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성장의 기회(2)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
이는 도플갱어 퀸의 로브나 무명의 검집처럼,
플레이어가 습득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던전에서 보스몬스터를 잡은 것도,
에피소드 클리어 보상으로 예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본디 <이스페리아>의 스토리 전개상.
플레이어는 사룡 카이락스를 쓰러트리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번 에피소드는 그를 격퇴하는 것 대신, 하린의 세뇌를 푸는 방향으로 공략이 진행된다.
그만큼 그 결과 역시 세뇌된 하린을 구해내고 종료.
즉, <이스페리아>의 전개에 있어 사룡 카이락스를 쓰러트리는 경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성이 그 존재하지 않는 전개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발생한 셈이었다.
그야말로 <이스페리아> 최초.
그대로 현성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재차 확인했다.
만약 지금 화면을 캡쳐하여 올린다면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게 무려 사룡(死龍)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였다.
그것도 조각 따위가 아닌, 온전한 형태의, 아직 마나가 남아있는 드래곤 하트.
그만큼 이걸 흡수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사리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마침 안 그래도 어떻게 스펙업을 해야 고민하던 찰나였는데 잘됐어.’
슬슬 에피소드도 후반부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슬슬 엔딩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
이에 막말로 어디 산에 있는 영약이라도 캐서 스펙업을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드래곤 하트라니.
지금 현성에게 있어 이보다 좋은 영약은 없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기회.
[그게 무슨 말이냐. 현성?]
더 좋은 방법이 있다니.
그런 현성의 말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리고 현성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를 누른 순간이었다.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를 타고 붉은 빛이 폭사되었다.
그와 함께 그 안에 담겨있던 마나 역시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파아앗!
하지만 그도 잠시.
눈부시게 사방을 메운 붉은 빛 사이.
퍼져나간 마나가 돌연 어느 한 곳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했다.
-스스스!
그곳은 다름 아닌 현성의 심장부.
그의 심장을 따라 마나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 모습에 알레시아가 미간을 좁혔다.
[이건……!]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가 현성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지금 알레시아의 눈앞에는 눈부시도록 검붉은 입자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을 에워싸는 입자들.
마치 거대한 파도, 아니 해일 속에 서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인간이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다니.
지금껏 긴 세월을 살아온 알레시아조차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솨아아.
무엇보다 그녀가 놀란 건 그런 해일의 중앙에 있는 현성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현성.
그는 갑작스레 들어오는 드래곤 하트의 기운에 당황할 법에도 불구하고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며 길을 열어둘 뿐.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끊임없이 몰아치던 해일이 잦아들었다.
[…….]
그 기운이 전부 현성에게 들어갔다니.
두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와 함께 띠링, 알림음이 울려 퍼지며 그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흡수가 끝났음을 알리는 창이었다.
[사룡(死龍)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를 성공적으로 흡수했습니다.]
[업적 획득 : 드래곤 하트를 소유한]
[현재 적응도 : 6%]
이에 현성이 손을 쥐었다 펼쳤다.
그대로 그가 마나를 끌어올리자, 확실히 전과는 다른 흐름이 느껴졌다.
그런 현성에게서는 카이락스와 알레시아와 같은 드래곤의 기운이 미약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거 놀랍군.]
알레시아가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대로 그녀가 그의 기운을 살피며 말했다.
[설마하니 정말로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것인가?]
“그런 셈이지.”
그러면서 현성이 카이락스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피와 살점이 얽힌 채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던 드래곤 하트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금 전의 메시지 창.
‘적응도라…….’
그 퍼센티지는 6%.
확실히 카이락스의 드래곤 하트는 성공적으로 흡수했지만,
그 기운이 온전히 몸에 자리 잡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측되었다.
아마 상대적으로 별다른 후유증도 없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터.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현재 현성은 단순히 드래곤 하트를 입에 넣은 것 뿐.
이를 소화해내는 건 아직은 이른 일이었다.
‘……하긴 흡수하자마자 100%면 내가 이렇게 있을 수가 없겠지.’
만약 그랬다면 흔히 무협에서 말하는 주화입마에 걸려 사경을 해매거나, 더 이상 인간의 꼴이 아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는 몸이 온전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아무튼 매커니즘은 티리카의 건틀렛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현성이 자신의 몸을 살피며 처음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을 습득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신화급 아이템을 얻기는 했으나, 온전히 그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른바 성장형 무기, 아니 이 경우에는 성장형 드래곤 하트라고 해야 하나.’
거기다 흡수가 끝난 이상.
마족과 같은 다른 누구도 이를 빼앗을 수 없을 터.
귀속이 되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 몸은 괜찮은가? 혹시 어딘가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앞서 말했듯이 이는 알레시아도 처음 보는 사례.
그만큼 그의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는지.
여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알레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꼼꼼하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보고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문제없어. 오히려 더 상쾌해진 느낌인걸.”
[그럼 다행이구나.]
실제로 카이락스를 쓰러트리고,
에피소드 클리어 함에 따라 스텟도 추가 상승했을 터.
그대로 현성이 상태창을 펼쳤다.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폭풍의 창을 받아낸],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신화를 거머쥔],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새로운 주인공], [얼음무덤의 비밀을 알아낸], [악마의 진명을 부른], [철의 권7의 패왕], [거 삽질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수호자를 쓰러트린], [지나가다 벼락을], [번개를 자른], [레드 룸의 승자], [설산을 지배한], [드래곤 슬레이어], [여왕의 궁전에 발을 내딛은], [알레시아의 친우], [인간 같지 않은], [하 가문의 조력자], [아카데미의 구원자], [사룡(死龍)의 대적자], [드래곤 하트를 소유한]
체력 55
지력 48
민첩 50
행운 31
의지 28(+15)
*스킬상세
[파이어 펀치. LV8]
[얼음폭풍. LV8]
[휴먼라이트닝. LV7]
특수스킬
[투신의 길. LV4]
[투신의 눈. lv1]
[삽질의 황태자. LV2]
고유스킬
[게이머의 감각. MAX]
합동기
[빙혈. LV1]
[창천. LV1]
[용의 광시곡. LV1]
현성이 상태창을 훑어보며 턱을 매만졌다.
‘……그 사이 꽤나 많이 바뀌었군.’
도플갱어 퀸을 쓰러트리고 한동안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다보니 갱신된 정보가 꽤나 많이 있었다.
특히 업적이 그런 편이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업적이 대략 8개 정도.
전부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얻었던 업적들로 추정되었다.
무엇보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업적 하나.
‘[인간 같지 않은]. 이게 아마 하 가문의 공성전에서 직계파의 성에 설치된 함정을 돌파하면 주는 업적이었지?’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주목할 점은 역시 스텟의 성장이었다.
체력, 지력, 민첩, 행운이 거진 20정도씩 오르고, 의지도 조금이지만 오르긴 했다.
‘그리고 기존 스킬의 레벱업과 함께 이번 에피소드에서 처음 썼던 투신의 눈과 합동기 용의 광시곡까지.’
새삼 이렇게 보니 그동안 참 바쁘게도 달려왔다 싶었다.
헌데 이리 달려도 앞으로 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해피엔딩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빡세다.
‘당장 이번 에피소드 끝내고도 이것저것 마무리하고 준비하다보면 금방이겠네.’
그래도 이번 에피소드도 무사히 넘겼으니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의도치 않은 보상까지.
여러모로 얻은 게 많은 에피소드였다.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갈까?”
현성이 알레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흠칫.
그런 알레시아의 말에 현성이 움찔거렸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면 또 시연과 레이첼, 하린의 삼파전을 봐야하는 것인가.
이에 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제발 잘 풀렸으면 좋겠군.”
그 모습에 알레시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현성 자네가 하기에 달린 셈이지.]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하린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대략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 사이 아카데미도 정상화에 들어갈 준비를 끝냈다.
애초에 파괴된 곳은 시계탑이 가장 심했으며, 나머지는 그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아카데미의 건물 대부분은 아직도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트레이닝 룸도 마찬가지.
-철커덩, 철컹.
한적한 오전 시간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트레이닝 룸에서 덤벨을 들고 있었다.
그대로 잠시 뒤.
“후우…….”
현성이 마저 하던 운동을 마치고 숨을 골랐다.
그런 그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이에 기구 위에 앉아있던 알레시아가 중얼거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하구나.]
“가만히 있으면 괜히 몸이 쑤셔서 그래.”
[그래, 예전 기사단에서도 항상 그런 말을 들어왔다.]
알레시아가 과거 기사단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요즘 현성의 운동량을 보면 거진 기사단 급인 거 같다만.
그대로 그녀가 현성의 몸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균형이 잘 잡힌 몸이었다.
아니 오히려 최근 더 좋아진 거 같았다.
분명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이후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후로 운동량도 훨씬 늘어난 거 같네만.]
“확실히 그런 셈이지.”
현성이 덤벨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에 이제는 웬만한 루틴으로는 땀도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식사량이 늘어난 것도 덤.
[이러다 클락스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군.]
“……클락스?”
[있다. 근육에 미친 녀석이다. 기사단 내에서는 뇌까지 근육이 된 게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해보기도 했지. 운동은 좋지만 부디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알레시아가 고개를 저으며 질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도 잠시.
그녀가 시계를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현성, 이제 곧 올 시간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 말에 현성이 덤벨을 정리하며 몸을 풀었다.
아카데미 침공 에피소드가 끝난 이후.
그에게는 한 가지 루틴이 추가되었다.
“오빠!”
그리고 마침 타이밍 좋게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하린.
이에 현성이 하린을 반기며 트레이닝 룸 안쪽을 가리켰다.
“어서와.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