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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78화 (178/240)

178화 악몽(3)

저번의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하시연이었다면,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유하린이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의 키워드가 등장인물의 각성과 관련 있는 것은 고려했을 때.

이번에는 유하린 그녀가 각성할 차례였다.

그도 그럴게 하린은 지금껏 하시연이나 레이첼과는 달리, 이렇다 할 활약이 전무했다.

하시연은 선천강에서 만났을 때부터 수준급의 검실력을 자랑했으며,

레이첼은 애초에 피의 여제라 불렸으니 당연했다.

물론 하린도 그전부터 마법을 쓸 수 있었으나, 둘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녀가 성장포텐셜이 없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유하린.

주인공 유진의 여동생이자, 무려 성녀의 자질을 타고난 자.

그 재능만큼은 앞선 둘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각성만 한다면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등장인물.’

그게 바로 하린이라는 캐릭터였다.

동시에 방금 전 그녀의 입에서 나온 악몽이라는 단어로 인해, 현성은 이 각성의 때가 도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악몽을 꾼 지는 얼마나 됐어?”

현성이 하린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뇨. 오빠가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방금 말했듯 요새 좀 피곤하거나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거겠죠.”

하린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번 악몽은 단순히 몸의 피로로 인한 게 아니었다.

뭔가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치만 오빠에게 걱정을 끼치기는 싫으니까…….’

하린이 현성을 바라보며 작게 주먹을 쥐었다.

기껏 해봐야 악몽이다.

그녀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오빠는 아무 걱정하지마세요. 뭐 금방 사라지겠죠.”

하린이 씩씩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에 현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악몽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빈도가 더욱 늘어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악몽의 원인은 다름 아닌.

‘하린의 몸속에 있는 마족의 피 때문이니까.’

그대로 현성이 하린을 주시했다.

동시에 그런 그의 눈앞에는 그녀의 상태창이 떠올라 있었다.

[이름 : 유하린]

성별 : 여성

나이 : 16

종족 : 반인반마

클래스 : 마법사

업적 : [마족의 피가 흐르는], [성혈(聖血)을 타고난]

여기 주목할 부분은 하린의 종족과 업적란.

예전에 설명했듯이, 그녀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마족인 어머니와 인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

그게 바로 하린이었다.

무엇보다 그녀 안에 있는 마족의 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진다.

그에 따라 지금 현재.

하린의 몸이 이를 버티지 못하고 악몽이라는 현상으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악몽만 꾸고 끝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반인반마의 피는 쓰기에 따라 세상의 운명이 갈린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파란을 일으킨다.

‘주인공 유진이 그랬듯이 말이지.’

누누이 말했듯이 <이스페리아>의 메인은 인간과 마족, 두 진영의 대립.

그래서 <이스페리아>를 플레이 하다보면 후반부에 크나큰 분기점이 등장한다.

이는 바로 주인공 유진이 인간과 마족, 두 진영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만약 여기서 플레이어가, 그니까 유진이 마족진영을 택한다면?’

유진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얻게 되지만, 최종전쟁은 마족의 승리로 끝나며 그를 제외한 인간은 전부 죽는다.

한마디로 세상이 멸망하는 엔딩.

그리고 이건 그의 동생 하린도 마찬가지였다.

만에 하나, 그녀가 마족의 손에 넘어갈 경우.

현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꼼짝없이 멸망을 맞이해야 한다.

이처럼 반인반마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존재이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마족의 표적이 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점점 마족의 피가 강해지는 하린. 이에 마족은 그녀의 기운을 따라 아카데미까지 잠입하여 그녀를 노린다.’

이게 바로 이번 에피소드.

마족의 아카데미 침공이었다.

저번에 현성이 이클레아에게 마족의 행적을 물어보며, 다른 교수들과 함께 내부적으로 대비 할 것을 요청한 것도 바로 이 탓이었다.

‘……혹시라도 피해가 커지면 그땐 돌이킬 수 없으니까 말이지.’

그대로 현성이 눈앞의 하린을 주시했다.

만약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녀가 마족의 손에 넘어가게 둔다면 아카데미는 파괴.

거기다 세상은 멸망.

그야말로 나락 중의 나락에 빠지며 꼼짝없이 배드 엔딩을 맞이해야 했다.

이에 현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개죽음 당할 수는 없잖아.’

그러면서 현성이 튜토리얼부터 지금까지 개같이 굴러왔던 일들을 회상했다.

데일런트, 크루페돈, 정령의 신전, 피의 왕국, 여왕의 둥지.

그동안 해피엔딩 하나 만들겠다고 발악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그 모든 게 무너진다 생각하면 정말이지 억울해서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오빠, 괜찮아요?”

하린이 그런 현성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혹 악몽이야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녀가 일부러 더욱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 글쎄 전 괜찮다니까요. 제가 겨우 악몽 상대로 질 거 같아요?”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로 당할 리 없지. 그래도 몸조심해.”

“당연하죠. 오빠도 꼭 몸조심하시기.”

그와 함께 하린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래를 흘깃 바라봤다.

“어머, 벌써 시간이…오빠, 저 다음 강의에 늦기 전에 이만 가봐야겠어요.”

사실 다음 강의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지만, 이 이상 현성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하린이 현성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오빠. 다음에 만나요.”

“그래, 늦지 않게 어서 들어가.”

“네!”

그렇게 하린이 등을 돌리고 반대쪽으로 뛰어가고.

현성이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은…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의 목적은 우선 하린이 마족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

하지만 아직은 현성이 나설 차례가 아니었다.

“…….”

그런 그가 해야 할 건 단 하나.

그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동시에 현성의 뒤쪽에 있는 강의실.

“쟤는 또 누구야.”

“유하린이라고 현성이 아는 후배입니다.”

그곳에는 레이첼과 시연이 현성을 감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는 친구와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급하게 나가더니,

그새 또 불청객이 추가되었다.

“……오빠라고 부르는 것부터 단순히 아는 후배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요. 못 보던 사이 더 각별해진 거 같네요.”

그런 레이첼과 시연은 강의 때까지만 해도 서로 견제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어느새 옆에 딱 붙어 하린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공동의 적이 등장함에 따른 일시적 동맹이었다.

그대로 시연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남매라고는 하지만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매?”

“네. 모를 수도 있겠죠. 그야 둘은 그 사실을 숨기고 있으니까.”

그녀가 과거 불의 둥지 때.

유독 가까웠던 둘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

사뭇 진지한 시연의 얼굴.

이에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그런 것도 몰랐습니까?”

사이가 좋았던 것도 잠시.

시연이 이때다 싶어 작게 조소하며 물었다.

물론 이는 명백히 시연 혼자만의 오해.

그러니까 삽질이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둘을 남매라고 믿고 있었다.

이에 레이첼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래. 남매 아니야.”

“……네?”

“쟤 동생 없다고. 현성이 직접 말해줬어.”

단호한 레이첼의 말.

이에 시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하, 하지만 유하린, 유현성. 둘 다 성이 같잖아요.”

“넌 성이 같으면 다 남매라고 생각 하냐?”

“그건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현성이 스스로 남매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혼란에 빠진 시연이 현성과 하린이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보았다.

그대로 레이첼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까닥였다.

“아무튼 쟤넨 남매 아냐. 분명히 둘 사이에 뭔가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레이첼이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뭔가 있다.

그녀가 그리 확신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럼 일단 넌 돌아가 봐.”

그 말에 시연이 순간 정색하며 차갑게 받아쳤다.

“제가 왜요?”

그러자 레이첼이 뻔뻔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야 이제부터 현성은 내 방에 갈 거니까. 단 둘이.”

레이첼이 굳이 단 둘이를 강조했다.

이에 시연이 잠시 평정심을 잃고 흔들렸다.

-움찔!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겨우 게임패드 고치는 거 가지고 그렇게 말하다니. 누가 들으면 고백이라도 한 줄 알고 오해하겠어요.”

“……고, 고백?”

고백이라는 말에 레이첼이 말을 더듬었다.

분명 현성과 사귀는 사이라고 말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의 하에 한 연기.

정식으로 고백한 적은 없었다.

흔들리는 레이첼의 눈동자.

그리고 단련된 검사인 시연이 그 빈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곧바로 시연이 매서운 공격을 날렸다.

“설마 고백도 안하고 혼자 망상하는 건 아니죠?”

“뭐? 망상?”

이에 레이첼이 발끈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뭔가 떠올린 그녀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너. 현성 목 물어봤어?”

“……네, 넷?!”

그런 레이첼의 발언에 시연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목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람.

“흐응, 역시 그렇지.”

그런 시연의 반응에 레이첼이 할짝, 혀로 입술을 핥았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더라.”

“지, 지금 그게…무, 무슨……!”

충격적인 그녀의 말에 시연의 얼굴이 단숨에 빨개졌다.

목을 물어? 왜? 게다가 맛있어?

설마 현성에게 미처 자신이 모르는 그런(?) 취향이 있던 걸까.

그대로 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보나마나 당신이 일방적으로……”

그와 동시에 레이첼이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현성이 먼저 하라고 했는데?”

“……읏!”

물론 레이첼이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흡혈이었지만.

그녀가 뱀파이어인 걸 모르는 시연의 입장에서는 가히 충격적인 발언.

곧바로 시연이 저 멀리 현성을 바라보았다.

“…….”

현성의 검은 머리칼 아래.

그와는 대비되는 하얀 목덜미.

그대로 시연이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앙 다물고 뛰쳐나갔다.

-파앗!

그 모습에 레이첼이 뒤늦게 그 뒤를 쫒았다.

“너 갑자기 무슨…!”

그리고 잠시 뒤.

-처억.

현성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시연이 휙 고개를 들며 그의 두 눈을 주시했다.

이에 현성이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마, 많이 기다렸지? 그게 다름이 아니라……”

“현성.”

시연이 무려 그의 말을 끊으면서까지 말했다.

거기다 큰 결심을 한 듯한 그녀의 눈빛.

덕분에 덩달아 레이첼까지 잔뜩 긴장하며 주먹을 쥐었다.

‘……서, 설마 여기서 그럴(?) 생각은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레이첼이 애써 부정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꼬옥.

“다음엔…나도 허락해줘……”

당차게 말을 꺼낸 것과는 달리.

시연이 고개를 푹 숙이며 수줍게 그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이에 현성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락하다니. 뭘?”

“알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연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그녀는 이미 얼굴은 물론이며, 귀와 목까지 잔뜩 빨개져있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시연.

“다, 다행이다…….”

그 모습에 레이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도 잠시.

“자, 똑똑히 봐!”

레이첼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겼어.”

도저히 앞뒤 상황을 알 수 없는 레이첼의 말.

그대로 현성이 저 멀리 도망치는 시연과 옆에 있는 레이첼을 번갈아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도대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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