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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61화 (161/240)

161화 공성전(4)

직계파의 성 최상층.

진우가 현성이 돌파한 동쪽과 다른 병력들이 모여 있는 남쪽을 번갈아보았다.

당장에라도 병력들을 불러들이는 게 맞을까.

아니 지금 불러들였다가는 오히려 방계파의 병력까지 이쪽으로 오는 건 아닐까.

애초에 처음 후퇴했던 것도 전부 의도했던 거라면?

온갖 경우의 수가 진우의 머릿속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젠장……”

무엇 하나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직계파의 관제탑이라고 할 수 있는 진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지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현성은 성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있으면 성이 함락당하는 것은 시간문제.

뭐라도 해야 했다.

이에 옆에 있던 병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 진우님. 어서 명령을……”

그 말에 진우가 탁자에 있던 물건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닥쳐! 지금 생각하고 있잖아!”

안 그래도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누가 서둘러야한다는 걸 모르고 있는가.

하지만 그도 잠시.

“진우.”

줄곧 앉아있던 수연이 그를 불렀다.

그대로 그녀가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

“생각을 멈추고, 좀 더 자신의 능력을 믿어라.”

그런 수연의 말에 진우가 움찔거렸다.

낮게 가라앉은 침착한 말투.

그와 동시에 진우가 점차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아직 패배하지도 않았고.

겨우 동쪽의 경계가 뚫린 것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침착함을 되찾은 진우가 동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현재 성 안에 남은 병력은?”

“저, 전체 병력의 3할 정도입니다.”

“지금 침입자들의 위치는?”

그러자 병사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직 성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못한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됐다. 그 정도면 충분해. 그보다 성 안에 깔린 함정들은 아직 작동하나?”

성 안의 침입자가 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설치해둔 함정.

그리고 녀석들의 목적이 가문의 증표인 이상, 최상층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무조건 함정과 마주칠 게 분명했다.

“예, 아직 작동합니다.”

그 말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무리 빨리 함정을 돌파한다 한들.

최상층에 도달하기 까지는 아무리 못해도 30분 이상이 걸릴 터.

‘게다가 성 안에 침입한 병력의 수는 생각보다 더 적을 것이다.’

방계파는 애초에 3번째 공격을 하면서 대부분의 병력을 쏟아 부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동쪽에 침입한 병력은 기껏해야 별동대 수준.

그리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현재 동쪽에 침입한 사람은 현성과 시연, 연서를 비롯한 소수정예가 전부.

그럼 그 사이에 2차 방어선을 구축해둬야 했다.

곧바로 진우가 병사를 향해 명령했다.

“성 안에 있는 병력은 둘로 나뉘어, 한 쪽은 침입자들의 저지를, 한 쪽은 입구를 막아라.”

“허나 그러면 외부 방어병력이 없어집니다.”

이에 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외부 방어병력은 필요 없다. 현재 방계파는 모든 병력을 쏟아 부었다. 더 올 병력도 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본대는 어떻게 할까요?”

“…….”

그대로 진우가 3번째 공격 당시.

후퇴하던 방계파 병력을 뒤쫓으라고 명령한 본대의 위치를 가늠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꽤나 멀리까지 갔을 터.

“본대는 방계파들을 성까지 몰아내면 즉시 귀환하라고 해라. 그럼 성 안에 있는 쥐새끼들을 영락없이 독안에 든 쥐 꼴이 되겠지.”

별동대를 조직해 본진에 들어온 것부터.

방계파에게 다음 수는 없었다.

분명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그럼 이쪽도 빠져나갈 구멍 없이 단단히 막아주지.’

그러니까 결국은 시간싸움이었다.

과연 침입한 별동대가 함정을 비롯한 방어선을 뚫고 최상층에 다다르는 게 먼저인지.

그게 아니면 본대의 귀환이 더 빠른지.

“알겠습니다. 그럼 진우님과 수연님은……”

“우린 여기 남는다.”

진우가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수연 역시도 별 불만 없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최상층에서 내려갔다가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쪽이 허를 찔린 만큼. 지금은 최대한 변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아무튼 이걸로 모든 대처는 끝났다.

이제는 지켜보는 것 뿐.

그대로 진우가 탁자 위에 있는 푸른 마력석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스으으…파앗!

그러자 곧 마력석이 번쩍이더니.

진우의 눈앞에 여러 개의 화면이 떠올랐다.

이는 다름 아닌 현재 성 내부의 모습들.

전시에 상황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 내부 곳곳에 설치해둔 일종의 감시카메라였다.

그리고 잠시 뒤.

입구 쪽을 비추는 화면을 타고 붉은 화염이 폭발하며 현성이 모습이 포착되었다.

뒤이어 모습을 보이는 시연과 연서를 비롯한 병사들.

역시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진우가 다시 마력석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럼 이제……”

점차 붉은 색으로 변한 마력석.

성 내부의 모든 함정이 발동했다는 표시였다.

이에 진우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손님맞이를 할 시간이군.”

무엇보다 성 안의 함정들은 무려 수연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아마 웬만한 실력자라고 해도 팔, 다리 하나는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건 제 아무리 시연이라고 한들 마찬가지.

“어디 올라올 테면 올라와 보거라.”

그대로 진우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화면을 주시했다.

* * * * *

한편 성의 아래층.

그곳에는 현성을 비롯한 별동대가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향하고 있었다.

애초에 성 구조자체는 방계파의 성과 비슷했으니,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존재했다.

“잠깐. 모두 멈춰. 함정이다.”

앞서 가던 현성이 손을 치켜세웠다.

이에 뒤따라오던 시연이 미간을 좁혔다.

“예상은 했지만……”

성안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사실 정도는 진우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현성을 비롯한 이들은 추가 병력이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최상층을 돌파해야했다.

그런 상황에서 함정은 상당히 까다로운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돌파하면 안 돼?”

연서가 작게 혀를 차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아마 웬만한 함정 정도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무려 검술명가 하 가문 아닌가.

“저 정도는 차라리 내가 검으로……”

이에 현성이 바닥에 있는 돌맹이를 휙 던졌다.

그때였다.

돌맹이가 바닥에 닿기 무섭게 함정이 발동되었다.

-두두두두두! 콰앙!!

양쪽 벽에서 쏘아진 마력화살을 시작으로 바닥, 천장에서 온갖 마법과 암기가 쏟아졌다.

그 결과.

방금 전 현성이 던진 돌맹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푸스스.

바닥에 남은 건 오직 곱게 갈린 돌가루 뿐.

곧 현성이 연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돌파하겠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

그 말에 연서가 현성과 돌 ‘이었던 것’을 번갈아보았다.

그대로 그녀가 조용히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연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다른 길은 없어?”

미쳤다. 저건 절대 못 지나간다.

어떻게 첫 번째 공격을 막아낸다 한들.

다음 공격은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그 위력이 약한가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방금 전 붉은 빛과 검은 마법진.

그건 분명 마력화살과 고위급 저주였다.

‘아마 움직임을 속박하거나 시야를 가리는 등. 감감을 차단하는 마법이겠지.’

단언한다.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 할지라도, 감각이 차단된 상태로 함정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뒤에 있던 병사가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오래 걸리더라도 다른 길로 경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돌파합니다.”

“……뭐?”

현성의 대답에 연서가 휙 고개를 돌렸다.

설마 지금 저걸 돌파하겠다고?

그대로 그녀가 함정과 현서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저걸 돌파하겠다고? 야. 아무리 나라도 저 정도는 못해.”

“맞아. 넌 못해.”

“아니 그럼 뭘 어떻게……”

이에 현성이 연서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난 달라.”

단호한 현성의 대답.

그와 동시에 연서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재수 없는 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허나 그도 잠시.

연서가 작게 움찔거렸다.

‘뭐야. 나 지금……’

상식적으로 방금 전 현성의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불가능을 외쳐야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처음 생각난 건 불가능이 아닌 재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그가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이에 시연이 연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언니?”

그대로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믿어보자.”

짧은 시연의 한마디.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다른 병사들이 멍하니 시연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하 가문에 속해있으면서 줄곧 그녀를 지켜봐왔다.

그러나 시연은 언제나 혼자 검을 들고 해결했을 뿐.

누구에게도 그 곁을 허락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믿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이 현성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눈앞의 소년이 어떤 존재기에 시연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가.

동시에 병사들이 하나 둘씩 물러났다.

-스윽.

시연과 연서가 믿어보기로 한 이상.

그들 역시 상관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무엇보다 궁금했다.

과연 그가 누구기에.

어떤 힘을 가졌기에.

하 가문의 두 검이 그를 믿는지.

“그럼 제가 먼저 길을 뚫겠습니다.”

현성이 나지막이 말하며 몸을 풀었다.

그대로 그가 작게 심호흡을 하며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1.2초. 한 템포 쉬고, 2초. 튕겨내고 캔슬. 3초 후 폭발. 왼왼오. 중앙. 오왼오. 정지.”

그리고 현성이 앞을 향해 발을 내딛은 순간.

철컥. 바닥이 눌리며 양쪽에서 마력화살이 쏘아졌다.

-피비비빗!

그를 노리고 쏘아지는 수십 개의 화살.

이에 현성이 바닥을 구르며 첫 번째 공격을 피해냈다.

곧바로 그의 몸이 덜컥 정지하였다.

-고오오.

그와 함께 바닥과 천장을 타고 생성되는 검은 마법진.

고위급의 저주 마법이었다.

그 모습에 연서가 입술을 악물었다.

‘첫 번째는 어찌 피했다고 쳐도 문제는 두 번째…!’

허나 잠시 뒤.

시연과 연서. 그들의 눈앞에 도저히 믿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철컥. 티디딩! 철컥, 철컥. 카앙! 티디디디딩!

갑작스레 마력화살의 궤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화살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법진.

동시에 마력화살과 마법진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 진원지에는.

마치 춤을 추듯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현성이 있었다.

그렇게 그가 발을 밟을 때마다 바닥에 있는 블록이 움푹 들어갔다.

-두두두두두!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병사들이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저, 저게 무슨……”

그들은 현성이 블록을 밟을 때마다 마력화살이 쏘아지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블록을 밟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화살의 각도.

그에 따라 현성은 실시간으로 모든 각도를 계산하며, 화살을 피함과 동시에 바닥과 천장에 생성되는 마법진을 파괴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현성의 모습은 마치 신이 들린 듯,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움직이며 쉬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왼왼오, 한 템포 쉬고. 좌측 블록 밟고. 다시 왼쪽. 쉬고. 돌고. 후방. 왼오왼. 왼오오…!”

얼핏 들으면 랩을 하는 것과 같은 속도.

거기다 현성의 눈동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속도로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가까운 실력.

이에 그를 지켜보고 있던 연서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저…미친 새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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