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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93화 (193/240)

193화 악몽(17)

그렇게 한참 그간의 슬픔을 다 토해내고 나서야.

하린이 현성을 껴안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대로 그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따뜻하네요…. 부드럽고…….”

무엇보다 현성의 품은 안정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 오직 그만은 떠나가지 않는다는 안정감.

그리고 지금. 현성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린은 안심되었다.

이어서 그녀가 현성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안고 싶었지만…, 아직 남은 일이 있었죠?”

그러면서 하린이 어두운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저 멀리 언데드들의 울음소리와 드문드문 폭발음이 들려왔다.

거기다 상공에 떠있는 알레시아까지.

다행히 나머지 사람들이 이를 막아내고 있었으나,

언데드들은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물론 남아있는 언데드들은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끈질김이었다.

언데드들은 이미 죽은 존재들.

그만큼 더 이상 재생하지 못할 정도의 공격, 그러니까 아예 깔끔히 태워버리는 게 아니고서는 그 숨통을 끊어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언데드를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건 신성력이지만,

신성력은 여러 속성 중에서도 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속성.

흔히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 지금까지도 언데드가 남아있는 것은 이런 이유일터.

이에 하린이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저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마무리는 제대로 해야죠.”

“괜찮겠어?”

현성이 하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

그런 하린의 손을 타고 금빛 입자가 피어났다.

“……지금은 왠지 가능할 거 같거든요. 무엇보다.”

그대로 하린이 현성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옆에 오빠가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하린이 현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에 그 역시 피식 웃으며 하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사아아.

마치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일제히 날아오르듯.

하린의 금색 머리칼이 떠오르며, 사방으로 금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신성력은 밝고도 따스한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다.

이어서 하린이 맞잡은 손을 자신의 가슴에 포개었다.

그와 함께 현성의 손을 타고 느껴지는 하린의 심장박동.

그 소리에 그녀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느껴지나요?”

두근두근, 일정한 간격으로 뛰는 하린의 심장은 지금 그 어느 순간보다 안정되었다.

전부 현성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대로 하린이 그동안 현성과 잊었던 일을 떠올렸다.

첫 만남부터 얼음무덤.

그 사이 주고받았던 사소한 대화와 미소.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어준 오늘까지.

찬찬히 기억을 떠올릴수록 주변의 금빛이 더욱 강해졌다.

현성 그가 곁에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하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면서 그녀가 현성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오빠.”

그와 동시에 어두운 숲 속을 타고.

금색의 빛기둥이 솟구쳤다.

-콰아앙!

그대로 솟아난 빛기둥은 나뭇가지는 물론.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히고 하늘 위로 뻗어져나갔다.

그렇게 빛기둥이 끝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파아앗!

빛기둥이 날개를 펼치며, 하린의 신성력이 유성우처럼 금색 꼬리를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전설 속 천사의 재림을 연상케 하였다.

아카데미 전체를 뒤덮은 금색의 유성우.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에 현성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설정 상 성녀라고는 하지만…….’

다시 봐도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예전에 말했듯이 <이스페리아>에서 해피엔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하린의 존재가 필수.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과연 그 말이 과언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 *

한편 시계탑과 그 아래.

그곳에는 시연과 레이첼이 알레시아와 함께 남은 언데드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시연이 검을 휘두르자, 수십의 좀비의 목을 한 번에 베였다.

-서걱!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깔끔한 검격이었다.

하지만 목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달려드는 좀비들.

이에 레이첼이 징글징글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휙 손가락을 휘저었다.

-콰드드득!

그러자 피의 파도가 몰아치며 좀비를 휩쓸었다.

덕분에 한 곳에 뭉친 언데드들.

그 모습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모두 물러나거라!]

그런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언데드들을 집어삼켰다.

고위급 화염 마법 플레임 스톰이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푸스스.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재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곧바로 시연이 검을 털어내며 말했다.

“……이걸로 얼마나 남았죠?”

“글쎄. 거의 다 정리한 거 같은데.”

레이첼이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줄곧 언데드들을 정리한 결과.

시계탑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은 거의 다 처리했다.

그리고 아래에는 미하일을 필두로 한 다른 교수들이 차근차근 언데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하일의 중력마법과 이클레아의 마법소녀의 힘은 활약이 대단했다.

중력장을 펼쳐 언데드들의 발을 묶음과 동시에 한데 모으고.

그걸 이클레아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쓸어버린다.

물론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에 이클레아의 수치심 섞인 외침이 삐져나왔지만,

어찌되었든 그 결과만큼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현성이 보이지 않았다.

사룡 카이락스를 쓰러트린 직후.

그는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

알레시아의 말에 의하면 하린을 구하러 갔다고 했으나, 그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레이첼이 현성을 걱정하며 주먹을 작게 쥐었다.

‘혹시 어딘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그녀가 시계탑에서 유진과 싸우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건 시연 역시도 마찬가지.

시계탑에서 봤던 금발의 남성.

‘……생전 처음 보는 검식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소환하던 정체불명의 악단.

만약 레이첼을 포함한 다른 이의 도움이 없고, 그가 전력을 다했다면 어찌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대였다.

그때였다.

아카데미 외곽의 숲.

그곳을 타고 거대한 금색의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콰아앙!

그대로 날개를 펼치며 사방으로 금색의 유성우가 쏟아졌다.

그와 함께 금빛의 장막이 아카데미에 펼쳐지기 무섭게.

그 빛에 닿은 언데드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워어어억…!”

그렇게 머지않아.

아카데미에 남아있던 언데드들의 육체가 붕괴하며,

전부 하얀 재로 변해 쓰러졌다.

“이건…….”

그 많던 언데드들이 단숨에 사라졌다.

아니 소멸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성?””

시연과 레이첼이 일제히 빛기둥이 솟아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일을 벌일만한 사람은 현성 그 하나밖에 없었다.

이에 알레시아가 피식 웃으며 그 둘을 바라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현성에게 관련된 일이라면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당장 지금도 그렇고,

시계탑에서 유진을 상대할 때도 그랬지 않는가.

[하여간 여러 의미로 축복받은 계약자로군.]

만약 과거 레드후드 기사단들이 봤다면 환장할 모습이었다.

하나도 아니라 두 명의 미소녀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니.

그대로 알레시아가 시연과 레이첼을 바라보며 말했다.

[올라타게. 현성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지.]

“고마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둘이 알레시아의 등 위에 올라타고.

그녀가 날개를 펄럭인 순간.

주변의 바람이 휘날리며 알레시아의 몸이 빛기둥이 솟아오른 숲을 향해 쏘아졌다.

-쐐애액!

그리고 잠시 뒤.

어느새 알레시아가 숲 바로 위까지 도달했다.

그러면서 현성을 찾던 와중.

“……?!”

저 아래, 익숙한 흑발의 소년이 보였다.

현성이 확실했다.

이에 시연과 레이첼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찾았다…!”

“저기다.”

이어서 곧 알레시아가 숲 속에 착지하고.

그녀의 등에서 내린 둘이 재빨리 현성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멈칫.

시연과 레이첼이 발을 멈추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현성의 옆에 있는 하린.

그런 그녀는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등에 솟은 날개도,

이마에 난 뿔과 역안도,

주변에 일렁이는 검은 마기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혼란과 공포가 가득하던 눈동자에는 더 이상 불안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안정감만이 자리할 뿐.

시연이 기억하던 평소와 같은, 아니 평소보다 어딘가 더 밝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

“…….”

그러나 그녀 둘이 발을 멈춘 원인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현성의 옆에 딱 붙은 채, 꼬옥 붙잡고 있는 손.

마치 이대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전해졌다.

게다가 단련된 검사의 기감과 뱀파이어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하린에게서는 시연과 레이첼, 둘이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묘한 위기감이 느껴진다고.

물론 그 전에도 하린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이렇게 강한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둘 사이에 뭔가 관계가 새로이 정립될만한 사건이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디 다친 데는 없고?”

하지만 그도 잠시.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건 성급하다.

이에 시연과 레이첼은 우선 상황을 살피기로 하였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난 괜찮아.”

이어서 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괜찮아요.”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이어진 말이었다.

그대로 하린이 현성의 손을 끌어당기며 싱긋 웃었다.

“……오빠만 곁에 있다면요.”

-움찔!

그와 함께 시연과 레이첼이 일제히 주춤거렸다.

방금 전 그 말.

쉽사리 넘기기 힘든 말이었다.

동시에 시연과 레이첼이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위험한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죠.”

“동감하지. 분명 뭔가가 있던 모양이야.”

그런 둘의 대화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위험하다니. 혹시 다른 일이라도 생긴 거야?”

현성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사룡 카이락스는 성공적으로 처치했다.

그리고 하린의 세뇌 역시 풀었고, 유진도 소멸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위험하다니.

다른 곳에서 미처 계산하지 못한 변수라도 발생한 걸까.

이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알레시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한 발 먼저 대처하더니 이럴 때는 둔하기 그지없군.]

정말이지 그동안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그대로 알레시아가 혀를 차며 말했다.

[현성, 그대가 생각하는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곧 자네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도 있을 거 같군.]

“……뭐?”

그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자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일은 없다니 그건 다행이지만,

그 뒤에 말은 무슨 소리지.

“…….”

그렇게 현성이 생각에 잠긴 찰나였다.

시연이 현성과 하린, 둘이 맞잡고 있는 손을 흘깃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둘 다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정확한 건 아카데미에 돌아가서 확인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선 둘이 떨어져서…….”

시연이 은근슬쩍 돌려서 말했다.

그러나 그러기 무섭게 레이첼이 그녀의 말을 끊고 물었다.

“둘이 무슨 사이야.”

방금 전 시연처럼 돌려 말하는 것 없이 꽉 찬 직구로 날아오는 말.

그야말로 시연과 레이첼의 성격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에 시연이 잠시 당황했으나 그것도 잠깐.

어차피 그녀도 궁금한 건 매한가지였다.

“……저 말인가요?”

그런 레이첼의 물음에 하린이 본인을 가리켰다.

허나 그도 잠시.

뭔가 알아차린 하린이 흥미로운 듯 시연과 레이첼을 번갈아보았다.

“흐음, 글쎄요…….”

그대로 하린이 환하게 웃으며 현성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는 사이라고 말해두죠.”

““……?!””

동시에 시연과 레이첼의 얼굴이 굳어갔다.

그와 함께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분위기.

이를 증명하듯 현성의 눈앞을 따라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캐릭터가 위협을 느낍니다.]

전에 하 가문의 가주.

그러니까 시연의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메시지 창.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현성이 알레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알겠느냐?]

그런 현성의 머릿속을 타고 울려 퍼지는 알레시아의 전음.

이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살려줘.’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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