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공성전(1)
공성전을 앞둔 하루 전날.
시연은 한 병실의 문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런 병실에는 하진태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하진태.
현재 하 가문의 가주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연이 병실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회색 머리칼의 남성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동시에 그의 팔에 달려있는 관과 입에 달려있는 호흡기가 지금 그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
시연이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앉았다.
세월의 깊이를 짐작해주는 깊은 주름.
양손 가득 자리 잡은 딱딱한 굳은 살.
“아버지. 저 왔어요.”
시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허나 그녀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진태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에 시연이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보다 더 수척해진 모양이었다.
그대로 그녀가 진태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동시에 처음 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폐쇄된 지하철.
시연이 진태를 처음 만났던 곳이었으며,
그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순간이었다.
시연의 진태의 손을 잡은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몬스터를 피해 숨을 일도.
좁은 틈에서 소리죽여 울 일도 없었다.
“……정말 감사했어요.”
시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미 폐허가 된 지하철에서 생을 마감했을 게 분명했다.
지금처럼 검을 잡지도, 아카데미에 다니지도.
현성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진태는 말 그대로 시연에게 있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만큼 시연은 그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은혜는 아마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연은 평생을 그를 위해, 하 가문을 위해 살아야했다.
이게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이기에.
“너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처음 시연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들은 말이었다.
그때, 난 뭘 하고 있었더라.
시연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뒤.
시연이 뭔가를 떠올린 듯 작게 손을 쥐었다.
당시 그녀의 손에는 낡은 철근이 들려있었다.
-뚝뚝.
그런 철근의 끝을 타고는 붉은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피가 아니었다.
그 피의 주인은 이미 시연의 발밑에 쓰러져 있었다.
리자드맨이었다.
무엇보다 리자드맨의 심장 한 가운데를 직격한 작은 구멍.
고작 7세인 시연이 낸 상처였다.
물론 그만큼 시연 역시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엉망이 된 머리칼.
손바닥은 살갗이 다 벗겨져 피범벅이 된 지 오래였다.
온 몸 곳곳에는 리자드맨에게 당한 상처가 가득했다.
부모님에 선물해줬던 검은 고양이 네로장식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한 가지.
지금, 여기, 그녀는 살아남았다.
“하아, 하아……”
그녀의 거친 숨을 토해냈다.
토해낸 숨은 하얀 입김이 되어 공중에 흩어지고.
덜덜대는 손끝을 타고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아직도 그때의 감각이 생생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가 식어갈 때 쯤.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생존자인가.”
하 가문의 가주.
하진태가 서있었다.
그는 시연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리자드맨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니가 해치운 게냐.”
“…….”
그런 진태의 말에 시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진태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따라와라.”
그리고 시연이 그가 내민 손을 잡았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바로.
“너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앞서 말한 그 한 마디였다.
그 이후로 시연은 검을 잡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검은 멈추었다.
더 이상 검을 휘둘러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새로움.
그때의 감각.
그 모든 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향해 찬사를 보냈지만, 시연은 스스로 생각했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그도 그럴게 자신은 그저 바깥에서 주워온 고아였으며.
운 좋게 가주의 눈에 띄어 하 가문에 들어온 외부인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검이 멈춘 그 날부터 시연은 스스로를 의심했다.
과연 나는 여기 남을 자격이 있는지.
과연 내가 가주의 자리를 탐할 자격이 있는지.
당장 지금도 그랬다.
진태가 준 은혜를 갚기 위해 검을 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검은 언제나 하 가문을 위하고, 하 가문의 적을 향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시연의 검 끝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직계파.
바로 하 가문을 향해 있었다.
-스르륵.
그대로 시연이 힘을 주고 있던 손아귀를 풀었다.
진정으로 하 가문을 위한다면,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이 자리를 포기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쉬지 않고 머릿속을 몰아쳤다.
“……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시연이 진태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대로 그녀의 물음은 폐허가 된 지하철에 남겨졌던 때와 같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질 뿐이었다.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하 가문의 승계를 정할 날이 찾아왔다.
이에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드럽게, 아니 드넓게 펼쳐져 있는 평원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성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오늘의 무대였다.
“……컨디션은 어때?”
현성이 옆에 있던 연서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어어? 뭐, 뭐라고 했어?”
“…….”
그 모습에 현성이 작게 혀를 차며 연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꽤나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그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무 굳어있지 말고 긴장 풀어.”
“누, 누가 굳어있다고 그래.”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현성이 한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요. 너.”
“아니 글쎄 나는 긴장한 적 없다니까. 너야말로 긴장……”
“됐고, 시연은 어디 있어.”
현성이 연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를 한 번 째려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몰라. 안 그래도 이제 곧 온다 했는데.”
마침 그때였다.
저 멀리서 시연이 걸어왔다.
이에 현성이 손을 들었다.
“여기야.”
그대로 그를 발견한 시연이 다가왔다.
공성전을 앞둔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곧바로 현성이 말했다.
“괜찮아?”
“…….”
현성의 물음에 시연이 자신의 검 끝에 있는 장식을 매만졌다.
그런 검 끝에는 검은 고양이 장식이 달려있었다.
현성이 그녀의 생일날에 선물해줬던 물건이었다.
-꾸욱.
시연이 네로를 작게 움켜쥐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시연의 얼굴은 다행히 방금 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거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시연과 연서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처억.
“다 여기 모여 있었군.”
그녀는 다름 아닌 하수연.
여전히 그때와 같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시연과 연서와 같이 있던 현성을 발견하더니.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눈을 좁혔다.
그대로 수연이 현성에게 말했다.
“나는 최상층에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자신은 최상층에 있을 테니 찾아와서 나와 싸워라.
하여간 검친련다운 대사였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넘겼다.
“알겠습니다.”
“좋다.”
도대체 뭐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목소리는 조금 들떠있는 듯 했다.
이어서 그녀가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에 말했듯이 너와의 대결 역시도 기대하고 있다.”
“…….”
“부디 내 기대를 충족시켜줬으면 좋겠군.”
수연이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등을 돌렸다.
그렇게 그녀가 퇴장하고 잠시 뒤.
하 가문의 사람이 다가왔다.
“세분 다 모두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현성과 시연, 연서는 그의 안내를 따라 성으로 이동했다.
물론 다른 병력들도 마찬가지.
그대로 머지않아.
성 안쪽에 병력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방계파의 모든 병력이었다.
그리고 성 최상층에 있던 현성이 그들을 흘깃 바라보며 옆에 있는 시연에게 말했다.
“직계파랑 얼마나 차이나?”
“적어도 2배 이상.”
역시 모을 대로 모아봤지만 아직도 모자란 숫자였다.
게다가 분명 그 수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수준도 차이 날 터.
이에 연서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무슨 방법 있을 거 아니야.”
그 모습에 현성이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주시했다.
따지고 보면 얘도 하 가문이면서 뭐 이렇게 당당하게 물어볼까.
그런 연서의 물음에 현성이 대답했다.
“근데 넌 나한테 뭐 맡겨놨냐?”
그 소리에 연서가 움찔거렸다.
당연히 이 조합이면 현성이 자연스럽게 뭔가 방법을 준비해오고 오더를 내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안 내리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현성이라면 무조건 화이트레이 토벌전 때처럼 뭔가 전세를 뒤집을만한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는데.
설마 아니었나.
연서의 눈이 흔들렸다.
“호, 혹시 다른 방법 없어?”
동시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있어.”
“이게……!”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울컥하며 외쳤다.
“있으면 있다고 할 것이지! 왜 사람을 애태우고…”
“그래서 방금 있다고 했잖아.”
그의 뻔뻔한 대답.
이에 연서가 분한 듯 으아아악! 한 번 화를 내고는.
심호흡을 하며 물었다.
“……그게 뭔데.”
그러자 현성이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평원의 중앙을 타고 붉은 폭죽이 터졌다.
당장 성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큰 불빛.
-퍼엉!
이는 다름 아닌 공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즉 지금부터는 상대진영에 대한 공격이 허락된다는 뜻.
그 신호에 다른 병사들이 긴장한 듯 웅성거렸다.
하지만 현성은 긴장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을 바라보았다.
“시연, 그거 준비했어?”
“……응.”
그런 현성의 말에 시연이 무언가를 건넸다.
그건 다름 아닌 증폭마법이 부여된 확성기.
그 모습에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확성기?”
무엇보다 현성과 시연 둘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 말은 즉 사전에 둘이 뭔가 비밀스런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
곧바로 연서가 현성을 째려보았다.
‘……그새 또!’
허나 현성은 그런 연서를 가볍게 무시하며 확성기를 받아들었다.
그대로 그가 앞으로 나서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현성이 있는 힘껏 외쳤다.
[상대는 들어라!]
증폭 마법이 부여된 만큼.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진 현성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컸으면 그 주변이 울릴 정도.
이 정도면 상대진영에 들리고도 남았다.
이어서 현성이 다시 외쳤다.
[우리는 정확히 1시간 간격으로 총 네 번!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서는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이다. 즉, 처음은 동쪽이며 지금으로부터 10분 뒤. 병력을 보낼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현성이 확성기를 내려놓았다.
이에 옆에 있던 연서가 그를 향해 말했다.
“너, 너 뭐하는 거야!”
당장 병력의 수도 밀리는 상황에 대놓고 작전을 알려주다니.
심지어 같은 편은 연서는 이제야 들은 작전이었다.
그러자 현성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선전포고.”
“……뭐?”
방금 전 현성이 한 것은 바로 선전포고.
동시에 다른 말로는.
“언론플레이.”
현성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