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하 가문(13)
유 가문의 저택.
사실 저택이라고 하기는 거창하고, 말하자면 대략 가정집 정도인 현성의 집.
그곳에는 간만에 모인 현성과 수연이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슬슬 저녁식사가 마무리 될 때쯤.
“오늘 저녁은 맛있게 드셨나요?”
수연이 식탁 위의 빈 접시를 치우며 싱긋 웃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지. 항상 맛있는 음식 만들어줘서 고마워.”
애초에 수연의 요리 실력이 수준급인건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이번 저녁 역시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그대로 현성이 식탁 위 가득 놓여있는 빈 접시를 흘깃 바라보았다.
이미 어느 정도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식탁 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빈 접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수연의 저녁은 푸짐하다 못해 그 양이 너무 과했다.
이에 현성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두 명이서 먹기에는 양이 좀…많은 거 같지 않아?”
“그래도 다 드셨잖아요.”
수연의 대답에 현성이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실제로도 다 먹긴 다 먹었지만,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야 다 안 먹으면 먹을 때까지 계속 지켜보면서 ‘혹시 맛이 없는 건가요? 다시 만들어드릴까요?’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니까.’
현성이 차마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에 수연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은 한창 성장기잖아요. 성장기 때는 많이 먹어야죠.”
“하하…”
단호한 수연의 말.
다른 건 몰라도 그녀는 식사 하나 만큼은 절대 포기하기 않았다.
이에 현성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번 식사량 타협 역시 결렬된 모양이었다.
“자, 그럼 디저트 드셔야죠?”
그와 함께 수연의 손에는 벌써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이 들려있었다.
제길, 당했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건넨 디저트를 받아들였다.
“……잘 먹을게.”
그 모습에 수연이 만족스러운 듯.
생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잠시 뒤.
기어코 현성이 디저트마저 다 해치운 찰나.
수연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로 부르신 건가요?”
알다시피 그녀는 마족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밖에 나가 있던 상태.
그런 와중, 현성의 부름으로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연이 알기로는 현성 역시도 당분간은 하 가문의 승계와 관련된 일로 꽤 바쁜 상황.
그만큼 도련님이 갑작스레 자신을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달그락.
그 말에 현성이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사실 커피까지 마시기에는 슬슬 한계였는데 마침 잘됐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아, 잠시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이요?”
“응.”
그대로 현성이 품속에서 검은 열쇠를 하나 꺼냈다.
그 열쇠는 다름 아닌 얼마 전 연회장에서 진우를 기절시키고 가져온 열쇠였다.
이에 수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쇠와 현성을 번갈아보았다.
“도련님, 이건 무슨 열쇠죠?”
그런 수연의 말에 현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 가문 둘째의 서재 뒤쪽에 숨겨진 비밀장소.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열쇠야.”
“……예?”
현성의 대답에 수연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하 가문의 승계에 관해 일이 있다고 하더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비밀장소로 통하는 열쇠를 가져온 걸까.
게다가 하 가문의 둘째라면 하진우 아닌가.
‘하 가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고 상대하기 껄끄럽다고 알려진 사람.’
수연이 하진우에 대한 소문을 곱씹었다.
거기다 은밀하게 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음지의 손까지 빌린다던데.
그런데 도련님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다니.
하지만 그도 잠시.
수연이 현성을 향해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서 제가 할 일이 뭐죠?”
구태여 이게 어떻게 된 일이며, 왜 그와 엮였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저 현성을 믿고 따른다.
저번에 도련님을 상대하며 약속한 것이었다.
‘도련님은 이미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똑똑하신 분이다.’
수연은 단지 그런 현성을 믿고 따를 뿐.
그 과정에서 다른 질문은 불필요했다.
그런 수연의 모습에 현성이 작게 웃었다.
열쇠를 가져온 이유가 궁금할 법한데도, 수연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를 믿고, 다음에 자신이 할 행동을 물었다.
그 사실에 현성은 수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입을 떼었다.
“하진우의 집무실에 있는 서재에 잠입해서 뭘 하나 가져왔으면 좋겠어.”
“그게 뭐죠?”
“그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은 가능하겠어?”
그러자 수연이 싱긋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도련님이 원한다면 그자의 목이라도 가져오겠어요.”
이수연.
유 가문의 유일한 메이드이자, 과거 마법사 사냥꾼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던 자.
이는 최소 마스터 암살자인 그녀가 내뱉는 말인 만큼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저렇게 웃으면서 사람하나를 담구겠다고 하니 꽤나 소름이 돋는군.’
애초에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하 가문에 잠입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방금 말한 것처럼 그녀라면 진짜로 진우의 암살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누누이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아군으로 돌려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현성이 검은 열쇠를 수연에게 맡기며 말했다.
“좋아. 그럼 열쇠는 맡길게.”
“네, 도련님이 주신 물건인 만큼 제대로 보관할게요.”
수연이 밝게 웃으며 열쇠를 꼭 쥐었다.
이어서 그녀가 물었다.
“아무튼 그럼 이건 제게 맡기고, 다른 건 문제없나요?”
하 가문의 승계에 관해 묻는 게 분명했다.
현재 현성이 지지하기로 한 하시연, 그러니까 방계파는 아직까지도 직계파에 비하면 힘이 모자란 상태.
무엇보다 이제 곧 있으면, 본격적인 승계를 두고 가문 내 다툼이 벌어질 터.
“분명 공성전…이라고 했었죠?”
“그래. 맞아.”
그리고 그 방식은 바로 공성전.
과거 하 가문의 초대 가주가 목숨을 걸고, 최전방에서 성을 지켜냈던 것처럼.
이것이 전통이 되어 대대로 가주를 정하는 방식은 공성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방식은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하시연이 이끄는 방계파.
하수연이 이끄는 직계파.
이렇게 둘로 나뉘어 서로의 성을 비롯한 영역을 지키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었다.
그러다가 각 파의 리더임을 증명하는 가문의 증표를 빼앗는 쪽이 승리.
그동안 <이스페리아>에서 겪어왔던 던전공략이나 보스몬스터 퇴치가 아닌 조금 독특한 방식이었다.
“그 부분이라면 이미 준비 하고 있어.”
안 그래도 현성은 연회장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공성전에 대한 공략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이에 수연이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럼 혹시 외람되지만 승률은 얼마 정도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의심이라기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과연 도련님은 어떤 결과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수연의 물음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50대 50이지. 뭐.”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펼쳤다.
“지거나. 이기거나.”
그 모습에 수연이 피식 웃었다.
도련님다운 대답이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라면 방계파의 패배를 확신했을 터.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만큼 세력의 차이는 컸으니까.
게다가 그 방식이 공성전 아닌가?
공성전에 있어 세력의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질 걱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이길지 고민할 뿐.
‘……뭐 도련님의 이런 모습을 좋아하는 거지만.’
수연이 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웅? 더 할 말 있어?”
그러자 수연이 고개를 저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뇨. 그냥 도련님이 좋아서요.”
몸 쪽 꽉 찬 직구로 들어오는 수연의 한마디.
그 말에 현성이 난처한 듯 시선을 돌렸다.
차라리 공성전의 승패를 묻는 게 더 나았다.
이럴 땐 도대체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역시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좋겠지?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도련님.”
그 모습에 수연이 현성의 볼을 쿡 찌르며 말했다.
“그럴 땐 나도 좋아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이에 현성이 마지못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나도 좋아.”
“잘하셨어요. 도련님.”
그대로 수연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귀여우시기는.’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이제 슬슬 설거지를 하고 도련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지.
수연이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멈칫.
뭔가 거슬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동시에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
암살자 시절, 수도 없이 느껴봤던 그 감각이었다.
‘……표적을 노리는 살기.’
아직은 간을 보는 건지 미약한 살기였지만, 마스터 암살자인 그녀의 감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대로 그녀가 미간을 좁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도련님. 아무래도 손님이 온 모양입니다.”
방금 전의 웃음은 온데 간데 사라진지 오래.
수연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느껴지는 것만 해도 왼쪽에 둘, 뒤쪽에 하나, 오른쪽에 둘.
못해도 5명이었다.
거기다 지금 도련님과 자신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천천히 좁혀오는 포위망.
어딘가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우선은 자연스럽게……”
그때였다.
현성이 태연하게 말했다.
“일단 느껴지는 건 5명이지?”
“…이미 알고 계셨군요.”
현성 역시도 다른 시선을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는 수연처럼 암살자의 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원작의 스토리 전개와 똑같았으니까.
아마 진우가 보낸 사람들이겠지.
이에 현성이 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당연한 거 아닌가요. 도련님을 노리는 멍청한 녀석들에게 알려줘야죠.”
수연이 식탁 위에 있던 나이프를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우리 도련님을 노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렇게 말하는 수연은 철저하게 살기를 감추고 있었다.
마치 흔한 가정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모습처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쉬이익!
수연의 뒤에 있는 창문을 타고 돌연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넘어왔다.
곧바로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건 역시나 단검을 든 암살자.
그 수는 한명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나타난 그림자 무리.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수연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푸욱!
동시에 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대로 잠시 뒤.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하지만 쓰러진 건 수연이 아닌 암살자.
그런 암살자의 목에는 방금 전까지 식탁에 있던 은빛 나이프가 박혀있었다.
비명소리 하나도 못 내고 단번에 절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이에 수연이 튄 피를 닦아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늘 청소는 평소보다 까다롭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주위로는.
어느새 진한 살기가 삐져나오고 있었다.
이에 다른 암살자들이 주춤거렸다.
-움찔!
그러나 그도 잠시.
녀석들이 재빠르게 타겟을 변경했다.
그 다음 타겟은 바로 현성.
-피잇!
다른 암살자가 현성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심장을 노린 공격.
허나 그때였다.
-챙강!
그의 단검이 현성의 몸에 닿기 무섭게 두 동강 났다.
그와 함께 암살자의 동공이 커졌다.
“……!?”
-스으으.
그리고 그런 현성의 몸 주변으로 차가운 한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 진원지는 심장 한 가운데.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심장 한 가운데 있는 현성의 오른손이었다.
이어서 현성의 왼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투쾅!
동시에 그의 주먹을 따라 붉은 화염이 폭발했다.
“커어어억!!”
암살자가 채 단검을 거두기 전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건 오직 주먹을 따라 생긴 붉은 궤적 뿐.
그 충격에 암살자의 상체가 꺾이며 저 멀리 날아갔다.
-우드득…콰앙!
날아간 암살자가 벽에 처박히더니, 곧 픽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현성이 나머지 암살자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야. 실내에 들어올 땐 신발 벗고 와.”
그러면서 그가 발아래 있는 카페트를 가리켰다.
“카페트. 비싼 거 거든.”
그런 현성의 양 손에는 푸른 얼음조각과 붉은 불씨가 흩날리고 있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