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공성전(3)
방계파의 두 번째 공격.
그 역시 사전에 예고한 내용 그대로였다.
서쪽을 노리고 들어온 공격.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병력의 수.
두 번째 공격은 첫 번째 공격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력으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수가 늘어난 만큼.
그 기세 역시도 첫 번째에 비하면 더욱 강했다.
허나 딱 거기까지.
직계파는 이번에도 큰 어려움 없이, 보란 듯이 공격을 막아내었다.
애초에 병력들의 수준부터 숫자까지.
전부 우세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진우는 승리에 취해 자만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자만하기는 이르다.
그래서 그는 자만대신 분석을 택했다.
‘과연 이번 전투로 상대가 노리는 게 무엇일까.’
진우가 물러나는 방계파의 병력을 내려다보며 턱을 매만졌다.
첫 번째 공격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력.
첫 번째 공격보다 더 강한 기세.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게릴라전을 유도하고 있군.’
상대적으로 병력이 적은 방계파가 이점을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그것뿐이었다.
솔직히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완벽한 승리를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승산은 노려볼 수 있는 전략이었으니.
하지만 이미 들킨 전략은 사용가치가 급락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이에 진우가 병사를 불러 말했다.
“아마 다음 3번째 공격에는 좀 더 많은 숫자의 병력이 올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4번째.
그때 승부수를 띄울 게 분명했다.
그러자 병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당연히 이쪽도 그에 맞는 병력을 대기시켜둬야겠지. 이미 알고 있는데도 당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만 한 가지. 따로 준비해둬야 할 게 있다.”
그대로 진우가 히죽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3번째 전투가 끝나고 적군이 도망칠 때. 역으로 병력을 추가 투입해 성까지 밀어버려.”
추가적으로 병력을 투입하고, 그 상태로 수성전을 유도한다.
상대적으로 병력의 수가 많은 직계파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수성전에 돌입하면 그때부터는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에 말했듯이 수성전만 들어가면 직계파는 압도적인 병력차이를 무기로 방계파를 말려죽일 수 있었다.
당장 성 주변을 포위하고, 그 포위망만 유지하면 방계파에서는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포위망을 뚫으려는 노력이 있을 것이다.
아마 하시연을 필두로 한 소수 정예의 병력, 이를테면 별동대를 조직해 조그마한 틈을 만들려들겠지.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쪽은 나와 수연이 있으니까.’
진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단순히 모략을 꾸미는 게 전부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진우의 무력 역시도 결코 약한 편이 아니었다.
그 역시 하 가문의 사람이었으며, 과거 천재라고 불린 몸.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의 누나 하수연은 어떠한가?
가문 내에서 유일한 시연의 적수.
3일 밤낮으로 하 가문의 검사를 상대하며, 그들을 전부 쓰러트릴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했다.
그 둘이 있다면, 아무리 시연이 별동대를 조직해 포위망을 뚫으려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알아들었지?”
4번째 공격까지 가줄 생각도 없다.
다음 3번째 공격에서 승기를 잡고.
수성전으로 유도해 마무리 짓는다.
이에 병사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 돌아가 봐.”
그러면서 진우가 작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3번째 전투가 끝나고, 일그러질 현성의 얼굴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에 연회장에서 겪었던 수모를 갚아주리.
“기다려라. 곧 끝내줄 테니.”
진우가 저 멀리 물러나는 방계파의 병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약속한대로 3번째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방향은 남쪽.
이에 최상층에 있던 진우가 눈대중으로 몰려드는 병력의 수를 파악했다.
두 번째 공격보다 많은 병력.
저 정도면 거의 전 병력이라도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흥, 무리하고 있군.’
4번째도 아직 인데 벌써부터 저 정도의 숫자라면 방계파에서도 꽤나 무리하고 있다는 소리.
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좋은 소식이었다.
그와 함께 미리 남쪽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과 방계파가 맞부딪쳤다.
-채앵! 콰앙!
머지않아 울려 퍼지는 격렬한 소리.
검이 부딪치고, 쉬지 않고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 기세를 보아하니 방계파도 이를 악물고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30분정도 지났을까.
점점 방계파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에는 직계파에서도 더 많은 병력을 준비했으니까.
이에 전투의 양상은 점점 직계파에게 넘어오고, 그에 따라 방계파는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 모습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역시나 자신이 생각한대로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또 얼마나 지났을까.
“후, 후퇴하라!”
마침내 방계파 쪽에서 후퇴명령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진우의 눈이 번뜩였다.
바로 지금이 그들을 잡아먹을 차례였다.
“자, 이제 시작이다……!”
그가 기대되는 눈빛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곧 후퇴명령에 방계파들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는 찰나.
사전에 진우가 명령한대로.
“쫒아라!”
직계파의 병사들이 후퇴하는 방계파를 쫒았다.
이로 인해 마치 호랑이가 사슴을 사냥하듯.
직계파가 방계파를 덮치는 상황이 되었다.
“흐흐…그래, 이래야지.”
단숨에 역전된 상황에 진우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이제 이대로 성까지 쭉 밀어버리고 포위하면 게임은 끝.
이에 상황을 지켜보던 진우가 허리춤의 검을 매만지며 옆의 병사에게 말했다.
“좋아. 이대로 나 역시 내려간다.”
마침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시려던 찰나였다.
무엇보다 여기서 그까지 합세하면, 분위기는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올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 진우가 저 멀리 앉아있던 그의 누나, 수연을 바라보았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수연 그녀 역시도 공성전이 시작된 이후.
줄곧 이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꽤나 몸이 근질거릴 터였다.
물론 그녀가 추구하는 건 강자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저런 잡졸로는 성이 찰리는 없었다.
‘그래도 심심풀이 정도는 되겠지.’
진우가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정도 됐으면 아마 그녀 역시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터.
그런데 수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아니. 난 여기 남겠다.”
“……예?”
“최상층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거든.”
공성전이 시작하기 직전.
현성에게 최상층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다.
이것이 수연의 뜻이었다.
“허어.”
이에 진우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누님. 전 이번 공격으로 끝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단연컨대 상대가 저희 성까지 들어오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저와 같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돌연 병사 하나가 벌컥 최상층의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도, 도련님! 큰일입니다!”
이에 진우가 미간을 구겼다.
감히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데 끊어버리다니.
그가 불쾌한 듯 물었다.
“무슨 일이지?”
만약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자신의 말을 끊은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할 것이다.
진우가 그렇게 생각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병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 상대의 습격으로 경계가 뚫렸습니다!”
“……잠깐. 뭐라고?”
그런 병사의 말에 진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상대라면 방계파?
이에 진우가 곧바로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방계파를 쫒고 있는 직계파가 보였다.
이미 성과의 거리도 꽤 벌어진 상태.
그런데 상대의 습격으로 경계가 뚫렸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번이 3번째 공격 아닌가.
‘……4번째 공격은 아직 때가 아닐 텐데?’
그와 함께 어디선가 커다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동시에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며 자욱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성의 동쪽.
이에 진우가 이를 으드득 갈며 소리쳤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 * * *
한편 성의 동쪽.
그곳에는 현성과 시연, 그리고 연서를 포함한 별동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손에 남은 불씨를 털어내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된다고.”
그 말에 연서가 저 멀리 모여 있는 병력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니가 말한 게 이런 뜻일 줄이야…….”
방금 전, 그러니까 3번째 공격이 시작될 때.
현성은 이미 직계파의 성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결과.
현성은 보란 듯이 성 동쪽의 경계를 손쉽게 뚫고, 안쪽으로 입성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공성전이 시작한 직후, 확성기를 통해 말한 선전포고.’
그 덕분이었다.
처음 선전포고의 내용은 이러했다.
방계파는 정확히 1시간 간격으로 총 네 번.
공격을 감행할 것이며, 그 순서는 동쪽, 서쪽, 남쪽, 북쪽 순이다.
이에 현성은 말한 대로 동쪽부터 공격을 감행했다.
이어진 두 번의 공격도 똑같았다.
두 번째는 서쪽으로.
세 번째는 남쪽으로.
하지만 여기에는 거짓정보가 하나 숨겨져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공격의 횟수.
애초에 현성은 4번째 공격을 할 생각은 없었다.
본디 거짓정보를 뿌릴 때는 그 사이에 진실을 섞어야 효과가 커지는 법.
그리고 현성이 노린 것 역시 이 부분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전부 선전포고의 내용대로 공격했다.
그리고 세 번째.
진우가 세 번째 공격을 대비하여, 남쪽에 병력을 배치한 순간부터 그는 속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진우는 내가 말한 선전포고의 내용은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믿었던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동쪽에서 첫 번째 공격이 들어오고.
계속해서 선전포고의 내용대로 이루어진 결과.
진우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선전포고의 내용을 믿고 있었다.
이에 현성은 그 사실을 역이용하여,
사전에 별동대를 조직하고 동쪽을 공격했다.
‘이른바 구라핑.’
덕분에 직계파의 병력 대부분은 애초부터 남쪽에 쏠려있었으며.
시연을 필두로 한 별동대가 상대적으로 병력이 거의 없는 동쪽을 뚫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멍하니 있던 연서가 말했다.
“처음부터 다 계획한 거야? 진우 그놈이 믿을 거까지 전부?”
“그래. 보다시피.”
“……어떻게 그걸 확신했는데?”
연서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당장 처음 들은 너도 믿었잖아.”
“…….”
그 말에 연서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니 하지만 누가 그 내용을 안 믿겠는가.
‘그야 당장 3번째 공격까지 전부 사실이었잖아.’
그러니 자신이 진우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진우가 이걸 믿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 놈이 안 믿었으면 어쩔 뻔 했어?”
“어쩌긴. 망한 거지.”
현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허나 지금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진우 그는 현성의 선전포고를 믿었고.
그 결과, 현성은 성에 침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대로 그가 작게 조소하며 말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그걸 믿은 쪽이 바보지.”
무려 적군이 말한 선전포고였다.
그런데 그걸 좋다고 넙죽 받아 멋대로 믿기는.
이에 연서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럼 속은 나도 바보라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그도 잠시.
연서가 고개를 붕붕 저으며 애써 부정했다.
그도 그럴게 자신은 같은 편이지 않는가.
‘그, 그래. 난 같은 편의 말을 믿은 거니까 진우 그 자식하고는 달라.’
그 모습에 현성이 그녀를 떨떠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보나마나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구만.’
언제쯤이면 안 저럴까.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이걸로 상대편 진영에 들어오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가문의 증표를 가진 사람을 쓰러트리고 그 증표를 빼앗는 것.
그리고 아마 증표를 가지고 있는 건 높은 확률로 하진우 혹은 하수연이었다.
그 중 수연의 위치는 최상층.
그렇다면 목적지 역시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에 현성이 곧바로 히죽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그대로 그의 주먹을 타고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화르륵.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