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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66화 (166/240)

166화 공성전(10)

“이런 망할…….”

그 대답에 진우가 주먹을 콱 쥐었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뭐? 공손하게 부탁해?

조롱이 섞인 명백한 도발이었다.

하 가문인 자신이 겨우 고아 년 따위에게 이런 취급을 받다니.

도저히 참기 힘든 모멸감이 진우의 몸을 휘감았다.

“…….”

동시에 진우가 자신의 발아래.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시연을 바라보았다.

애써 강한 척 하고 있지만, 살이 터져 부들거리는 양손이 그녀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손 뿐 만이 아니었다.

온 몸에 가득한 찢긴 상처.

입고 있는 옷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있었다.

-뚝, 뚝…..

이미 바닥은 흘러내린 시연의 피로 흥건해진지 오래.

전부 방금 전 수연과의 전투로 인한 결과였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연은 신음 소리 하나 흘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진우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해? 부탁 안 할 거야?”

그 말에 진우가 어금니가 부러질 듯.

있는 힘껏 이를 빠드득 갈았다.

“오냐. 네 년이 아직 분수를 파악 못했구나.”

그대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진우가 시연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이에 시연의 고개가 꺾이며 그녀의 입을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 안이 터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증표! 어디 있냐고!”

진우가 연신 시연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때마다 그녀의 고개가 꺾였지만, 시연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진우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가 손목을 풀며 시연의 머리채를 쥐었다.

-콰악!

“어디까지 버티나 한 번 해보자고.”

분노에 찬 진우의 중얼거림.

이를 시작으로 직계파의 성 최상층.

그의 일방적인 폭행이 시작되었다.

* * * * *

-뻐억! 퍽! 퍼억! 콰직!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들려오는 건 오직 진우가 시연을 때려 패는 소리 뿐.

그리고 잠시 뒤.

-챙그랑.

진우가 들고 있는 검집을 내려놓았다.

그런 그의 검집은 물론이며, 양손을 따라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대로 진우가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그러면서 그가 발끝으로 쓰러져있는 시연을 툭툭 건드렸다.

“증표. 어디 있어.”

하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진우가 버럭 호통을 치며 냅다 발로 시연의 복부를 걷어찼다.

“지금! 내가 묻잖아!!”

-뻐억!!

그 충격에 시연의 몸이 크게 덜컥거리며 움직였다.

그와 함께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검은 피.

“……쿨럭.”

그 모습에 진우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씨발 왜 대답을 안 하고 버텨.”

이어서 진우가 천천히 몸을 숙이고 시연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렸다.

“야. 내 말 들리지?”

“…….”

“증표. 어디 있냐고.”

그 말에 시연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따라 흘러내리는 붉은 피.

엉망이 된 머리칼.

허나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그대로 빤히 진우를 바라보고 있던 시연이 뭔가 말하려는 듯 웅얼거렸다.

이에 진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말해봐.”

그러면서 진우가 고개를 내민 순간이었다.

-퉷!

시연이 진우의 얼굴을 향해 검은 피를 내뱉었다.

그대로 그녀가 방금 전에 그랬듯.

조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공손하게. 부탁하라니까?”

동시에 진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년이 끝까지…!”

당장 증표만 뺐으면 되는 마당에 시간을 뺏기고 있는 게 여간 화나는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끝까지 변하지 않는 저 눈빛.

진우는 그게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그가 하 가문의 연무장에서 시연에게 패배했을 때.

그녀가 진우를 내려다보던 눈빛과 똑같았다.

고요하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차라리 대놓고 멸시라도 했다면 덜 비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연은 그저 조용히 진우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검을 보듯.

그래, 바닥에 떨어진 검.

바깥에서 들여온 출신도 모르는 검에 꺾여, 볼품없이 바닥에 추락한 검.

그게 바로 진우였다.

-으드득!

떠올리기 싫은 그때의 기억에 진우가 이를 악물었다.

허나 그도 잠시.

진우가 크게 숨을 고르고, 시연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덥썩.

“오냐. 네 년의 뜻 잘 알았다.”

단호한 한 마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진우가 그녀의 머리채를 질질 끌며 창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진우가 발코니 바로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처억.

그대로 그가 시연의 멱살을 부여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당장에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운 그녀의 모습.

이에 진우가 시연을 향해 보란 듯이 탁자 위에 떠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보여?”

그곳에는 최상층 아래.

본대병력에게 포위된 현성이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정도 막아내는 모양이었지만, 역시나 그 수가 문제였다.

“저 녀석을 기다리는 거라면 포기해라.”

진우가 화면 속 현성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저만한 병력을 뚫고 최상층까지 올라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화면 속에 그는 망치를 쥔 채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

시연이 그런 현성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압도적인 병력차이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당장 포위된 지금도 그랬다.

그는 계속해서 달려드는 병사들을 제압하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연이 작게 웃었다.

그녀는 그런 현성이 좋았다.

선천강에서도, 불의 둥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전력으로 부딪히는 현성이 좋았다.

아니 어쩌면 그를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시연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가문에 얽혀, 사정에 얽혀, 자신의 자격을 의심하며.

정작 중요한 상황에 항상 망설여왔다.

당장 지금도 그랬다.

과연 하 가문의 은혜를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겨우 고아에 불과한 자신이 이런 욕심을 내도되는 걸까.

아직도 그런 망설임과 의심이 마음 한켠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금 전.

자신의 검이 수연에게 꺾였을 때.

그 마음은 더더욱 커졌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버티는 현성을 본 이상, 도저히 포기하지 못할 거 같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시연이 싱긋 웃으며 화면 속 그를 바라보았다.

현성이 포기하지 않는 한, 자신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떨어트려.”

가문의 증표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

이에 진우의 손을 부들부들 떨렸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분노에 찬 그의 외침이 최상층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소리에 처음 수연의 검에 쓰러져있던 연서가 정신을 차렸다.

-스르륵.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연서의 눈앞에 보인 건 진우가 시연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했다.

허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언니를 구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뿐이 전부였다.

‘움…직여……!’

연서가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다.

이에 손이 작게 움찔거렸다.

좋아, 이대로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진우의 떨림이 멎었다.

그리고 그가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어차피 여기서 죽든, 가주쟁탈전이 끝나고 죽든 달라지는 건 없겠지. 그렇다면 네 년 원하는 대로 해주지.”

“…….”

“잘 가라.”

그 말을 끝으로 진우가 손을 놓았다.

그와 함께 연서의 몸이 움직였다.

그대로 그녀가 떨어지는 시연을 향해 몸을 던졌다.

-타앗!

“……?!”

채 누가 말리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나 시연을 끌어올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에 연서가 시연을 껴안은 채. 둘의 몸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휘이잉!

귓가에 들려오는 바람소리.

뒤늦게 연서의 존재를 알아차린 시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너 지금 뭐하는…!”

이대로라면 둘 다 죽는 거 밖에 안 된다.

허나 그때였다.

연서가 오히려 시연의 몸을 더욱 더 꽉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됐고. 꽉 잡기나 해. 바보야.”

동시에 연서가 손목에 찬 검은 팔찌가 빛을 내뿜었다.

그 팔찌는 다름 아닌 최상층에 올라오기 전.

현성이 건네준 팔찌.

-파아아앗!

그대로 잠시 뒤.

눈이 부시게 터져 나오는 빛 무리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했어.”

짧은 현성의 한 마디.

그와 함께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던 몸이 돌연 정지했다.

이어서 부드럽게 머리칼을 간질이는 바람.

-펄럭!

어느새 그런 그들의 아래에는 금빛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알레시아.

과거 기사왕 티리카의 친우이자, 지금은 현성과 함께 하는 드래곤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바람이 알레시아의 날개 끝에 멈춘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알레시아의 몸이 드넓은 창공을 향해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어엉!

그렇게 날아오른 알레시아는 단숨에 최상층까지 도달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최상층의 외벽을 통째로 날려버리며 진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화려한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파편 사이.

현성이 시연과 연서를 안은 채, 최상층에 발을 내딛었다.

-터억.

직계파의 성 최상층.

금빛의 드래곤과 함께 등장한 현성.

그의 뒤를 따라 빛에 난반사된 유리파편이 반짝였다.

* * * * *

“이, 이게 무슨…….”

진우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래층에 있어야 할 현성이 최상층에 있다니.

무엇보다도 그의 뒤에 자리한 금빛의 드래곤.

드래곤이 도대체 왜 여기에?

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

현성이 그런 진우를 무시하며 안고 있던 시연과 연서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연서는 배에 긴 자상을 입은 채 상처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미안하다. 좀 더 빨리 써야했는데 생각보다 조금…힘들더라.”

연서가 검은 팔찌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한 눈에 봐도 심각한 외상.

아무래도 무리하게 움직이다 상처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시연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엉망이 된 검은 머리칼.

온 몸 곳곳에 보이는 푸른 멍과 상처.

입 안이 터져 입술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

“……왔어?”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연은 싱긋 웃으며 현성을 마주했다.

그대로 그녀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역시 네 계획대로 하길 잘했어. 정말 니가 말했던 그대로더라. 덕분에 진우한테 한 방 먹였다니까?”

“…….”

“니가 그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도 시연은 끝까지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아냐. 나 괜찮아.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심하게……”

하지만 그런 시연의 말과는 다르게 돌연 그녀의 눈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현성의 등장에 마음이 놓인 탓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너무 반가운 탓일까.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처음 진태의 손을 잡고, 하 가문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부.

그동안 혼자 참아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어? 왜 눈물이…나 진짜 괜찮은데…….”

시연이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울음은 도저히 멈출 줄을 몰랐다.

이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시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알레시아. 둘을 부탁할게.”

[……그러지.]

그런 현성의 말에 알레시아가 날개를 펼쳐 둘을 감싸 안았다.

곧 그런 그녀의 주위로 따뜻한 빛이 퍼져 나왔다.

힐링마법이었다.

-파아아.

이걸로 둘의 상처가 더 늘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남은 상처도 점차 회복될 터.

이어서 알레시아가 현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아아.

차갑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왜일까.

그런 현성에게서는 그동안에 보여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에 알레시아가 물었다.

[……화난 게냐.]

그 물음에 현성이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글쎄.”

동시에 그의 주변을 타고 검은 화염이 진득하게 피어올랐다.

-화르륵!

직계파의 성 최상층.

타오르는 검은 화염 속.

현성이 진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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