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악몽(15)
그대로 뒤늦게 균형을 잡은 카이락스가 날개를 펼치며 멈춰 섰다.
그런 그는 괜히 언데드가 아니란 듯.
그만한 공격을 맞고도 찢어진 날개 사이,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콰앙!
그와 함께 카이락스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허나 그러기 무섭게 그의 뒤를 추격하는 푸른 전격을 두른 드래곤.
이에 유진이 낭패라는 듯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젠장…….”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저 망할 개자식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방해되고 있었다.
하린을 연기해 마법진을 박살낸 것도, 카이락스를 소환한 이후로도 그랬다.
‘카이락스만 소환하면 다 계획대로 될 줄 알았건만…!’
유진이 분한 듯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기껏 하린을 세뇌시켜 카이락스의 조종에 성공했으나, 브레스는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막아내지 않나.
지금은 두 마리의 드래곤이 카이락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거기다 그 중 금빛의 드래곤은 분명 블랙마켓에서 마족이 입수하려 했던 그 드래곤이었다.
헌데 그 드래곤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누군가 중간에서 이를 가로챘다.
그리고 그 유력한 용의자는 눈앞의 흑발의 소년, 아니 흑색의 드래곤.
“유현성…!”
빠드득, 유진의 입을 타고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모든 계획을 하나도 빠짐없이 방해한 가증스러운 이름이었다.
동시에 그때였다.
-움찔!
하늘 위 펼쳐진 커다란 마법진.
이를 따라 붉은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유성우들.
최고위급 마법, 메테오 버스트였다.
“……뭐, 뭣?!”
다름 아닌 알레시아가 펼친 마법이었다.
그 모습에 유진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쐐애애액…. 콰아아앙! 콰앙! 콰아앙!!
그대로 유성우가 카이락스의 몸에 꽂히며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쿠워어어억!!]
그와 함께 사방으로 자욱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 속.
유진이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사아아.
하지만 그 주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짙은 어둠과 고요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리고 스산함이 내리 앉은 정적 사이.
-파지직.
검은 연기 너머로 푸른 스파크가 반짝이며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에 유진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는 이미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그 순간이었다.
-콰르르릉!!
푸른 뇌전이 다시금 그를 가르고 지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화염구가 썩어문드러진 살점에 직격했다.
-쉬이익…. 콰아앙!!
그대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와 푸른 스파크.
현성과 알레시아는 원무(圓舞)를 펼치며 쉴 새 없이 공격을 펼쳤다.
그럴 때마다 사방에서 뇌전과 화염이 카이락스와 유진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자욱한 검은 안개 속 몰아치는 그들의 공격은 번개와 어둠이 낳은 저주와도 같았다.
[키에에에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들려오는 건 카이락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전부.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참다못한 유진이 으스러질 듯, 이를 갈며 외쳤다.
“제기랄, 언제까지 이런 공격에 당하고 있을 거야!!”
그와 함께 카이락스의 등에 타고 있던 유령극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끼기긱, 그 선율에 하린이 움찔거리며 카이락스를 옥죄고 있던 검은 족쇄가 점점 더 세게 그를 조여들었다.
[크륵, 큭…! 키에엑! 크롸라라락!!]
이에 카이락스가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도 잠시.
카이락스의 주변을 타고 검은 마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그 충격파에 주변을 감싸고 있던 자욱한 연기가 단숨에 걷혔다.
이에 저 멀리 현성과 알레시아의 모습이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카이락스가 입을 쩌억 벌렸다.
-고오오.
곧 그의 입을 따라 모여드는 검은 입자.
맨 처음 지옥문을 열고 나타났을 때와 같이, 브레스를 준비하는 전조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짙은 색.
“이젠 다 필요 없다…. 그냥 전부 소멸시켜주마.”
유진이 작게 읊조리며 현성과 카이락스를 째려보았다.
그는 아예 흔적도 안 남게 눈앞에 존재하는 건 모두 날려버릴 셈이었다.
그 모습에 현성과 알레시아가 공격을 날렸지만 주변에 펼쳐진 마기가 이를 가로막았다.
심지어 그 중 몇 개는 카이락스의 몸에 맞았음에도 그는 꿈쩍하지 하지 않았다.
이에 알레시아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성,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완전복사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5분.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공격을 퍼부어 카이락스를 몰아 붙였지만 아직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1분.
동시에 현성과 알레시아는 직감했다.
이번 마지막 일격에 모든 걸 끝내야함을.
그대로 알레시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현성, 내가 블랙마켓에서 보여준 것, 기억하나?]
‘블랙마켓이라면…….’
[브레스.]
곧 알레시아가의 주변의 공기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쪽도 브레스로 마무리한다.]
‘……방법은?’
[걱정마라. 요령은 알려줄 테니.]
그러면서 알레시아가 현성에게 전음을 전하며 설명했다.
[우선 처음 드래곤 하트를 발동한 것처럼, 중앙에 마나를 집중시켜라.]
‘그리고?’
[마나의 흐름을 눈으로 관측하며, 폭풍과 파도가 맞닿는 그 틈을 찾아라. 그럼 그 찰나의 순간 두 개의 서로 이질적인 기운이 부딪히며 또 다른 길이 열릴 터이니, 그곳을 향해 드래곤 하트에서 끌어올린 마나를 강하게 쏘아내라.]
‘……잠깐, 뭐?’
그런 알레시아의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이에 그녀가 계속해서 설명을 펼쳤다.
[첫 번째 폭풍과 두 번째의 파도가 만나면 마나의 회오리를 생성할 것이며, 갈라진 경계 사이에 다른 틈이 생기며 바람의 고리가 보일 터다.]
‘…….’
[생성된 크고 작은 폭풍과 파도의 틈새에 유독 큰 4개의 경계가 있을 것이다. 그에 각 4개의 경계 사이에 수십 개의 틈이 계속하여 생길 터이니, 그때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거라. 그러면 경계의 별자리가 길을 인도하고 그로써 드래곤 하트의 마나는 온전히 그대의 뜻 아래 향할 것이다.]
맨 처음 드래곤 하트를 발동한 것처럼 심장 중앙부에 마나를 집중하라는 것까지는 알겠으나, 그 뒤에 폭풍이니 파도니 바람의 고리니 하는 말은 해석이 불가능했다.
아니 애초에 저걸 이해하고 행할 자가 있을까.
[이제 충분히 이해했겠지. 현성?]
‘……알레시아, 혹시 그 설명을 듣고 이해한 사람은 있었어?’
그런 현성의 물음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있다. 티리카가 그랬다.]
단호한 알레시아의 대답.
그와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구겼다.
‘이런 X발.’
티리카가 누구인가.
기사왕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이스페리아> 세계관 내 최강의 존재.
그만큼 그는 다른 강자들과 견주어 봐도 궤를 달리하는 먼치킨이었다.
허나 현성은 아니었다.
물론 튜토리얼부터 데일런트에게 반격기를 때려 넣고, 온갖 말도 안 되는 기행을 펼치기는 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광기와 집념이 합쳐져 만든 기괴함의 산물일 뿐.
누누이 말하지만 현성에게는 기사왕 티리카나 검성 유진과 같은 그런 재능충의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알레시아의 설명은 마치 천재화가가 선을 몇 번 그리고 ‘참 쉽죠?’라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수준.
[걱정마라. 티리카의 의지를 이은 것처럼 티리카의 눈을 가진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이네.]
‘…….’
그런 알레시아의 말에 현성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고개를 치며들며 미간을 좁혔다.
‘잠깐. 방금 뭐라고?’
[음? 티리카의 의지를 이은 것처럼 티리카의 눈을 가진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뭔가 떠오른 듯한 현성이 히죽 웃었다.
‘알았어. 해보자.’
[그래. 역시 자네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 말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벌리기 무섭게 카이락스의 검은 입자와 같이, 금빛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에 현성 역시 드래곤 하트에 있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허나 그의 예상이 맞다면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도 있었다.
바로 방금 전 알레시아가 말한 티리카의 눈.
현성에게 티리카와 같은 재능은 없었지만, 그와 같은 눈이라면 조금 말이 달랐다.
‘……알레시아를 구출해내고 얻은 스킬, 투신의 눈.’
그가 가지고 있는 신화급 아이템.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의 연계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특수스킬 중 하나로,
투신의 길에 이은 두 번째 스킬이었다.
‘물론 습득 이후에는 한 번도 써볼 기회는 없었지만…….’
바로 오늘, 그 기회가 찾아왔다.
그대로 현성이 투신의 눈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처음 투신의 길을 발동했을 때처럼, 그의 시야가 바뀌어 나갔다.
-파아앗!
눈앞을 어지럽게 메운 푸른 입자의 집합.
현성은 머지않아 이것이 마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카이락스와 알레시아의 입에 모여든 입자들.
그런 그들의 입자는 다른 곳과는 달리 크고 작은 입자들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치고, 그 소용돌이 부딪히며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에 현성 역시 한 곳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파직! 파지직…! 그극…!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도 둘이 만든 것과 같은 소용돌이와 경계가 생성되었다.
이는 알레시아가 말한 것과 똑같았다.
그대로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혹시 현성이 처음 마법변형을 이루었을 때를 기억하는가.
마법변형, 과거 대마법사들이 이룬 경지로, 마법계에 큰 발전을 이끈 기술이었다.
그리고 현성이 이를 해낼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대마법사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아니. 그가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동시에 이곳이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현성이 평타 캔슬이라는 테크닉을 통해 마법변형을 이루었듯이.
그는 알레시아의 설명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언정, ‘스킬’을 통해 이를 구현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즉, 브레스의 원리를 깨닫는데 필요한 조건이 티리카의 눈이라면, 투신의 눈을 발동하는 것만으로도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전부 앞서 말했듯.
<이스페리아>가 게임이고, 그가 플레이어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에 따른 결과.
-고오오!
현성의 입을 따라 검은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대로 머지않아.
카이락스가 브레스를 쏘아낸 그때.
현성과 알레시아가 동시에 브레스를 쏘아내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오며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띠링!
[두 개의 스킬이 합쳐집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합동기 : 용의 광시곡(狂詩曲)]
그렇게 현성의 검은 빛과 알레시아의 금빛이 한데 뒤섞여 카이락스를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
그런 둘의 브레스와 카이락스의 브레스가 격돌했다.
여기서 <이스페리아>의 설정 상.
처음 쓴 합동기는 무조건 치명타가 터지기 마련.
그리고 현성이 줄곧 숨겨왔던 마지막 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수 조건 달성.]
[조건 달성에 따라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업적 <드래곤 슬레이어>이 발동합니다. 그에 따라 용족을 공격할시, 한 번의 공격에 한하여 200%의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합동기 : 용의 광시곡 첫 발동으로 치명타 확정.
무엇보다 치명타가 터지면 그 데미지는 기존 공격의 2배.
여기다 업적의 효과로 200% 데미지 보정.
이 모든 게 합쳐져 현재 그의 공격은 기존의 총 4배에 다다르는 데미지 보정치를 받은 상태.
-그그극…!
이에 처음에는 팽팽했던 힘의 균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잠시 뒤.
현성과 알레시아의 브레스가 카이락스의 검은 빛을 소멸시키며 그를 집어삼켰다.
-콰가가가각!!
그와 함께 사방으로 환한 빛이 폭발하듯 눈앞을 가득 메우며 주변의 공기가 떨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푸스스.
반짝이는 빛 무리 사이.
거대한 카이락스의 육체가 아래를 향해 힘없이 떨어졌다.
-쉬이익.
찢어진 날개는 브레스에 그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며, 썩어문드러진 살점은 불꽃에 휩싸여 사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현성의 눈앞을 따라 여러 개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특수스킬 : 완전복사의 사용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특수스킬 : 완전복사가 해제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사룡(死龍) 카이락스를 쓰러트렸습니다.]
이에 곧 변신이 풀리면서 그가 알레시아의 등 위에 착지했다.
기존의 에피소드의 정보, 아이템, 스킬, 시스템, 업적.
그야말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한 그의 승리였다.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존나 사랑한다. 이스페리아.”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