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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64화 (164/240)

164화 공성전(8)

“유현성.”

연서가 시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현성의 노력까지 물거품으로 만들 거야?”

“……!”

현성의 이름이 나옴과 동시에 시연의 떨림이 멎었다.

그녀가 최상층으로 향하기 직전.

현성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항상 그랬다.

선천강에서도, 불의 둥지에서도, 이번 공성전에서도.

현성이 자신을 도와줌으로써 이득 볼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자신을 향해 먼저 손을 뻗어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런 사람은 지하철에서 자신을 구해준 하진태 이후로 처음이었다.

-꾸구국.

이에 시연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연서의 말이 전부 맞았다.

지금, 방계파를 이끄는 자는 오직 자신하나 뿐이고, 여기서 꺾인다면 다른 사람들의 노력조차 욕보이는 짓이었다.

“……고마워.”

시연이 연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덕분에 머리가 가벼워졌어.”

그대로 시연이 천천히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와 함께 스르릉, 그녀가 검을 빼들었다.

그런 시연의 검 끝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하진우.

-처억.

그 모습에 진우가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결국에는 제 분수도 모르고 하 가문을 넘보려는 건가?”

“…….”

허나 시연은 방금 전과는 달리 그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완전히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시연은 우선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진우의 말에 연서 역시 검을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

“……착각?”

그러자 연서가 옆에 있는 시연을 바라보고는.

보란 듯이 진우를 향해 당당하게 대답했다.

“언니도 하 가문이야.”

“헛소리.”

그녀의 대답에 진우가 미간을 찡그렸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발언이었다.

감히 저 고아 년이 하 가문이라고?

아니. 그럴 일은 없었다.

단순히 하 가문의 성을 따랐다고 전부 하 가문인 게 아니었다.

그 근본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피가 전부.

‘저깟 년에게 허락되는 이름이 아니란 말이다…!’

진우가 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에 따라 작게 흔들리는 검 끝.

하지만 그도 잠시.

“아무래도 더 이상은 말을 섞어봤자 아무런 소용없을 거 같군.”

“…….”

“그러니 지금부터는 내 직접 알려주도록 하지.”

그가 천천히 자세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검 끝의 떨림이 멎은 순간.

진우가 시연을 향해 쇄도하며 외쳤다.

“누가 진정한 하 가문인지!”

동시에 진우가 검격을 날렸다.

푸른 귀기가 서린 가로 베기.

이에 시연이 미간을 좁히며 재빨리 검을 들었다.

-쉬익!

진우의 공격은 다름 아닌 하 가문의 제 1식 폭참(瀑斬).

그 기세가 폭포마저 베어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그만큼 그녀 역시도 잘 알고 있는 기술.

그대로 시연이 위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있는 힘껏 내리그었다.

그러자 그녀의 검 끝을 따라 허공에 푸른 선이 그어졌다.

제 2식 낙천(落天)이었다.

-채앵!!

그와 함께 두 검이 마주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공격이 막혔음을 알아채기 무섭게.

진우가 재빨리 검을 거둬들이며, 그녀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렀다.

“감히 되도 않는 잔재주를!”

전방을 향해 날아오는 찌르기.

제 3식 월영(月影).

진우가 날린 검의 이름이었다.

-피잇!

그리고 달의 그림자를 꿰뚫는다는 그 이름처럼, 진우의 검은 당장에라도 시연의 어깨를 꿰뚫을 기세로 쏘아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철컥…끼기긱!

시연이 빠르게 검을 고쳐 잡음과 동시에.

검을 세로로 치켜세우며 한 발 안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두 검이 마주쳤다.

그러자 정확히 그녀의 어깨를 노린 진우의 일격이 돌연 그 궤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공격을 흘러내린 시연.

진우가 그 검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제 4식 천류(川流)…!’

이에 진우가 뒤로 거리를 벌리며 팔을 휘저었다.

아니 휘저으려는 순간이었다.

시연의 뒤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날카로운 공격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딜 도망가!”

연서가 날린 찌르기, 월영이었다.

갑작스레 들어온 기습공격에 진우가 황급히 검을 치켜세워 천류를 펼쳤다.

허나 워낙 급하게 검을 펼친 탓일까.

“크윽……!”

완벽하게 연서의 공격을 흘러내지 못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검 끝이 진우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대로 사르륵, 하얀 머리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쉽군.”

곧 떨어진 머리칼을 확인한 진우가 연서를 흘깃 바라보며 비웃었다.

“아무래도 고아 년과 어울린 사이 검이 무뎌진 모양이구나.”

이어서 그가 검을 휙 털어내며 말했다.

“그럼 계속해볼까?”

* * * * *

한편 최상층 그 아래 위치한 복도.

그곳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하얀 벽은 이미 군데군데 박살난 채 금이 가있었다.

-콰앙…주르륵.

그대로 뭔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병사 하나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런 병사의 아래를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에 남아있던 병사가 주춤거리며 눈앞을 바라보았다.

-뚜벅, 뚜벅.

복도 저 멀리.

흑발의 소년이 새하얀 망치를 들고,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소년이 한 번 발을 내딛을 때마다 붉은 불씨가 흩날렸다.

“오, 오지 마!”

그 모습에 잔뜩 겁을 먹은 병사가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검 끝은 어느새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저, 저 괴물 같으니……!’

병사가 뒷걸음질 치며 현성과 쓰러진 다른 병사들을 번갈아보았다.

불과 20분전.

그러니까 분대장이 어깨가 으스러진 채 비명을 내지른 직후.

그를 포함한 다른 병사들은 현성을 공격했으나, 그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달려들었던 병사들은 그의 주변을 따라 치솟은 불길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 중에서도 일부 병사들은 다른 녀석들을 방패삼아 불길을 뚫는데 성공했다.

허나 그들은 현성이 휘두른 망치에 맞아, 팔과 다리가 갑옷 채로 뭉개져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수십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 봤지만, 그들 역시 최후는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건 기절한 동료들과 핏자국 뿐.

끝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가 다가오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때였다.

-투욱.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던 병사의 등이 무언가에 막혔다.

곧바로 그가 막다른 길인가 싶어 옆을 바라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

그는 그 정체가 다름 아닌 다른 직계파의 병력인걸 알아차렸다.

거기다 한명이 아니었다.

당장 그 수만 해도 복도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

3번째 전투 때.

방계파를 쫓아 나갔던 직계파의 본대가 돌아온 것이었다.

이에 그가 화색을 띄며 말했다.

“도, 돌아오셨군요!”

그 말에 어깨에 완장을 차고 있던 남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가문에서도 진우와 수연의 바로 아래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위치이자,

직계파의 병력을 이끄는 총대장이었다.

“……넌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총대장이 눈앞의 병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가 황급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지키라는 진우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대기하던 것부터, 예상을 훨씬 웃도는 현성의 무력에 당해 자신혼자 남은 것까지 전부.

“허나 다행입니다. 뒤늦게라도 본대가 도착했으니 이제……”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총대장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서 겨우 한 놈한테 전부 당했다고?”

“아, 아니 그게……”

“한심하군. 그러고도 네놈이 하 가문의 검사인가?”

그러면서 그가 병사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대로 그가 가차 없이 벽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콰앙!

그 충격에 병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르륵 쓰러졌다.

이에 총대장이 쓰러진 녀석을 발로 치워버리며 중얼거렸다.

“이깟 쓰레기는 직계파에 있을 자격도 없다.”

그리고 그가 복도 중앙.

망치를 들고 서있는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현성이라고 했나?”

이미 그의 이름은 진우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방계파를 쫒기 전.

진우가 만약 현성을 찾는다면 당장 그를 눈앞에 끌고 오라는 명령이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팔 다리 몇 개쯤은 박살내도 아무런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숨통만 붙은 채 끌고 오면 그만.

이에 총대장이 자신의 양 옆에 있던 녀석들에게 말했다.

“가라. 진우 도련님께서 팔 다리 하나쯤은 박살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 말과 동시에 4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대로 현성이 작게 혀를 차며 망치를 부여잡았다.

벌써부터 본대 병력이 합류할 줄이야.

‘……까다롭게 됐군.’

현성이 복도를 가득 메운 병력들을 훑어보았다.

방금 전 급하게 방어선을 구축했던 병사들과는 그 기세가 확연히 달랐다.

그도 그럴게 방계파의 병력을 전부 잡아먹을 심산으로 보낸 병력이었다.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건 그 숫자였다.

본대병력이 도착했다면 그 수는 최소 수백.

개개인의 전투력을 따지자면 현성이 우세했지만, 수백을 쉬지 않고 상대하는 건 이야기가 좀 달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현성이 물러나면 그대로 최상층에 있던 시연마저 포위되면서, 공성전은 패배로 끝날게 분명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 있는 현성, 단 한명이 수백의 병력을 막아내야 했다.

‘……적어도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그대로 그가 검을 빼든 4명의 검사들을 향해 말했다.

“정정당당하게 1대1로 상대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들은 현성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파앗!

오히려 그를 향해 달려오는 녀석들.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망치를 부여잡았다.

“하여간 재미없기는……!”

동시에 그의 망치를 타고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직계파의 성 최상층.

연서가 검을 든 채, 눈앞의 진우의 상태를 살폈다.

“허억…허억……”

동시에 그런 진우의 입을 타고 거친 숨소리가 삐져나왔다.

진우는 처음에는 시연과 연서를 상대로 꽤나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거 같았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진우의 실력은 연서보다 조금 더 위인 정도.

만약 그가 연서와 일대일로 붙었다면 이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연서는 물론이며 시연까지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상황.

그만큼 진우의 패색이 짙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좋아.’

그대로 연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만 간다면 진우를 쓰러트리는 건 문제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줄곧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하수연.

연서가 저 멀리 소파에 앉아있는 수연을 바라보았다.

‘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거지?’

연서가 시연과 함께 진우를 상대하는 동안.

수연은 소파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장 진우가 밀리는 지금도 그랬다.

이에 처음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나 싶었지만, 중간 중간에 흥미로운 눈빛을 띄는 게 전부.

수연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전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태도.

하지만 그도 잠시.

연서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눈앞의 진우에게 집중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정답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우를 마저 쓰러트리고, 이어서 수연을 제압하다.’

진우가 쓰러진 후에 수연이 덤빈다고 해도 이쪽은 아직 두 명이었다.

즉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시연까지 있는 이상.

제 아무리 수연이라고 해도 아직 이쪽이 훨씬 유리했다.

‘……무엇보다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니까.’

지금의 연서는 예전과 천지차이.

기초적인 자세부터 세밀한 기술까지.

이미 과거의 자신은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만큼 연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더욱 날카로워진 그녀의 검이 진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맨 처음, 최상층에서 그를 상대했을 때와 같은 공격.

-피잇!

하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달랐다.

그대로 진우의 뺨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이에 그가 표정을 구기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감히 내 얼굴에 상처를…..!”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줄곧 가만히 있던 수연이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그만하면 됐다.”

그러면서 수연이 진우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더 진행하는 건 무리인거 같군. 너도 인정하지?”

“……크윽.”

이에 진우는 대답대신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미 그의 패배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

오히려 더 처참하게 당하기 전에 수연이 나선 셈이었다.

“자,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수연이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와 함께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드디어 올 게 왔다.

그러면서 연서가 옆에 있는 시연을 향해 물었다.

“아직 괜찮지?”

“……응.”

그 말에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연서는 왠지 모르게 든든해졌다.

그대로 연서가 검을 다잡으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길 수 있다…!’

곧바로 연서가 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5분 뒤.

연서는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지금의 그녀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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