 다름 아닌 레이첼.

시연과 하린에 이은,

<이스페리아>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히로인이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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