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악몽(14)
시계탑 위로 두 드래곤의 흉성이 울려 퍼진 그 순간.
아카데미 모두의 시선의 위를 향했다.
그대로 아래에 있던 교수들이 중얼거렸다.
“또 다른 드래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교수 하나가 미하일을 향해 물었다.
“……미하일님은 지금껏 드래곤을 본적이 계십니까?”
그런 그의 말에 미하일이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고룡의 뼈나 가공된 드래곤 하트같은 잔재는 봐왔지만, 이토록 많은 드래곤을 직접 마주하는 건 나도 처음이군.”
미하일의 말대로, 일평생 한번이라도 보기 힘든 게 드래곤이었다.
헌데 지옥문에서 등장한 드래곤과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두 마리의 드래곤까지.
총 3체의 드래곤이 눈앞에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만큼 교수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건 시계탑에서 언데드를 막아내고 있던 시연과 레이첼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내가 본 게 맞아?”
“…….”
그러니까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사룡 카이락스의 브레스를 막아낸 직후.
현성과 알레시아가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 거기까지는 확실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 뒤.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금빛과 함께 두 마리의 드래곤이 등장했다.
그 중 첫 번째로 등장한 건 알레시아가 틀림없었다.
‘……블랙마켓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커다란 모습이지만 확실해.’
레이첼이 저 멀리 금빛의 드래곤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연 역시 공성전에서 알레시아를 본 경험이 있으니 그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알레시아의 옆에 있는 다른 드래곤.
찬란히 반짝거리는 검은 비늘.
무엇보다도 차갑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그런 드래곤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그녀들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레이첼이 흑룡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이에 시연이 검을 꾹 움켜쥐며 고개를 돌렸다.
“글쎄요. 저도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정황상 저건…….”
“그래.”
그대로 시연과 레이첼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유현성.”
“현성밖에 없겠죠.”
그리고 그런 둘의 말에 대답하듯.
검은 드래곤이 재차 흉성을 내질렀다.
[쿠오오오오!!]
하늘을 가득 메우는 우렁찬 외침.
그와 함께 옆에 있던 알레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기분은 어떤가?]
그동안 줄곧 주고받았던 익숙한 전음이었다.
이어서 알레시아의 물음에 검은 비늘의 드래곤, 그러니까 현성이 대답했다.
‘……나쁘지 않네.’
시연과 레이첼의 예상대로 또 다른 드래곤의 정체는 현성.
그렇게 말하는 그의 앞에는 하나의 창이 펼쳐져 있었다.
[도플갱어 퀸의 로브]
[등급 : 유니크]
설명 : 도플갱어 퀸의 힘이 일부분 깃들어 있는 로브이다. 지정한 대상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으며, 특수스킬 : 완전복사를 사용할 경우, 5분간 대상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 능력치까지도 완벽하게 복사할 수 있다.
[현재 등록된 대상 : 알레시아]
도플갱어 퀸의 로브.
이것이 바로 현성이 드래곤으로 변할 수 있는 이유이자,
그가 준비한 공략이었다.
‘애초에 이번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드래곤은 총 2마리.’
우선 그 첫 번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룡 카이락스.
그리고 두 번째는 현성의 곁에 있는 알레시아였다.
허나 그 등장방식이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알레시아는 카이락스와 같이 마족에게 세뇌당한 상태로 등장. 그러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 쓰러트려야 할 상대로 나온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알레시아 그녀는 본디 블랙마켓에서 잡혀있을 상태이며,
여기서 알레시아를 구출해내지 못할 경우, 그녀는 마족의 손에 넘어간다.
그 결과, 아카데미 침공 당시 마족은 카이락스와 알레시아, 이렇게 두 마리의 드래곤을 소환하여 압도적인 전력으로 모든 걸 파괴한다.
이것이 원작에서 예정된 전개.
허나 이번 회차에서는 달랐다.
지금은 현성이 한 발 앞서 블랙마켓에서 알레시아를 구출해냄과 동시에 그녀와 계약을 해낸 상태.
덕분에 알레시아가 마족의 손에 넘어가는 미래는 사라졌으며, 현성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본디 이번 에피소드의 공략법은 전에 말했듯이, 플라이 마법이 걸린 채로 카이락스를 상대하는 것 뿐.
‘그런데 그 방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거든.’
상대가 무려 드래곤이다.
게다가 언데드라 기존의 드래곤과 같은 상위마법을 난사하지는 않지만, 그 체력과 지속성만큼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마련.
그러니까 작정하고 공격해도 쓰러트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과거 본 에피소드를 진행할 당시.
현성 역시도 무지성으로 공격하는 걸로는 도저히 시간을 줄일 수 없다고 판단.
결국 끈질기게 약점부위를 물고 늘어지고 나서야 카이락스를 무너트렸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하린의 세뇌를 풀어냈다.
한마디로 세뇌를 푸는 것만이 유일한 공략이며, 완벽하게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상대.
그게 바로 사룡 카이락스라는 존재였다.
허나 지금은 알레시아라는 최고의 패가 손에 들어온 상태.
이에 현성은 알레시아와 도플갱어 퀸의 로브를 이용하여 기존의 공략법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략법을 쓰기로 했다.
‘……총 2마리의 드래곤을 통해 사룡 카이락스를 전면전으로 박살낸다.’
이 방법이라면 기존의 공략법보다 훨씬 빠르고, 무엇보다도 카이락스를 완전히 쓰러트릴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검은색으로 변한 건 예상외지만 말이야.’
현성이 자신의 비늘을 흘깃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알레시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대답했다.
[그건 아마 현성 그대의 무의식이 반영된 탓일 걸세. 아무리 모습을 완전히 베낀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그 고유성까지는 변하지 않지 않느냐?]
실제로 지금껏 현성이 도플갱어 퀸의 로브를 사용했을 때는 어디까지나 남의 모습을 완전히 흉내 내려고 했을 때 뿐.
그러나 지금은 상대를 완벽히 흉내 내려고 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특성만을 가져오려 한 것.
그 부분에서 비늘색의 차이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처음 현성이 드래곤으로 변했을 당시.
시연과 레이첼이 익숙한 분위기를 느낀 것도 비슷한 이유일 터.
[허나 걱정하지 말거라. 그 외 나머지는 완전히 같을 테니.]
그런 그녀의 말처럼 현재 현성의 모습은 비늘 색을 제외하고는 크기는 물론이며, 겉모습까지.
알레시아와 똑같았다.
마치 색만 다른 같은 드래곤을 보는 듯한 느낌.
[아무튼 그건 그렇고, 완전복사의 지속시간은 총 5분이라고 했었나?]
도플갱어 퀸의 로브에 담긴 특수스킬 : 완전복사.
그 효과는 5분간 변신한 대상의 능력치를 완벽하게 복사하는 것.
그렇다면 현성은 그 시간동안 드래곤의 겉모습뿐만이 아닌, 그 능력까지 다룰 수 있었다.
무려 중간계의 패왕이자 마나의 지배자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이었다.
거기다 그 대상이 사룡 카이락스처럼 언데드가 아닌, 살아있는 온전한 드래곤.
그 위력은 상상이상일 터였다.
‘그래. 단 5분. 그 안에 결판낼 수 있겠어?’
[분명 나 혼자라면 힘들었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대까지 가세한다면 모를 일이지.]
알레시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본체의 헌신을 위해 모아둔 힘.
거기다 드래곤으로 변한 현성의 전력까지 합쳐진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었다.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특수 스킬 : 완전복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이에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를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쿵! 쿠웅!
현성의 심장 중앙을 타고 마나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그 근원지는 다름 아닌 그의 드래곤 하트.
완전복사가 발동함에 따라, 드래곤만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동력기관이 발동한 것이었다.
-사아아…!
그대로 혈관을 따라 온 몸 곳곳으로 퍼지는 뜨거운 감각.
퍼져나가는 마나는 마치 끝이 없는 바다와도 같이, 멈추지 않고 그의 몸을 순환하고 있었다.
‘……!’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에 현성이 흠칫거렸다.
순수한 마나가 응축된 거대한 힘의 흐름.
하지만 그도 잠시.
점차 현성이 그런 흐름에 적응하여,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알레시아가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드래곤 하트를 사용하는 게 처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적응력이었다.
[혹여나 몸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했건만……. 괜한 걱정이었군.]
‘…….’
곧 현성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온 몸을 타고 느껴지는 풍부한 마나.
그대로 그가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알레시아.’
일반적인 전개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조건.
동시에 그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최초의 공략.
그 공략이 지금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 * * * *
-콰아아아앙!!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의 몸이 쏘아졌다.
그와 함께 공기가 찢어질 듯 폭발하는 소리가 뒤늦게 울려 퍼졌다.
무엇보다 그런 그의 양쪽 날개를 따라 타오르는 불꽃.
-화르륵!
지금껏 현성이 보여준 불꽃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화력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붉게 타오르던 불꽃이 점차 하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하얀색을 넘어서, 그의 비늘 색과 같은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과거 화이트레이를 토벌할 때 선보였던 칠흑의 불꽃.
크루페돈의 불꽃이었다.
“……악마의 불꽃!?”
이에 카이락스의 등 위에 있던 유진이 움찔거렸다.
그대로 그가 재빨리 카이락스의 몸을 틀어 쇄도하는 현성을 회피하려 했다.
아니 회피하려는 찰나였다.
-우우우웅…. 촤르륵!
돌연 카이락스의 사방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쏘아지는 금색의 사슬들.
알레시아의 속박마법이었다.
이에 카이락스의 몸이 공중에 묶였다.
물론 그는 언데드인 만큼 특유의 완력으로 곧 빠져나왔으나 사슬에 묶인 그 찰나의 틈에 현성이 카이락스를 가격했다.
-콰아아앙!!
현성이 격돌함과 동시에 그의 몸에 두르고 있던 검은 불꽃이 폭발했다.
그리고 불꽃은 단순히 물리공격이 아닌 마법과 화상 데미지까지 들어가는 복합적인 공격.
신성력만큼은 아니겠지만 언데드 상대로도 꽤나 효율적인 공격이었다.
[키에에에엑!!]
이를 증명하듯 카이락스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면서 현성과 카이락스가 한 데 뒤섞여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날개를 펄럭이며 날카로운 송곳니로 상대의 숨통을 물어뜯는 치열한 싸움.
-드드득! 콰앙! 콰드득…!
서로의 공격이 부딪힐 때마다 커다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시연과 레이첼은 물론이며, 이클레아까지 주먹을 꾹 쥐고 지켜보았다.
차마 끼어들 엄두조차도 나지 않는 드래곤들의 전투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불씨가 흩날리는 그 사이.
현성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그극…, 터엉!
애초에 앞서 말한 것처럼 카이락스는 알레시아와 같이 살아있는 드래곤이 아니기 때문에 마법은 구사하지 못하지만, 육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태.
단순 육탄전으로 가게 되면 밀리는 게 당연했다.
그와 함께 현성이 외쳤다.
‘알레시아!!’
[준비되었다. 현성, 피해라!]
그런 알레시아의 전음에 현성이 재빨리 날개를 펼쳤다.
동시에 그를 따라 검은 불씨가 어지럽게 흩어지며 카이락스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불씨가 걷힌 그 순간.
-쾅! 콰광! 두두두! 콰앙!
하늘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마법.
마치 융단폭격을 연상케 하는 마법이 일제히 카이락스를 향해 쏘아졌다.
날카로운 바람이 그의 날개를 찢고, 화염이 그의 비늘을 태우며, 뇌격이 그의 제공권을 빼앗았다.
쉴 새 없는 무영창 마법.
이것이 바로 마나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드래곤의 진면모였다.
동시에 그때였다.
-콰르르릉!!
폭격하는 마법 사이.
유독 진하고 푸른 뇌격이 내려쳤다.
그리고 잠시 뒤.
-펄럭!
카이락스와 유진 앞에 온 몸에 번개를 두른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촤르륵, 티 없이 검은 비늘이 움직일 때마다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건 분명 현성의 휴먼 라이트닝, 아니 드래곤 라이트닝이었다.
-스팟.
그대로 현성의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한 줄기의 푸른 뇌전이 카이락스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비명을 내지르며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카이락스.
-콰가가각!!
그 뒤로 한 박자 뒤늦게 우레와 같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이는 현성 그의 공격이 순간 소리를 앞질렀음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