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악몽(4)
밤이 찾아온 아카데미.
강의는 이미 진즉에 끝난 지 오래.
이에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학생회실에서 서류작업을 끝마치고 슬슬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누군가는 자신의 방안에서 눈을 반짝이며 게임을.
누군가는 노트를 펼치고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유하린의 방.
그곳에는 하린이 이불을 꾹 쥔 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해보였다.
“후우…….”
평소라면 벌써 잠에 들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린은 여전히 깨있었다.
얼마 전부터 계속된 악몽 때문이었다.
“……오늘은 괜찮을 거야.”
하린이 애써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가 침대에 눕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최근 악몽으로 인해 잠을 설쳤기 때문인지, 그간의 피로와 함께 참아왔던 졸음이 몰려왔다.
이에 그녀가 잠에 들기 직전.
하린이 오늘만큼은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몸에 힘을 뺐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칼을 스치는 차가운 밤바람에 하린이 눈을 떴다.
-스으으.
눈을 뜬 그녀는 울창한 숲 속에 서있었다.
하늘 위에 보이는 건 오직 밝은 달 뿐.
그리고 그런 달빛 아래.
“하…, 린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하린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다시 그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덜덜.
그런 하린의 손끝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의 등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뒤를 돌아볼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제발 그만.”
하린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귀를 막았다.
하지만 등 뒤의 목소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귀를 막으면 막을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유…, 하린…….”
이에 결국 하린이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뒤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이젠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갈라지는 성대 틈을 비집고 나오는 처절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하린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며, 살려달라며 말하고 있었다.
허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왜! 왜…! 왜 나만 혼자 두고……!”
그의 외침은 점차 절규로 변해갔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마치 동물의 울음과 같은 기괴한 음성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그의 절규에서는 하린을 향한 짙은 원망이 섞여 있었다.
“너 혼자만….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
아무리 귀를 막아도 멈추지 않는 목소리.
이에 하린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니야! 제발 저리가!”
이건 거짓말이다.
이건 그저 악몽일 뿐이다.
이건 전부 허상에 불과하다.
하린이 그렇게 되새기며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눈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
숲 속에 적막만이 맴돌았다.
더 이상 귀를 파고들던 처절한 절규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에 하린이 조심스럽게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허나 그녀가 고개를 든 순간.
-주르륵.
그런 그녀의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오빠.
유진이 서있었다.
“하…, 린아…….”
유진이 비척비척 걸어오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가 한 번 발을 내딛을 마다, 복부에 박힌 검신을 타고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움찔!
그 모습에 하린의 뒤로 주춤거렸다.
동시에 사시나무 떨 듯, 공포심에 세차게 떨리는 온 몸.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왜 혼자…, 도망쳤어?”
유진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하린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오지마.”
그동안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오빠의 모습.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당장에라도 등을 돌려 도망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이후에 펼쳐질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터.
이건 전부 꿈이다. 저건 오빠가 아니다.
하린이 다시금 그 사실을 곱씹으며 유진, 아니 자신의 오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몽을 향해 외쳤다.
“오지 말란 말이야!!”
-멈칫.
그런 하린의 외침에 다가오던 유진이 멈춰 섰다.
그녀의 목소리가 효과 있었던 걸까.
허나 그도 잠시.
“……가 …면 …니야?”
그 자리에 멈춰선 유진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가 하린을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니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피칠갑을 한 유진이 하린의 멱살을 움켜쥐며 윽박질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가…, 니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컥…. 크읏…!”
“너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나를! 그렇게 버렸으면 안 되는 거잖아!”
이에 하린이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더 유진이 그녀의 목을 죄어왔다.
그대로 그가 하린을 바닥에 패대기치며 말했다.
“대답해봐…. 대답해보란 말이야!”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오빠의 모습, 목소리.
전부 다 그대로였다.
동시에 그런 유진의 말에 하린이 참아왔던 울음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이제 그만…, 사라져줘…….”
“…….”
그러나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가까이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와 함께 유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면서 유진이 쓰러진 그녀 위로 올라탔다.
이어서 그가 하린의 목에 두 손을 가져다대고.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냥 우리 다 같이 죽자.”
-꾸구국!
이에 하린의 입을 타고 고통 섞인 신음이 삐져나왔다.
점점 숨이 가빠졌다.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한 고통.
“오…, 빠…….”
하린이 유진의 손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점차 약해지는 저항.
눈앞이 서서히 흐려졌다.
그리고 하린의 숨통이 끊어지기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내리쬐는 달빛아래.
“잘 자. 내 동생.”
죽어가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히죽 미소를 짓고 있는 유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적막감이 맴도는 숲 속.
하린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툭.
그런 그 날의 풍경은,
유진이 하린을 살리기 위해 희생했던 그 날 밤과 똑같았다.
* * * * *
깊은 밤이 찾아온 아카데미.
하린의 기숙사.
악몽에서 깬 그녀가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그대로 그녀가 황급히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그리고 곧.
무사히 현실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그녀가 긴장이 풀린 듯,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자신의 방 안.
탁자 위에 있는 시계와 불 꺼진 전등.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그래, 죽은 자신의 오빠.
그의 희생으로 지금껏 살아있는 자신.
모든 게 그대로였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불 꺼진 침대 위.
하린이 소리 죽여 울며 중얼거렸다.
악몽이 계속될수록, 이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악몽의 원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죄책감이라는 걸.
오빠를 놔두고 혼자 살아남은, 추악한 자신에게 내려진 천벌이라는 걸.
차라리 악몽에서처럼 정말로 죽었다면 차라리 홀가분했을까.
-철컥. 끼이익….
그대로 하린이 아무 말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가 터벅터벅, 기숙사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은 이미 초점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처억.
그렇게 옥상에 도착한 하린이 난간 위에 올라섰다.
머리칼을 스치는 차가운 밤바람.
악몽과 똑같았다.
하린이 까마득한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마 여기서 떨어지면 확실히 죽을 수 있겠지.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니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어디선가 낯선 선율이 들려왔다.
끼이익, 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현악기들의 소리는 마치 신화 속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듯 했다.
스산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
이에 하린이 무언가에 홀린 듯.
옥상에서 내려와 그 선율을 따라 움직였다.
계단을 지나, 기숙사를 거쳐, 계속해서 걸었다.
그런 그녀는 얇은 잠옷에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 발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린의 발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멈춰선 곳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 외곽에 위치한 시계탑 앞이었다.
본디 매 정각마다 종소리가 울려 퍼져야 할 시계탑에는,
종소리 대신 계속해서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오고 있었다.
-끼이익….
그대로 하린이 문고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와 함께 그녀가 문을 연 순간.
하린의 눈앞에 서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빠?”
그녀의 오빠, 유진이었다.
동시에 악몽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듯, 하린이 작게 몸을 떨었다.
오빠가 당장에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어 목을 조를 거 같았다.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에 하린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손을 비볐다.
울먹거리는 목소리 속, 두려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지금 이게 악몽인지, 현실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빌어야했다.
공포심에 손이 덜덜 떨려왔지만, 하린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제발…, 내가 잘못했…….”
하린의 사과가 끝나기도 전.
유진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악몽의 기억이 하린을 집어삼켰다.
“오, 오지마!”
다시 또 목을 조일 게 분명했다.
그대로 하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미안해. 하린아.”
목을 타고 느껴지는 것은 끔직한 고통이 아닌, 따뜻한 포옹이었다.
이에 하린이 멍하니 자신을 안고 있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는 울고 있었다.
“그 날,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오…, 빠?”
“더 일찍 오지 못해서 미안해.”
유진은 뭐가 그리 미안한지, 연신 그녀를 향해 사과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악몽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끝까지 버텨줘서 고마워,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유진이 하린을 있는 힘껏 껴안으며 흐느꼈다.
그건 분명 하린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다정한 오빠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하린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정말로…. 진짜로…, 우리 오빠야?”
지금 이것도 악몽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오빠가 피를 흘리며 자신의 목을 조를 것만 같은 공포.
그런 불안함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
그런 하린의 물음에 유진이 그녀를 더욱 더 꼬옥 껴안으며 대답했다.
“그리웠어. 하린아.”
혼자 버텨온 그 긴 시간 동안,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에 하린이 줄곧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며 얼굴을 파묻었다.
“오빠? 정말로…. 오빠 맞지?”
“응, 나야. 하린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유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지금껏 그녀를 감싸던 불안감이 서서히 녹아져 내렸다.
그대로 안도감과 함께, 그동안의 온갖 서러움이 물 밀 듯 밀려왔다.
“흑, 흐윽…. 왜…, 왜 이제 왔어…….”
그제야 모든 게 실감났다.
다정한 오빠의 목소리도, 따뜻한 오빠의 품도.
전부 그동안의 악몽이 아닌 현실이었다.
깊은 숲 속에서 피를 흘리던 환상은 사라졌다.
자신의 목을 조르던 가짜는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 하린 그녀의 앞에 있는 건.
명백히 자신이 알고 있는 진짜 오빠였다.
“늦어서 미안.”
유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하린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시계탑.
그녀는 한참동안 유진의 품에 안겨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