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57화 (157/240)

157화 하 가문(14)

암살자들의 리더. 카일이 검을 든 채 눈치를 살폈다.

이번 의뢰 자체는 간단했다.

유 가문의 몰살.

얼핏 들으면 한 가문을 몰살하라는 말 때문에 난이도가 있을 법했지만, 실제로 타겟은 몰락한 가문의 가주와 메이드 단 둘 뿐.

간단한 의뢰였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겨우 C급 정도.’

이에 처음에는 혼자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지만, 의뢰인이 무려 하 가문의 둘째라는 소리에 이쪽도 그만한 예의를 차리기로 했다.

겸사겸사 아무리 쉬운 임무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색도 낼 수 있고 말이다.

그러나 유 가문의 자택에 침입하고 불과 5분이 지나지 않은 지금.

카일,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산산 조각났다.

급습과 동시에 메이드를 노린 부하는 순식간에 나이프에 목을 찔려 절명했다.

“…….”

그는 나름 이 바닥에서 베테랑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무려 15년.

그가 블랙 하운드에 몸을 담근 시간이었다.

그만큼 카일의 실력은 마스터 암살자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블랙 하운드 내에서도 한 암살자 분대를 맡길만한 위치로 올라왔다.

허나 그런 그가 공격을 당한 순간을 보지 못했다.

그것도 일개 메이드가 날린 공격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나타내는 바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눈앞의 메이드는 최소한 마스터 암살자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알아차리자마자 가주 쪽으로 타겟을 변경했지만……’

가주 쪽을 노린 녀석은 정체불명의 얼음에 공격이 막히고, 돌연 발생한 폭발에 휩쓸려 사망.

맹세한다.

생전 처음 보는 방식의 전투였다.

-꾸욱.

이에 카일이 단검을 움켜쥐며 미간을 좁혔다.

그대로 그가 다른 부하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의뢰난이도를 변경한다. C랭크에서 A랭크로.”

그런 그의 말에 부하들이 움찔거렸다.

A랭크. 주로 정치계 고위 인사나 유명길드의 헌터를 상대할 때 부여되는 등급이었다.

이 말은 즉 눈앞의 두 사람이 적어도 그만한 수준이라는 뜻.

곧바로 그들이 각자 무기를 다잡으며 흉흉한 살기를 뿜어냈다.

“시작한다.”

그리고 카일의 말과 동시에 그들이 일제히 두 그룹으로 흩어지며, 현성과 수연을 향해 쏘아졌다.

-쉬익!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유 가문의 저택.

주변에는 붉은 핏자국과 쓰러진 시체들이 가득했다.

“쿨럭.”

이미 부하들은 전부 사망한지 오래.

남은 건 카일 하나뿐이었다.

이에 반해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현성과 수연이 서있었다.

둘은 옷 곳곳에 붉은 피가 보였지만, 공교롭게도 그건 전부 카일의 부하들의 피.

그들의 피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전투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결과는 점점 뚜렷해졌다.

‘임무는 실패다.’

단검을 쥔 그의 손이 작게 떨렸다.

상대가 단 둘 뿐이라 방심했는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감이 무뎌졌는가.

아니다. 지금처럼 감이 날카로운 적은 최근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상대는 이쪽의 모든 공격방식, 포메이션, 패턴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는 상대의 손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이에 카일이 내릴 판단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의뢰를 포기하고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난다.’

블랙 하운드의 수칙에 따른 판단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그가 눈동자를 굴려 현성과 수연, 그리고 탈출구를 확인했다.

현재 탈출구를 막고 있는 건 메이드 쪽.

그대로 그가 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그러자 수연이 빠르게 반응하며 들고 있던 나이프를 던졌다.

단순히 식사용 나이프였지만, 암살자인 그녀의 손에 들어간 이상.

나이프는 당장에라도 그의 숨통을 끊을 무기가 되고도 남았다.

실제로도 그녀에게 당한 부하의 수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에 카일이 단검을 휘두르며 나이프를 튕겨냈다.

그와 동시에 튕겨나간 나이프가 수연을 스치고 뒤의 벽에 박혔다.

-채앵…콰직!

그리고 지금.

카일이 재차 속도를 올렸다.

이게 그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

‘……이대로 공격 하는 척하면서 빠져나간다.’

카일이 마치 당장에라도 공격을 하려는 듯.

페인트를 치고, 수연이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팔을 들었을 때.

그가 뒤쪽의 탈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됐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 본부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다.

물론 그 대가로 의뢰를 실패했다는 오명을 쓰게 되겠지만, 목숨을 잃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파앗!

탈출구 바로 옆에 박혀있던 나이프가 돌연 빛을 뿜어냈다.

방금 전 그가 튕겨낸 수연의 나이프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뜬 그 찰나의 순간.

-스팟!

나이프가 박혀있던 곳에는 다름 아닌 수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주변에 바스러지는 푸른 입자.

마법이었다.

그대로 수연의 오른손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그의 목을 타고 은빛궤적이 그어졌다.

“어…떻게…네놈이 이 기술을……”

그와 함께 카일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제자리에 고꾸라졌다.

그런 그의 손 틈 사이로 붉은 피가 삐져나왔다.

이에 수연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이프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블랙 하운드가 보냈나?”

“……!”

그 말에 카일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메이드는 이미 블랙 하운드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방금 전 순간이동마법.

던진 나이프에 마법 술식을 부여하고.

그 위치로 이동하면서 남은 특유의 파란 빛.

그건 오직 단 한 명의 암살자에게만 허락된 기술이었다.

“마법…사…사냥…꾼……”

10년 전, 대변동 당시 마법사들의 수장 라이게르를 암살한 전설이자,

블랙 하운드 최고의 암살자였던 자의 이름이었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녀가 어떻게 블랙 하운드의 암살자 분대를 궤멸시킬 수 있었는지.

그 모든 전략과 포메이션을 알고 대처 할 수 있었는지.

A는 무슨. S등급도 모자랐다.

-투욱.

카일이 들고 있던 단검을 툭 떨구었다.

애초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대로 그가 가슴팍을 두드리며 손가락을 펼쳤다.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블랙 하운드만의 인사법이었다.

이에 수연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나이프를 그의 목에 박아 넣었다.

-콰직.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솜씨.

동시에 카일의 숨이 멎었다.

그리고 잠시 뒤.

-처억,

수연이 그의 품에서 스마트폰을 하나 꺼내들었다.

블랙 하운드에서 연락용으로 쓰는 더미폰이었다.

그런 그의 스마트폰에는 잠금이 걸려있었지만, 수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잠금을 풀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달칵.

[의뢰는 완료했나?]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

블랙 하운드의 수장, 케르반이었다.

그 목소리에 수연이 대답했다.

“오랜만이야. 케르반.”

[…….]

그대로 수연이 살기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두 번 다시 건드리지 말라고.”

동시에 수화기 너머.

케르반이 움찔거렸다.

이 목소리,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수, 수연?]

일명 마법사 사냥꾼으로 불리던 자.

그리고 블랙 하운드에서 제 발로 나간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왜?

하지만 그도 잠시.

전화가 걸려온 번호가 카일의 것이었던 걸 기억해낸 그가 멈칫거렸다.

설마 하진우가 말한 그 몰락가문의 메이드가 그녀였던 건가.

-꾸구국!

그대로 케르반이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젠장, 이런 말은 없었지 않는가.

겨우 몰락가문 하나를 상대하는 일이라길래 자세한 조사 없이 바로 작업에 착수했건만.

‘상대가 마법사 사냥꾼이라니.’

케르반의 온몸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동시에 떠올리기 싫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블랙 하운드는 음지의 암살조직.

그만큼 블랙 하운드를 제 발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곳에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죽어서 나가는 것 뿐.

하지만 수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룰을 박살냈다.

당시 케르반은 조직을 나가고 싶다는 그녀에게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의뢰를 줬건만, 수연은 보란 듯이 그 의뢰를 해냈다.

그러나 케르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놓치기 싫었고, 계속해서 이를 반대하자.

수연은 케르반 직속부대를 전부 해치웠다.

그것도 단 연필 한 자루로.

그 빌어먹을 연필 한 자루로 말이다.

그리고는 수연은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두 번 다시 건드리지 마.”

아직도 그때 남긴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헌데 그 악몽과도 같았던 목소리가 지금 다시 들리다니.

어떻게든 이 일을 만회해야 했다.

[미안하네. 잠시 착오가 있던 모양이야. 사과하지.]

케르반이 애써 흐르는 식은땀을 숨기며 말했다.

이 자리까지 와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했다.

유일하게 자신의 목을 노릴만한 암살자.

그게 바로 지금 통화하고 있는 마법사 사냥꾼, 수연이었다.

이에 잠시 뒤.

수연이 그에게 물었다.

“……의뢰인은?”

[하 가문의 하진우.]

“그 의뢰. 당장 취소해.”

그 말에 케르반이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VVIP고객 하진우의 의뢰였다.

여기서 그 의뢰를 취소하면 앞으로 하 가문의 지원은 물 건너감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그렇다고 의뢰를 취소하지 않으면?

그는 지금부터 마법사 사냥꾼의 표적이 된다.

당장 10년 전 대변동, 마법사들의 수장 라이게르를 단신으로 암살한 자가 그녀였다.

블랙 하운드의 수장인 그 역시 라이게르와 같은 길을 따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막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암살자를 보내야할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케르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알았네. 취소하도록 하지.]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블랙하운드의 전력 상실은 물론 그의 목숨까지 위험하다.

그에 반면 지금 의뢰를 취소하면 단지 지원이 끊기는 거로 끝난다.

하 가문의 지원이 끊기는 건 뼈아프지만, 케르반 본인의 목숨값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대신 이걸로 추후 이번 일에 대한 보복은 물론, 블랙 하운드는 하 가문과 별개라는 약속을 부탁하지.]

“……좋아.”

수화기 너머로 수연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걸로 블랙 하운드는 더 이상 마법사 사냥꾼과 엮일 일은 없었다.

이에 케르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인했다. 그럼 다시 목소리 들을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뚝.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잠시 뒤.

-콰직!

수연이 스마트폰을 박살내며 현성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 이걸로 다른 암살자가 올 일은 없을 겁니다.”

그대로 현성이 수연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정녕 이게 방금 전까지 블랙 하운드의 수장을 협박하던 사람이 맞는지.

하지만 그도 잠시.

‘뭐 나쁠 건 없나. 아니 오히려 좋은 상황이야.’

현성이 박살난 스마트폰의 잔해를 흘깃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작의 전개대로라면 주인공은 공성선 직전까지 따라붙는 암살자를 상대해야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현성에게 있어 귀찮은 일이 줄어든 셈이었다.

“덕분에 골치 아픈 일을 덜었어.”

“과찬입니다. 도련님.”

그 말에 수연이 현성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렇다면 이제 블랙 하운드의 암살자 문제도 해결했겠다.

이제 남은 건 본격적으로 승계를 두고 벌어질.

‘……공성전.’

그거 하나뿐이었다.

* * * * *

한편 하진우의 집무실.

그가 블랙 하운드에 의뢰를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케르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에 진우는 드디어 처리가 끝난 건가 싶어 기쁘게 전화를 받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케르반이 남긴 말은 간단했다.

[의뢰. 취소하겠습니다. 의뢰금액은 전부 돌려드리겠습니다.]

일방적인 거래취소.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정확한 설명도, 변명도 없었다.

단지 의뢰를 취소하겠다는 말 뿐.

그런 카르반의 말에서는 분노와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블랙 하운드에 연락을 해봤으나, 돌아오는 말은 다른 조직을 찾아보란 말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예 연락을 받지 않는다.

“제기랄……!”

진우가 책상을 내려치며 화를 냈다.

이런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그깟 몰락가문이 뭐가 무섭다고 이러는지 그로서는 알도리가 없었다.

허나 그도 잠시.

진우가 화를 삭이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래, 기껏해야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던 사냥개 한 마리가 도망친 것.

어차피 이번 공성전에서 밟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날짜는 당장 이틀 뒤.

진우가 그렇게 생각하며 펜을 꽉 쥐었다.

-콰직!

이에 그가 쥐고 있던 펜이 박살났다.

그대로 진우가 손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유현성, 망할 고아 년과 같이 묻어주지.”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