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공성전(2)
“……언론플레이?”
그 말에 연서가 멍하니 확성기와 현성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가 마치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듯, 작게 움찔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일부러 거짓정보를 뿌려뒀다는 거야?”
“비슷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흔히 알고 있는 찌라시.
방금 현성이 한 선전포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공성전이 시작함과 동시에 이런 행동을 취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쪽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공성전에 있어서, 병력이 밀리는 이상.
정공법으로 상대한다면 무조건 진다.
이건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거기다 혹시라도 수세에 밀려 수성전이 된다면?
병력차이로 인해, 방계파는 오히려 제 스스로 성에 갇히는 꼴이 되고.
결국에는 성에 갇힌 채 천천히 말라죽는다.
‘이걸 피하기 위해서는 선수를 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적어도 선수를 쳐, 선공권을 가져온다면 말라죽는 선택지는 피할 수 있었다.
죽기 전에 먼저 움직인다.
현재 방계파에게 있어 승산은 그 방법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은 선수를 침과 함께 정공법에서 벗어난, 이른바 편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일부는 편법이라는 말에 반감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현성은 그런 알량한 정의 따위는 이미 저 멀리 갖다 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부터 목표를 승리로 상정한 순간부터.
그럴 각오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이기기 위해서는 나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현성은 진우와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허나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성은 진우보다 훨씬 교활하고, 최소한의 선은 지킨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누구누구처럼 치사하게 암살을 계획하고 그러지는 않거든.’
이에 연서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대충은 알았어. 그럼 진짜 전략은 뭐야?”
현성의 말에 의하면 방금 전에 외친 선전포고는 거짓정보.
그렇다면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전략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현성의 말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말했잖아. 10분 뒤에 동쪽으로 간다고.”
“……뭐?”
현성의 대답에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분명 거짓정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적어도 동쪽이 아니라 다른 곳을 친다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도 말한 대로 서쪽으로 갈 건데? 그 다음은 북쪽으로 갈 거고.”
“…….”
그 말에 연서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다댔다.
-철컥.
“씁. 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와 동시에 현성이 연서의 팔을 움켜쥐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연서가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듯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너 솔직히 말해라. 진짜로 베어버리기 전에.”
“아. 글쎄. 조금만 기다려보라니까.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나중에.”
도대체 하 가문의 사람들은 전부 일이 조금만 안 풀린다 싶으면 다 무력으로 해결하려드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현성이 애써 연서를 달래며 말했다.
“너 지금까지 내 말대로 해서 손해본적 있었냐?”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멈칫거렸다.
눈앞의 남자. 유현성이 누군가.
화이트레이를 단신으로 쓰러트린 자.
거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천강에서의 데일런트도.
불의 둥지에서의 악마도.
전부 현성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언니.
시연이 그토록 믿는 사람 아닌가.
“……쯧.”
이에 연서가 작게 혀를 차며 검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 그녀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고 말했다.
“제대로 할 생각 맞지?”
“물론이지. 보면 안다니까.”
당당한 현성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10분 뒤에 동쪽으로 가면 되는 거지?”
“그래. 그런데 굳이 너까지 갈 필요는 없어. 어차피 잠깐 치고 빠질 생각이거든.”
애초에 동쪽을 공격한다고 해서 초장부터 승부를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전면전으로 싸우면 무조건 지는데 그럴 이유가 없었다.
선전포고를 날리고, 그대로 강행한다.
상대편에게 이런 생각만 심어주기만 해도 이번 목표는 달성이었다.
그러자 연서가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됐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몸이나 풀고 오지.”
“그래?”
평소 모습 덕에 까먹을 때도 있지만, 연서 역시도 하 가문의 사람.
그녀가 같이 간다면 적어도 쉽게 진영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곧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녀오라고.”
* * * * *
한편 직계파의 진영.
그러니까 현성이 선전포고를 날린 직후.
진우가 건너편 성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쯧.”
이에 옆에 있던 병사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진우님.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진우가 주먹을 꾹 쥐었다.
교활한 놈이었다.
설마하니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선전포고를 할 줄이야.
그 순간부터 주도권은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선전포고를 받고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방계파에서 병력을 보낼 경우, 동쪽은 그대로 뚫린다.
물론 방계파에서 블러핑, 그러니까 거짓 정보를 뿌렸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병력을 배치하지 않는다면?
병사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습격을 걱정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즉 선전포고가 거짓이든, 진실이든.
진우가 내릴 판단은 정해져있었다.
‘동쪽에 병력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
그대로 진우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원래대로라면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조금씩 병력을 보내, 수성전을 유도한 뒤.
천천히 말려죽일 생각이었으나.
방금 전 선전포고로 행동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군.’
이에 진우가 병사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최소 경계 병력을 제외하고, 남은 병력들을 동쪽에 배치시켜. 어차피 저놈들도 처음부터 전면전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을 거야. 기껏해야 간이라도 봐보겠다는 생각이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래, 처음은 당해주지.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다를 것이다.
진우가 그렇게 생각하며 침착하게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하고 정확히 10분이 지났다.
그러자 현성이 말한 대로.
동쪽에서 방계파의 병력이 찾아왔다.
-두두두.
그 수는 생각한대로 그리 많지 않았다.
하긴 애초부터 많지 않은 병력인데다, 무리하게 선전포고를 던지는 바람에 급하게 병력을 꾸릴 수밖에 없었겠지.
그 모습에 진우가 가소로운 듯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 정도면 쉽지 않게 막을 수 있겠군.”
차라리 좀 더 욕심내서 초장부터 동쪽에 병력을 집중시킬 걸 그랬나.
그렇다면 역으로 잡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
허나 그도 잠시.
“……아니 그건 좀 더 신중해야지.”
지금은 진짜로 동쪽으로 공격해왔기에 망정이지.
현성의 말이 거짓이었을 경우.
괜히 병력을 집중시켰다가는 병사들의 피로도만 늘어날 뿐이었다.
‘즉, 지금 이 판단이 제일 최적이다.’
실제로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리고 그 결과.
동쪽으로 방계파의 병력들이 공격해왔으나, 직계파는 별다른 피해 없이 그들을 막아냈다.
“후퇴하라!”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합을 주고받던 중.
방계파는 이대로 안 된다고 판단한 건지, 곧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그 모습에 진우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그럼 이제 1시간 뒤.
서쪽으로 올 녀석들을 대비하여, 서쪽에만 조금 더 병력을 집중시켜두면 끝이었다.
그대로 진우가 현성이 있을 건너편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총 4번이라고 했나? 그 재롱이 전부 끝나면 바로 박살내주지.”
아니 오히려 4번의 공격이 오기도 전에 끝낼 수도 있었다.
다만 그건 상황을 포고 판단할 것.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진우가 등을 돌렸다.
* * * * *
첫 번째 공격이 끝나고.
연서가 방계파 진영으로 돌아왔다.
이에 현성이 그녀를 반기며 말했다.
“어땠어?”
그러자 연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뭐 딱 몸 풀기 정도였어. 애초에 저쪽도 전면전은 안할 거라고 예상한 건지 그리 강하게 나오진 않더라고.”
“좋아. 시작이 나쁘지 않네.”
이에 연서가 반대편 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럼 1시간 뒤, 서쪽으로 병력을 보낸다고 했었지? 그때도 이번이랑 비슷하게 하면 되는 건가.”
“전체적으로는 비슷할 거야. 다만.”
“……다만?”
그대로 현성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순차적으로 병력의 수를 더 늘릴 거야.”
“어느 정도로?”
“3번째에는 최소 수비 병력만 남기고 전 병력을 투입할 정도까지.”
그 말에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첫 번째에는 전면전을 피하다고 했으니, 조금씩 병력의 수를 늘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3번째에는 거의 전 병력을 투입한다니.
‘처음에는 게릴라전으로 가서 힘을 빼고, 3번째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건가.’
정공법은 아니더라도, 실제로 꽤 자주 쓰이는 방법이었다.
당장 저번 가주쟁탈전에서도 그랬다.
계속해서 자잘한 전투를 걸어, 상대편의 힘을 빼고 마지막에 많은 병력을 쏟아 부어 승부를 본다.
하지만 상대편 역시 그 전략을 모를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진우 역시 그때의 전투를 알고 있으니까.
이에 연서가 말했다.
“게릴라전으로 갈 생각이라면 좀 더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진우 그놈이 이 전략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게릴라전으로 갈 생각 없어.”
현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 연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릴라전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연서가 팔짱을 끼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무슨 생각이냐고 물어봐도 지금 알려줄 생각 없지?”
“……들켰네.”
“그럼 그렇지.”
그런 현성의 대답에 연서가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다.
“그럼 난 다음 전투 준비한다.”
그대로 연서가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려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신 실패하면 두고 봐.”
그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그때 가서 확인하시고.”
아무튼 이로써 첫 번째 전투는 종료.
곧바로 간단한 정비를 끝낸 뒤에 서쪽으로 병력을 보낼 것이었다.
그러면서 현성은 시연이 있는 최상층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처억.
머지않아 현성이 최상층에 도달하고.
그곳에 있던 시연이 그를 발견하고 말했다.
“현성. 왔어?”
“응, 준비는?”
그런 현성의 말에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한 대로 준비해두긴 했어.”
마침 그와 함께 한 무리의 병사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다름 아닌 방계파의 병력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병사들.
즉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별동대였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동시에 이게 바로 현성이 말한 준비였다.
그 말에 시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말 그 계획이 가능할까?”
“글쎄. 아직은 모르지.”
그러면서 현성이 건너편 성을 바라보았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겠지.”
“…….”
그런 현성의 대답에 시연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대로 전부 준비했지만, 아직도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허나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시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해보고 지는 것 보다는 훨씬 낫잖아.”
이에 시연이 작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승부는 3번째 전투부터니까.”
동시에 그 아래로는 병사들이 2번째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